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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소재는 무조건 특별해야 할까?

조회수 2020. 6. 16.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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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작가님, 뭘 써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보통 이런 질문은 한숨과 함께다. 그리고 나는 그 한숨의 의미를 잘 안다. 글쓰기와 관련이 없던 내가 글을 쓰고자 했을 때, 모니터 앞에 앉으면 어김없이 드는 걱정이었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모니터 앞에 앉아 멍하니 만들어낸 하얀 밤도 많았고, 몇 번은 땅이 꺼지고도 남을 한숨도 많이 내쉬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이 질문보다 앞선 또 다른 질문이 있다.

저는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 글을 쓸 수 있을까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질문.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들에게 꽤 무거운 질문이다.

특별한 소재를 찾아서

만약, 특별한 소재가 있다면 글쓰기의 시작이 조금 더 쉬울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스페이스 X에 몸을 실은 한국인 최초 민간 우주 여행자가 되었다면, 우주여행을 마치고 와서 풀어낼 이야기보따리가 아주 클 것이다. 그것뿐인가.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기에 그 특별함도 이루 말할 수 없다. 뭘 써도 사람들은 읽을 것이다. 어떻게 표현해도 사람들은 흥미로워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큰 보따리에도 끝은 있다. 더 이상 그 이야기가 새롭지 않을 때, 소재는 특별함을 잃는다. 보따리가 비워져 보자기만 남으면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 소재에만, 그것도 ‘특별한’ 소재에만 의존하면 글쓰기는 이어지기 어렵다. 우주 이야기까지 탈탈 털어 글을 썼는데, 다음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주여행보다 특별한 건 뭘까? 아, 사후세계라면 좀 더 특별하지 않을까? 할 수만 있다면 말이지.

 

글쓰기는 소재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소재를 생산하는 일이다

글쓰기는 삶에 정말 큰 선물을 주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영감(靈感)’이다. 다른 말로 인사이트, 통찰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세 가지가 함께 오는 경우는 정말 축복받은 날과 같다. 그저 그런 하루가 새로워 보이고, 고만고만했던 순간들이 빛나며 막연했던 의문들은 삶의 지혜가 되어 돌아온다. 그때 난, 글쓰기는 소재를 찾아 헤매는 게 아니라 내 주변의 것을 특별하게 쓰는 것이란 걸 깨닫는다.


특별하지 않은 걸 특별하게 바라보고, 고만고만한 걸 평범하지 않게 써내야 하는 것이 작가에게 주어진 숙제이자 축복이라 믿는다. 우주여행을 다녀오지 않아도, 사후 세계를 경험하지 않았어도 내가 글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다.


평범함으로 치면 나 또한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의 월급쟁이를 특별하게 볼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아니, 거의 없지 않을까. 


다만, 내가 아무래도 아주 조금 더 특별한 점이 있다면 많은 글을 생산해냈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나의 일과 삶에 대해서 썼다. 직장인이니까 직장인의 고충과 보람을 썼고, 주재원이었으니까 그 나라의 사람과 문화에 대해서 썼다. 글쓰기를 하고 있으니 글쓰기에 대해 쓰고 있고, 인문학에 관심이 많아 나름의 인문학을 끄적거리고 있다.

내 소재는 내 주변에, 나는 평범하지만 내 글은 특별하다!

내가 글쓰기 강의를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내가 유명 작가와 같이 글을 현란하게 써서가 아니다. 오히려 글과 상관없던 평범한 이력이 나를 더 돋보이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던 평범한 나는, 글쓰기를 막 시작한 사람들에게 용기가 될 수 있으니까. 한 사람이라도 더 글을 썼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는 글쓰기와 강의를 이어가는 것이다.


『직장내공』에 수록된 ‘뭐든지 항상 잘할 필요 없다’ 챕터의 예를 같이 봤으면 한다.

지친 몸을 일으켜 출근을 위해 욕실로 향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반쯤 뜬 눈으로 칫솔을 집어 들었다. 오른손으로 치약을 들어 칫솔모에 짜려던 찰나. 빼꼼히 나온 치약 한 덩이가 힘없이 스르르 바닥으로 떨어졌다.

헛웃음이 나왔다. 치약을 짜서 칫솔에 묻히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내 나이를 고려해서, 스스로 양치질을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의 아침에 치약을 짠 횟수를 헤아려 보면 대략 1만 5천 번 이상이다. 그토록 반복한 일을, 게다가 그리 어렵지도 않은 일에 실수를 한 것이다.

이게 뭐라고. 짜증이 몰려왔다. 이런 것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중략)

치약을 떨어뜨린 순간 그렇게 난 뭐든 잘하려는 무거운 마음을 가진 나와 조우했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 치약을 제대로 짜지 못한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로부터 일어난 짜증이 뭐든 잘 해내려는 압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평범한 아침 풍경에서 깨닫는 것

글의 소재는 나로부터 시작된다

내 주변으로부터 시작된다. 특별한 사건이나, 이벤트만이 다가 아니다. 오히려 나로부터 나와야 깨달음이 크고 표현은 깊을 수 있다. 치약 하나로 마음까지 아우르는 통찰은 바로 글쓰기의 선물이자 묘미다.


사람은 누구나 평범하다. 그 사람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은 남이다. 연예인들도 팬이 없으면 특별하지 않은 존재다. 연예인들의 실생활을 들여다보거나, 인터뷰를 해보면 삼시 세끼 밥 먹는 보통 사람임을 느끼지 않는가. 나는 평범하지만, 내 글은 특별한 이유다. 나는 나의 삶을, 남은 남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삶은 특별해 보인다.


내 평범한 삶과 경험이 누군가에겐 특별한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고 남의 입맛에 맞추거나, 남의 반응에 따라 글을 쓰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나를 관통하는 글쓰기를 해나갈 때, 그러니까 진솔한 나를 내어놓을 때 사람들은 반응한다.


나의 특별함은 ‘나의 진솔한 평범함’에서 온다. 그것이 내가 글쓰기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영감, 통찰 그리고 인사이트다.


원문: 스테르담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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