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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맨〉, 거장이 체화한 회화 전통을 영상으로 구현한 역작

‘제발 폰으로 보지 말고 가급적 큰 화면에서 봐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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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를 리뷰하는 건 마치 셰익스피어의 햄릿,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성당 그림에 관해서 이야기하겠다는 것만큼이나 부질없게 느껴진다.


뛰어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누구나 다 한마디씩 했고, 훌륭한 리뷰가 넘쳐나는데 나도 한마디… 해봤자 허접스러운 한 줄을 더하는 것 같은 기분. 그럼에도 〈아이리시맨(The Irishman)〉은 뭐라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욕심이 나게 하는 그런 작품이다.


  1. 거장 스코세이지 감독이,
  2. 최근에 다시 주목받는 지미 호파(Jimmy Hoffa)라는 미국 현대사의 문제 인물을,
  3.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장르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보겠다면서
  4. 무려 3시간이 넘는 작품을 만들었을 때는 그냥 나온 한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그의 역작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 대해서는 다들 다른 곳에서 많이 읽었을 테니, 다른 데서 이야기하지 않았을 두 장면만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1.

스코세이지 감독은 본인 스스로도 이야기하는 것처럼 옛날식 감독이다. 극적인 스토리 라인을 팽팽하게 끌어가는 뛰어난 재주꾼이고, 화면을 구성할 때 화가처럼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즉, 영화는 ‘플롯’과 ‘화면’이라는 정공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내가 스코세이지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메인 스토리 라인 사이, 반드시 넣지 않아도 이해하고 즐기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데도 성의 있게 넣는 삽화 같은 장면 때문이다.


가령 〈좋은 친구들(Goodfellas)〉 같은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생활 속 일화들은 그 자체로는 플롯에 중요하지 않아도 전반적인 극적 세팅을 하고, 무엇보다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의 일상과 문화를 잘 그려낸다. 내게 이탈리아계 미국인 친구가 없는데도 이탈리아계 코미디언의 농담을 이해하고 웃을 수 있는 이유는 스코세이지의 영화들 때문이다.


그런 삽화는 봉준호 감독도 아주 잘 사용한다. 가령 〈기생충〉에서 노상 방뇨하는 술 취한 행인처럼 그의 작품들에는 플롯 자체에는 상관없지만 작품의 주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장면이 많다. 하지만 스코세이지의 삽화는 조금 다르다.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라고 넣기보다는 그 시대를 이해하라고 넣는, 일종의 역사 공부를 위한 서비스 같은 장면들이다.


이런 장면이 그런 전형적인 케이스다. 극 중 주인공인 나이 든 부부 둘이 필라델피아에서 디트로이트까지 차를 타고 여행하면서 중간중간 호텔에 들른다. 그렇게 들른 호텔의 수영장에서 아내들은 수영장에 발을 담근 채 환담을 나누고, 남편들은 미국 역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사건을 계획하면서 번갈아 가며 호텔의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내용과 상관없는 엑스트라 한 명이 오른쪽에 등장해서 화면을 가로질러 간다. 아내보다 훨씬 젊은 여성이다. 걸어오던 남자는 그 여성을 보고 위아래로 슬쩍 훑는다(once-over). 전형적인 장면이고, 극 중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이 시점에서 많은 관객의 눈에 띄지 않았을 거다. 그냥 엑스트라가 걸어간 거다.

하지만 잘 보면 그 여성의 차림은 아내들과 다르다. 세 명 모두 화려한 꽃무늬 수영복을 입었지만, 젊은 여성은 나이 든 아내들과 달리 투피스 수영복이다. 남자가 슬쩍 본 것도 그게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물론 남자는 중요한 용건으로 바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내들 중 하나가 그 여성을 흘끗 바라보고는 옆에 있던 친구에게 뭐라고 말한다. 대사는 없지만, “요새 젊은 여자들은…”이라는 말이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이 장면은 1970년대다. 미국에서 비키니는 1960년대부터는 보편화되기 시작했지만, 이런 중서부 작은 호텔에 머무는 보수적인 나이 든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이야기거리였을 거다. 스코세이지는 그걸 잡아낸 거다.

멀리 보이는 건물 외벽에 하워드 존슨 호텔의 옛날 간판도 눈에 잘 띄게 배치했지만, 이 여성의 존재를 눈치 못 챈 관객들을 위해 잠시 후 다시 등장해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걸어간다. 이번에는 손에 맥주를 한 잔 들고 걸어간다. 그러니까 맥주를 가지러 갔다 오는 중이었던 거다.


이번에도 아내들은 눈치 안 채게 흘끗 바라본다. (게다가 이 젊은 여성은 동부 이탈리아계가 아니라 중서부 답게 금발의 백인이다.) 남편과 아내가 모두 그 여자를 의식했지만 서로는 모른다. (여성해방운동이 본격화된) 1970년대의 분위기를 보수적인 이탈리아계들의 눈으로 그렇게 살짝 묘사하고 넘어가는 거다.



2.

플롯이나 주제와 무관한 이런 삽화가 스코세이지 영화를 음미하면서 보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다. 이 영화는 넷플릭스의 자본으로 만들었지만, 정작 스코세이지 본인은 스트리밍 추세를 좋아하지 않는다. 관객들에게 이 영화를 “제발 폰으로 보지 말고 가급적 큰 화면에서 봐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다.


그럴 만한 이유는 분명하다. 스코세이지의 디테일은 크게 봐야 보이고, 크게 볼수록 더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탈리안 집안의 결혼식 장면에서 하객들을 잠깐 훑는 장면은 비주얼만으로 보면 이 영화 최고의 장면이다. 4초 정도 밖에 안되는데도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캐릭터가 확연히 드러나는 개성적인 얼굴을 하고, 그들의 표정은 이탈리아계의 짙은 피부색과 짙은 황갈색과 베이지, 회색의 옷을 입고 어두운 배경에서 마치 바로크 회화 속 인물들 처럼 생생하게 화면을 뚫고 나온다. (이 사진은 꼭 컴퓨터 화면으로, 아니 넷플릭스에서 영상으로 직접 보시길).


카라바죠, 루벤스, 벨라스케즈, 렘브란트 같은 바로크 화가들의 천재성은 잘 알고, 그들의 작품이 가진 엄청난 호소력을 잘 알지만, 나는 스코세이지의 이 장면은 그 화가들의 작품보다 더 뛰어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물론 많은 것을 보고 배운 후대의 작품을 선대와 일대일로 비교하는 건 불공평한 일임은 인정하지만). 게다가 이 장면은 정지 화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슬로모션이고, 배경에는 ‘인 더 스틸 오브 더 나잇(In the still of the night)’이라는 1950년대 두왑 송(doo-wop song)이 느리게 연주된다.


멈춘 듯 천천히 움직이는 이 장면의 슬로모션은 마친 빌 비올라(Bill Viola)가 1995년에 발표한 작품 〈인사(The Greeting)〉를 연상시킨다. 일상적인 속도에서는 보이지 않는 작은 감정들이 슬로모션 속에서 드러나는 걸 보여주는 이 작품은 사실 르네상스 화가 폰토르모(Pontormo)의 작품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


비올라도 스코세이지처럼 뉴욕 퀸즈에서 자란 이탈리아계로 아는데, 두 사람 모두 길고 풍성한 회화 전통을 영상으로 구현한 실력이 억지스럽지 않고, 단순한 활용과 반복이 아니라 오히려 더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감탄스럽다. 특히 스코세이지의 경우 ‘내가 이탈리아의 회화 전통을 살려야지…’ 하고 만든 게 아니라, 그냥 자라고 배운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한 그런 느낌.


원문: Sanghyun Park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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