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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은 왜 홍콩 사태와 관련해 중국을 압박하지 못하는가

홍콩은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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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지난 10월 주프랑스 중국 대사관에서는 프랑스를 향해 상당히 기묘한 연대를 제의한 바 있다. 그 기묘한 연대란 당시 EU 대외관계청의 마야 코치얀치치 대변인이 홍콩 시민의 집회 권리는 유지돼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자 주프랑스 중국 대사관에서 이에 반박 성명을 낸 과정에서 일어난 바 있다.


그 연대의 제의라 함은 “프랑스 역시 노란 조끼 시위가 극에 달했을 때 공권력이 무질서한 폭력에 노출된 바 있으니, 현재 비슷한 경험을 겪는 우리 중국에 연대감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권위주의를 통치의 근간으로 삼는 국가가 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혁명을 치른 국가에 집회의 폭력성에 대한 연대감을 요구한다는 것은 상당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홍콩 시위 현장.

그러나 이 기묘한 연대 제의에는 악화일로로 흐르는 홍콩 사태를 향해 미국을 제외한 다른 서구 강대국들이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한다는 슬픈 현실이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게다가 미국은 무역 분쟁을 지렛대로 얼마든지 홍콩 사태와 관해 중국을 압박할 수 있지만, 불행히도 현재 백악관은 홍콩에 특별한 조치를 시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대통령인 트럼프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중국에 특정한 변화를 리스크 없이 요구할 수 있는 국가는 전 세계에 오직 미국 한 나라뿐이다. 게다가 미국은 중국의 불공정 무역 및 지적재산권 위반으로 인해 자국이 피해를 입는다는 (중국의 입장은 다르겠지만) 분명한 명분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백악관은 현재 홍콩에 대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이는 결국 트럼프의 입장에서 홍콩에 손을 대는 게 그리 도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기묘한 연대감의 요구로부터 시계를 조금 돌려서 11월로 넘어가 보자. 내년 대선을 앞둔 트럼프의 입장에서는 지속적인 악재가 불거진다. 탄핵 조사가 계속 이어지는 한편, 현재 핵심 경합 주 (오하이오, 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 미시건, 위스콘신, 노스캐롤라이나 등) 들의 경제 성적표가 그리 좋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전체로 보면 실업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나, 러스트 벨트를 위시한 경합 주는 오히려 2019년부터 실업률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의 주요 경합 주들이 팜 벨트와 러스트 벨트에 걸쳐져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볼 때, 트럼프 본인은 경제 호전과 주식시장의 상승을 마치 대단한 치적인 마냥 홍보했지만 정작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가장 핵심적인 지역들은 오히려 그의 재임 기간 더욱 가난해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팜 벨트와 러스트 벨트는 미국에서 글로벌 교역량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즉 무역 분쟁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도 지난 11월 4일 NYT와 시에나 대학교의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는 주요 경합 주에서 바이든에게는 오차범위 내의 접전을 벌이고 샌더스와 워런에게는 앞서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러나 주요 경합 주 지역의 실업률이 2019년 2분기 이후로 상승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2020년 11월에 치러질 대선 시점에서는 경합 주 민심이 어떻게 변화할지 알 수 없는 것이 현재 트럼프가 처한 상황인 것이다.

2019년 3분기 미국의 실업률. 1년 전부터 빈틈없이 변화했다.

때문에 트럼프가 만약 임기 초였다면 홍콩 문제를 지렛대로 삼아 중국을 느긋하게 압박하며 명분을 더 획득할 수 있었겠지만, 현재 그의 이해관계에서 홍콩은 지렛대가 되지 못한다. 탄핵 조사가 이어지는 판국에 무역 협상을 더욱 지연시킬 수 있는 변수가 첨가되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중국 역시 이 점을 충분히 생각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천천히 인민해방군 투입의 명분을 쌓는 것이다.


홍콩은 외롭다. 유일하게 중국을 제지할 수 있는 나라인 미국은 그 대표가 내부적인 문제 및 선거의 이슈에 휘말려 (또는 본인의 성향으로 인해) 등 떠밀린 대응조차 하지 못한다. 다른 서구의 국가들은 15억의 거대한 시장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질끈 눈을 감아버리는 길을 택했다. 세계화된 자본주의는 세계를 하나로 묶어 거대한 전쟁의 위협도 막았지만, 그 반대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인권에 대한 유린조차 마음대로 지적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이 지점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바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감이다. 결국 21세기는 20세기 말 미국이 주도적으로 개입하여 민주주의를 ‘배달’하던 시점에서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의 거대한 한 축으로 자리 잡은 중국의 부상도 당연히 두려운 일이나,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세계 이곳저곳에서 자라날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감이 나는 가장 두렵다.


원문: 김현성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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