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날마다 뭔가 파는 세일즈맨이다: 『드디어 팔리기 시작했다』 저자 브랜드보이 인터뷰

조회수 2020. 9. 16. 15:4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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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욕을 먹더라도 뚜렷한 정체성이 낫다.'

이승환(ㅍㅍㅅㅅ 대표, 이하 리): 어쩌다가 책을 쓰게 됐습니까?


브랜드보이(『드디어 팔리기 시작했다』 저자): 예전에 3년 정도 준비했던 책이 있었어요. 나름 메이저 출판사와 작업을 했는데, 계속 수정하다가 결국 엎어졌어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제가 SNS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게 제일 컸어요. 자꾸 하라고 하는데 쿨하게 거절했거든요. 제가 순진했죠. 첫 책인데 제가 누군지 아는 사람도 없고… 그게 브랜드보이를 시작한 계기이기도 했어요.

페북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브랜드 보이.

리: 그래서 이번 책에서는 대중이 알 만한 브랜드를 고른 건가요?


브랜드보이: 그건 아니에요. 개인적인 최애 브랜드를 고른 거고요. 그중에서도 경험이 쌓여 온 브랜드, 유서 깊은 브랜드를 골랐어요. 와이프가 9년 동안 제가 브랜드 이야기를 하지 않은 날을 하루도 본 적이 없었다는데, 브랜드에 미친 사람이 고른 25개의 브랜드라고 할 수 있겠죠.


리: 어쩌다 패션이나 브랜드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브랜드보이: 정말 어렸을 때부터요. 우리 가족이 다 옷을 좋아해요. 동생은 지금 패션회사 LF 다니고, 아버지는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출신이세요. 저도 어릴 때부터 옷을 좋아해서 어떻게든 튀어 보이게 입었죠. 그래서 교회 가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토요일까지 학교 가다가 교회 갈 때는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었으니까요. 동대문 가서 튀는 옷만 골라왔던 것 같아요.

실제로는 이렇게 생겼다.

리: 아버지가 광고인이셨어요?


브랜드보이: 네. 오리콤 카피라이터셨어요. 지금은 제일기획이 훨씬 앞서 나가지만, 그때는 제일기획이랑 오리콤이 쌍벽이었거든요. 집안 분위기가 독특했죠. 유대인들은 밥상머리에서 경제를 배운다고 하잖아요? 우리 집은 TV 보며 마케팅과 광고 이야기를 했어요. TV 광고 하나 보며, 저 광고는 왜 저렇게 만들었을까, 저 광고는 왜 히트할까? 이런 독특한 분위기였어요.


리: 엄청난 조기교육이었군요.


브랜드보이: 네. 저는 중1 때 『마케팅 불변의 법칙』 『포지셔닝』 같은 책을 읽었어요. 그래서 대학교 들어갈 때는 이미 자연스럽게 저는 광고 회사 갈 거로 생각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TBWA에 입사했어요.

중학생 때 자연스럽게 읽던 책(…)



TBWA의 박웅현 CD를 통해 배운 이야기

리: 가 보니까 어떻던가요?


브랜드보이: 프라이드가 있는 회사였죠. 독립광고대행사로선 한국에서 1위였고, 제가 2011년 입사할 때도 엄청 핫했어요. 박웅현 CD님을 비롯한 쟁쟁한 스타들이 계셨고, 성공한 캠페인도 많았죠. 진심이 짓는다, 현대카드, 이런 광고를 보며 저도 프라이드를 많이 느꼈죠.


리: TBWA에서 뭘 배웠습니까?


브랜드보이: 저는 박웅현 CD님한테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같은 팀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에도 광고계의 슈퍼스타셨으니 어깨너머 많이 배웠죠. 이번에 책 내며 오랜만에 인사도 드렸고…

『책은 도끼다』로 유명한 그분.

리: 뭐라고 합니까? 이 새끼 많이 컸네 이래요?


브랜드보이: 너무 예의가 바르셔서 그런 건 전혀 없어요. 제가 배운 것도 크리에이티브보다, 예를 들면 리더로서 회의를 어떻게 진행하는 법이라든지, 정말 일 하나하나에 프로다운 태도가 많았어요. 광고회사에서 제일 무서운 것 중 하나가 회의 시간이 길어지는 거예요. 근데 박웅현 CD님은 의사결정에 시간을 들이지 않았어요. 회의 때마다 교통정리를 잘하셨기에 가능한 일이겠죠.


리: 에, 그래도 시간을 많이 들여야 아이디어도 많이 나오잖아요.


브랜드보이: 이 자리에서 시간 낭비하지 않도록 선을 잘 그어주셨어요. 이 정도 의견 나왔으면 됐습니다, 나올 건 다 나온 것 같습니다, 해서 딱 선을 긋는 의사결정을 해 주시는 거죠. 여기서 아무리 짓눌러 봤자 뭐가 안 나온다는 걸 아시는 거예요.


리: 철저한 분이시군요.


브랜드보이: 그렇죠, 워낙 바쁘신 분이니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습관이 몸에 밴 것 같아요. 김민철 CD님께서 쓴 『우리 회의나 할까?』란 책을 보면 박웅현 CD님의 팀이 어떻게 회의를 진행하는지에 대해 잘 나와 있어요.

바로 이 책.
그리고 브랜드보이가 낸 책.



갑자기 현대카드 외판원이 되다

리: 근데 그 회사에서 왜 이노션으로 튀었나요?


브랜드보이: 바로 가진 않았고요, 제가 중간에 세일즈를 했었어요. 현대카드요 외판원을 한 거죠. 정규직이 아니라, 길거리 돌아다니면서 영업 뛰었어요. 카드상담원이죠. 퍼플 카드, 레드 카드, M3… 엄청 팔러 다녔죠.


리: 갑자기 왜 그런 일을-_-?


브랜드보이: 책에서도 다룬 《뿌리깊은 나무》를 창간한 한창기 선생님을 제가 너무 존경했어요. 그분이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남들 다 하는 사법고시 안 치고 미8군에서 성경 파는 세일즈맨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거든요. 이후 시작한 ‘브리태니커’라는 백과사전 판매 회사가 세일즈 사관학교가 됐죠. 윤석금 웅진그룹 창업주도 거기 세일즈맨으로 계셨고요. 그래서 저도 뭔가 그분처럼 작은 일이라도 세일즈를 해보자는 로망이 있었어요.

내용도 디자인도 쩔었다.

리: 수많은 브랜드 중 현대카드 세일즈를 한 이유는 뭔가요?


브랜드보이: 너무 대단한 브랜드니까, 한국에서 이렇게 잘하는 브랜드를 본 적이 없으니까, 현대카드라면 내가 자부심을 가지고 팔아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리: 현대카드는 대기업에서 가장 보수적인 금융 분야잖아요. 어떻게 브랜딩을 잘할 수 있었다고 보세요?


브랜드보이: 뻔한 답이지만, 기존의 틀을 다 깬 거죠. 경쟁사에서 카드의 디자인 비용을 낮추는 방법을 고민할 때 현대카드는 카림 라시드 같은 디자이너에게 엄청난 돈을 주면서 카드를 디자인하는 식이었죠. 지금은 많이들 따라 하지만, 알파벳 마케팅도 그렇고, 슈퍼콘서트, 슈퍼매치 같은 ‘슈퍼 시리즈’도 그렇고… 현대카드가 처음 시작한 게 참 많아요. 또 저는 스스로 아이덴티티를 세일즈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카림 라시드가 디자인한 현대카드.

리: 지금도요?


브랜드보이: 항상요. 제가 책에서 내세우는 것도, 현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이 세일즈맨이란 거예요. 다니엘 핑크가 『파는 것이 인간이다』에서 세일즈맨을 ‘수트 차려입고 어떻게든 팔아 보려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서 원하는 것을 얻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거든요. 저도 직장에서는 광고를 팔고 브랜드보이로 책도 팔지만, 일상에서는 8살짜리 아들한테 맛없는 야채 주스도 팔아요.


리: 그래서 카드 외판원 생활은 어땠나요? 지인 위주로 시작했나요?


브랜드보이: 재미있으면서도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지인에겐 절대 안 파는 게 제 첫 번째 원칙이었어요. 주로 동물병원을 돌았어요. 네이버에 동물병원 검색하면 죽 나오잖아요. 하나하나 전화 드리고 강남에 있는 어지간한 동물병원은 다 돌아다녔어요. 물론 많이 까이기도 했지만, 그건 세일즈하는 사람에겐 당연한 일이고… 결과적으로 돈은 TBWA 있을 때보다도 많이 벌었어요.

당시 활용한 명함.



돌고 돌아 TV 광고계를 선택하기까지

리: 근데 왜 광고계로 돌아온 거죠?


브랜드보이: 그때 ‘더슬레이트’라는 회사에서 제의가 왔어요. 지금은 ‘슬레이트앤에어’라는 이름인데, 10명 정도 되는 기획자로만 이루어진 광고 회사였어요, 정말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작고 단단한 회사에서 일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죠. 여기가 정말 기발한 캠페인을 많이 했거든요.


리: 어떤 캠페인이 있었기에?


브랜드보이: 예로, 제가 같이 했던 캠페인이 코카콜라와 리그 오브 레전드 컬래버레이션이었어요. 환타를 까면 리그 오브 레전드 스킨을 주는 거죠. 더슬레이트 대표님이 회사 방침으로 그런 클라이언트 위주로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에요. 남들이 해보지 않은 새로운 걸 가져오라는 소신을 갖고 계셨어요. 한동안 거기 있다가 지금 몸담은 이노션으로 가게 됐죠.

요런 이벤트!

리: 결국 TV CF로 가게 된 이유는?


브랜드보이: 제가 TBWA에서는 브랜드 전략팀의 컨설턴트였고, 더슬레이트에서는 기획자였거든요. 광고 기획자로서 꼭 한 번은 전 국민이 알아봐 주는 광고 캠페인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코카콜라와 리그 오브 레전드의 컬래버레이션도 결국 10–20대라는 특정 타깃에 한정된 이벤트였으니까요. 그래서 이노션으로 가게 됐죠.


리: 어떻게 보면 TV CF가 요즘 시대에 점점 뒤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브랜드보이: 그 말이 굉장히 오래전부터 나왔어요. 한 10년 전부터 나왔는데, 전 여전히 TV CF만의 역할이 있는 것 같아요. 시청률이 아무리 떨어져도 TV는 메이저거든요. ‘광고 도달율’을 보더라도 전 국민한테 인지시키는 건 여전히 TV의 역할이죠.


리: 저는 그게 반대로 제약이라고 생각해요. TV는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내용을 보여줘야 하잖아요.


브랜드보이: 그렇죠. 그래서 TV CF를 하더라도, 그 브랜드스럽게 하는 게 중요해요. 제가 이노션에서 맡게 된 무신사 런칭 캠페인도 그래요. 처음에 무신사가 TV 광고한다고 했을 때 다들 ‘무신사가 왜 TV 광고를?’ 이런 반응이었어요. 그런데 무신사는 실속을 중시하는 브랜드예요. 왜 고객들이 여기로 와야 하느냐, 브랜드가 여기가 가장 많다. 그래서 “다 여기서 사, 무신사”라는 메시지 하나에 꽂았어요. 보통 오픈마켓이나 소셜 커머스 보면 TV 광고로 인지도를 높이지만, 자신만의 특성을 뽐내진 못하잖아요.

리: 또 기억에 나는 TV 광고로는 어떤 게 있나요?


브랜드보이: 우르오스를 3년 정도 맡았어요. 남성 타깃 브랜드니까 스포츠 매체를 많이 활용했죠. 네이버에서 TV 중계 보는 분은 우르오스 광고 지겹도록 봤을 거예요. 그중 히트했던 광고가 유노윤호와 김정현이 출연했던 우르오스 스킨워시 광고에요. 미끈거리는 바디워시 제품을 쓰면서 괴로워하는 김정현에게 유노윤호가 우르오스 스킨워시를 건네줘요. 이어서 나오는 카피가 ‘아직도 미끌거림 없는 남자의 워시를 모르는 분들께’예요.


리: 너무 메시지가 직접적이지 않나요?


브랜드보이: 광고는 무조건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남자 타깃은 좀 다이렉트하게 찌르는 게 먹힌다고 봐요. 보통 남자들이 남녀 공용 스킨워시 쓰잖아요. 약간 미끈거리는 느낌이 있는데, 이게 남성들의 숨은 니즈예요. 돌려 말하기보다는 정확하게 그 니즈를 파고드는 게 좋은 광고라고 생각해요.

~중간광고~



성공한 브랜드들은 자신만의 애티튜들를 유지하고 발전시킨 브랜드

리: 처음에 특정 브랜드에 빠졌다 이런 순간이 기억나세요?


브랜드보이: 저는 한때 별명이 톰 포드였거든요. 톰 포드를 너무 좋아해서, 맨날 여기저기서 톰 포드를 말하고 다녔어요. TBWA 연말 파티 때 사회 보시던 분이 “왜 이렇게 옷을 특이하게 입어요? 누가 롤모델이에요?”하기에 “톰 포드 좋아합니다” 하니까 별명이 톰 포드가 돼 버린 거예요.

비록 톰 포드를 살 돈은 없지만 수트를 사랑한다.

리: ㅋㅋㅋㅋㅋㅋ


브랜드보이: 아무튼… 톰 포드는 정말 미쳤어요. 클래식을 어떻게 이렇게 섹시하게 풀어낼 수 있을까. 바탕은 클래식인데, 어깨 패드는 빵빵히 하고, 라펠은 풍성하게 하고, 허리는 조이고… 광고 보면 정말 포르노 같고… 톰 포드 매장 갈 때는 나도 딱 준비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위압감을 주는 브랜드의 포스라고 할까, 이런 거에 완전히 반했죠.


리: 근데 톰 포드가 대중적이냐면 그렇진 않잖아요. 패션에 푹 빠진 사람들만 노린 느낌?


브랜드보이: 톰 포드는 패션보다도 돈 많은 사람을 노렸죠. 저는 톰 포드 옷이 하나도 없어요. 하지만 그 환상에 빠진 거죠. 패션은 기본적으로 환상을 파는 비즈니스라고 생각하거든요. 톰 포드는 그 끝이 아닐까… 너도 이걸 입으면 섹시한 바람둥이처럼 될 수 있어. 그러니까 브래드 피트나 지드래곤이나 이런 사람들이 그 섹시한 환상을 소비하고, 대중은 거기에 또 빠져드는 거죠.

리: 사실 브랜드가 다 환상을 팔잖아요. 그러면 그 환상을 주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 광고일까요?


브랜드보이: 기본적으로 브랜드의 모든 메시지를 한 콘셉트로 일치시키는 거겠죠. 톰 포드를 얘기하자면, 톰 포드 개인이 지닌 미적 감각이 레벨이 다른 메시지로 나와요. 아무리 톰 포드의 흉내를 내도, 그 정도 수준의 옷을 만들지 못하고, 그 정도 수준의 사진을 못 찍고, 그 정도의 매장을 구현하지 못하죠. 심지어 톰 포드의 영화감독 데뷔작 〈싱글맨〉은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을 받았어요. 그렇기에 어느 브랜드도 톰 포드를 대체할 수 없는 거죠.


리: 톰 포드는 스펙터클한 브랜드군요. 그런데 파타고니아는 누구나 그 제품이나 광고 레벨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브랜드보이: 그런데 진정성은 따라잡기가 쉽지 않죠.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에 관해 책에서 “어쩌다 보니”라는 표현을 썼어요. 어렸을 때 사업을 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던 사람이, 등산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장비회사를 만들었어요. 그렇게 어쩌다 보니 옷을 만들게 되고, 어쩌다 보니 회사가 너무 커지고… 그러다 환경보호도 시작하고, ‘Don’t buy this jacket’이라는 희한한 광고를 하기도 했고… 과정이 저는 브랜드의 진정성을 보여준다고 봐요.

기존에 생산하던 옷이 환경을 오염시킨다고 사지 말라는 멋짐.

리: 그 진정성이란 말이 너무 포괄적이지 않나요?


브랜드보이: 제가 책에서 팔리는 브랜드의 비결을 사명, 다름, 역지사지 등으로 분류했는데… 그게 저는 브랜드가 가진 ‘애티튜드’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하면 팔린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근데 팔리는 브랜드들을 보니까, 이런 애티튜드가 있었고 그 애티튜드가 긴 시간 트레이닝을 통해 다듬어진 거죠. 그래서 저는 반짝 뜬 브랜드는 신뢰하지 않아요. 브랜드는 굉장히 긴 숙성 과정이 필요하고, 사람들이 그렇게 오래 숙성된 브랜드를 못 알아볼 만큼 둔하지 않거든요.



대중적이든 니치 마켓이든, 오직 심플함을 추구하는 브랜드들

리: 숙성과정… 그런 거로 따지면, 책에 나온 토스는 굉장히 멀었다고 봐야 되지 않나요?


브랜드보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근데 토스는 그 지향점이 너무 분명해요. 그들이 추구하는 금융의 심플함을 지금까지 구현해낸 회사가 없잖아요. 토스가 나옴으로서, 기존의 금융업계가 얼마나 불편했는지 보여줬다는 것만으로 이룬 게 많다고 봐요.


리: 그런데 브랜드는 결국 독자성이 중요하잖아요. 요즘 카카오뱅크 등 다른 금융 앱들도 엄청 편한데, 토스가 브랜드를 지킬 코어가 있을까요?


브랜드보이: 어려운 질문이네요. 근데 제가 토스의 타이틀을 ‘본능적으로 심플’이라고 잡았잖아요. 그게 토스의 제품 책임자가 한 이야기예요. 제 6살짜리 딸아이가 아이폰을 갖고 놀 때, 아무런 설명도 필요 없이 그냥 직관적으로 본능적으로 갖고 놀아요. 저는 그런 정신을 토스가 계속 유지한다면, 토스의 경쟁력이 유지될 거로 봐요. 토스의 간편 송금은 앱 열자마자 계좌 입력하면 끝이잖아요. 다른 곳은 그런 걸 못 만들죠.

요즘은 송금보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 마케팅으로 쓰인다(…)

리: 그런 토스가 요즘 점점 복잡해지죠.


브랜드보이: 그럴 수도 있죠. 그래서 애플이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애플은 사업영역을 확장하면서도 심플함을 유지하지요? 토스도 이런 심플함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현재의 위치를 지켜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리: 브랜드 밸류를 유지시키고 확장하는 데 심플함이 핵심이라 생각하시나 봐요.


브랜드보이: 네. 켄 시걸이 지은 『미친듯이 심플』이 잡스를 관찰한 이야기예요. 그러면서 여러 원칙을 소개하는데, 그중 “명확하게 얘기하라”가 있어요. 애매하게 돌려 말하지 말고 포인트를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거, 저는 그것이 핵심인 것 같아요.

애플의 전통인지 이분도 탈모가…

리: 그런데 고객이 늘어나면 같은 고객 경험을 주기 힘들어지잖아요.


브랜드보이: 그래도 비슷하게 느끼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적절한 예인지 모르겠지만, 광고 회사에서도 좋은 안은 누가 봐도 좋거든요. 다른 사람에게 이게 왜 좋은지 설득하고, 이렇게 하는 순간 이미 문제가 있단 거예요. 좋은 광고라면 직관적으로 딱 느껴지는 게 있어야 한다는 거죠.


리: 대중이 좋아하는 브랜드와 니치함을 유지하는 브랜드는 뭐가 다를까요.


브랜드보이: 니치함의 예로 슈프림이 있어요. 슈프림은 의도적으로 대중적인 브랜드가 되는 걸 차단하는 브랜드죠. 사실 슈프림은 너무 잘 나가서 뭐든지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 브랜드잖아요. 전 세계에 매장을 몇천 개도 낼 수 있고, 돈을 벌기로 마음먹으면 다양한 제품을 얼마든지 찍어낼 수도 있어요. 그런데도 전 세계에 매장은 13개만, 제품은 항상 400개만 한정 판매합니다. 그렇게 희소성을 유지하는 거죠.


리: 무한 확장을 하지 않으며 희소성을 유지하는 브랜드가 있다면, 모두가 다 쓰는 브랜드가 가치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브랜드보이: 저는 그게 배민이 대표적인 것 같은데, 놀이공원을 만들어야 되는 것 같아요. 제가 광고회사 실버스타인 파트너스 CEO인 제프 굿비가 한 말을 정말 좋아해요. “브랜드는 놀이공원이다. 상품은 놀다가 사 가는 기념품이다.”

묘하게 수도승 느낌의 제프 굿비(…)

리: 오, 멋진 말이네요.


브랜드보이: 제품 하나 잘 만들어서 들이미는 시대는 오래전에 갔고, 우리가 최초야, 우리가 업계 1등이야 이렇게 소구한다고 해서 먹히는 때도 아니에요. 놀이공원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거기 들어와 신나게 놀게 한 다음에 ‘기념품도 있거든?’ 하면서 슬쩍 제안해야 사람들이 지갑을 여는 시대가 온 것 같아요. 배민이 대표적이고, 자포스, 빔즈, 다 마찬가지죠.



브랜드, 욕을 먹더라도 뚜렷한 정체성이 낫다

리: 사실 진짜 중요한 건, 브랜드의 스토리를 어떻게 멋지게 꾸미느냐 아닐까요? 전 진정성이란 말을 별로 안 믿거든요. 빤스 다 내린 모습을 누가 좋아하겠어요.


브랜드보이: 제가 책에서 말한 진정성은, 대표의 도덕적인 어떤 진정성 같은 게 아니에요. 그보다 대표와 직원이 이 브랜드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빠져 있는지, 저는 그걸 진정성이라고 표현했어요. 매장 가보면 딱 느껴지잖아요. 이 직원이 몇 시간 교육받고 기계적 응대를 하는지, 아니면 정말 이 브랜드에 빠져있는지. 일본의 빔즈 가면 정말 빔즈에 빠진 환자들이 일해요. 실제로 빔즈 면접은, 자기가 얼마나 빔즈에 애타게 들어오고 싶었는지를 고백하는 장이래요. 우는 친구들도 있대요.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빔즈는 이런 스타일로 팬을 양산한다.

리: 책에서 개인 브랜드도 몇 다뤘는데, 무엇 때문에 이분들을 선정했나요?


브랜드보이: 먼저 루이비통의 첫 번째 흑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버질 아블로. 이분은 자신의 상징성이 너무 강해요. 루이비통 164년 역사상 최초의 흑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데, 버질 아블로 덕택에 베르나르 회장이 세계 갑부 2위에 올랐어요. 스트리트 패션계의 흑인이 루이비통을 지휘하는 것 자체가 파격이었죠. 그런데 이분이 차별화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독특했어요. 이미 있는 걸 가져다가 자기 식대로 편집하고 창조해서 내놓거든요.


리: 럭셔리 업계에서는 편집을 통한 창조가 룰을 바꿔 버린 거군요.


브랜드보이: 틀을 깨 버리는 거죠. 예를 들면 그 사람이 지금까지 만들었던 PYREX VISION 브랜드의 셔츠는, ‘럭비’라는 랄프 로렌의 서브 브랜드인 브랜드의 셔츠를 가져다가 PYREX VISION 로고만 대문짝만하게 박아서 10배 비싼 값에 팔았어요. 나이키랑 같이 컬래버레이션한 더 텐 프로젝트도 나이키에서 히트한 스니커즈 10개를 가져다가 자기 식대로 시그니처 로고 넣고, 케이블타이 묶고…

기존 루이비통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제품을 찍어냈다.

리: 좀 아쉬웠던 게, 한국 기업들은 전부 신생 브랜드만 나오고 좀 전통 있는 브랜드는 없었던 것 같아요. 《뿌리깊은 나무》 하나 정도.


브랜드보이: 그렇죠. 물론 한국에 대단한 브랜드 많아요. 삼성, LG, 현대, 다 글로벌에서 경쟁하는 브랜드잖아요. 그런데 이 브랜드들은 문자 그대로 ‘대기업’ 느낌이 많이 나는 것 같아요. 요즘은 작고 민첩하면서 나름의 스토리까지 갖춘 ‘스몰 브랜드’가 뜨는 시대잖아요. 예전에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두고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스타트업’ 이라고 했는데, 역사가 있는 한국의 기업 중에서는 이러한 브랜드를 찾기가 힘들었고요.


리: 광고회사 다니다 보면 창업한 지인의 브랜드 일 도와주게 되잖아요. 그때 많이 강조하는 게 어떤 것 같아요?


브랜드보이: 심플함이죠. 친구 가게도 그렇고, 클라이언트도 그렇고, 제가 가장 강조하는 건 항상 심플함이에요. 사장님들은 항상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요. 온갖 말을 하고 싶을 때, 딱 하나만 이야기하자고 해요. 저는 작년 최고의 캠페인은 초특가 야놀자였다고 생각해요. 올해는 4딸라고요.

아무튼 기억엔 확실히 남았다.

리: 매스 브랜딩 할 때는 모수가 많으니까 효과를 보겠지만,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심플한 것만 추구하면 시장이 너무 작지 않을까요?


브랜드보이: 오히려 시작하는 브랜드일수록 전 더 좁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브랜드든 호불호가 굉장히 분명해야 합니다. 그 심플함을 무기로, ‘우리는 이런 브랜드야, 우리는 이것만 추구해, 이런 사람이 딱 우리 고객이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옷가게를 한다면, 좋아하는 사람은 너무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들어오지도 말아야죠.


리: 대중이 욕하더라도 광팬이 있어야 한다…


브랜드보이: 네. 제 지인 중에 항상 블랙으로만 입는 분이 있어요. 이분이 옷가게를 열어서 기대하고 가보았더니, 너무 이것저것 다 갖춰 놓으신 거예요. 그래서 그냥 블랙으로만 깔자고 말씀드렸죠. 매장에 오는 분들은 그분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잖아요. 나중에 가게가 커지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처음엔 남들 다 찾는 아이템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사실 슈프림이야말로 남 눈치 안 보는, 내키는 스타일의 대표적 브랜드다.

리: 이것저것 깔아 놓은 옷가게는 아무 데나 많으니까.


브랜드보이: 네, 저는 작은 브랜드일수록 많은 사람을 실망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브랜드 포화의 시대잖아요. 애초에 뾰족하지 않으면 눈에 띄지도 않아요.


리: 브랜드보이 브랜드는 별로 미움받지 않는데, 맘에 안 드는 브랜드 깔 생각은 없습니까?


브랜드보이: 없어요. 제가 싫어하는 브랜드라면 차라리 괜찮은 브랜딩을 한다고 생각해요. 정말 안 좋은 브랜드는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브랜드니까요. 전 클래식 패션을 즐겨 입고 스트릿 패션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정도예요. 그럼에도 저에게 슈프림은 톰 포드와 함께 최애 브랜드예요.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브랜드는 아니지만, 팬들을 미치게 만드는 브랜드죠.



죽을 때까지 광고, 브랜드, 콘텐츠를 하고 있을 것

리: 광고회사 생활은 재미있습니까.


브랜드보이: 네, 재미있어요. 물론 힘들긴 하죠. 주도권이 클라이언트한테 있는 업이니까, 어떤 광고주를 만나냐에 따라서 변수가 너무 많죠. 그래도 오래 이 일을 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어떤 식으로든 콘텐츠를 계속 생산해서 팔 거고요.


리: 나름 유명해졌는데 유명해지니까 뭐가 바뀌던가요?


브랜드보이: 유명해졌나요? (웃음) 유명해졌다는 느낌은 안 들고요, 근데 좀 팔리는 건 있는 것 같아요. 강의나 컨설팅 제안도 들어오고, 어떤 글을 썼더니 그 글의 경쟁사 대표님이 연락 와서 만나고, 트레바리 클럽장이나 퍼블리 같은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거만한 자세로 사인하는 브랜드보이.

리: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게 브랜드를 알면 좀 더 인생이 풍요롭고 재미있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그게 또 아무나 가능한 건 아니잖아요. 브랜드보이도 사실 어릴 때 광고업계 계셨던 아버님 덕에 브랜드를 보는 시야가 넓어진 거고…


브랜드보이: 그것도 맞는 말씀 같아요. 그런데 관심이 중요한 것 같아요. 역시 관심을 가지는 만큼 보이는 거죠. 예를 들면 저는 그냥 백화점이나 편집숍 같은 곳에 가는 게 재미있어요. 왜 이렇게 옷을 배치했구나, 왜 이런 신상을 냈구나, 이런 노림수가 있구나, 이런 걸 생각하는 게 너무 재미있거든요.


리: 뭔가 아이돌 팬 같은 느낌이네요. 어떻게 변화하는지 지켜보고 행복해하는…


브랜드보이: 예, 아이돌 좋아하시는 분들도 그런 관점으로 보실 거예요. 얘네가 지금 왜 이렇게 나왔는지 맥락을 이해하면 더 넓게 보이잖아요. 결국 재미있으니까 관심을 가지고, 관심이 있으니까 더 재미있게 보는 거죠. 그래서 저는 광고회사가 너무 재미있어요. 브랜드들이 어떤 전략을 내놓고 전쟁을 벌이는지 보는 게 흥미롭죠.

오늘도 박 터지는 브랜드 시장.

리: 그런 점에서 광고쟁이보다는 브랜드 컨설팅이 더 맞지 않나요?


브랜드보이: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런데 요즘에는 경계가 없어져요. 요즘 저는 TV CF 위주로 만들지만, 동시에 종합적인 시장 환경을 생각해서 광고주에게 제안합니다. 예를 들어 무신사를 광고할 때도 TV CF만 제안한 게 아니에요. 프로모션, 매장행사, 이런 것을 모두 브랜드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제안했었죠.


리: 그렇게 보면, 광고회사는 이미 컨설팅 회사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드네요.


브랜드보이: 그렇지요, 결국 광고회사는 고객의 머릿속에 자신의 브랜드에 관한 어떤 인식을 심어주는 모든 일을 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젠 광고, 컨설팅, 브랜드… 하는 구분 자체가 촌스러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광고회사라는 이름도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아들과 산책 중인 브랜드보이.

리: 이 책을 어떤 사람이 봤으면 좋겠어요?


브랜드보이: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웃음) 모든 사람이 날마다 뭔가를 파니까요. 저는 그것을 정말 확신해요. 『드디어 팔리기 시작했다』가 책 제목인데 많이 팔려야겠지요? 누구에게나 많이 도움이 될 거예요.


리: 죽을 때까지 광고인으로 살 것 같습니까?


브랜드보이: 그건 모르죠, 아까 말씀드렸듯이 광고란 개념도 이제 너무 넓고… 어쨌든 뭔가 콘텐츠를 생산해서 파는 사람은 맞을 것 같아요. 브랜드든 컨설팅이든 광고든… 저는 세일즈맨이니까요.

YES24 / 교보문고 / 알라딘 / 인터파크

※ 해당 기사는 더퀘스트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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