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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ㅍㅅㅅ

탕비실은 신입사원의 전쟁터

신입사원은 이미 눈칫밥만으로도 배부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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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따라 캔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영어로는 Pantry.

입사 후 신입사원이 맡게 되는 업무는 보통 귀찮은 일, 중요하지 않은 일, 귀찮고 중요하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신입사원의 업무 중 예외적으로 귀찮고 중요한 일이 있는데 바로 탕비실 간식 주문 및 관리다. 탕비실은 부서/팀의 간식거리, 커피포트, 냉장고 등이 비치된 공간. 우선 내 머릿속 간식류는,


  • 짠 것: 포카칩
  • 단 것: 시리얼 & 칸쵸
  • 케이크: 초콜릿, 바닐라
  • 사탕: 왕꿈틀이, 마이구미
  • 마실 것: 바나나 우유

정도다. 카페를 가도 디저트는 시키지 않고 늘 아이스라떼만 주문한다. 예쁘고 다양한 디저트, 유명한 디저트 카페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없다(어차피 그 맛이 그 맛인데). 한마디로 간식 분야에는 관심이 일체 없는 문외한이다. 신입사원에게 탕비실 간식 주문이 어려울 수 있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1. 팀장/부서장님 등 가장 높은 분의 탕비실 운영 철학

팀장님이 간식 관리에 관심이 많으시고 지향하시는 바가 있는 경우 상당히 부담스럽다. 내 동기들을 보면 탕비실이 조금만 비어 있어도 한마디 하시는 팀장님, 건강식으로 채워놓으라고 하시는 팀장님 등 다양했다. 


비어 있을 때 한마디 하시는 분은 어느 정도가 비어 있는 건지 애매해서 불안하고, 건강식을 요구하시는 분은 건강식의 범위가 애매해서 불안하며, 팀장님의 방침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불평불만을 신입사원에게 토로하기 때문에 불편하다.


그런데 우리 팀장님처럼 일체 관여를 안 하시고 모든 것을 알아서 하도록 맡겨주셔도 힘들다. 이것은 좋은 의미에서는 자유이지만 방향을 정해주는 이 없는 아프리카 세렝게티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2. 유명무실한 간식 리스트

확 엎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나는 입사하자마자 탕비실 업무를 넘겨주시는 윗 선배님께 팀원들의 반응이 좋았던 간식 리스트를 전해 받았다. 단 종류, 짠 종류 등 카테고리별로 분류되어 있었는데 문제는 카테고리별로 과자가 족히 30가지는 넘는다는 점이다. 한꺼번에 그 많은 과자류를 다 주문할 수는 없기 때문에 몇 가지만 취사선택을 해야 하고, 예산 제약이 있기 때문에 다음 주문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약 한 달 걸린다.


두 번만 연속으로 비슷한 종류의 과자를 시키면 체감상 두 달 정도 탕비실은 비슷한 구성을 갖추게 되니 ‘○○은 늘 같은 거만 주문해서 먹을 게 없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런 점을 의식해서 다음 주문에 완전 다른 조합으로 바꿔 버리면 ‘저번에 XX과자 많이 못 먹었는데 이번엔 왜 안 시켰냐’라는 말을 듣는다. 리스트가 있다 한들 모두를 만족하는 황금 조합을 찾기가 매우 어려워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결국엔 리스트에 10가지 미만의 상품이 있지 않는 이상 ‘선호 간식 리스트’라는 것은 큰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오히려 ‘일부러 간식 리스트까지 만들어서 준거로 알고 있는데 왜 그거대로 주문을 안 하냐’라는 공격의 대상이 되는데, 리스트 자체에 원체 품목이 많다 보니 뭐가 있었는지도 까먹으시는 것 같다.



3. 충돌되는 요구사항

취향이 다양한 것은 오히려 괜찮다. 충돌되는 것이 문제다. A차장에게 옆 사람이 시끄럽게 과자 먹는 소리가 업무 할 때 거슬리니 ‘소리 나지 않는 과자’만 시켜달라는 요구를 받는다고 가정해보자. 알겠지만 보통 소리 나지 않는 과자는 부드러운 빵류여서 ‘단 종류’로 분류된다. 


그런데 그렇게만 주문하다 보면 (소리 나는 과자를 요란하게 먹는) B대리가 와서 짠 과자와(이런 것들은 보통 포카칩, 썬칩과 유사한 튀김 종류로 포장지부터 심하게 부스럭거린다) 시리얼을 시켜달라고 요구한다. 이렇듯 두 가지 요구사항이 하나의 탕비실에 존재할 수 없는 경우 상당히 난감해진다. 


나는 이런 경우엔 직급이 높은 순서로 요구사항을 반영하기로 했고, B대리에게 한 번 정도 요청사항을 까먹은 척하면 다행히 그냥 잊었나 보다 하고 다시 요청 안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계속 요구가 들어온다면 어쩔 수 없이 A차장님의 요청 때문에 주문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분이 더 상급자니까 그냥 넘어가게 된다.



4. 법인카드 결제 횟수 제한

법카가…???

회사마다 다를 텐데 우리 회사는 공인인증서 때문에 법인카드로 인터넷 결제를 할 수 있는 컴퓨터가 한 대밖에 없었으며 그마저도 법인카드별 1일 주문 횟수가 4번으로 제한되었다. 


회사에 있는 스무 개 팀 모두 간식 주문을 해야 하며, 법인카드 결제 용도가 부서 간식 주문만 있는 것도 아니어서(출장을 위한 비행기표 예약, 시험 등록, 교육 등록 등) 경쟁은 매우 치열했다.


오후에 가면 거의 무조건 이미 4번의 횟수가 다 끝나 있어서 오전에 시간을 내야 했는데, 이마저도 이미 컴퓨터를 쓰고 있는 사람이 주문이 좀 오래 걸려서 30분 있다가 다시 오면 그사이에 다른 사람이 마지막 횟수를 채울 때도 있었다. 이럴 땐 간식은 점점 떨어져 가는데 주문은 늦어지니 똥줄이 타기 시작한다.



5. 필수품인 커피 원두(커피콩)

우리 탕비실은 커피콩을 사용하는 커피머신을 써서 커피콩이 늘 채워져 있었어야 했다. 커피 없이 팀원들이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문제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커피콩이 바닥이 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탕비실에 엄청 자주 간다.


신입사원 때는 탕비실을 들락거릴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정작 간식을 먹으러 가는 횟수가 몇 번 안 됐다. 그러다 보니 다음 날 아침에 상태를 확인하면 분명 절반 정도 차 있었던 커피콩이 거의 다 사라져 있을 때도 있어서 부랴부랴 커피콩을 구하기 시작한다. 동기들 사이에서 ‘과자 한 박스 줄 테니 커피콩 큰 컵을 달라’ 등의 거래를 시도하며, 혹 나에게 매력적인 과자가 없어서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다면 우선 급한 대로 커피콩 한 컵을 ‘꾸어 와서’ 내가 주문한 커피콩이 도착하면 갚아야 한다.


최악의 경우 모든 동기의 탕비실 커피콩 형편이 좋지 않아 사비로 커피숍 커피콩을 사 와 채워 넣었던 적도 있다. 미리미리 사놓으면 이런 일은 없겠지만 이것이 주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일이 몰리는 시기엔 커피콩 현황을 신경 쓰기도 쉽지 않고, 위에 설명한 법인카드 결제 횟수 제한 때문에 결제가 미뤄지거나 허탕을 칠 때도 있어서 생각보다 타이밍을 맞추기 쉽지가 않다.



6. 비교 대상

탕비실은 모든 팀에 공통으로 하나씩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전사적으로 비교 대상이 되어 거론된다. ○○○팀에는 항상 엄청난 간식들이 있더라, ○○○팀은 전자렌지를 샀다더라, ○○○팀은 XX제과에서 나온 신상품을 벌써 샀더라 등의 이야기가 오간다.


‘와~ 대단하다 우리 팀 신입은 그런 거 안 하는데’로 이어지는 이런 멘트들은 결국 탕비실 자체를 비교한다기보다 그 해당 팀 신입사원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탕비실을 잘 운영하고 있는지를 비교하는 것이다.


나는 간식 주문하는 회사에 취업한 것도, 과자 회사에 취업한 것도 아닌데 본 업무가 아닌 이런 것으로 비교되는 것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특히 나름 매일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상당히 많은 업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졸업

너무나 다행히도 바로 다음 해에 후배를 받게 되어 탕비실 업무를 졸업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과자에 무관심해 취향 자체가 없었던 나와 달리 간식 선호도가 엄청 뚜렷하고 독특했었는데 회사 예산으로 평소 먹고 싶었던 간식들을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신나 있었다. 


그러나 후배는 1년 동안 나와는 또 다른 고충을 겪었던 듯하다. 본인은 너무 좋은데 팀원들의 반응이 좋지 않거나, 이상한 간식에 팀 운영비를 함부로 낭비한다는 등의 평가를 들어야 했다. 


나는 그 후 2년은 탕비실 근처를 얼씬도 안 했으며 아직도 뭔가를 먹고 싶을 때 굳이 막내에게 사놓으라고 시키지는 않는다. 그걸 먹으나 마나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고, 그냥 내가 가서 바로 사 먹을 수도 있는데 나의 요구사항이 이 아이의 일상을 얼마나 복잡하게 만들지 모르니 말이다.


꼭 탕비실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회사의 많은 업무가 그렇듯 신입사원이나 막내들이 맡는 ‘그닥 어렵지 않아 보이는 업무’도 엄청나게 많은 고민과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서 나오는 결과물들이다. 모두가 한때는 막내였을 텐데 많은 사람이 막내들의 업무가 얼마나 고생스러운 일인지 잊고 사는 것 같다. 나는 저때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쟤는 왜 저럴까 하고 비난하기 바쁘니 말이다.

하지만 여러분도 분명 한때 그런 때가 있었을 것이고, 모르긴 몰라도 그 시절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신입사원은 이미 눈칫밥만으로도 배부르고 벅차다. 그러니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선배다운 모습으로 가끔은 막내에게 ‘고맙다’ ‘수고했다’는 말도 해주길 바란다.


원문: 상추꽃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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