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부모님과 여행할 때 간과하는 몇 가지

조회수 2019. 7. 18. 18:1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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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의 여행을 꿈꾸지만,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면

평생을 자식들을 먹이고 키우는 일에 올인하셨던 부모님들에게 ‘여행’은 일부 팔자 좋은 남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이 아는 여행은 봄, 가을이면 떠나는 친목회, 동창회의 단체 관광이 전부였다. 평생을 경주마처럼 달려온 부모님을 위해 함께 여행을 떠났다. 남들은 효녀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나는 그저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한 이기적인 마음에서 출발한 여행이었다.


그 누구의 지원도 없이 내가 번 돈으로 간 여행인데도 평생 여행이 주는 즐거움을, 그리고 이런 신기한 세상을 모르고 사셨을 두 분께 왜인지 미안했다. 여행의 즐거움을 알아갈수록 멋진 곳, 좋은 것, 맛있는 것을 보면 늘 제일 먼저 떠오른 두 분의 얼굴이 떠올랐다. 매일매일 별다를 것 없는 지루한 일상을 무표정한 얼굴로 살아가는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마음의 숙제 같았던 ‘부모님과의 여행’을 한 번 가고 나면 그 미안함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렇게 부모님과 함께 짧으면 반나절, 길면 보름까지 국내외를 부지런히 여행을 다니면 얻은 깨달음이 있다. 이것들을 미리 알았더라면 조금 더 일찍 부모님과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나도 이 땅 위의 많은 딸과 아들이 부모님과 여행을 떠나기 전엔 막연한 편견과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건 다 경험이 없기 때문에 생긴 문제였다.


이 글은 이 땅 위의 많은 딸과 아들이 한 번이라도 더, 하루라도 더 빨리 부모님과 여행을 떠나길 응원하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부모님과 여행을 꿈꾸지만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을 많은 딸, 아들이여! 딱 이 세 가지만 기억하면 당신과 부모님이 함께 떠난 여행은 한결 즐거울 것이다.



1. 소통: 부모님은 2살 아이가 아니다

요즘 말로 소위 ‘짬바‘라는 게 있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의 줄임말로 오랜 기간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분위기를 말한다. 이 땅에서 태어나 60–70년을 무사히 살아온 사람이라면 다 자기 삶의 노하우란 게 생긴다. 그건 마치 수학 공식 같아서 적정한 수를 대입하면 그에 응당 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그 인생의 공식을 부모님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건 엄마, 아빠를 모시고 처음으로 떠난 해외여행은 4박 5일간의 대만 여행에서였다.


그전에 엄마와는 일본 온천 여행을 다녀왔지만 아빠까지 완전체로 떠난 건 처음이었다. 당시는 〈꽃보다 할배〉를 통해 시니어 자유여행 바람이 한창 불던 때였다. 나를 이서진에 빙의해 부모님과의 첫 해외여행을 자유여행으로 택했다. 가기 전부터 나름 철저한 사전 조사와 준비로 자체 책자까지 만드는 열정을 불사른 여행이었다.


대만에 온 지 3일 차, 〈동물의 왕국〉 애청자인 아빠를 위한 코스였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동물원이라는 타이베이(台北) 시립동물원에서 판다를 보고 점심을 먹기 위해 센트럴 쪽으로 이동하려고 지하철을 타려는 참이었다. 이제 막 개찰구 안으로 들어왔는데 때마침 플랫폼에 지하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뒤도 안 돌아보고 엄마와 나는 잽싸게 올라탔다. 그런데 타고 보니 뭔가 허전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아빠가 안 계셨다. 아뿔싸. 등골이 서늘했다.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아빠를 잃어버린 건가? 현지어는커녕 영어 한마디도 못 하는 아빠는 어떻게 되는 걸까? 국제 고려장을 한 몹쓸 딸로 현지 신문에 나는 건 아닐까? 이 상황을 역무원한테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경찰서에 가야 하나? 한국 대사관에 도움을 청해야 하나? 쿵쾅거리는 내 가슴을 진정시키고, 애써 담담한 척 엄마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다음 역에 재빨리 내렸다. 반대편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잡아타고 아빠를 잃어버린(?) 그 역으로 향했다. 플랫폼에서 내려 개찰구로 향하는 길 쥐 잡듯 샅샅이 주변을 훑었다.


잃어버린 이산가족을 찾는 심정으로 지하철역을 두리번거리니 저 멀리 아빠의 실루엣이 보인다. 개찰구 근처에서 직원과 뭐라 뭐라 얘길 하고 계셨다. 얼른 아빠께 뛰어갔다. 아빠는 별 큰일 아니라는 듯 멋쩍게 웃고 계셨다. 상황을 들어 보니 이러했다. 아빠는 지하철 패스를 꺼내느라 주춤하는 엄마와 내가 탄 지하철의 문이 닫혔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당황했는데 역무원이 다가와 말을 걸더란다. 외국인 관광객이 방황하니 도우려 했던 역무원에게 아빠는 한국말로 당당히 말했다고 했다.

가족이랑 여행 왔는데 문제가 생겨서 헤어졌어요. 우리 딸이 헤어지면 그 자리에 있으라고 했어요. 그러니 난 여기서 기다리면 됩니다.
열정 넘쳤던 대만 여행 준비 때 만든 출국 안내문 중 아래에서 다섯 번째 줄이 바로 저 멘트의 출처였다.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서 어떻게 이 당황스러운 상황을 아빠는 어떻게 극복할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소통은 꼭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말 대신, 표정과 몸짓으로도 충분히 소통이 가능하다. 이 진리를 아빠는 자신의 인생 경험을 통해 이미 알았던 것이다.


아빠가 타지도 않았는데 뒤도 안 돌아보고 둘이 가냐고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무용담을 늘어놓는 영웅처럼 당신의 성과를 자랑하기 바빴다. 그 모습이 귀엽기까지 했다. 그 사건 이후 난 해외여행에서 부모님을 아이처럼 과보호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해외여행 짬바야 내가 더 많겠지만 인생 짬바는 결코 그 두 분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2. 체력: 부모님은 청년이 아니다

이미 손자, 손녀가 태어난 지도 한참이 지났기 때문에 엄마, 아빠는 할머니, 할아버지란 이름으로 살아온 지 꽤 오래됐다. 같은 집에서 살지만 집에서 잠깐잠깐 볼 때는 몰랐다. 하루 24시간을 꼬박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알게 되었다. 철부지 막내딸은 자신이 나이 든 건 생각 안 하고 부모님의 나이를 막연하게 중년보다는 조금 더 나이가 든 정도라고만 생각했다. 객관적으로 부모님이 얼마나 노년층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 애써 외면해 왔다는 게 더 진실에 가깝다. 내 엄마가, 아빠가 그렇게 노인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하지만 난 여행지에서 그 차가운 현실과 마주해야만 했다. 여행지 보는 부모님은 누가 봐도 완연한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인천공항에서는 고령자로 분류되어 패스트 트랙으로 출국할 수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자리 양보받는 게 당연했고, 각종 시니어 할인이 가능했다. 특히나 생체 시계는 너무도 정확했다. 어릴 때, 방학이면 시골 할머니 집에 갔다. 9시 뉴스를 하기도 전에 곯아떨어지는 할머니의 모습이 어느새 엄마, 아빠에게 드리워졌다.


부모님은 지극히 새벽형 인간이다. 평소 오전 5시에 일어나 일과를 시작하다 보니 늦은 오후가 넘어가면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개인적으로 여행의 꽃이라 생각했던 야경, 야시장 등 나이트 라이프는 부모님과의 여행에서는 사치였다. 여행지에서의 1분, 1초가 아까워 해 뜨기 전에 숙소에서 나와 달이 머리에 올라왔을 때 숙소로 돌아오는 열정 넘치는 여행은 불가능했다. 부모님의 생체리듬에 맞춰 여행 일정을 대폭 수정했다.


아침 일찍 조식을 먹고 숙소 근처를 산책한다. 그리곤 러시아워가 시작되기 전 출발해 오전 여행지를 하나 클리어한다. 피크타임을 피해 이른 점심을 먹고 티타임을 가진다. 몸과 마음이 좀 충전되면 오후 일정을 소화한다. 그러면 보통 오후 3–4시쯤 된다. 보통 숙소로 돌아와 낮잠을 한숨 잔다. 그리고는 숙소에 들어오기 전 마트에 들러 장 봐왔던 재료로 저녁을 해 먹거나 숙소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하루에 3곳 이상의 여행지를 찍지 않는 단순한 여행 코스다. 이것이 바로 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게 된 최적의 여행 리듬이다.



3. 그들 안의 소년, 소녀: 부모님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은 아니다

자식이 보는 부모는 크고 완벽한 존재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식도 머리가 크고 경험이 쌓여 가면서 상황은 역전된다. 부모님이 만들어 놓은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나 역시 사춘기를 거치며 크고 작은 트러블로 부모님과 껄끄러운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부모님과 여행을 본격적으로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내 머릿속의 부모님은 뭐든 귀찮아하는 사람으로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집에서 편한 차림으로 누워 티브이 보는 걸 최고의 휴식이자 인생의 낙이라 말하는 분들이셨다. 옷 사러 가자, 산책 가자고 해도, 외식하자고 해도 “귀찮다, 돈 많이 든다 “라는 말로 자식의 선의를 꺾어 버렸다.


집에서의 부모님이라면 절대 안 했을 행동들을 여행지에서는 비교적 쉽게 시도하곤 한다. 일본 야나가와에서 뱃놀이하며 노래를 부르는 일,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서 팔뚝에 헤나를 그려 넣는 일, 현지 전통의상을 입어 보는 일, 스콜이 쏟아지고 난 후 뜬 무지개를 보며 감탄하는 일, 휴양지 리조트 선베드에 누워 현지 맥주를 마시는 일, 요즘 젊은이들처럼 여행지마다 시그니처 포즈로 인증샷을 찍는 일 등등 인생의 황혼을 넘어 경험하게 된 새로운 일들을 할 때마다 노안으로 흐릿했던 눈에 생기가 살아난다.


그 모든 것을 신기해하고 즐거워하는 부모님의 표정을 볼 때, 부모님의 소년·소녀 시절로 잠시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다. 영원히 떠나보낸 줄 알았던 그들 안의 소년·소녀를 소환하는 건 분명 여행에서의 새로운 경험들이었다. 두 분의 반짝이던 시절을 상상하다 보면 끝 맛은 좀 달콤하면서도 쌉싸래하다. 평생을 먹고사느라, 줄줄이 딸린 자식 배곯게 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잊고 부모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두 분의 인생이 새삼 떠올랐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여행하면서 얻게 되는 가장 큰 즐거움은 집에서는 잘 몰랐던 부모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 발견이 신기하고 재미있어 자꾸 부모님과 떠나는 다음 여행을 계획하게 된다. 다음에는 또 어떤 모습을 발견하게 될까?


원문: 호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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