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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1965년 체제는 이제 끝났다

완전히 새로운 협력 모델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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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a Fide’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자면 ‘진실된’이라는 뜻이고, 법률적 의미를 부여하자면 선의(善意)보다 다소 넓은 뜻을 지닌다. 즉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결과를 초래할 특정한 행위를 함에 있어서, 그 당사자가 악의가 없거나 무고함을 일컫는다는 것이다. 왜 뜬금없이 이 라틴어 어구를 언급했을까. 그 이유는 이 단어가 우리나라와 일본 간의 무역 분쟁에서 핵심 쟁점을 잘 파악할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현재 일본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에 사용되는 플루오르, 포토레지스트, 에칭가스 및 그 원료가 자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우리 입장에서 얼른 듣기로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북한을 끼워 넣으려 하는 것 같지만 일본도 나름대로 국제적 협약에 의거해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바로 ‘이중 사용 품목과 일반적인 전략물자의 수출에 대한 협정(The Wassenaar Arrangement on Export Controls for Conventional Arms and Dual-Use Goods and Technologies)’, 즉 바세나르 협정이다. 7월 9일 《파이낸셜 타임즈(Financial Times)》의 보도에 따르면 복수의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는 바세나르 협정을 준수하는 방침 하에 결정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바세나르 협정은 이중 사용 품목, 즉 인명 살상용 무기 제조에 활용되는 것 이외 하나 이상의 용도를 가진 재화의 교역 규범을 정한 국제적 약속이다. 문제는 이 협정에서는 특정 대상국을 수출 금지국으로 지정하거나, 민간의 교역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도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일본이 한국을 이중 사용 품목에 대한 ‘안보상의’ 이유로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다면 이는 바세나르 협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주요 외신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은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그러나 일본의 반박 논리 역시 쉽게 예상이 가능하다. 일본 정부는 단순한 화이트리스트 제외는 수출 금지에 해당하지 않으며, 민간 교역의 방해를 유발하는 행위가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우리 정부가 WTO에 긴급 제소를 실행한 상황에서 양국 간의 쟁점은 과연 화이트리스트에서의 제외가 실질적으로 민간 교역을 방해하는 효과가 있는지, 이 때문에 바세나르 협정에 위배되는 지점이 존재하는지가 될 것이다. 즉 바세나르 협정을 일본이 언급했다고 해서 이를 일본이 한 발 물러난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현재 복수의 외신에 의하면 일본 정부 통상 관계자들은 “당연히 민간 기업에는 수출을 허가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지만 이것이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된 상태에서의 허가라면 사실상 우리 기업과 정부에게는 여전히 불리한 상태이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IT 밸류체인에서 한국이 가지는 위상을 생각했을 때 일본이 곧 물러설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현재 바세나르 협정까지 언급한 것을 생각해 볼 때 일본은 자국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우리나라를 천천히 괴롭히겠다는 뜻을 밝힌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종합적으로 판단해 볼 때, 이번 우리나라와 일본 간 갈등은 결국 1965년 한일 기본조약에 바탕을 두고 50년 넘게 유지되어 온 이 체제가 전반적인 한계에 봉착했음을 뜻한다고 본다. 과거 우리나라가 식민 지배의 피해자이면서도 전쟁의 잿더미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경제 발전이 절실한 약소국이었을 때의 한일관계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일본과 겨루어 볼 만한, 그럼에도 일본과의 연결고리는 과거보다도 더욱 강해진 현재의 한일관계는 아예 달라졌으며, 이제 완전히 새로운 협력의 모델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당연히, 여러 차례 말씀드린 바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 늘 비협조적인 쪽은 일본, 그중에서도 개헌을 통한 정상 국가화를 주장하는 우익 세력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우리가 일본에 의존하는 후방 산업들을 장기적으로 국산화하는 것도 좋으나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후방 산업들을 모두 하나하나 국산화하다 보면 끝이 없으며, 이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프로젝트에 정부의 예산을 지속적으로 투입하는 것도 비효율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민간의 단계에서 한일관계는 이미 20세기의 그것과는 다른 관계가 정립되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연 800만 명 이상 일본을 여행하며, 일본인을 서울의 지하철이나 주요 핫플레이스에서 목격하는 것은 수도권 주민이라면 이미 익숙한 일이 되었다. 고작 15–20년 전의 한국 청소년들은 X-Japan의 음악을 듣기 위해 불법 다운로드에 의존하는 경우ㅈ도 많았지만 현대의 일본 청소년들은 유튜브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BTS나 NCT #127을 보고 팬덤을 형성하며 가사를 이해하기 위해 한국어를 스스로 배운다. 물론 민간의 단계와는 별개로 일본의 집권 세력은 꽤 자주 우리에게 비우호적인 모습을 보이곤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도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 계속 ‘배상’의 관점에서 무엇을 정립하려 한다면 일본과의 사이는 영영 정상화될 수 없다. 한국과 일본은 양국 간 민간/인적 교류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으며 이제 글로벌 밸류체인 내부에서 서로 대등하게 경쟁하는 국면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통상 보복 조치라는 것이 경제 규모상 게임이 안 되는 나라에게는 아예 할 필요조차 없는 조치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결론적으로 1965년 체제를 마무리하고 앞으로 새롭게 정립되어야 하는 한일관계는 경제적 동반자이자 경쟁자라는 관점을 주축으로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민족주의적 관점에서야 일본은 아직도 사과도 배상도 제대로 하지 않았을 수 있겠으나 이제 우리나라와 일본이 이로 인해 서로 무역 보복을 팃포탯으로 주고받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경제적 불확실성만 높아진다.


이 경우 당연히 일본도 손해일 수 있지만, 앞으로 계속 이럴 때마다 통상 분쟁을 붙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물론 이번 사태는 사법부 판결을 비합리적 근거로 트집 잡은 일본의 태도가 확실히 문제다). 때문에 양국 간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물론 일본의 태도 전환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관점 역시 변모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본 정가에서는 한일 관계를 가리켜 ‘골대가 움직인다’라는 표현을 이따금 사용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국의 대일 관점이 널뛰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세부적으로는 다르겠지만 결론적으로는 ‘배상’의 관점에서만 한일관계를 판단하기 때문인 것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 관점에서 이룩된 체제는 한계가 있음이 명확해졌다. 즉 1965년 체제를 넘어선 그 이상의 한일관계는 결국 앞서 언급한 경제적 동반자이자 경쟁자라는 관점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 관점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도 일본도 내내 평행선만을 달리게 될 것이다. 이는 분명 우리에게도 이득은 될 수 없다.


원문: 김현성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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