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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ㅍㅅㅅ

소설가가 쓰는 요리책 서평집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레시피에 쓰이는 단어는 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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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스무 살 넘어서까지 요리를 전혀 못했다. 할 기회도,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아예 관심 자체가 없었다고나 할까. 그러다가 일본에 혼자 살게 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당장 뭔가를 먹어야 하는데 뭘 먹는단 말인가! 당시의 나는 밥솥에 밥을 어떻게 안치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매일같이 밖에서 먹거나 편의점 음식만을 먹을 수도 없고. 인터넷을 찾아보자니 지금처럼 자료가 잘 정리된 것도 아니었다. 요리책을 보고 만들려니…… 이건 뭐,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는 말투성이다. 어슷하게 썰라는 건 무슨 뜻인지, 먹기 좋은 ‘한 입’ 크기는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인지.


하는 수 없이 국제전화로 엄마에게 하나하나 물어가며 이것저것 해봤던 기억이 난다. 쌀을 씻는 법부터 해서 김치전이며 김치찌개며 떡국 등등. 물론 비싼 국제전화비를 매번 낼 수도 없는 노릇이므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 때마다 레시피를 노트에 받아 적었다. 그 뒤로 같은 요리를 할 때면 노트를 참고하고, 요리하면서 새로 알게 된 정보나 팁이 있으면 메모를 추가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었던 시절도 아니니 인터넷을 서핑하면 나오는 몇 안 되는 레시피를 보면서 동시에 요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해보고 싶은 요리가 있으면 컴퓨터 앞에 앉아 레시피를 노트에 옮겨 적고 주방에 가져와서 보면서 만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쌓인 자료가 노트가 나중에 거의 한 권 분량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인생 최초의 요리책이었던 셈이다.

그때 만든 나름의 요리 레시피를 담은 노트는 귀국하면서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이후 한참 동안 요리와는 담을 쌓고 살았으므로 그다지 아쉽지는 않았다. 다시 요리를 시작한 건 결혼하고 나서였는데, 이때는 이미 인터넷에 뒤져보면 온갖 자료가 나오던 시기였으므로 요리책이라고 할 만한 걸 거의 볼 일이 없었다. 요리할 때마다 그때그때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참조했다.


처음에는 매우 편했지만 그렇게 매번 찾아서 하는 과정을 겪다 보니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검색할 때마다 매번 다른 레시피가 등장하고, 그때마다 완성품의 맛이 달라진다는 것. 문제집도 다양한 걸 푸는 것보다 반복 학습이 중요하다던데, 매번 달라진 레시피는 매번 새로운 내용처럼 보였다. 결과론적으로 요리 실력 자체도 별반 늘지 않았다.


백종원 씨가 유튜브를 시작한 계기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한다. 장모님이 인터넷에서 백종원 레시피라고 해서 뭔가를 만들어봤는데 사위가 해주던 맛이 안 난다고 하셨다는 것, 그래서 직접 찾아봤더니 자기의 레시피가 아니었다는 것. 생각해보니 나도 네이버에서 백종원 레시피를 검색해서 볼 때마다 매번 조금씩 다른 내용을 보고 꽤 당황했던 것도 같다.


그럼 자주 쓰는 레시피를 저장해놓고 매번 그걸 보면 되지 않느냐는 반문이 들어올 법도 하지만…… 그게 또 그렇지가 않은 법이다. 사람이 참으로 게으른 존재랍니다. 하여간 백종원 유튜브의 구독자가 3일 만에 150만에 이른 것을 보면 나와 같은 아쉬움을 가진 사람이 생각 외로 많았던 듯하다. 스마트폰의 시대가 오면서 요리책이나 여행 서적의 종말이 오는가 싶었으나 이런 걸 보면 제대로 만든 요리책은 여전히 매우 중요한 것 같다.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는 소설가 줄리언 반스가 쓴 요리책 서평집이다. 책 소개에는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 요리 에세이라고 쓰여 있지만 굳이 조금 더 파고들자면 ‘요리책 독서 에세이’ 혹은 ‘요리책 실습 에세이’의 느낌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물론 요리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고충이나 생각들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기는 하다.


책에서 줄리언 반스는 자신이 이제껏 접한 적 있었던 다양한 요리책들을 실습의 경험과 함께 소개해주는데,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줄리언 반스 역시 요리책을 보고 요리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고충을 겪었던 것 같다. 마치 오래전 내가 ‘어슷하게’, 또는 ‘한입 크기’ 같은 애매한 서술로 고민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 경험담들이 영국인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와 맞물려 참으로 재미있다.


사실 나는 요리를 아주 기본적인 수준으로만 하는 까닭에 요리 그 자체에 대한 흥미보다는 서평집으로서 더 재미있게 읽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유명한 요리사나 책들이 모두 처음 듣는 것인 데다가 (당연하다. 영국 것이니까) 줄리언 반스가 시도했던 메뉴들도 꽤나 낯선 요리들이었던 것은 좀 아쉬운 부분이다. 한국 요리책이나 한식을 대상으로 이와 같은 요리 에세이 혹은 요리책 서평집이 나오면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참고로 줄리언 반스는 요리책을 무려 100권 이상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실 책 전체를 보는 것보다는 책의 특정한 한두 페이지만 보는 경우가 많기에 그 많은 책을 굳이 소유할 필요가 없는데도 끝까지 그 책들을 고수하는 이유에 대해 줄리언 반스는 이렇게 말한다. ‘간혹 필요한 부분만 찢어서 한꺼번에 보관하면 어떠냐는 이야기를 듣지만 책들의 그 페이지를 보는 순간 떠오르는 추억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못한다’고. 음…. 장서의 괴로움이 요리책에도 해당하는지 미처 몰랐다.

나는 내가 상당 부분 의존하는 요리책들에 분노하는 일 또한 잦다. 그러나 요리에서 현학적인 마음가짐은 당연하고도 중요하다. 걱정스레 미간을 찌푸리고 열심히 요리책을 들여다보는 독학 요리사인 나도 누구 못지않게 현학적이다. 그런데 왜 요리책은 수술 지침서처럼 정밀하지 않을까? (내심 불안하지만 수술 지침서는 실로 정밀하리라는 가정하에 하는 말이다. 어쩌면 요리책 같은 수술 지침서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아마 이렇지 않을까. ‘관을 통해 마취약을 소량 대충 집어넣는다. 환자의 살을 한 토막 잘라낸다. 피가 흐르는 것을 본다. 친구들과 맥주를 마신다. 구멍을 꿰맨다……’) 레시피에 쓰이는 단어 왜 소설에 쓰이는 단어만큼도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걸까? 전자는 몸에, 후자는 머리에 소화불량을 일으킬 수 있는데 말이다.

— 25–26쪽
요리를 시작하고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교훈은, 요리책이 아무리 솔깃해 보여도 어떤 요리들은 반드시 음식점에서 먹어야 제일 맛있다는 사실이다. 내 경험으로는 디저트가 대개 그렇다. 생지가 양피지처럼 얇고 살짝 깨물어도 바삭거리고, 표면의 글레이즈가 반짝이는 그 완벽한 애플 타르트를 만드는 건 어떨까? 일찌감치 꿈을 깨는 게 좋다. 뒤집어 굽는 타탱 제빵 원리에 의존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그렇다. 아 참, 런던 북부에 있는 음식점 모로의 눈부신 요구르트 케이크도 마찬가지다. 나는 모로에서 펴낸 요리책을 보고 딱 한 번 그걸 만들어보았는데, 맛은 훌륭했지만 모양은 무언가를 게워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디저트 레시피를 읽기는 해도 매번 한숨만 쉬고 아이스크림 기계를 꺼낼 따름이다.

— 74–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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