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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은 ‘채우는’ 것인데, 왜 성욕은 ‘푸는’ 것일까

성욕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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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로 식욕, 수면욕, 성욕이 꼽히곤 한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나라에서는 그중 ‘성욕’에만 ‘풀다’라는 술어를 붙인다는 점이다. 식욕과 수면욕은 은유 자체가 ‘채우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성욕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워내는 것’ ‘풀어내는 것’이라는 비유적 술어가 붙는다.


식욕이든, 수면욕이든, 성욕이든 먹고, 자고, 관계를 맺는 행위를 통해 해결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유독 성욕에 대해서만 ‘풀다’라는 용례가 존재한다는 게 이상하기도 하다. 다른 언어에 대한 자세한 용례는 모르겠지만, 영어에서만 해도 성욕은 푸는 것이라기보다는 채우는 것(satisfy)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보통 무언가를 풀어서 해소한다는 술어는 스트레스라든지 과도한 압박감, 부담감 같은 것에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왜 유독 이 성욕이라는 것을 그와 같은 층위의 무언가로 받아들이게 되는 걸까? 어쩌면 이런 술어 사용이 성관계 자체 혹은 성욕 자체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관계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즉 성욕을 푼다는 말에는 대상 자체와 깊은 관계를 맺고 합일되는 관점보다는, 성적 대상들이 일종의 성욕 해소를 위한 수단이라는 관점이 담겨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먹는 것으로 식욕을 풀지 않는다. 그보다는 먹는 것 자체가 나에게 들어와 이루고 채워지는 것이라 느낀다. 마찬가지로 수면욕도 잠으로 풀지 않는다. 우리가 잠으로 들어가고, 잠이 우리를 채워주는 것이라 느낀다.


그러나 성욕만큼은 어떤 대상에 풀어버리는 것이다. 그 대상, 이를테면 상대방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서 그 관계 자체가 목적이 되고, 내 안에 그 관계가 들어오고, 내가 그 관계 안에 들어가는 게 아니다. 그저 성적 관계에서 대상은 나의 성욕을 풀어주기만 하면 그만인 어떤 수단이나 도구 비슷한 것이 되는 것이다.


이는 스트레스 해소와 대단히 비슷하다. 무엇을 하든 스트레스를 푸는 게 중요하지, 스트레스 해소에 필요한 행위들 자체는 일종의 수단에 불과하다. 울분이나 심적인 부담감과 압박감을 푸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런 것들을 해소하는 방법은 파괴적인 것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미친 듯이 마음껏 소리를 지를 것, 게임 속에서 누군가를 찔러 죽일 것, 온몸의 체력이 고갈되도록 운동할 것 등이 그런 것들을 ‘풀어내는’ 유효한 방법으로 많이 제시된다. 그렇게 보면 성욕에 대한 술어의 용례도 성욕이 우리에게 차지하는 어떤 위상을 보여주지 않나 싶다.

그러니까 성욕은 푸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어떻게든 없애버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또 채우는 건 아니다. 그저 어딘가에 해소해버리면 된다. 만약 채워야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더 그것을 조심스레 대하고 소중히 대하며 우리를 보충해주는 무엇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성욕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부수거나 파괴해 없애버려야 시원해지는 그 무엇이고, 그런 식으로 쾌락을 주어야만 하는 어떤 것으로 여겨진다. 성욕 자체가 우리를 풍요롭게 채워줄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에게 어떤 폭력성을 용인해주는 억압적 기제처럼 작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용례는 남성중심주의적인 ‘성욕 해소’와 맞닿아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사랑과 성을 별개로 만들고, 사랑에는 순정을 덧씌우면서, 성은 구매하거나 풀 수 있는 별도의 대상화 속에 존재한다는 구도 자체가 이런 용례와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상대를 통해 성욕을 푼다는 건 어딘지 예의가 없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보다는 당신으로 인해 나의 성적인 욕망이 채워졌다고 말하는 것, 당신이 나를 채워준다고 이야기하는 게 더 서로에게 다정한 태도가 아닐까 싶다. 또 그런 태도가 오히려 성을 더 온전한 모습으로 만나게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원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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