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보틀 열풍: 청년들은 이미지를 소유하길 원한다

조회수 2019. 6. 25. 15: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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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보틀 매장에서 사진을 찍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출처: 한국경제
성수동 블루보틀 매장 오픈일, 매장 앞에 길게 늘어선 줄

블루보틀 매장이 대단한 화제다. 수많은 사람이 평균 서너 시간씩 줄을 서서까지 이 특별한 커피를 경험하고자 한다. 블루보틀이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졌음에도 매장 수를 가급적 제한하고, 우리나라에는 처음 들어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열광이 이해될 법도 하다. 더군다나 커피 업계에서는 블루보틀을 필두로 한 ‘스페셜티 커피 문화’를 ‘제3의 물결’이라고까지 부르니, 더욱 이 힙하고 핫한 문화를 향한 열망도 마냥 이상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하나 흥미로운 점은 블루보틀이 표방하는 ‘느림의 미학’을 실제로 이 커피 매장을 찾는 사람들이 체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주로 20–30대로 구성된 방문객들은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해 기다리는 서너 시간을 별 어려움 없이 견뎌내는 것 같다.


면면을 살펴보면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는다든지, 음악을 듣는다든지, SNS를 하거나 일행과 대화하며 그 시간을 제법 즐긴다고 한다. 나아가 기다리는 상황을 생중계하며 온라인의 사람들과 그 기다림을 함께 누리는 경우도 있다. 일일이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며, 한 잔 한 잔에 정성을 기울이느라 시간이나 효율성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는 ‘신념’을 가진 블루보틀 커피와 그 방문객들이 묘하게 어울리는 지점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이 새로운 커피 문화에 대한 열광이 다소 기이하거나 과잉된 것처럼 보이는 측면도 있다. 일단 핸드드립 커피 문화 자체가 그렇게까지 새로운 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도 동네 커피점 중 핸드드립을 고수하는 카페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국내 유명 매장이 그런 문화를 이미 도입하기도 했다.


또한 방문객이 정말 그런 커피 문화에 그리 대단한 가치를 부여하느냐고 한다면, 꼭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아마 대부분은 서둘러, 남들보다 앞서 블루보틀을 경험한 뒤에는 다시 또 그 몇 시간의 기다림을 감내하러 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 현상에는 단지 블루보틀의 문화 자체와는 다른 요소도 작용했으리라 생각된다.

출처: HUFFPOST KR/TAEWOO KIM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사실 블루보틀 커피는 국내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온라인상에서 화제였다. 무엇보다 인스타그램의 여러 인플루언서들이 해외 블루보틀 매장을 적극적으로 인증하며 알렸고, 그에 따라 블루보틀 지점이 있는 해외 도시에 방문한 사람들은 그곳을 꼭 들르는 게 하나의 ‘유행’이 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청년 세대 사이에서 블루보틀은 일종의 해외의 이색적인 명소이자, 따라 누려보고 싶은 경험으로 은연중에 자리 잡았다. 그래서 블루보틀의 국내 상륙은 ‘유행하는 이미지’의 상륙과 다르지 않았고, 그 이미지에 서둘러 닿고자 하는 욕망을 폭발시켰다. 즉 이 현상은 문화적 경험 자체 못지않게 이미지의 소유 혹은 이미지에 대한 접촉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청년 세대는 이미지에 닿길 원한다. 이미지를 소유하길 원하고, 그 이미지 속에 있길 바란다. 최신의 혹은 가장 핫한 이미지를 누구보다 빨리 누리길 원하고, 그 이미지에 닿지 못함에 안달한다. 그래서 이 현상에도 그 밖의 핫한 이미지를 향한 문화들, 핫플레이스, 호캉스, 유명 관광지, 명품 소비에 따라붙기 마련인 ‘인증샷 문화’가 필연적으로 동반된다.


아마 블루보틀 매장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안달하는 마음도 사라지고, 안심하고, 만족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이미지의 확산과 성행은 확실히 이 시대가 소비사회의 한 가운데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자, 우리 사회의 오랜 특성인 중앙 및 상향 집중화의 현상도 보여준다.


그레고리 헨더슨은 일찍이 한국 사회의 정치적 특성을 설명하면서 ‘소용돌이(VORTEX) 현상’이라는 은유를 쓴 적이 있다. 이는 한국 사회가 고도로 동질화되어 있고, 중앙집중화되어 있으며, 사회의 모든 구성원과 분야가 오직 권력의 중심을 향해 상승하고자 하는 현상을 일컬은 것이다. 과거에 소용돌이의 중심이 ‘출세’나 ‘자수성가’ ‘부자 되기’ 같은 것이었다면, 이제 그 소용돌이의 중심은 가장 화려한 최신의 ‘이미지’들이 되었다. 나는 이를 ‘상향 평준화된 이미지’라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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