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나를 정의할 말이 사라졌다

조회수 2019. 6. 5. 15: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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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다닐 때는 어느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한다고 하면 됐지만

요새 어디 가서 자기소개할 때면 뭐라고 나를 소개해야 하나 망설인다. 회사에 다닐 때는 어느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한다고 하면 됐지만 지금은 스스로를 무어라 정의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그러다 최근에 나를 ‘실험가’로 소개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어보기로 결심하고 내 스스로의 인생을 실험하니 실험가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았다.


어차피 매거진 이름도 ‘내 맘대로 사는 인생’이라고 지었으니, 하고 싶은 거 다 실험해 볼 생각이다. 이렇게 사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사람마다 중요시하는 가치가 다르기에 이렇게 사는 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좋을 수 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나쁜 경험일 수밖에 없기 때문.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꽁냥꽁냥 사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선택하고 나서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숨만 쉬고 살아도 나가는 돈이 제법 크다는 것을 10년 만에 처음 알았다. 최소한 그 돈 이상을 마련하기 위해 또 다른 실험을 벌여나가기에 때로는 지치고 불안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있다. 


이 과정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더 구체적으로 쓸 날이 있겠지. 그럼에도 이렇게 사는 게 나에겐 맞다고 생각한 사건 두 가지가 최근에 있었다.

이제 5살이 된 아들램은 내가 집에서 노트북을 보면 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빠 일하지 마!”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아빠가 일해야 너 좋아하는 장난감도 선물로 사줄 수 있어”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나한테 와서 “아빠 이제 나 장난감 없어도 되니까 일하지 마요!”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장난감을 가장 사랑하는 아이였는데, 그때 아빠랑 노는 시간을 더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다.


두 번째 사건. 아내가 불쑥 “오빠 다시 회사 나가고 싶은 마음은 없어?”라고 물어봤다. (약간 당황했지만 짐짓 아닌 척 태연하게) 나는 “어 지금은 나가고 싶은 마음 없는데? 왜 내가 나갔으면 좋겠어?”라고 물어보자 뜻밖에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이제 오빠가 회사 나가면 내가 못 견딜 것 같아서…” 별말 아닌 듯해도 지금 살아가는 방식에 더 만족해한다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적어도 나만 이렇게 살고 싶은 건 아니었구나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분명 회사에 다닐 때보다 수입은 많이 줄었고, 그와는 상관없이 둘째는 다음 달이면 태어난다. 누군가가 보기엔 이렇게 살아가는 게 대책 없고, 한심해 보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보는 건 그 사람의 자유니깐. 하지만 난 이제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에 신경을 꺼보기로 했다. 내 가족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이런 삶을 다시 생각해 봐야겠지만 누구보다 그들이 만족하고, 나도 참 재미있다. 이거면 된 거 아닐까?


“그렇게 살면 안 불안해?”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어 난 이게 너무 좋은데!”라고 쿨하게 말해주고 싶지만 사실은 불안하기도 하다. 지금은 불안보다 더 큰 가치가 있기에 그런 불안으로 인해 실험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아직은.

날이 점점 더워지면서 아내가 이제 에어컨을 사야 할 거 같다고 했다. 스탠드 에어컨이 이렇게 비싼 줄 몰랐다. 지금 당장은 돈이 없어도, 또 어떻게든 에어컨도 사게 될 거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살게 되겠지. 다만 그 과정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기로 하자. 인생은 한 번이고,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내가 격하게 아끼는 가치도 결국 한 번이다.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오늘도 그래서 실험한다.


원문: Peter Kim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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