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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일하는 사람의 심경변화 단계

조회수 2019. 6. 3. 16: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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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이거 내 얘기

혼자 일한다는 건 흥미진진한 일입니다. 다양한 상황과 인생의 풍파를 스스로 견뎌내야 하죠. 가급적이면 혼자 일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되도록 팀으로 일하시고, 팀이 아니라면 알바라도 한 명 두고 일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실이 달라지진 않습니다. 느낌이 달라질 뿐이죠. 사실 직원을 뽑기엔 아직 깜냥이 안 돼서 울며 하는 것이기도 하고…


일이란 게 오르락내리락이 있고 그 폭이 균등하지 않습니다. 균등하지 않다고 해서 무작위라는 뜻은 아닙니다. 분명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이긴 하지만, 근 5년간 일종의 패턴 같은 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물론 단정 짓기엔 데이터가 좀 부족하지만, 참고가 될 수는 있을 듯합니다. 이 글을 보는 분이 1인 사업가라거나 프리랜서, 또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분이라면 마음이 현재 어느 위치쯤에 있는지 한 번 체크해보셔도 좋겠습니다.



일이 없는 단계

1. 일 언제 들어오지?


일이 없어서 불안합니다. 일없이 두 달 정도 지나면 슬슬 뽐뿌가 오죠.


2. 일이 없어…


불안함이 쌓여가면서 자존감이 떨어집니다.


3. 하아… 난 망하는 건가


지출은 대부분 고정입니다. 지출에서 줄일 수 있는 부분을 찾지 못합니다. 대다수 지출은 보험, 적금, 청약, 부모님 용돈, 월세, 생활비, 세금 등등이라서 쉽게 줄일 수가 없어요. 카드값을 아무리 줄여도 밥은 먹고살아야 하니까요. 최소한의 영업비도 있어야 하니… 줄여봐야 몇십만 원 수준이랄까요. 재정 압박이 시작됩니다.


4. 직장 구해야 하나…


안 보이던 공고가 자꾸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5. 어? 여기 공고 떴다


괜시리 지금 넣으면 왠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레퍼런스도 있겠다… 이것저것 사업하다 보니 일눈도 좀 트이고… 또 대다수는 내가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넣으면 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죠.


6. 하지만 직장 들어가면 내 사업은?….


하지만 포폴 정리가 안 됐을 거고. 기존 클라이언트를 버릴 수 없을 겁니다. 혹시 진짜로 넣어도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요. 왠지 이 고비만 넘기면 될 것 같고. 주변에서도 그만두기엔 아깝다고 합니다. (귀 팔랑)


7. 이거 해서 평생 먹고살 수 있나


갑자기 안 하던 노후 걱정을 시작합니다.


8. 대출받아야 하는데…


안 하던 대출 뽐뿌도 올라옵니다.


9. 다달이 나가는 돈만 400인데…


머릿속으로 계산기가 돌아갑니다. ‘합리적’인 선택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숫자를 이용하죠. 대부분 숫자는 그 선택을 지지합니다. 계산기엔 미래에 들어올 돈이 합산되지 않기 때문이죠. 숫자를 놓고 본다면 여러분은 지금 당장 김밥 한 줄만 먹고 전단이라도 뛰어야 하는 게 정상이에요.


10. 알바라도 해야 하나


이때쯤 미팅이 한두 개씩 잡힙니다. 지인이 ‘너 누구 만나볼래?’라며 연락할 때도 있고, 작년에 했던 클라이언트에게 연락이 다시 오기도 하고, 일전에 소개받았던 기억 속 저 먼 곳에서 재차 연락이 오기도 합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메일로 들어오기도 하고, 가끔 페친이 올려놓은 좋은 프로젝트가 눈에 띌 때도 있죠.



돈은 안 벌리고 그냥 바쁜 단계

멀리서 다가오는 뭔가 불길한 기운….

1. 미팅이다


미팅이 시작됩니다.


2. 또 미팅이다


하루에 2개, 3개가 한꺼번에 잡힐 때도 있어요. 주로 위워크나 삼성, 역삼, 강남, 여의도 부근의 어딘가에서 진행됩니다.


3. 여기서도 연락


스팸만 주구장창 들어오던 메일통에 새로운 제목이 눈에 보입니다. “OOO대표님 OOO제작 차 연락드립니다!” 등등…


4. 저기서도 연락


소개받고 연락드립니다 라는 식의 문자나 카톡, 전화도 종종 들어옵니다. 주로 건바이건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5. 하아… 왜 계약을 안 하는 거야


근데 계약이 바로 되진 않습니다.


6. 추후 연락드리겠습니다 500개


미팅을 했는데 결과가 없는 시기죠.


7. 견적 물어보는 전화 200개


견적서만 오지게 보내고…


8. 견적을 낮춰 부를까?…


고민이 되기 시작합니다. 저걸 잡아야 할 것 같거든!


9. 강의를 들어볼까?


여기서 ‘좀 더 뭔가’ 해야 확 들어올 것 같은 조급함!


10. 유튜브를 배울까?


‘좀 더 뭔가’ 중 뭔가 1번.


11. 검색이 잘 안 되는 건가?


‘좀 더 뭔가’ 중 뭔가 2번.


12. 웹사이트라도 재정비할까?


‘좀 더 뭔가’ 중 뭔가 3번.


13. 페북 페이지 만들어야지


‘좀 더 뭔가’ 중 뭔가 4번.


14. 인스타 다시 정비해야겠다


우왕좌왕하면서 오히려 돈이 더 많이 나가는 시기입니다. 뭘 배운다, 듣는다, 산다, 쓴다 하면서 활동량이 많아지고 정신없고 돈도 없고 계약은 안 되고 공연히 힘 빠지는 시기죠. 하지만 중요한 시기입니다.


15. 자잘한 강의 의뢰


그러다 소일거리 하나가 딱 들어오면서…



일이 미친 듯이 시작되는 시기

일의 속도

1. 으아!


그 소일거리를 이날 잡으면 안 되는 거였습니다. 곧 큰 프로젝트가 들어오고 그놈의 소일거리가 하필 애매한 날짜에 껴있기 마련이죠.


2. 담당자: 13일까지 혹시 가능하신가요?


데드라인은 늘 촉박합니다.


3. (…으아아아!) 네 가능합니다!


하지만 가능해야 하죠.


4. 무슨 센터: 대표님 강의 가능하세요?


갑자기 지방강의나 막 4~6시간 짜리도 잡히고 그럽니다. 하루가 통째로 날아가겠죠. KTX에서도 제안서를 만들 수 있습니다.


5. (으아아아아!) 네 가능합니다!


그래도 해야 합니다.


6. 대표님 일정이 조금 당겨졌어요, 하루 일찍도…?


일정조차도 내 맘대로 안돼요. 항상 예상보다 더 빡세지기 마련입니다.


7. (으아아ㅡ아어엉!) 네 가능해요!


하지만 해냅니다. 이걸 또…


8. 일이 또!


미치기 일보 직전 또 일이 들어옵니다.


9. 집안일도!


무슨 결혼식, 행사, 장례식, 어버이날, 가족모임 등등도 겹칩니다.


10. 친구: 야 바쁘냐?


ㅇㅇ


11. 오늘 약속 좀 미뤄야 할 것 같아ㅠㅠ


일단 사적인 약속들이 미뤄집니다.


12. 하아… 우리 다음 달 정도에 만나쟈


내일도 미팅에 또 거의 밤샘각이라서 술은 못 마실 것 같습니다. 간신히 자기 전에 맥주 한 잔 하는 것도 감지덕지인 시기니까요.


13. 몸살 옴


당연한 일입니다.


14. 선생님… 제일 센 거로 수액 좀 놔주세요 내일까지 나아야 해요


의학의 발달을 몸으로 깨닫습니다. 마늘주사가 좋더라고요. 


15. 으아아아아, 이거 파일! 집에 다녀와야 해!


체계적으로 움직여도 뭔가는 꼬이기 마련입니다.


16. 이거 빼먹었다…ㅠㅠ


실수가 잦아집니다.


17. 아씨… 직원 있었으면 좋겠어…


욕도 먹고 혼도 나요. 누가 좀 도와줬으면 하는 맘이 있지만…불평할 시간은 없습니다.


18. 왜 일이 안 끝나지…


터덜거리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다이어리를 겨우 정리하고 내일 일정 체크한 후 기절합니다. 그러니까 이 시기엔 수면을 취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 기절과 의식불명을 통해 휴식합니다.


19. 난 언제 쉬냐


사실 생각해보면 한두 달 전까지 원 없이 쉬었습니다. 불안 속에서….



일이 한꺼번에 끝나버리는 시기

1. 잔금


오예.


2. 잔금


맥스95 신상 하나 사고.


3.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다는 톡과 이모티콘, 스타벅스 기프티콘이 많아집니다.


4. 감사해요!


나의 노고가 실무자 한 명을 살릴 때도 있습니다.


5. 잔금


모니터 하나 바꾸고.


6. 세금계산서


이거 끊을 때가 제일 행복해. 짜릿해. 늘 새로워


7. 잔금


여행 한 번 다녀오고


8. 잔금


부모님 용돈 드리고


9. 잔금


적금 좀 넣고, 밀린 건강 보험비 내고


10. 탕진잼


옷 사고 참치 파티 하고 나면


11. 다시 1번으로 복귀


즐거운 우리네 삶 x repeat 🙂



마치며

개인적으로 생각해볼 때 ‘언젠간 들어오니 참아라!’란 말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희망을 줘서도 안 됩니다. 1번의 시기가 얼마나 계속될진 사실 모릅니다. 부동산 가격도 언젠간 오르겠지만 존버의 시기가 있는 법이니까요. 단계별로 해야 할 것은 명확합니다.


1번의 일도 돈도 없는 시기엔 돈이 될만한 다른 걸 해야 합니다. 당장의 돈이 될 만한 거 빨리. 돈을 주머니에 쑤셔 넣어야 안정감이 튀어나와요. 알바를 뛰든 뭔가 팔든 유동자금을 재빨리 만들어야 해요(사실 이건 4번에서 모아놨어야 하는 게 맞습니다).


2번은 노젓는 시기입니다. 미팅만 많아지는 시기에는 최대한 많은 미팅을 잡아야 해요. 들어올 때 노 젓는 느낌은 괜히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2단계까지는 ‘노를 젓는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러니 내 컨트롤 하에 이것저것 여지를 엄청 만들어 놓으시는 게 좋습니다. 사실 그중 절반은 사라질 것들이고, 절반도 TBD에 머무를 거거든요. 재수가 좋아서 모두 진행된다면 그냥 하면 됩니다. 일은 하면 다 되더라고요. 


3번의 시기는 버티는 시기입니다. 노를 젓는 시기가 아니더라고요. 노를 저을 수 없습니다. 폭풍 속에선 어떤 것도 의미가 없죠. 돛대(=건강)나 안 부러지게 줄을 조였다 풀었다 하는 정도랄까요. 그냥 이 악물고 버티고 해내는 시기입니다. 욕도 먹고 울적하고 서럽고 슬픈 일들이 가득합니다. 이 시기에 우리가 느껴야 할 것은 (날아가 버린 파일이 재부팅 후 자동 저장되어 있음에 안도하는 그런) 순간순간의 기쁨입니다. 날마다 행복한 푸우놈의 그런 바람은 잠시 접어두도록 합시다.


4번의 시기엔 적당한 탕진과 보양식으로 마음과 몸의 양식을 채우는 것이 좋습니다. 사고 싶던 플스도 이때 사고 바꾸고 싶은 노트북도 이때 바꾸세요. 다만 그걸 다 사고 남은 돈을 저축하는 게 아니라, 저축하고 남은 돈으로 사는 겁니다. 기쁨과 회복의 시기는 1달을 채 가지 못하고 다시 1번으로 돌아가기 때문이죠. 월세, 세금, 보험 등 공과금 제외 순수 사용 가능한 현금만 최소 1,000만 원~2,000만 원은 남겨두고 뭔가 하는 게 좋습니다. 물론 더 많다면 더 좋겠죠 🙂 물질 만세.


원문: 박창선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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