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프리랜서] ② 퇴사를 결심하다

조회수 2019. 4. 23. 15:2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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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나를 힘들게 한 건 회사였는데 소중한 내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엄마에게 전화로 내 결심을 알린 것이었다. 때는 입사 5년 차의 어느 봄, 나는 내 모니터만 빼고 어두컴컴하게 불 꺼진 우리 팀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고, 나는 엄마에게 담담히 퇴사 결정을 알렸다.


평소 ‘서울에서 직장생활 하는 딸’을 자랑스러워하던 엄마를 잘 알았던 만큼, 수화기 너머 들려온 대답은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엄마는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라는 말과 함께 ‘청년 실업’이니 ‘경력 단절’이니 하는 냉정한 현실을 철없는 딸에게 어떻게든 알려주려 애썼다.


엄마의 초조한 설득을 듣던 나는 별안간 버럭 성을 내며 울었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이러다가 크게 아프기라도 하면 그때 가서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냐고 비수 같은 말로 엄마의 마음을 찔렀다. 수화기 너머로 혼란스러운 침묵이 들렸다.


평소 장난처럼 퇴사를 언급한 적은 있어도 회사 생활 힘들다는 티를 거의 내지 않던 딸이었기에, 갑작스레 줄줄 쏟아져 나온 5년 치 눈물과 하소연은 엄마를 적잖이 당황하게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사실은 매번 이런 식이었다는 것을.


담담한 척, 잘 지내는 척했어도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나도 모르게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을 냈다. 정작 나를 힘들게 한 인간들 앞에서는 한 마디도 못 하고, 괜히 소중한 내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다.


회사에 다닌 시간이 길어질수록 짜증은 늘어갔고, 뒤이어 밀려오는 후회와 죄책감도 점점 커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퇴사를 결심한 후에도 결국 나는 이렇게 죄 없는 엄마에게 성을 내고 있었다.


엄마는 미안하다고 했다. 그렇게 힘들면 당장 그만 두라고, 일단 그만 두고 당분간 고향에 내려와서 쉬라고 말했다. 나는 고맙고 미안하다고 대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가슴이 답답한 밤이었다.


내가 실제로 퇴사를 한 것은 그로부터 몇 개월 뒤였지만, 그날 밤 그 어두운 사무실에서 내 마음은 완전히 회사를 떠났다.

그때까지의 나는 어떻게 보면 성실하게, 어떻게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살던 인간이었다. 평범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남들처럼 대학에 갔고, 졸업할 무렵엔 수순대로 취업을 했다.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직업도 아니고,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4대 보험에 매달 25일이면 따박 따박 월급이 나오던 회사였다. 그나마 한 번도 멈추거나 턱에 부딪히지 않은 채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 나의 소소한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한 번도 멈추지 않은 것. 나는 단 한 번이라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내가 어떤 인간인지 좀 더 자세히 관찰했어야 했다. 이것은 오롯이 내 인생인데도 나는 어째서 남들의 시간표에 맞추려고 그렇게 발버둥 쳤을까.


뚜렷한 목표도 없이 공부하고, 배치표에 맞춰서 대학과 전공을 정하고, 졸업이 다가올 무렵에는 허둥지둥 토익과 인·적성 문제집을 풀었다. 이런 내가 월급이나 복지, 업무강도같이 피상적인(그리고 막상 다녀보면 대개 알려진 것과 다른) 기준만 놓고 직장을 선택한 것은 딱히 놀랄 일도 아니었다.


첫 3년을 버틴 것은 거의 월급의 힘이었다. 월세도 내고 식비도 대고 시집도 가고 노후대비도 하려면 돈이 필요했으니까. 입사 후 첫 보직으로 운 좋게 업무강도가 그다지 높지 않은 팀에 배정된 것도 현실도피를 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스트레스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말도 휴일도 없이 출근하거나 사이코패스 같은 상사 밑에서 괴로워하는 다른 회사, 다른 팀 직원들을 보면 내 처지가 그나마 나은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얻어걸린 운도 거기까지였다. 입사 3년을 채워갈 무렵 회사에서 보직 이동 명령이 내려온 것이다. 우리 팀은 해체되었고, 구성원들은 서로 다른 팀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후 1년 동안은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 이해할 수 없는 야근, 이해할 수 없는 처우. 문제의 원인이 내게 있는지, 팀에 있는지, 회사에 있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매일같이 ‘내일은 더 나을 거야.’라는 생각만을 위안으로 버텼다. 실제로 팀장이 늘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다. 이번 일만 끝나면 나아질 거야. 이번 달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하지만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계절이 한 바퀴를 돌았을 무렵 나는 깨달았다. 다음 계절이 오고 다음 해가 와도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 회사는 내 첫 직장이었지만 사실 나는 다른 회사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정규직으로 입사한 회사는 이곳이 처음이지만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와 인턴으로 다른 회사 두 군데에 각각 몇 개월씩 다녀본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일했던 회사는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아르바이트로 다녔던 작은 홍보대행사였다. 그곳은 전 직원이 5명 남짓한 작은 규모로, ‘갑‧을‧병‧정…’ 하는 서열로 따지면 겨우 ‘정’ 정도나 될까 말까 한 영세 업체였다. 그 회사에서는 모두가 누군가에게 치이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옆에서 지켜본 직원들은 자주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사과나 사정을 했다.


그곳에서 목격한 이해할 수 없던 사건 중에, 모 대기업 홍보 담당자에게 보낸 생일 축하 꽃바구니가 거절당해 회사로 되돌아온 에피소드가 있었다. 선물을 받은 ‘갑’이 꽃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핑계로 배달 업체 퀵서비스를 돌려보낸 것이다(물론 착불로).


꽃바구니를 보낸 우리 회사 직원은 사장님 눈치를 보며 전화로 한참 동안 사과를 했고, 결국 더 비싼 선물을 보내주는 선에서 겨우 상황을 마무리했다.


나는 이 사태에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그리고 두 달 동안 비슷한 일을 수차례 겪으며, ‘절대 영세한 회사에 취직하지 말아야지.’라는 다짐과 함께 아르바이트 기간을 마쳤다.


취업준비를 위해 다들 인턴 자리를 알아보는 4학년 여름방학에 내가 대기업 계열사에만 원서를 넣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언제나 회사 안팎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중소기업보다는 적어도 거대한 조직의 보호를 받는 대기업에서 일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모 대기업 산하의 유통 계열사에 영업 관리직 인턴으로 입사했다. 확실히 대기업은 달랐다. 100명 가까운 합격생들을 모아놓고 근사한 격려식도 열어주고, 첫 출근일에는 내 이름이 들어간 사원증과 반짝이는 명찰도 나왔다.


하지만 합격의 기쁨도 잠시, 팀에 배치받자마자 말로만 듣던 군대식 문화가 눈앞에 펼쳐졌다. 일주일에 3일은 만취하도록 회식을 했고, 고작 인턴 사원인 나와 동기들도 영업과 실적 압박에 시달렸다.


사무실에서 욕설과 폭언이 난무하고, 중요한 업무 지시를 회의실이 아니라 옥상 흡연실에서 하는 문화가 아직까지도 남아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마침 인턴 기간과 맞물렸던 추석 대목에 수백만 원 어치 선물세트 영업을 떠안았을 때는 정말이지 기가 막혔다. 물론 강제는 아니었지만, 이러한 영업 실적은 내 점수에 반영되어 정규직 전환의 기준이 되고, 정규직이 된 다음에는 승진의 기준이 될 터였다. 나는 그 반 강제 영업에 하나도 참여하지 않았고(물론 능력이 없어서 못한 것도 있지만), 정규직 심사에서 탈락했다.


시간이 흘러 정식 취업 시즌이 다가왔다. 나는 직장에 대한 모든 로망을 버린 채 중간 정도 규모와 중간 정도 업무강도를 가졌다는 회사에 입사해서 5년을 버텨냈다. 하지만 결국엔 거기까지였다.


겉으로는 무난한 회사생활을 했어도 안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곪아가고 있었고, 이런 식으로 몇십 년을 더 버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았다. 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 중간 어디쯤 있는 규모의 회사에서 골고루 적응에 실패한 것이다.


원문: 서메리의 브런치

서메리,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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