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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청년의 모서리를 깎고 기존의 블럭으로 만들어 소모품처럼 쓰다 버린다

조회수 2019. 4. 8. 1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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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회에, 그런 세상에 미래는 없을 것이다.

1.


청년 시절을 마감할 즈음, 언론사 취업을 위해 일 년여 정도 준비한 적이 있었다. 대학원에서의 연구가 나한테 그다지 잘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프리랜서 작가로만 살아보고자 했으나 어려움이 많았다. 수입도 수입이었지만, 더 문제를 느꼈던 건 전반적인 안정감이었다.


돈이야 마음만 먹으면, 이리 뛰고 저리 뛰면 어떻게든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저곳을 소속 없이 오가고, 오로지 매일매일을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견뎌내고, 무한한 불확정성 속에서 홀몸으로 세상과 맞서며 견뎌내 간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어디든지 적을 두고 살아가고자 하는 절실함이 무척 커져 있었다.


그 일 년여 동안, 사람들을 만나며 함께 시사 공부도 하고, 글을 써서 합평도 하고, 다양한 분야에 대한 토론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세상에 참 놀라울 만큼 똑똑하거나 성실한 청년들이 많다는 걸 느끼기도 했다.


이렇게 반짝반짝하는 사람들, 열정적이고, 창의적이며, 생각이 깊고, 관심의 폭도 넓은 이런 청년들에게 세상을 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들이 온전히 자신의 삶을, 세상을 만들어갈 기회를 준다면, 세상은 확실히 더 나아질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세상에서 자기 안의 것들을 마음껏 펼쳐내며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가기보다는, 억눌리고, 억압당하고, 기회를 박탈당하고, 강요받으며 기계의 부품, 불합리한 구조와 문화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것을 알았던 것 같다.


세상은 청년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변혁시켜 나가기보다는, 그들의 모서리를 깎고 기존의 것과 똑같은 블럭 같은 것으로 만들어, 소모품처럼 쓰고 버린다.


그런 식으로 기존 구조의 공고함을 유지하는 폭력을 재생산한다. 기득권은 그런 방식으로 안정적인 지위를 유지해가겠지만, 그런 사회에, 그런 세상에 미래는 없을 것이다.



2.


언론사 취업은 잘 되지 않았다. 몇 번은 필기시험을 통과하고서도, 일부러 면접을 보러 가지 않은 적도 있었다. 이상하게도 면접 볼 때가 되니, 굳이 언론사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한순간 나를 휘어잡곤 했기 때문이었다.


글을 써서 서로 읽어주고, 함께 세상에 다양한 것들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하는 것은 정말 좋았는데, 그것을 넘어서 정작 ‘입사’라는 현실에 다가가다 보니, 오히려 그러고 싶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역시 삶이라는 게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보다는, 무엇을 열망하느냐에 달려있지 않나 싶기도 했다. 삶에는 어떤 깊은 무형의 열망이나 방향성 같은 게 있어서, 결국 그것을 거스르기란 힘든 게 아닌가 싶은, 묘한 마음을 감지했달까.

그런데 그렇게 보낸 일 년 여가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인문학 책처럼 다소 딱딱한 글만 쓰며 살던 내게 새로운 글쓰기를 알게 해 주었다. 사람들과 합평회를 하며 고쳤던 글을 여기저기 투고해서, 문학상을 받기도 하고, 언론사에 글을 싣기도 하고, 연재처를 얻기도 했다.


그런 일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는데 이를테면, 그때 공부했던 것들을 재료 삼아 글을 싣고, 그 그들이 쌓여 관련 업계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그를 통해 강연이나 수업을 하고, 나아가 방송의 한 코너를 맡게 되기도 했다.


삶이란 그런 식으로 이어졌다. 내가 열망을 가진 일들에 나의 방식으로 몰두하다 보니, 그 나름에 어울리는 길을 걸을 수 있었다.



3.


나는 지난 시절들이나 실패들에 유감이 없다. 그럴 수 있는 건 어쩌면 스스로의 열망이랄 것을 집요하게 좇고, 놓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삶에서 겪는 어떤 종류의 실패들은 내게 전혀 실패가 아니기도 했다. 누군가가 본다면, 나의 지난 삶은 줄곧 실패들의 연속이다. 그러나 나에게 내 삶에 실패란 없었다. 오히려 내게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버릴 수 있었던, 그런 장애물들을 제거할 수 있었던 여정이었다.


어떻게 보면 세상으로부터 내가 가진 것들을 손쉽게 빼앗기거나 억압당하거나 훼손당하지 않기 위해 지키고 싶었던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가진 좋은 것들, 누구나 얼마쯤은 가지고 있을 소중한 가능성들을 사랑했고, 지키고, 펼치고 싶었다. 내가 여전히 그런 길을 걷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그런 길을 가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도 당신과 같다고 토닥이며,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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