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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 이해하는 법: 좁아진 세계, 수동적 메세지

어쩌면 청년에게 어른이라는 존재 자체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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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법은 조간신문과 텔레비전, 그리고 종이책에 국한되어 있었다. 정보 접근 수단의 제한은 각각의 개인이 세계라고 인식하는 범위를 상당히 좁게 만들었다.


이렇게 좁은 범위의 세계에서는 준거집단의 범주 역시 거주지와 직장에서의 주변 사람들 또는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유명인이나 연예인 정도로 형성되게 마련이다.


즉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소수로 인식되었던 시대가 인터넷 혁명 이전의 시기였다는 뜻이다.

그러나 200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열린 소셜 미디어 시대에는 이러한 준거 집단의 범주가 급격히 넓어지고, 소위 ‘일반인 셀럽’ 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는 1년 365일 내내 해외에서 즐거운 삶을 만끽하는 사람들의 일상이 쉴 새 없이 전시되며, 평균적인 소득으로는 큰마음을 먹어야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소비의 과정들 역시 무제한적으로 우리의 시각을 지배한다.


즉 세계의 범위가 물리적으로 좁아짐으로써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세상이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넓어진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는 이러한 메시지들을 우리가 능동적으로 선별하여 받아들일 수 있지 않다는 점이다. 나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사람의 메시지들도 간접적으로 연결된 다른 사람이 공유하거나 관심을 표함으로써 자동적으로 나에게 노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신문은 끊으면 그만이고 TV는 전원을 OFF 하면 그만이지만 소셜 미디어는 아예 이를 사용하지 않는 방법을 제외하면 메시지의 홍수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문제는 소셜 미디어가 또한 트렌드를 선도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마냥 끊기도 곤란하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 시대 청년들의 뿌리 깊은 소외감은 좁아진 세계와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메세지 노출이라는 두 가지 사회 환경의 변화를 기저에 놓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들의 소외감을 설명함에 있어 기성세대의 고민은 저 두 지점 앞에서 대개 멈춘다는 것이 청년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학교 교육과 신문, TV가 정보 접근 수단의 전부였던 분들은 물리적으로 더 넓은 세상을 접하는 청년들의 소외감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괴리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청년들은 불안하다. 경제가 발전하며 더 많은 길이 그들의 앞에 열린 것처럼 보이지만 각각의 길에 놓인 불확실성의 크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자리를 잡은 어른들이 경로의 가짓수가 많아졌다는 것만 생각하고 ‘내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여러분의 젊음을 나는 사고 싶다’라는 투의 이야기를 멘토링이랍시고 부르짖는다던가,


아무런 대책이 없이 해외로 진출하면 여러분에게 길은 열려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메시지로 전달하면 그것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겠는가 이 말이다. 멘토링 비즈니스의 침체는 이유가 있다.

청년들의 문제는 단순히 일자리가 부족하다든가 누군가가 경제적 지대를 틀어쥐고 내려놓지 않고 있다든가 정부가 페미니즘 정부(...)라서 그렇다든가 하는 단순한 일면으로 정의될 수 없다.


지난 10년 보수 정권의 탓을 하며 이들이 잘못 배워서 변질된 것이라는, 부끄러울 정도로 수준 낮은 분석은 물론이다.


사회 환경의 변화를 통해 청년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뿌리 깊은 소외감과 이러한 소외감에서 필연적으로 발로되기 마련인 갈등 구조의 핵심인 좁아진 세계와 선별 불가능한 메시지의 수용을 직시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답이 없다.


그러나 아직도 청년에 대해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어른들이다. 그러나 애당초 살아온 환경과 받아들이는 메시지부터가 다른데 어찌 기성세대가 청년층을 공부도 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제 청년층은 더 이상 본인의 성공법을 전수해 주는 잘난 멘토도, 그럴싸한 미사여구로 본인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척하는 힐링형 멘토도 원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들에게 어른이라는 존재 자체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 눈앞에 도사리는 소외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문: 김현성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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