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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뭐가 될지 모르겠는 '오, 여정' 이야기

조회수 2019. 4. 1.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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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혼자서 가는 것이 숙명인 무소의 뿔처럼

〈오, 여정〉 비긴즈


더 이상 여행은 기다리고 기다려서 떠나는 ‘휴가’가 아니다. 내가 그러고자 한다면 내일 당장이라도, 아니 지금 당장에라도 이 복잡다단한 도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자그마한 숨통이다. 그 작은 숨구멍의 존재가 도시인들에겐 참 크나큰 위안이다. 아무리 이 도시가 우리를 상처 입히더라도, 이곳을 떠나버리면 그뿐인 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 차이다.


72초TV가 만든 〈오, 여정〉의 출발도 거기서부터였다. 우리에게 상처 주었던 것들로부터 멀어지고픈 마음,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의 속도를 잠시 멈추거나 늦추고 싶다는 갈망에서부터 ‘여정’이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오, 여정〉은 일상에서 상처받은 ‘여정’이의 여행을 그려낸 작품이다. 퇴사하고 떠난 여행, 친구와 떠나려다가 혼자 가게 된 여행,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진 후 떠난 여행 등 여정이 여행을 떠나는 계기는 늘 아리다. 그리고 그 여정에는 달콤한 낭만보다는 뭉글한 현실이 담기고, 구구절절한 사연보다는 담담한 독백이 자리한다.

그렇게 경주로, 제주로 떠났던 여정이 이번에는 부산으로 떠났다. 무던한 듯하지만 무탈하지는 않았던 일상의 짐을 어깨에 멘 채로. 실연을 겪은 여정이가 부산 거리를 뚜벅뚜벅 걷기 시작한다.



모두가 빨라졌기에, 우리는 다시 느려진다


〈오, 여정〉의 호흡은 여정이의 속도에 오롯이 맞추어져 있다. 여정이가 걷고, 먹고, 한 숨 쉬고, 생각하는 속도가 곧 〈오, 여정〉의 템포다. 여정이의 걸음은 늘 느리고, 여정이의 시간에는 언제나 여백이 있다.


〈오, 여정〉의 문법은 요즘 흔히 통용되는 웹 콘텐츠, 숏폼 콘텐츠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영화에 더 가깝다. 서정적인 배경음악과 필름 카메라를 연상시키는 레트로한 영상미는 마치 오래된 영화를 보는 듯한 감상에 빠지게 한다.

72초TV를 아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빠른 템포와 압축적인 서사의 숏폼 콘텐츠들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2015년 등장한 72초TV는 ‘초압축 드라마’라는 새로운 개념의 콘텐츠를 선보이며, 시장에 강한 인상을 남기며 데뷔했다. 그리고 72초TV의 등장 후 업계에는 짧고 압축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사가 대거 나타나기 시작했다. 72초TV의 〈바나나 액츄얼리〉가 없었더라면 과연 생겨날 수 있었을까 싶은 웹콘텐츠 제작사들도 상당히 많다.


어쩌면 느린 템포와 잔잔한 정서의 〈오, 여정〉은 72초TV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선택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더 빠르고, 더 짧은’ 콘텐츠들로 업계를 주도해왔던 72초TV가 갑자기 속도를 잔뜩 늦춰 〈오, 여정〉을 선보인 이유는 제법 명확하다.


업계에서는 ‘72초TV와 비슷한 제작사가 너무 많아졌다’고 섣부른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72초TV는 아직도 유별나게 외로운 신세다. 마치 혼자서 가는 것이 숙명인 무소의 뿔처럼.


다른 웹콘텐츠 제작사들이 제작지원과 PPL을 위해 조회 수에 사활을 걸 때, 72초TV는 조회 수의 무위함을 인정했다. 대부분의 제작사들이 더 많은 조회 수가 더 많은 수익을 안겨줄 수 있다는 시장의 논리와 콘텐츠 비즈니스의 한계를 받아들일 때, 72초TV는 그 굴레를 깨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72초TV는 숏폼 콘텐츠 제작사 중 가장 먼저 해외 시장에 눈을 돌렸고, 웰메이드 숏폼 콘텐츠의 가치를 국내외 시장에 인식시켰다. 또한 브랜디드 콘텐츠의 등장을 기점으로 기존 광고 시장과 콘텐츠 시장의 경계가 허물어짐을 간파하고, 전 세계의 각종 광고제와 방송 시상식에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그 결과로 지난해 MIPTV에서 아시아의 제작사 중에서는 유일하게 숏폼 시리즈 부문에서 〈dxyz〉에 대한 공식 피칭의 기회를 가졌으며, CJ오쇼핑과 함께했던 〈신감독의 슬기로운 사생활〉은 아시아의 디지털 스튜디오 최초로 국제 에미상의 공식 후보에 올랐다.


그뿐 아니라 72초TV는 콘텐츠와 브랜드가 일체화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영상을 넘어 공간, 의류, 소품 등의 브랜드로 확장된 〈dxyz〉를 선보였다. 〈dxyz〉의 독창적인 포맷은 광고 업계에서도 큰 주목을 받아 숏폼 콘텐츠 최초로 ‘포맷 판매’ 사례들을 일구어내기도 했다.


72초TV가 ‘압축성’을 강조하지 않는 이유는 이제 그것이 새롭지 않아서다. 더 이상 업계는 ‘초압축’이라는 키워드에 참신함을 느끼지 않는다. 새롭지 않은 것은 72초TV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특징이 될 수 없다. 72초TV는 새롭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 존재의 의의를 두기 때문이다.


새롭고 재미있기만 하다면 속도는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느린 〈오, 여정〉이 충분히 새롭고 재미있으며, 업계에 참신한 가능성과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보았다. 

자꾸만 재잘거리게 하는 〈오, 여정〉의 매력


〈오, 여정〉은 유튜브와 네이버TV 등을 통해 시청자들과 만난다. 유통 플랫폼상의 구분으로 보자면 ‘웹 콘텐츠’ 혹은 ‘웹드라마’로 정의될 수 있고, 콘텐츠 자체의 형식으로 분류하자면 ‘숏폼 콘텐츠’로도 불릴 수 있다.


유튜브 같은 플랫폼상에서 콘텐츠의 가치란 흔히 조회 수로 치환되어 왔지만, 최근 그 양상이 조금씩 달라졌다. 유튜브가 단지 동영상을 스트리밍하기 위한 플랫폼이 아닌, ‘커뮤니티’로서의 기능을 확대해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제 유튜브를 통해 대화한다. 자신의 일상과 감정 상태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이며, 서로의 취향과 가치관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리고 영상 콘텐츠는 그들의 대화를 매개하는 역할을 해나간다.


조회 수로만 판단했을 때는 그다지 대단치 않아 보였던 〈오, 여정〉의 새로운 가치와 가능성 또한 여기에서 발견된다. 유튜브상에는 정말 수많은 숏폼 드라마들이 있지만, 〈오, 여정〉만큼 시청자들이 스스로 깊고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게끔 하는 작품은 드물기 때문이다.


여정이가 여행을 떠나게 만든 이유, 그리고 여행을 통해 여정이가 마주하는 인연과 우연들을 함께 지켜보며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오, 여정〉에 호평을 쏟아놓는 이들도 있고, 〈오, 여정〉의 명대사를 조곤조곤 곱씹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여정이의 상황과 자신의 상황을 빗대 간질간질한 시를 써놓기도 하고, 고운 수필을 남기기도 한다.


그리고 이들의 대화는 유튜브 안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대화는 인스타그램으로, 트위터로, 블로그로까지 이어진다.

인스타그램에는 여정이가 여행하면서 다녔던 장소들을 직접 들러 인증샷을 남기는 이들의 흔적이 있고, 트위터와 블로그에는 여정이에 대한 애착과 공감을 도란도란 표현하는 이들이 그득하다. 〈모두의 연애〉의 저자 ‘민조킹’이나 유튜버에서 활동하는 영화 리뷰어 ‘쁘띠 거니’와 같은 소셜 인플루언서들이 자신의 SNS를 통해 〈오, 여정〉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것도 인상적이다.


중요한 것은 72초TV는 〈오, 여정〉을 비롯한 작품의 마케팅과 홍보에 거의 비용을 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오, 여정〉에 인지도가 높은 배우나 아이돌 멤버가 출연하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오, 여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모든 대화는 자발적이고 자유로우며, 또 자연스럽다.



〈오, 여정〉 어디까지 갈래


〈오, 여정〉의 애청자들이 보여주는 정성스러운 반응들은 〈오, 여정〉과 같은 작품들이 커뮤니티화되는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설명한다. 또한 자발적으로 모인 시청자들, 즉 소비자들이 콘텐츠를 통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참여할 수 있을지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지속적으로 소비자를 모으고 반응하게 할 ‘오리지널 시리즈’를 필요로 하는 브랜드와 기업에게 좋은 레퍼런스가 될 것이다.


여정이의 방문지들을 표시한 ‘오, 여정 지도’나 여정이의 여행에 어울릴만한 음악들을 선곡한 ‘오, 여정 플레이리스트’ 등의 영상 외 부가 콘텐츠들은 더 확장된 브랜드로서 〈오, 여정〉의 잠재력을 제시한다. 〈dxyz〉처럼 72초TV의 자체 브랜드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좋은 파트너를 만나 콘텐츠 라이센스 비즈니스의 성공사례로 발돋움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일찍이 〈오, 여정〉은 제주도와 부산광역시와의 협업에 성공하며 ‘지역과 연계한 여행 드라마’로서의 충분한 가능성을 입증했다. 그리고 얼마 전, 우리는 마르세이유 관광청의 연락을 받았다. 아마도 여정이의 다음 여행지는 프랑스 마르세이유가 될 것 같다.


그러니까 지금으로선 〈오, 여정〉이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감히 속단할 수가 없다. 트렌드와 정반대로 가는 〈오, 여정〉의 고유한 매력과 가능성은 어쩌면 숏폼 콘텐츠가 맞이할 미래의 한 축을 설명하는지도 모른다. 다양한 숏폼 콘텐츠가 있어야 다양한 미래도 바라볼 수 있다. 그것이 세계 최고의 숏폼 콘텐츠 제작사를 꿈꾸는 72초TV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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