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MS의 엄친아, 모델 송경아의 남편, 엑싯 후 백두산 맥주를 만들기까지: 핸드앤몰트 도정한 설립자 인터뷰

조회수 2020. 9. 16. 18:29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빡센 한국의 맥주 시장, 철학과 고집으로 일어서다

크래프트 맥주 1세대, 브랜드를 위해 AB인베브와 손을 잡다


이승환(ㅍㅍㅅㅅ 대표, 이하 리): 안녕하십니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도정한(핸드앤몰트 설립자):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핸드앤몰트 설립자 도정한입니다. 현재 약 700곳 정도의 펍에 수제 맥주를 공급합니다.


리: 돈 많이 버시겠네요…


도정한: 음… 그냥 월급쟁이입니다ㅋㅋㅋㅋㅋㅋ

출처: 도정한 설립자 본인
많이 뿌리는 프로필 사진.

리: 매각하면서 돈은 얼마나 버셨습니까?


도정한: 밝힐 순 없지만, 항간에 떠도는 엄청난 금액 근처에도 가지 않습니다.


리: 어… 그런데 왜 파셔서…


도정한: 솔직히 더 높은 금액의 제의가 꽤 있었어요. 그럼에도 AB인베브와 손을 잡은 이유는 우리 브랜드를 잘 케어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간에 함께해온 타 수제 맥주 브랜드만 봐도 본래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꾸준히 잘 유지하더라고요. 가장 중요한 건 핸드앤몰트를 지키고 키워주겠다는 약속이었어요. 핸드앤몰트는 정말 제 DNA 그 자체거든요. 이렇게 말해줬어요.

우리가 핸드앤몰트와 같은 식구가 되고 싶은 이유는, 도정한이 제대로 된 크래프트 비어를 보여줬기 때문이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맘껏 해봐.


모범생, 고대생에게 술을 배우며 주도를 걷다


리: 설립자님의 유년 시절은 어땠나요?


도정한: 미국에서 태어났어요. 1974년도에 오하이오 쪽에서. 한국은 할머니, 할아버지 뵈러 여름 휴가 때 가끔씩 들어왔어요. 오락실 가서 10원 넣고 ‘보글보글’하고… 아버지가 미국에 이민을 가서 한국에 자개를 수출하는 사업을 하셨어요. 장롱에 넣는 자개 있잖아요? 80, 90년도에 한국에 가장 많이 수출했던 분이세요.


리: 어마어마한 사업가셨겠는데요. 금수저십니까.


도정한: 아니에요. 미국에서도 초등학교 때부터 알바를 시작했어요. 몇 년간 원룸에서 네 식구가 살기도 했었고… 아버지가 멕시코로 내려가 일하셨고, 차 안에서 주무시고… 정말 고생 많이 하셨죠. 그러다 초등학교 때 LA로 이사하면서 UCLA까지 나오게 됐어요.


리: 학교생활은 어떠셨나요, 인종차별은 없었나요?


도정한: LA는 워낙 인종이 다양해서 그런 차별은 없었고, 그냥 재미있었어요. 제가 원체 운동을 좋아해서 중학교 때 산악자전거를 많이 탔고, 겁 없이 어떤 회사로부터 스폰도 받았어요. 산악자전거 회사에서 알바도 해보고… 대학교 때는 조정을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거의 운동으로 학창시절을 보낸 것 같네요.


리: 싸움을 잘하니까 인종차별이 없었나 보군요. 그래도 공부를 꽤 했으니까 UCLA 간 거 아니에요?


도정한: 아, 공부보다 봉사활동을 많이 했어요. 공부를 못 해서(…) 미국은 그런 거 많이 하면 대학 가기 좋아요. ㅋㅋㅋ

어릴 때부터 역발상 하나는 쩐 듯…

리: 아시안 쿼터로 입학하신 것 아니에요? 혹시?!


도정한: 절대로요, 전 아시안 쿼터 될 성적도 안 됐어요(…) 그냥 애들하고 잘 어울렸어요. 학교 전교 회장도 하고… 리더십을 좋게 봐준 것 같아요. 동아리에서도 LA 전체 대표를 했으니까요. 12학년 때 LA에서 흑인 폭동이 일어났어요. 한국인 대표로 흑인들이 많은 학교를 방문해 한국의 문화 차이에 대해 설명하러 돌아다니기도 했어요.


리: 그렇게 UCLA 가서는 뭘 하셨습니까.


도정한: 원래는 변호사가 되려고 정치학과에 들어갔는데, 술 마시면서 신나게 놀았죠. 대학도 정말 어마어마하게 재밌었어요. 그때까진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했었는데, 한국 유학생들하고 어울리면서 많이 늘었어요. 특히 고려대 형들이랑 많이 어울렸는데, 대야에 맥주 12개를 부어놓고 “마셔! 입술 떼면 안 돼!” 그러다가 입을 떼면 막 신발에다가 맥주를 따라 주고… 이게 한국식 술 문화네~ 크하하하하하하하하!

출처: 고려대학교 박물관 기록자료실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이러고 놀았을 듯…

리: 하필이면 왜 고대생들을 만나서 그런 걸 배우고….


도정한: 그래도 그 당시 한국의 술 문화를 배운 게 저한테는 큰 도움이 됐어요. 어딜 가도 한국말은 서툴지만 술 마시는 법을 아니까 윗분들이 좋아하시더라고요.



MS에서 승승장구하며 엄친아 소리를 듣다


리: 술에 빠져서 변호사를 포기하게 된 건가요?


도정한: 그건 아니고…ㅋㅋㅋㅋㅋ 제가 UCLA 졸업 후 3일 만에 한국에 들어왔어요.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이 생기기도 했고, 그때 할아버지가 아프셔서 간호할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마침 아버지도 96년, 제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사업이 어려워져서 여유가 없었어요. 그러다 현대전자 영어 강사로 일하게 됐죠.


리: UCLA면 꽤 괜찮은 학교인데, 영어 강사요? 미국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도정한: 네. 뭐, 솔직히 미국 가서 취업할 수 있었는데 한국인 여자친구가 생겼어요. 으하하하하하하.

이름 모를 구여친이 도정한의 인생을 바꿨다(…)

리: …… 지금 그분은 아니시죠?


도정한: 아니죠. 여자친구 생기고 그냥 그렇게 남게 됐어요. 그리고 딱 IMF가 터졌는데, 회사에서 잘렸어요. 다시 미국 갈까 하다가, 연세대 국제대학원 장학금 받게 됐어요.


리: 그래도 돈은 벌어야…


도정한: 그래서 아리랑TV에서 앵커도 하고 인터뷰도 하면서 정말 재밌게 살았어요. 이명박 대통령 서울시장 시절 인터뷰도 했고요. 재미도 재미지만, 이제 돈도 좀 벌어야겠다 싶어서 PR 회사 ‘에델만코리아’를 들어갔죠. ‘MS’, ‘골드만삭스’ 같은 외국계 큰 회사를 주로 맡았어요. 그러다 MS 분들이 저 맘에 든다고 “올래?” 하기에, 오케이 해서 갔죠.


리: 크으… 갑자기 연봉 상승이…


도정한: 뭐, 월급이 늘긴 했는데 그렇게 세진 않았어요. 그때가 2003년인가? 저는 항상 돈 욕심이 없어요. 그냥 편안하게 살면 만족했죠. 돈은 형이 잘 벌어요. 미국에서 치과의사 하는데, 수술 쪽이니까 그냥 떼돈 벌어요. 형은… ㅋㅋㅋㅋㅋㅋ 저는 그냥 사람들하고 친하게 놀고 뭐…

출처: 블로터
MS 이사 시절 도정한, 40살 얼굴인 게 더 신기(…)

리: 집에서 부모님이 막 갈구지 않았어요? 형은 공부 잘하는데 너는…


도정한: 오히려 반대였어요. 형은 공부가 맞아서 잘하고 있으니까, 너는 네 길 갈 대로 가라. 아버지가 예술하시던 분이다 보니, 쿨하세요. 어머니도 마찬가지시고.


리: MS 가니까 인생이 좀 즐거워지시던가요?


도정한: 즐거웠죠. 컨슈머 쪽을 다 다뤘으니까. 엑스박스, 키넥트, 서피스… 그래도 제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건, 한국의 불법다운 문화를 바꿨다는 거예요. 그때만 해도 저작권 의식이 많이 약해서 웬만한 건 다 불법으로 다운받았어요. 그런 자료를 한 2년 정도 모아 관련 정책을 만들었고… 그렇게 문화를 바꿔나간 거죠. 아무튼 MS에서는 늘 좋았던 것 같아요. 기자분들하고 일하면서 술도 많이 마셨고요.


리: 기자들 만나면 주로 쏘맥 먹잖아요? 쏘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정한: 옛날에는 그게 문화였으니까, 그냥 ‘아 이게 문화다’하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수제 맥주 회사를 차리면서 이런 문화를 좀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계속해 발전하다 보면 지금 대표님하고 저하고 같이 있는 것처럼, 즐기면서 마시고, 정치 얘기하고, 역사 얘기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이게 맞는 길이라고 항상 생각했어요.


리: 하긴 쏘맥은 취하자고 마시는 거니까… 혹시 술 마시고 실수한 적은 없으십니까?


도정한: 한 번 있었어요. 딱 한 번. 싱가포르였는데, 샴페인을 이리저리 섞어 먹었더니… 눈떠보니 아파트 엘리베이터더라고요. 제가 주량이 소주 5~6병이었는데… 아무튼 핸드앤몰트를 설립한 뒤로는 1병도 잘 안 마셔요. 수제 맥주 두세 잔?

오후의 핸드앤몰트 탭룸

돈이 남지 않아도 최고의 맥주만을 추구한 이유


리: 설립자님보다 더 유명한 와이프(모델 송경아 씨)는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도정한: 아는 누나가 소개팅을 해줬어요. 처음 만났을 때는 키가 그렇게 큰 줄은 몰랐어요.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경아가 열쇠를 잃어버려서 온 식구가 집을 못 들어간 거예요. 제가 어떻게 기어 올라가서 창문을 열고 문을 땄는데, 아마 그때서부터 식구들이 저한테 반한 것 같아요.


리: 그걸로 인정받았군요!


도정한: 예… 제가 도둑으로 인정받았어요ㅋㅋㅋㅋ

어지간히 쫓아다닌 듯하다(…)

리: 그럼 결혼하고 나서 여기를 창업하신 건데… 창업할 때 얼마가 들었습니까. 이게 그냥 일반 맥줏집도 아니고 양조장 만들면 돈이 좀 들지 않아요?


도정한: 네, 금액을 정확히 알려드릴 순 없지만… 제가 10년 동안 모았던 MS 주식을 다 팔았어요. 많이 억울했어요. 팔 때는 39불이었는데 지금은 122불이에요. 으하하하하하하(해탈).


리: 맥주로 창업은 어떻게 하게 된 거예요?


도정한: 옛날부터 크래프트 맥주에 관심이 많았어요. 97년도에 한국에 들어왔을 때도 취미로 홈브루잉을 할 정도였죠. 그러다 2012년도에 제가 친구하고 강남구청역에 수제 맥주를 파는 바를 차렸어요. 그때 사람들이 수제 맥주를 마시면서 놀라워하는 얼굴, 웃는 얼굴을 봤는데, 그때, ‘아, 이게 내 맥주라면 얼마나 뿌듯할까’ 싶더라고요. 그때 이게 사업이 되겠구나 생각했고, 본격적인 스터디를 시작했죠.


리: 좋은 직장을 때려 치는데 걱정되거나 두렵거나 하진 않았나요?


도정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저는 자신 있었어요. 이 사업이 잘될 거라고… 다른 나라의 사례들도 많이 찾아보고, 손님들이 수제 맥주를 마실 때 반응도 좋았고… 한편으론, 이전에 잘나갔으니까, 모두 잃더라도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리: 그런데 반대로 사람들이 크래프트 맥주에 익숙하지 않았잖아요. 이미 잘 알려진 시장에 들어가는 건 쉬운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시장에 들어간다는 게 좀 위험하지 않았나요?


도정한: 그래도 선도자의 우위가 있으니까, 브랜드만 잘 키울 수 있으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걱정했던 부분은 삼성, 신세계, CJ와 같은 대기업이 시장에 들어오지 않을까… 그러려면 확실한 니치 마켓, 우리만의 엣지를 만들어야 한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프리미엄 수제 맥주를 만들게 된 거죠. MS에서 배운 첫 번째가, 제품이 좋으면 아무리 시장 상황이 안 좋아도 사람들이 원한다는 거예요. 좋은 맥주를 만들려고 하니, 좋은 재료를 써야 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프리미엄으로 가게 됐죠.


리: 그럴수록 제조비가 올라가는 문제가 있지 않나요?


도정한: 그렇죠. 그런데 프리미엄을 떨어뜨리는 건 쉬워도, 저가 제품을 프리미엄으로 구축하는 건 힘들잖아요. 그래서 나중에 좀 저렴한 걸 만들더라도, 처음에는 재료부터 가장 좋은 걸로 사용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양조장에서(…)

빡센 한국의 맥주 시장, 철학과 고집으로 일어서다


리: 그래서 막상 시작해보니 어떻던가요?


도정한: 제 예상과 전혀 다른 부분에서 힘이 들었어요. 식약처나 국세청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제일 처음 스타우트 맥주를 만들었을 때, 대부분의 흑맥주는 귀리를 넣어야 넘어갈 때 바디감도 느껴지고 맛있거든요? 그런데 귀리를 넣는 게 불법인 거예요. 또 한번은 커피를 넣으면 안 된다고 해서, 비슷한 풍미를 위한 7가지의 재료를 섞어서 최적의 비율을 발견했죠.


리: 와아아아…………. 양조 사업 진짜 빡세네요.


도정한: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사실 이해 안 되는 부분도 많았어요.


리: 양조장을 만들고 공급망은 어떻게 뚫었어요? 그게 제일 빡세지 않나요?


도정한: 처음부터 샘플 병을 가지고 도매사들을 돌며, “사장님, 이거 우리 새로 나온 소규모 맥주인데요…” 하면서 명함을 열심히 뿌렸죠. 싹싹 빌어도 “야! 나가!” 하는 분들도 있었고… 당시에 주류면허 허가 센터가 마포에 있었어요. 서류 제출하고 차 안에서 김밥 먹는데, ‘아,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알아주는 회사에서 비싼 음식만 먹으며 지냈는데, 지금은 참치김밥도 아니고 일반 김밥으로 차 안에서 해결하는구나…’ 싶더라고요.

이랬다고 한다

리: 처음 펍에 맥주를 공급했을 때 평은 어땠나요?


도정한: 처음에는 흑맥주, 밀맥주,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영국식 정통 에일, 이렇게 3종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고객들 반응이 썩 좋진 않더라고요. 이후로 수십 차례의 레시피 수정을 통해 지금처럼 좋은 반응을 얻게 됐어요.


리: 시작부터 평이 안 좋았는데 용케도 안 망했군요(…)


도정한: 나중에 작은 펍 사이에 이런 소문이 났어요. 얘네들은 ‘일관성’이 있다… 그때는 일관성 있게 양조하는 곳이 없었거든요. 맥주를 빨리 내보내야 해서, 준비가 덜 된 맥주를 내보내고 막… 그런데 저는 고집이 세서 준비가 안 됐으면 내보내지 말자고 했어요. 그렇게 신뢰를 얻게 된 거죠.


리: 그래도 영업 뚫는 게 쉽진 않았을 텐데… 어떤 계기라 할 게 있다면?


도정한: 1년 뒤에 내놓은 ‘슬로우 IPA’ 맥주가 정말 맛있었어요. 시장에 제대로 먹혔죠. 사실 IPA가 한국인에게는 제일 대중적인 크래프트 맥주잖아요. 심플하고 쉽게 마실 수 있는 맥주를 내놓고 싶었어요.

출처: 우리집 비어
이 친구가 대박을 냈다

리: 이건 딱 된다 했던 순간이 언제였어요? 그런 확신이 오는 순간이 있었나요?


도정한: 우리 맥주를 마시는 분 중 여성분들의 비중이 확 늘었을 때? 아무래도 여성분이 남성분들에 비해 술을 취하려고 마시기보다는 맛으로 마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때 이거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좀 했어요.



오직 한국에서 맥주를 만들고자 한 장인정신


리: 가게는 왜 여기에 열었어요? 일단 위치가 아무도 모르는 위치잖아요?


도정한: 사람들이 찾아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우리의 맥주를 믿은 거죠. 맛이야 이미 우리 맥주가 전국 몇백 군데에 들어가 있었고, ‘한국 최고의 크래프트 양조장’으로 3년 연속 수상도 했어요. 정 안 되면 여기 뒤편에 MS가 있으니까 그 사람들이라도 오겠거니 했죠. 그렇게 벌써 2년이 넘었네요. ㅋㅋㅋ


리: 유통라인이 뚫렸으니 편히 돈 벌 수 있잖아요. 왜 굳이 술집을…


도정한: 우리가 마케팅할 공간이 필요해서요. 저 원래 술집은 하기 싫었는데… 친구들이 막 밤 11시에 전화 와서 “야, 자리 있어?” 이러면 피곤하니까… 그래도 마케팅을 위해서 한 거죠. 근데 생각보다 장사가 너무 잘 돼서(…) 올해 새로 낼 지점들도 준비하고 있어요. 분위기도 좋고, 맥주도 좋고, 특히 곁들이는 음식도 정말 좋아요.

출처: HMG 저널의 브런치
딱 봐도 이쁘게 생겼다

리: 반대로 여쭤보고 싶은 게, 미국에 인맥이 꽤 있잖아요? 맥주를 미국에서 생산해서 들여올 생각은 왜 안 하셨어요?


도정한: 뭔가 한국 맥주는 한국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리: 뭔가 쓸데없는 자존심이 좀 세군요.


도정한: 네… 쓸데없었어요… 으하하하하, 아니 농담이고요. 그런데 제가 한글을 잘 못 써요. 예전에 페이스북에 영문을 먼저 쓰고, 그 아래에 한글을 쓰니까, 누군가 뭐라고 하더라고요. 여긴 한국인데 영어를 먼저 쓴다고… 솔직히 트집 잡는다고 생각했지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선보이려면 우선 한국에서 맥주를 만들고, 나중에 수출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한국적인 요소를 활용하려는 욕심도 있고요. 김치 유산균, 깻잎, 곶감 등등… 핸드앤몰트 탭룸 매장도 한옥을 개조해서 만들었어요.


리: 한국이 뭐가 마음에 드세요?


도정한: 한국이요? 처음에 왔을 때… 그 에너지… 에너지를 느껴요. 그냥 걸어 다니면서 느끼는 게 에너지였어요. 또 제 와이프도 있고, 딸도 있고, 우리 회사, 우리 식구들… 벌써 30명이 넘었네요.



Give a shit: 맥주와 핸드앤몰트에 미친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삶


리: 최근에 난리 난 ‘소원 페일 에일’은 어떻게 만들게 되신 거예요?


도정한: 부친께서 실향민이신데, 예전부터 고향에 대해, 북한에 대해 많이 말씀해주셨어요. 저희 할머니가 평양에서 제일 큰 냉면집을 하셨거든요. 그때는 굉장히 부유했다고 들었는데, 아버지를 데리고 남한으로 피난 오시면서 모든 걸 잃고, 동대문에서 양복가게를 시작하셨대요. 그런 옛날 얘기들을 들으면서 ‘북한의 홉을 직접 가져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5.24 대북조치’로 물자교역이 전면적으로 금지된 상황이라…

출처: 핸드앤몰트 인스타그램
맥주가 가진 ‘의미’ 때문에 양조했다는 한정판 맥주. 해서 이익은 없다고 한다(…)

리: 물이라도 가져오자!


도정한: 네. 그래서 물을 가져오자! 어떻게 가져오냐! 직접 공수할 수 없으니, 중국을 통해 백두산 물을 가져오자! 해서 들여오게 됐어요.


리: 미친 짓을 정말 좋아하시는군요.


도정한: 그게 ‘핸드앤몰트’ 그 자체인 것 같아요. 여태까지 남들이 듣도 보도 못한 혁신적인, 미쳤다고 할 일들을 해왔으니까… 백두산 물을 가져오는 것도 그렇고, 김치 유산균으로 맥주를 발효시킨 것도 그렇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을 해보고 싶어요. 맥아부터 모든 재료를 한국산으로만 만들어 보는 거죠.


리: 뭔가 멋있는 걸 좋아하는 건가요, 명분 있는 것을 좋아하는 건가요?


도정한: 그냥 해보고 싶은 거요. 더 중요한 건, 우리 식구들도 재미있는 걸 해야죠, 맨날 똑같은 것만 만들면 직원들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깻잎 한잔’도 제가 만든 게 아니에요. 직원들이랑 삼겹살 먹으면서 누가 ‘홉 대신에 이걸(깻잎) 쓰면 어떨까?’ 하기에 ‘괜찮겠다! 이거 한 번 만들어봐’, 그래서 만들었는데 성공적이었죠. 애들도 좋아하고.


리: 직원들 뽑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나요?


도정한: 제가 가장 많이 듣는 칭찬이 ‘너 인복 있다’에요. 회사에 정말 고학력자가 많아요. 그걸 보고 뽑은 건 절대 아닌데 어떻게 이런 능력 있는 친구들이 저랑 같이 일할까? 종종 생각해요. 영어로 해도 될까요? Give a shit!


리: 예?


도정한: You did a give a shit. 번역하기 조금 힘들 수 있는데… 어, 삶 자체에 얼만큼의 열정을 가졌는지가 중요했어요. 열정을 넘어 진짜 뭔가에 제대로 꽂힌! 예를 들자면 맥주 양조의 70%는 청소에요. 20%가 양조, 10%가 기계 유지보수죠. 그 이야기를 면접 자리에서 했는데, 갑자기 철물점에 갈 일이 생긴 거예요. 면접자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고 다녀왔는데, 칫솔을 또 어디서 찾았는지 우리 발효 탱크 밑을 닦고 있더라고요.

이런 인간이 실제로 있었다니…

리: 우와아아아!


도정한: 합격, 내일부터 출근! 그런 게 Give a shit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핸드앤몰트를 만들어간답니다.


리: 크래프트 맥주를 시작해서 첫 목표였던 ‘사람들이 이걸 마시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것까진 이루신 것 같은데, 그다음 스텝은 어떻게 되시나요?


도정한: 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훌륭한’ 맥주를 더 ‘저렴한’ 가격으로 마시게 하고 싶다?


리: 가격 내리면 이익이 줄어들잖아요.


도정한: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싶은 거죠. 규모가 커지면 더 저렴하게 유통할 수 있고, 팔 수 있으니까… 나아가서는 한국의 수제 맥주를 해외 시장에 수출하고 싶어요. 이미 우리 핸드앤몰트뿐 아니라 한국의 수제 맥주 중 세계가 놀랄 만한 곳들이 많아요. 그런 부분에 조금이라도 일조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이건 가장 최근 사진. 백두산 천지에 올라가서 찍은 한 컷이라며 직접 보내주었다. (활짝)

※ 해당 기사는 핸드앤몰트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