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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박탈: 버닝썬 사건의 본질

일상의 침탈과 남성 카르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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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침탈

클럽 버닝썬 사건의 본질은 ‘일상의 침탈’ 이라 할 수 있다. 클럽은 현대 사회에서 유의미하게 많은 사람들이 취미 또는 유희를 즐기러 자주 방문하는 공간이고, 때문에 이 공간을 방문하지 않는 사람이 만만찮게 많다고 하더라도 아예 일상에서 분리된 특수한 공간으로 정의할 수는 없다. 곱창이 느끼하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렇다고 곱창이 특수기호식품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버닝썬 사건은 그 피해자가 여성이었다는 점, 불법적인 약물이 동원되었다는 점, 불법 영상 유출로 인한 추가적인 가해가 벌어졌다는 점 등을 생각해 볼 때 해당 사건을 접한 여성들의 일상 범위를 심각하게 축소시키는 파급효과를 낳는다.


범죄의 대상이 불특정이었기 때문에 누가 잠재적인 피해자가 될지, 누가 가해자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광범위하고 새로운 형태의 억압이다.


때문에 버닝썬 사건은 권력층을 직접 접할 일이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더 강력하게 소구될 수밖에 없는 미시적 요인을 지닌다.


이는 노래방 건물 화장실이라는 지극히 평범했던 공간에서 끔찍한 범죄로 여성이 희생당했던 강남역 살인사건과 동일한 종류의 공포를 광범위하게 퍼뜨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게 못마땅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사건 간의 경중 문제를 논하기 시작한다.



경중의 논리?


그러나 미시적 소구력과 별개로 클럽 버닝썬 사건, 김학의 전 차관의 집단 성폭행 사건과 고 장자연 씨의 사망 사건은 동일한 본질을 지닌다는 점에서 이러한 ‘경중의 논리’ 는 힘을 잃는다.


이 사건들은 기본적으로 여성이 남성에게 성범죄를 당했으며 동시에 범죄를 저지르거나 방조한 남성이 자신과 유착된 권력 관계를 활용하여 재차 사건을 파묻으려 했다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때문에 결국 동일한 본질을 지닌 이 세 사건은 그 중 특정한 무엇이 우선 순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당위가 없다. 오히려 경중을 따지는 사람들의 말과 반대로 이러한 현상은 사건들의 뿌리가 모두 같기 때문에 한 건이라도 제대로 조져야 다른 건이 그나마 빛을 볼 수 있다.


물론 경중을 따지는 사람들은 해당 사건마다 누가 연루되었는지를 더 중요시하게 볼 것이다. 허나 이것이 중요한가?


성범죄 사건의 해결에 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결국 범죄로 인해 훼손된 피해자의 인권과 일상의 박탈을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이지 그 사건에 어떤 고위층이 연관되어 있는지, 그 고위층이 누구 사람이었으며 누구 정권에서 녹을 먹었는지가 아니다.


사건의 경중을 따지며 이것이 저것을 묻네 아니네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결국 사건의 본질은 모두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남성 카르텔

출처MBC

비슷하게 본질을 회피하려는 양상은 남성 카르텔의 부정에서 동일하게 드러난다. 남성 카르텔 용어의 본질은 결국 사회 기층에서 공공연하게 유지되는 공개적 외모 품평과 불법 영상 유출이 그 위에서 힘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처벌조차 힘들다는 더러운 사회의 이면을 곱씹는 언어이지 남성들이 연대저항을 거부할 명분을 제공하는 혐오 표현과는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버닝썬 사건의 최초 제보자가 남성이었으며 남초 커뮤에서도 비난 여론이 높다는 미시적인 사실들이 있다고 한들 그것들이 결국 최근에 수면 위로 드러나거나 다시 부상한 범죄의 행위자들이 모두 남성이었다는 사실을 지울 수는 없다.


시민이라면 당연히 범죄 행위에 연대하여 저항해야 할 일이 먼저인 것이지 남성 카르텔이라는 단어를 혐오표현으로 규정짓고 이를 반박하는 것이 정상인가?


현대 시민의식의 기본은 반인권적 범죄에 연령과 젠더를 초월하여 저항하는 그 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거세게 항의하는 다른 한 쪽의 말꼬투리를 잡는 미시적 공격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남성 카르텔이라는 언어는 그 카르텔을 깨기 위해 남성들이 연대하라는 것이고 그 제반에는 유출 영상의 공유 중지 등 다양한 여성 혐오의 중단이 포함되지 않으면 진정한 연대가 없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이 문제를 손쉽게 해결하는 법은 간단하다. 거리에 나오면 경찰의 진압봉과 물대포가 날아들고 권력자들이 자기 입맛대로 구속과 처벌을 남발하던 고작 삼 년 전 시절로 되돌아가면 된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그냥 그 정권 한 100년은 유지하면서 살 걸 그랬나 보다. 아니 어쩌면 그 정권보다 더욱 비민주적이고 권위적인 그 무언가를 바라고 있지는 않은지 가슴에 손이나 얹고 생각들 해 보시라.


원문: 김현성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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