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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안국 유치장에 갇혔습니다 2

조회수 2019. 3. 21. 1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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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과정에서 중국 공안국 파출소 유치장에 억류되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차 북미 정상회담 취재 과정에서 핑샹 공안국 파출소 유치장에 억류된 경험을 글로 적어 소개하는 글입니다. 굉장히 특수한 경험이라 기록으로 남깁니다.


  • 일시 : 3.1 15:30 ~ 3.2 19:00
  • 장소 : 중국 광시(廣西) 장족자치구 핑샹(憑祥) 공안 파출소

4시 반 그가 왔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모든 조사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그가 나타났다. 핑샹 공안국의 가장 높은 사람인 '주 경관'이었다. 부하들은 그를 주 경관이라 불렀고, 해병대 전우회같이 생긴 단단한 인상의 그는 눈빛부터가 후덜덜했다. 그는 우리를 보더니 나를 먼저 지목해 조사실로 데려갔다.


조사실을 보니 비디오카메라가 설치돼 있었고, 사진을 찍는 중간 간부 한 명도 있었다. 또 참관인으로 우리를 감시하던 중간 간부도 내 옆자리에 자리를 마련하고 앉아 있었다. 


조사는 이전 조사와 달리 굉장히 위압적으로 진행됐다. 내가 영혜와 입을 맞추기 쉽게 통역으로 영혜를 불러 달라고 했으나 그냥 알아들을 수 있도록 진행할 테니 괜찮다는 답만 돌아왔다.



조사 내용은 이전과 같았고, 주로 내가 뭔가 국가 안보에 위해를 가하려 했는지를 자백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누가 당신 여기에 보냈냐?' '서울 본부에서 가라고 한 것인가?' '왜 두 번이나 이곳에 왔나?', '취재 법규를 위반한 사실을 아는가?' 등등 교묘하게 나를 함정에 빠뜨릴 질문들이 많았다. 


밤새 조사를 받은 데다가 약간 졸리기까지 했던 나는 냉수를 달라고 한 뒤 정신을 좀 차리고 요리조리 함정을 피해 조사를 받았다.



주 경관은 나에게 "당신은 매우 중대한 기밀을 취재하려 했다"면서 "당신은 이 점을 이해했는가?"라고 물었다. 그의 질문에 "나는 단지 김정은이 진짜 가는지 또 현지 분위기가 어떤지 보러 왔을 뿐이다"라고 또박또박 대답을 반복했다.


그는 마지막에 "이 일을 복잡하게 끌고 가서 문제 삼을 수 있지만, 당신이 김정은이 간 뒤 여기서 나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나는 이 일을 문제 삼지 않겠다"고 딜을 해 왔다. 나도 이 정도면 받아들일만하다고 판단해 취재를 포기하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조사가 끝나자 이 주 경관이라는 인사는 나에게 A4 용지로 프린트된 '외신기자 취재 법령'을 한 부 건넸다. 물론 이 장면은 다른 공안이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기록하고 있었다.


우리 둘이 악수하는 장면도 찍었고, 옆에서 조서를 작성하던 경관, 참관인까지 내 주위에 서서 방긋 웃는 표정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나는 무슨 동물원에 갇힌 코끼리 같았지만 정당성의 우위와 영혜의 안위를 결정할 그들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조사가 다 끝난 뒤에도 주 경관은 자신이 관용을 베푼 것에 대해 일장 연설을 했고, 나에게 훈계조로 취재 주의사항을 읊어댔다. 내


가 인상을 쓰면 그는 전가의 보도처럼 "이곳은 변경지역이다. 작은 일도 큰일이 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놔 내 표정을 방긋 웃게 돌려놓았다. 나에 대한 조사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는지 영혜에 대한 조사는 매우 간단하게 끝이 났다.

여유로운 감방생활


모든 조사가 끝나자 이제 처분대로 기다려야 하는 인내의 시간이 다가왔다. 주 경관은 우리가 필요한 것은 뭐든지 가져다주라는 말을 남기고, 공안국을 떠났다. 


나는 주 경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영혜가 누울 새 간이침대와 새 이불을 달라고 했다. 그들은 이곳의 나폴레옹과 같은 주 경관의 어명이 있어선지 이전과 달리 빠릿빠릿하게 나무로 짠 간이침대와 새 이불을 구해왔다.


긴장이 좀 풀렸는지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죽을 좀 가져다 달라고 했다. 물론 해삼이 들어 있는 죽을 좀 달라고 했다. 그들은 군말 없이 내 부탁을 들어줬다. 


죽을 먹은 우리는 새벽 6시 30분이 돼서야 간이침대에 몸을 뉘었다. 새 침대는 콘크리트 침상에 비하면 매우 과학적으로 만든 에이스 침대 같았다.


잠을 자고 일어난 시각은 다음 날 오전 10시께 아침을 먹겠느냐고 한 경관이 우리에게 물었다. 그때 주 경관이 우리를 찾아왔다. 그는 밤새 불편한 점이 없는지 필요한 것이 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아침으로 죽 말고 요우탸오와 떠우장이 먹고 싶다고 말했고, 주 경관은 곧바로 부하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잠시 뒤 한 경관은 요우탸오와 떠우장에 만두까지 챙겨서 아침을 가져왔다.


약간 재밌기도 하고, 아마도 내가 이들에게 큰 실적이 될 거 같기도 해서 나는 어디까지 해주나 시험을 해봤다. 아침을 먹은 뒤 우리를 감시하던 한 여경에게 혹시 여기에 과자가 있냐고 물었다. 


그 여경은 공안국 앞에 마트가 있다고 답했고, 그럼 좀 사다 줄 수 있겠느냐고 재차 물었다. 그러자 여경은 자기 부하를 시켜 과자를 좀 사 왔다.


휴대전화를 조금씩 쓸 수 있는 것도 이때부터였다. 나는 일단 회사와 록수에게 내 상황을 알렸고, 대략 오후 3, 4시께 풀려날 것이라고 메시지를 넣었다. 그리고 나자 정신이 좀 온전해졌고 머릿속도 맑아졌다. 그제야 이곳이 어딘지 궁금해졌다.


우리를 감시하는 경관은 2~3시간 텀으로 바뀌었는데 그중 인상이 좋은 한 경관에게 출장 때 가져간 휴대용 혈압계를 보여주며 혈압을 재주겠다고 접근해 이곳의 위치가 철도와 가깝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런 뒤 다시 점심시간이 찾아왔고, 나는 "이 지역 특산 요리를 먹고 싶다"고 요구했다. 공안들은 그렇다면 거위로 만든 차슈인 차샤오어(叉??)를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점심을 먹고 영혜와 나는 새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를 했다. 그러면서 한쪽 귀는 철도 쪽으로 안테나를 세워뒀다. 김정은 위원장의 특별열차가 지나갈 때는 상하행선 모두 열차가 통제되며, 기차 소리가 나면 틀림없이 북한 특별열차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점퍼 주머니에 숨기고 이불을 말아 덮은 뒤 감시 공안의 반대 방향으로 돌아누웠다. 그리고 2시 30분께 기차 소리를 들었다.


곧바로 베이징의 선배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이 내용은 바로 속보 기사로 처리가 됐다. 그가 갔다는 것과 출장 와서 뭐라도 일을 했다는 사실에 나는 마음의 평안을 다시 찾았다.



또다시 위기를 맞은 영혜


환경개선으로 잘 버텨오던 영혜가 오후 4시가 넘자 다시 무척 힘들어했다. 낯선 환경에 몸까지 안 좋으니 컨디션이 확 떨어졌던 모양이다. 영혜는 나한테 "지금 정신이 무너질 거 같아요"라는 이상스러운 말을 하고 고개를 책상에 박고 잠을 청했다.


답답한 공간에 너무 오래 있어 생기는 급성 공황장애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영혜는 불안해했다. 이미 김정은 특별열차도 지나갔겠다 나는 승부수를 띄웠다. 우리를 감시하던 여경에게,


"영혜가 너무 걱정돼 더는 못 기다리겠다. 열차가 지난 지 2시간이 넘었는데 우릴 안 보내주는 것은 약속 위반이다. 그리고 외신기자를 증거 없이 하루 이상 구금하는 것은 규정 위반이다. 대사관 통해 문제를 제기하겠다"


라고 하자 그는 상사에게 이 내용을 그대로 보고했다. 잠시 뒤 넘버 2인 여경이 우리를 찾아왔고 우리는 진피 보이차와 동남아 과일이 한상 차려진 다과상에 초대를 받았다. 넓은 공간에서 차와 과일을 마시고 먹으면서 영혜는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여유를 찾은 것은 공안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우리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특별만찬을 준비했다. 식탁에는 양광(兩廣·광둥과 광시) 음식이 한상 떡하니 차려져 있었다. 


여경은 식사를 마치면 난닝 역까지 가는 차를 공수해 주겠다고 친절까지 베풀었다.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영혜도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표정이 밝게 돌아왔다.

복기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유치장에 누워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공을 들여 세운 취재 계획을 내 즉흥적인 판단이 망쳤다는 것이 이번에 제일 아쉬운 부분이었다. 


다만, 이미 공안이 철저한 검문검색을 한 것과 영혜가 지난번 왔을 때 호텔 복도에서 일본 매체와 접촉한 정황까지 알고 있었던 것, 또 지난번 방문 때 우리가 숙소를 3곳이나 돌았던 것도 그들이 이미 파악한 점 등으로 미뤄 영혜가 혼자 핑샹에 왔어도 붙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게다가 나 없이 영혜 혼자 붙잡혔다고 생각하면 상상만으로 끔찍하다. 영혜는 틀림없이 이성을 잃고 무너졌을 것이다. 거기에 우리가 풀려나기 한두 시간 전에는 주요 기차역에 숨어 있던 외신 기자들이 공안에 발각돼 붙잡혔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왔다.


결론적으로 내가 난닝에 남았어도 나는 나대로 난닝에서 조사를 받고, 영혜는 영혜대로 핑샹에서 조사를 받아 더 상황이 악화했을 것으로 보인다. 영혜는 이번에 체력도 부족한 상태에서 큰일을 겪어 정말 힘들어했다. 


내가 좀만 더 영혜를 믿고 혼자 보내거나 나와 따로 차를 타고 핑샹에 진입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 물론 어디까지나 가정이니 확신할 수는 없다.


처음엔 원망스러웠던 핑샹의 공안들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들도 김정은의 출현이 주는 충격과 근무 부담이 꽤 컸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우리가 필요한 것을 공수해줬던 것은 감사하다. 다만 과격한 업무 집행과 밤샘 조사는 다시 생각해도 조금 과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은 '운이 좋았다'라는 생각이 든다. 결과야 어찌 됐든 이번 사건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위반 사항이 포함됐다.


지난해 일본의 한 광산 회사 연구원이 산둥의 광산 개발 합자를 위해 지질 환경 조사를 나왔다가 중국의 군사시설을 촬영한 것으로 의심이 된다는 혐의를 받아 실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그들의 면을 세워주고 탈출한 것은 잘한 선택 같았다.


여담으로 김정은의 담배 피우는 장면을 찍은 TBS의 카메라 스트링어는 베이징 공안국의 조사를 받느라 3월 1일 하루 종일 연락이 두절됐다. 2일 사무실에 출근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회사는 중국 전역에 배치한 특파원들을 철수시켰다. 그 과정에서 창사에 가있던 선양 특파원 후배도 공안에 붙들려 강제로 호텔을 옮겨야 했다. 당분간 타지 취재는 주의를 더 기울이고 영혜와는 동행보다는 영혜를 믿고 별도로 움직여야 할 듯하다.


핑샹 공안국 앞에서 택시를 타고 떠나오면서 우리를 마중하는 공안국 사람들과 악수를 나눴다. 그들은 그들의 일을 우리는 우리의 일을 했을 뿐이니 억하심정 같은 것은 남지 않았다. 


그리고 3.1절에 이런 고초를 겪어선지 정말로 그 엄정한 일제 치하에 더 엄혹한 환경에서 이런 일을 겪었을 순국선열을 생각하니 다시 한번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가 아무리 이성적인 척 일본을 무작정 미워하지 말자고 외쳐봐야 그 당시 피눈물을 흘렸을 독립투사에게는 욕지거리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그분들 덕분 아니겠나. 물론 나는 일본 문화를 사랑하고, 그들의 꼼꼼함과 정갈함을 좋아한다. 


다만, 일본이 진정으로 사과를 하지 않는 이상, 최소한 독일만큼이라도 성의를 보이지 않는 이상 이 분야에서만큼은 그들을 향한 미움을 거두긴 힘들 것 같다.


원문: 돼지터리언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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