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제로 배우는 미세먼지 대응법

조회수 2019. 3. 12. 14: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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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폐암 환자의 40%는 중국인

요즘 최악의 미세먼지가 이어지며 중국에 대한 성토 목소리가 높습니다. 각종 분석에 따르면 평상시의 미세먼지에는 국내 영향이 크지만 최근과 같은 심각한 미세먼지는 중국의 영향이 크니 국내 미세먼지를 탓할 것이 아니라 중국에 엄중하게 항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정의의 측면에서나, 원인의 측면에서나 타당항 지적이지만 저는 그런 조치의 실효성에 조금 의문이 들었습니다. 약학 전공자라서 저는 이 논란을 보며 항암제가 떠올랐거든요.



암세포와의 찜질방비 내기


고등학교 즈음의 일입니다. 당시에 주말이면 친구들과 찜질방에 놀러 가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그날은 조금 특별했습니다. 친구 하나가 찜질방비를 내는 내기를 하나 제안했거든요. 내기는 무척 단순했습니다. 그 찜질방에서 최고의 온도를 자랑하던 ‘불한증막’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버티는 사람 돈을 나머지가 나눠 내자는 거였죠.


폭염의 도시 대구에서 단련된 열기 내성을 믿고 다들 호기롭게 도전을 시작했는데, 저와 마지막까지 버티던 친구는 거의 실신할 정도로 열이 올라서 식혜값이 찜질방비보다 더 드는 불행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대체 왜 이런 무식한 얘기를 했나 싶으실 수도 있지만, 사실 항암제의 근본적인 접근 방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더위에 대한 저항성이 사람마다 다르기에 찜질방에서 버티기 내기가 성립하듯, 암세포와 일반 세포도 항암제에 대한 저항성이 다르기 때문에 결국은 암이 먼저 고꾸러집니다.


초기의 항암제들은 ‘세포분열을 정상 세포보다 빠르게 한다’는 암세포의 특성을 이용해서 일종의 찜질방비 내기를 수행했습니다. 정상 세포도 덥긴 하지만 암세포는 쪄죽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죠. 이런 방식이다 보니 부작용도 많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암세포만큼은 아니지만 세포분열을 활발히 하는 소화관 점막이나 구강상피, 후각 상피, 모근 같은 곳도 항암제의 영향을 많이 받아버렸거든요.

어느 찜질방의 불한증막

그래서 항암치료의 상징과 같은 극심한 탈모가 생기고, 속 쓰림과 입안이 허는 증상이 생겨 식사를 잘하지 못하는 불편을 겪게 됩니다. 후각이 떨어져서 식사의 즐거움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도 이 때문이죠. 이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암세포에만 작용할 수 있는 표적 항암제가 개발됐고, 최근에 각광 받는 면역항암제도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근데 이게 대체 미세먼지랑 무슨 관련이 있냐고요?



경제성장 부작용으로서의 미세먼지


이제는 어느 정도 알려진 상식이지만, 한국의 미세먼지 절대량은 과거에 비하면 낮은 상태입니다. 심지어 지속적으로 줄어왔죠. 여기까지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을 토대로 ‘예전보다 좋아졌는데 바보 같은 불평을 한다’는 해석을 하면, 본인 때는 애 낳고 오후에 밭 갈러 갔다는 퇴비로도 못 쓸 소리를 내뱉는 인간들과 그리 다를 바가 없습니다.


미세먼지의 객관적 수치는 줄었지만 우리의 건강에 대한 기준은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높아졌으니 당연히 지금의 상황이 불만스러운 것이죠. ‘웰빙’이라는 낡은 말이 등장한 것이 15년 전인데 1990년대보단 공기 질이 좋아졌다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과거 한국인들이 그 극심한 미세먼지를 견뎠던 것은 미세먼지 자체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것도 일조를 했겠지만, 거기에 신경을 쓸 정도로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지 못했던 탓이 더 큽니다. ‘워라밸’을 위해서 더 높은 임금을 주는 일자리를 마다하는 젊은이들을 이상하게 여기는 이들과 그들의 부모가 주류이던 사회에서는 삶의 질보단 당장의 생활 영위와 내 집 마련 등의 훨씬 더 중요한 문제들이 많았으니까요.


그렇기에 오염물질 정화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작업환경에서 일하고, 그런 공장들이 늘어나는 것에도 반대하질 않았던 겁니다. 경제성장이 우선이었고 미세먼지와 같은 사소한 부작용은 견딜법한 일이었거든요. 요즈음 비난의 대상이 되는 중국도 딱 그 상태입니다. 덕분에 한국인들은 원치 않는 찜질방 내기에 동참한 셈이 됐습니다. 경제발전은 중국이 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은 한국인들도 같이 부담하게 된 것입니다.

출처: 그린피스
미세먼지로 덮인 자금성.

그러므로 이런 상황을 야기한 중국에 항의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우리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실은 그 부작용을 가장 많이 견디는 것이 바로 중국인들이라는 점입니다. 항암제에 똑같이 노출되는 암세포와 정상 세포처럼, 미세먼지에는 한국인만이 아니라 중국인들도 노출되거든요.



전 세계 폐암 환자의 40%는 중국인


현재 중국에선 매년 80만 명의 신규 폐암 환자가 발생합니다. 막대한 인구를 감안하더라도 말도 안 되게 높은 수치고, 숫자로 따져보면 전 세계 폐암 환자의 40%에 달하는 양입니다.


일반적으로 폐암의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꼽히는 흡연으로만 보면 특별할 것이 없지만, 중국의 경우는 끔찍한 수준의 대기오염이 높은 폐암 유병률의 원인이라는 추정이 많습니다. 바다 건너 우리도 이렇게 괴로운데, 미세먼지 원산지인 중국은 정말 참혹한 수준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중국 정부는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는 것일까요?


사실 중국 정부는 푸른 하늘을 되찾는 법을 이미 압니다. 베이징 올림픽 기간에 차량 운행을 정지하고,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엄청나게 배출되는 거리 노점을 단속하고, 중금속이 섞인 미세먼지를 배출하는 공장을 세웠더니 베이징에도 푸른 하늘이 돌아왔거든요.

강력한 미세먼지 저감조치 전후의 중국 하늘

그렇지만 세계의 공장이 언제까지 멈춰 있을 수는 없었기에, 올림픽이 끝나자 중국의 하늘은 다시 황색으로 돌아왔습니다. 방법은 알지만 그 방법을 택할 수가 없으니 ‘인공강우’ 같은 꼼수를 써서 만회를 해보려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러니 중국 내에서도 대기오염에 대한 비판의식이 크지만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별로 선택지가 없습니다.


국민들이 강압적인 정부 통제를 감내하는 유일한 이유가 경제발전인데, 그걸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아직 중국인의 절대다수는 가난한 상태이니, 과거 한국인들과 동일하게 건강 문제보다도 경제적 풍요로움을 더 우선시합니다. 여러 층위에서 환경과 건강보다는 경제발전을 택한 셈입니다.

중국의 초미세먼지(PM2.5) 농도와 폐암의 상관관계

자국민이 죽어나가도 이런데 이웃나라에서 공기가 나쁘다는 불평을 하는 것이 씨알이나 먹힐까요? 중국에게 외교적 비판을 가하는 것은 기분은 좋을지 몰라도 실질적인 문제 해결과는 무척이나 거리가 먼 행동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중국인들의 건강에 대한 인식 수준이 올라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기만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마스크 대신할 수 있는 것들


심각한 대기오염의 원인이 중국에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들은 있습니다. 70%가 중국 때문이라는 말을 뒤집으면, 30% 정도는 국내 차원에서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의미도 되니까요. 물론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습니다.


오염에 최대한 덜 노출되기 위해서는 외출을 자제하고, KF94 정도의 차단력을 갖춘 마스크를 외출 시에 착용하는 것이 필요하죠. 차량 운행으로 인한 미세먼지 발생을 줄이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하는 것도 거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건 정부 정책 차원에서의 접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문제지만 ‘경유차’는 미세먼지의 주원인 중 하나입니다. 2014년 환경부의 발표에 따르면 고농도 미세먼지의 11% 정도가 경유차 때문이었죠. 과거 정부의 잘못된 차량 정책으로 인해 경유 자동차에 대한 지원이 강화됐고, 경유차의 증가로 인한 미세먼지는 오롯이 우리에게만 책임이 있게 됐습니다.


그렇기에 이 부분은 국내 단독으로도 충분히 줄일 수 있는 부분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 차량 대수 자체를 줄인다면 차량으로 인한 미세먼지 배출과 미세먼지 비산을 줄일 수 있죠. 현실적으론 어렵겠지만 말입니다.

충남의 석탄화력발전소

문제는 또 있습니다. 천연가스를 이용한 발전은 조금 덜한 편이지만, 석탄 화력발전소는 국내 미세먼지 발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실제로 2018년 3월부터 6월까지 충남에 있는 석탄 화력발전소 2기의 운행을 중단한 결과, 충남지역 초미세먼지(PM2.5)가 평균적으로 6.2%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충남에 있는 석탄화력발전소는 30기. 그중 두 대를 고작 3개월 동안 중단했을 뿐인데 그 정도 수치가 감소한 것입니다. 한국에 존재하는 석탄 화력발전소는 총 61기. 2017년 기준으로 총발전량 중 52.4%가 석탄 화력발전소에 의존하는 상황을 탈피한다면 미세먼지 감축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책 변경들은 별로 환영받지 못합니다. 경유차 감축, 더 나아가 차량 감축은 여러 이권이 복잡하게 얽힌 문제고 석탄발전소를 줄이면 원전 추가 건설이 아닌 이상 전기 생산 단가가 상승하게 되는데 이 역시 부담이 큰 일이니까요.


그렇기에 애꿎은 고등어와 삼겹살이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지목됐고, 몇 년 동안 문제 제기가 있었음에도 크게 바뀐 부분은 없었습니다. 중국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무의미한 외침만 간헐적으로 터져 나왔죠. 자국민이 죽어 나가도 팔짱을 끼고 바라보는 막장 국가에 대한 무의미한 비난을 요청하는 것보단, 우리끼리 할 수 있는 최선이라도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문: Coldtongue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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