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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ㅍㅅㅅ

소설가의 일, 창업가의 일

잡생각은 집어치우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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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건 반칙이다


세상천지에 소설가보다 자기가 하는 일을 글을 통해 멋들어지게 잘 설명할 수 있는 직업이 있을까. 하물며 그 소설가가 김연수(!)라니. 취미생활+배설 활동으로 글을 적는 아마추어의 입장에선, 감탄을 넘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가가 쓰는 ‘소설가의 일’이라니…

그러니까 이건 마치 “화가라는 직업을 그림으로 그려봤어”라고 해맑게 웃는 미켈란젤로를 바라보는 미대 입시학원 2년 차 학생이 느끼는 감정이라고나 할까. 혹은 “자, 방금 발레리나라는 직업을 발레 동작으로 표현해봤는데 어떤가요?”라고 말하며 미소 짓는 강수진 씨를 바라보는 노원구청 주부 발레단 수강생의 느낌과도 비슷하다.


경지에 오른 자의 정말 당해낼 노릇이 없는 실력을 마주하고, 그 터무니 없음에 실소가 나온 경험이 있는 사람은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창업가의 일?


책을 읽고 나니, 도무지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오르는 걸 막을 수가 없다.

스타트업 창업가라는 직업을 어떻게 표현해야 잘 표현했다는 소문이 날까?

작년에 내가 쓴 글에서도 이야기했던, 독일 미술사학자 알로이스 리글이 주창한 쿤스트볼른(KunstWollen)라는 개념을 다시 가지고 오겠다. 독일어로 쿤스트(Kunst)는 예술, 미술이라는 의미고 볼른(Wollen)은 의지, 의도를 표현하는 동사이므로 흔히 ‘예술 의욕’으로 번역한다. 즉 쿤스트볼른은 어떤 예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예술품을 창작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와 충동을 의미한다.

알로이스 리글, 쿤스트볼른

예술 의욕이 온몸을 휘감아 올 때 소설가는 글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화가는 그림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발레리나는 몸과 동작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한다. 집단 종합 예술인 창업의 세계에서 당연히 창업가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해야 한다. 창업가라는 직업은 창업이라는 고통스러운 과정과 그 결과로 나온 서비스를 통해서 가장 정확하게 표현되고 이해할 수 있다.


그 형태가 웹사이트든 앱이든 물건이든 오프라인 매장이든 뭐든지 간에,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던 아이디어를 실체가 있는 무언가로 만들어서 보여주고 들려주고 돈 주고 사고 싶게 만드는(제일 중요하다), 그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창업의 과정만이 스타트업 창업가가 무슨 일을 하는지 보여주는 제일 나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하면 제프 베저스가 쓴 “주주에게 보내는 연례 서한”이 아무리 명문이라 하더라도, 아마존을 직접 써보는 것이 창업가로서의 그의 생각과 철학을 훨씬 더 잘 이해할 방법일 것이고, 일론 머스크 전기를 읽는 것보다 페이팔을 써보고 테슬라를 타보는 게 진정 그를 이해하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말이다.



하기나 해


김연수는 “그것도 모르고 무슨 소설을 쓰나?”라는 말이나, “소설가가 술을 그렇게 못 마셔서야!” 이런 말을 들으면서 소설가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고 토로한다. 위 문장의 ‘소설을 쓰나?’ 자리에 ‘개발을 하나?’나 ‘영업을 하나?’을 넣어 보거나, 두 번째 문장의 ‘소설가’ 대신에 ‘기자’나 ‘사업가’를 넣어보자. 우리가 살면서 수없이 마주했던 무례한 표현으로 바뀌지 않는가?

김연수는 편견과 무지의 소산인 저런 프레임에 빠지는 것을 경고한다. 그가 쓴 아래 문장을 보고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 들었다.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왜 소설은 안 쓰고 소설가가 될 생각을 했을까?

과거 첫 번째 창업의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딱 저랬었다. 창업하려고 하지 않고 창업가가 되려고 했다. 서비스를 고민하고 만드는 것보다 스타트업 대표라는 타이틀에 취해 있는 시간이 더 많았었다. 김연수가 자신을 ‘소설가’라는 명사/프레임/스테레오타입에 넣는 것을 거부하고, ‘소설 쓰는 사람’이라는 동사가 강조된 표현을 쓰는 이유를, 그때도 알았더라면.


김연수는 ‘일단 쓴다 → 쓴 글을 읽고 좌절한다 → 곰곰이 생각한다 → 다시 쓴다’를 반복하는 것이 소설을 쓰는 정공법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 글을 보자마자 에릭 리스의 『린 스타트업』이 생각났다. 얼마 전에 팟캐스트 ‘마스터 오브 스케일(Master of Scale)’에서 들었던 마크 저커버그의 “불완벽은 완벽이다(Imperfect is perfect)” 에피소드도 생각났다.


소설을 쓰려면 일단 문장을 써야 하는 것처럼 창업하려면 일단 뭐라도 만들어야 한다. 머릿속에만 머무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보다, 같이 보면서 피드백을 나눌 수 있는 엉성한 제품이 무조건 낫다. 아무리 멋있게 비웃어도 어설프게 뭔가 하는 것보다 한참 형편없는 거고. 그러니까 잡생각은 집어치우고, 하자.


원문: limyoung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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