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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문제’에는 일종의 착시가 있다

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생존자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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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문제라는 것에는 일종의 착시가 있다. 이 문제가 한 세대 혹은 한 시절의 문제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대개 청년 문제란 취업 문제로 수렴된다. 그렇기에 이 문제는 청년들이 취업을 하고 사회인이 되면서 해소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20대까지는 취업을 미루면서 양질의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사투가 벌어지지만, 어느 시점을 넘어가면 많은 청년이 각자의 자리를 찾아간다.


그 자리라는 게 처음 꿈꾸었던 것만큼 윤택하고 좋은 자리는 아닐지라도 몇 가지 부분들을 절충하며 그들 나름대로의 삶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당장 청년 문제에 가장 중요한 지표로 거론되는 것이 ‘청년실업률’이다. 그런데 청년실업률이 높은 이유에는 청년들이 아직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더 양질의 직장을 위해 취업을 유예하는 현상 역시 큰 영향을 미친다.


사회에는 아직 취업하지 않아도 괜찮은 나이, 무경력이어도 괜찮은 시절이라는 게 있다. 그런데 이 암묵적인 ‘나이대’를 넘어서기 시작하면, 누구라도 서둘러 취직을 하기 시작한다. 어떤 식으로든 경력을 쌓고, 기반을 마련하고, 독립을 준비한다. 문제는 그 시점이 되면 청년 문제라는 게 해소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출처뉴시스

청년 문제는 그 이름만 바꿀 뿐, 고스란히 노동 문제, 저출산 문제, 주거 문제, 여성 문제 등으로 이동한다. 청년 문제가 해소된 것처럼 보이는 자리에는, 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생존자가 남는다. 어쩌면 진짜 문제의 시작은 여기부터이다. 취업을 했지만 대다수 직장이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등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고, 여성들은 경력단절이라는 더 거대한 벽 앞에 서게 된다.


월급은 받지만 주거는 몇십 년간 해결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직장은 장기적으로 안정된 삶을 일구어나갈 기반이 되어주기는커녕 언제 쫓겨나 거리에 나앉을지 알 수 없는 불안의 땅이 된다. 터무니없는 노동강도와 노동시간은 생존을 주는 대신 삶을 빼앗아 버린다. 청년 문제가 지나가고 난 자리에는 삶 전체의 총체적인 문제가 피어오른다.


이런 삶 전체에 대한 관점 없이, 오직 청년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갇힌 이야기만으로는 온전한 해결책이 수립되기 어렵다. 청년 남성과 여성의 갈등이 심화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양질의 직장을 얻기 위한 투쟁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삶 전체에 대한 절망에 그 뿌리를 둔다.


앞으로 펼쳐질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 삶을 희생시키길 요구하는 세상 안에서 온전한 행복을 얻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 소수의 승리자가 되지 않는 한 꿈꾸던 많은 것이 길바닥에 내다 버려질 것을 누구나 예감하기 때문이다. 이는 당장 눈앞에서 누가 욕을 한다든지, 그래서 기분이 나쁘다든지, 모멸감을 느낀다든지 하는 차원에 한정되는 게 아니다. 그보다 훨씬 뿌리 깊게 삶 전체에 스며든 암세포 같은 것에 가깝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은 거의 개개인들에게 맡겨져 있다. 알아서 포기할 건 포기하고, 절충할 건 절충해서,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찾을 것. 혹은 다정한 남자나 착한 여자를 만나서, 서로 이해하고 보듬으며 일과 가정의 양립 문제를 해결할 것. 아니면 고시에 합격하든 전문직이 되든 유튜브로 성공하든 소수의 승리자가 되어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


물론 그런 식으로 개개인의 차원에서 해결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그래서 실제로 ‘소확행’ 관련 산업이라든지 ‘비폭력 대화’ 같은 관계 코칭이라든지, 각종 학원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하지만 이조차도 사회 전체에서 봤을 때는 소수적인 해결책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해결 불가능한 삶의 붕괴로 기울어간다.


결국 우리 모두가 한 배를 탔다는 인식을 끊임없이 재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사회에는 여러 지엽적인 문제들이 있다. 별도로 집중되고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 역시 적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분리되어 보이는 문제들 또한 넓은 차원에서는 이어져 있고, 뿌리 깊게 연관되어 있으며,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인식에 계속해서 도달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이 무너지는 세상을 붙잡을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원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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