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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게 사라져 가는 가게들

조회수 2019. 2. 26. 12:3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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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망해가는 가게들에게

내가 사는 전주에는 나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가게가 한 군데 있다. 굉장한 맛집이라기보다는 싸고 가성비 좋은 갈비탕과 불고기로 유명한 가게다. 그 가게를 오랜만에 가보고 나는 큰 실망을 했다.


가격이 또 올랐기 때문이다. 4년 전 처음 그가게에 갔을 때 6천 원하던 갈비탕이 지금은 9천 원이 되었으니 4년 동안 50% 가격 인상을 한 셈이다. 최근에는 7천 원에서 9천 원으로 한꺼번에 2천 원이나 올렸다. 게다가 왠지 맛도 전만 못한 것 같았다.


4년 전 처음 먹었을 때는 그다지 고급스러운 음식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맛이 있었고 무엇보다 6천 원짜리 점심 특선이라는 이점이 있었다. 이런 갈비탕이라면 매주 먹을 수도 있겠다 싶은 음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격이 50% 오르고 맛이 떨어지자 이젠 아무 특색 없는 집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다시는 이 집을 찾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가게를 나섰다. 가게에 잔뜩 걸린 상장들이 오히려 나를 슬프게 했다. 나와서 생각하니 점심때는 항상 사람으로 가득 찼던 그 집이 오늘은 상당히 빈자리가 많았다.

나는 한두 주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전주에서 유명한 가게들로는 막걸릿집도 있다. 나는 멀리에서 손님이 오면 종종 그런 막걸릿집 중에 한 곳으로 가서 대접을 하곤 했다.


막걸리 한 주전자를 시킬 때마다 안주를 새로 내어주는 전주 막걸릿 집은 그 푸짐함으로 역시 전라도의 가게라는 말을 하게 만들던 곳들이었다. 티브이에서도 자주 소개됐다.


전주는 그런 막걸릿집이 여러 군데 있는데 그런 가게들이 모여서 골목을 이룬 곳도 있다. 그런데 그곳에 가보니 영 엉망이었다. 다른 게 없다. 무엇보다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다.


유명 막걸릿 집에 들어갔더니 커플 상이라 부르는 2인 상이 3만8천 원이고 가족 상이라 부르는 3~4인 상이 6만5천 원이었다. 그나마 아내와 둘만 들어간 우리에게 가게 점원은 제대로 드시고 싶으면 가족상을 시키시고 배가 부르면 커플 상을 시키라고 말했다. 마치 누구나 거기서는 둘이서 6만5천 원짜리 상을 시킨다는 투였다.


막걸리 마시면서 둘이서 6만5천 원을 내야 한다면 그것은 더는 저렴한 막걸릿집이라고 할 수 없다. 엄연한 요릿집이라고 해야 한다. 내가 자주 가는 단골 장어집에서는 둘이서 장어구이를 배불리 먹어도 그 정도 밖에는 내지 않는다.


푸짐하고 맛있는 막걸릿집 음식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가격이 쌀 때 할 수 있는 말이지 제대로 맛을 비교하면 전문점과는 당연히 비교할 수 없다. 그러고 보면 막걸리 한 주전자로 안주를 대령하던 시스템도 사라지고 없었다.


싸고 푸짐했던 음식들이 비싸고 껍데기만 화려한 것으로 바뀌었다. 전주에는 아직도 만 원짜리 점심 특선을 먹으면 막걸리와 도토리묵을 포함한 반찬을 무한정 주는 곳도 있다. 당연히 맛도 좋다.


유명세로만 보면 웬만한 요릿집 이상이니 타지에서 전주를 찾은 관광객들에게는 그런 가격과 식단이 통할 지도 모른다. 6만5천 원이 아깝지 않다고 감탄하는 관광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관광객처럼 멀리 타지에서 왔으니 특별한 걸 시도해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나 통한다. 이리저리 고르다 간 게 아까워 들어간 막걸릿집 주인에게 사정 이야기를 들어보니 방송 출연까지 했었던 그 집도 가게를 접을까 한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평일이었던 그날 그 집에는 우리밖에 손님이 없었고 우리가 나올 때까지 다른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전주 사람들은 이제 그 막걸리 골목에 가지 않는다. 그날따라 사람들이 없는가 했지만 돌아갈 때 막걸리 골목을 나와서 좀 걸으니 사람으로 꽉 들어찬 집들이 보였다.


결국, 그 전주 막걸리 골목은 관광객들에게나 통하는 골목이 되었고 관광비수기나 평일에는 파리 날리는 곳이 된 것이다.


나는 겨우 4년 만에 이런 변화가 생기는 것을 보고 슬펐다. 여전히 전주에는 맛집이 있고 좋은 막걸릿집도 있지만 내가 말한 이런 가게들은 5년 후에는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떤 지역에 대한 애착은 그 지역의 오래된 가게들과 깊은 관계가 있다. 전주가 실제로 사라질 날은 없겠지만 오래된 가게들이 모두 망한다면 전주의 절반은 사라진 거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변명이 있었을 것이다. 가게와 지역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했지만 물가가 달라져서, 손님 구조가 달라지고 협조하지 않는 얌체 가게들이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유가 뭐가 되었든 그들은 관광객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집이 되었다. 비싸지고 맛은 떨어졌다. 가게 나름의 힘보다는 구경거리로, 유명세로 사는 집이 되었다. 사람들의 추천과 입소문보다는 블로그 광고나 전국 방송에 의한 선전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들은 어쩌면 쉬운 길을 택한 것이다. 가게를 잘 아는 단골손님과 지역민을 붙잡기 위한 노력 보다는 대량으로 손님을 불러오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인기가 지나가고 나면 가게는 한순간에 망할 것이다.

요즘 나는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자주 본다. 백종원은 가게의 기본으로 싸고 맛있을 것을 주문한다. 되도록 메뉴를 줄이라고 하는 이유도 그래야 더 싸고 맛있게 장사할 수 있어서다.


장사를 하는 것은 워낙에 많은 것에 달려 있어서 좋은 조언대로 한다고 성공하고 나쁘게 한다고 실패한다는 법은 없다. 열심히 했지만, 원칙은 지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안타깝기에 그 망해가는 가게들에게 꼭 그래야 했냐고 묻고 싶다. 어쩌면 뻔한 유혹과 경쟁에 넘어가고 그래서 뻔한 길을 가다가 망하게 된 그들이 안타깝다.


원문: 격암의 나를 지키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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