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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 대화': 무조건 따뜻한 대화가 능사는 아닙니다

조회수 2019. 2. 20.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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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과 꼰대질은 달라요.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수많은 명제가 우글우글해요. 서점 가면 두 걸음에 10권씩 보이는 게 커뮤니케이션 서적이고, 온오프믹스 들어가 보면 온갖 배너에 커뮤니케이션 천지에요.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인공지능과 대화 가능한 시대가 되었지만 어쩐 일인지 인간과의 대화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우리는 대화에 양가감정이 있어요. 개짱 나서 말 섞기도 싫고 혼자 처박혀서 넷플릭스나 보고 싶은 은둔의 혼과, 그럼에도 사람들과 얘기하고 즐겁고 꽐라되고 우하하하 놀고 싶은 인싸의 혼이죠. 사람의 영혼은 자신이 만들어나가지만 그릇은 타인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 같아요. 그 그릇은 수많은 대화와 단어, 스킨십으로 이루어져 있죠.

이토록 중요한 게 대화지만, 우린 그 난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아요. 물론 이 글이 그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주지도 않아요. 하지만 책에서 쉽게 알려주기 힘든 비문이라서 내용들을 곰곰이 생각해서 적어보았어요.

1. 기분 나쁘게 듣지 말란 소리가 기분 나빠

조언과 꼰대질은 달라요. 꼰대질을 너무 무서워하면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조언을 남발하면 오지랖이 되죠. 그 중간선을 찾는 게 진짜 어려워요. 그중에서 조언을 빙자한 꼰대질의 대표 구문이 ‘기분 나쁘게 듣지 마,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에요.


널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건 계좌이체가 제일이에요. 애당초 팩폭을 하고 싶거들랑 그냥 ‘내 생각은 말이지…’ 라고 말을 꺼내세요. 기분이 나쁘고 안 나쁘고는 상대방이 알아서 결정할 일입니다.



2. 기분이 안 좋으면 들리지 않는다

인간은 정보 처리보다 분위기 파악에 더 특화되어 있어요. 두뇌란 게 그래요. 정보는 생존과 관계가 없지만, 분위기와 눈치는 생존과 관계가 있거든요. 그래서 변연계와 편도체는 다닥다닥 붙어있고 뉘앙스와 맥락을 먼저 파악하려고 해요. 상대방이 얼마나 진리를 설파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내 맘이 지금 불편하고 불안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상대방에게 뭔 말을 하고 싶거들랑 먼저 기분을 풀어주고 시작하세요. 애인과 싸울 때도 그래요. 일단 마음의 문이 닫히면 그 후엔 제아무리 성현의 말이라고 할지라도 의미 없는 음파에 불과해져요. 소리는 귀로 듣지만 대화는 마음으로 듣는 거예요.



3. 팩트는 중요치 않다, 인정 못 받는 게 더 크다

손흥민의 부드러운 피부를 인정

대화에서 상처를 입는 건 팩트로 패배했기 때문이 아니에요. 모든 대화의 큰 기조는 ‘나 좀 알아줘’ 에요. 이 험한 세상에서 내가 의미 있는 존재란 걸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이에요. 그 방식이 제각각 다를 뿐이지. 모두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가요. 대화의 기조는 상대를 인정해주는 데서 시작해요.

그래. 네 말이 굉장히 일리가 있어. 맞아, 듣고 보니 그래. 그건 놀라운 의견인걸?

등등 오글이 터지는 말로 시작해요. 상대방에 말에 맞장구치고 끄덕여주는 건 단순히 이해의 표시가 아니라 당신이 내 앞에 의미 있게 존재한다는 것을 긍정해주는 거예요.



4. 대부분의 경우 경청이란 일단 니 말을 들을 테니 내 말도 들으란 거다

종종 경청을 잘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공감력이 동물적이라서 몰입해서 듣는 경우와 다음 수를 위해서 일단 한 수 무르는 경우죠. 독서 모임이든 네트워킹 파티든 대부분의 사회생활에선 후자 쪽이 훨씬 많았어요. ‘일단 내 말을 하기 전에 네 말을 먼저 들어주겠다’는 느낌이 강했달까요.


맞아요. 상대방 말을 들으면서 자기 생각 정리하는 중이었어요. ‘어떻게 말할까아아아아…’ 하고 말이죠. 마치 자기소개 하면서 자기 차례 돌아오기 전까지의 여러분 머릿속과 비슷해요. 그러니 상대방이 끄덕이며 잘 들어준다고 해서 내 말에 모두 동의하거나 잘 듣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5. 싸우려고 맘을 먹었을 땐 앞뒤 재지 말고 덤벼

대화의 종류엔 싸움도 있어요. 싸움이야말로 대화 스킬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죠. 이때 중요한 건 싸워서 얻는 게 싸움에 쏟아붓는 에너지와 후폭풍 대비 가치가 있는가 따져보는 거예요. 가족 및 애인과의 싸움은 무의미해요. 싸워서 얻는 게 1도 없거든요.


하지만 사회생활은 다르죠. 원하는 것을 쟁취하고 나의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가끔 누군가를 조져놔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럴 땐 무조건 이겨야 해요. 이기세요. 욕이나 인격 모독은 하지 말고 말로 이기세요. 이미 말투에서 싸움의 뉘앙스가 묻어나면 둘 다 긴장하게 돼요. 그리고 방어태세를 갖추죠. 이때 당신이 지면 대부분 호구가 돼버린다고요.


괜히 지고 돌아오면 이불에다 화풀이만 하게 돼요. 그러지 말고 현장에서 이기세요. 그리고 실질적인 이익을 득하세요. 클라이언트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거나 자꾸 금액을 깎거나 억지를 부리면서 무리한 조건을 내걸면 싸워서 이기셔야 해요. 어차피 후회하고 빡치는 건 매한가지지만 패배감은 들지 않게 말이죠.



6. 안 싸울 거면 애교를 섞어라


반면 싸우지 말아야 할 상대도 있어요. 여자친구나 가족 등등 말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순종과 고분고분이 답은 아니에요. 나의 의견을 피력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땐 투정과 짜증에 살짝 애교를 섞어요. 애교가 섞이면 말의 스탠스가 조금 애매해져요. 싸우자는 건 아닌데… 뭔가 강하게 자기 의견을 어필하는 느낌이 들죠.


말을 떠나서 분위기가 더 중요하다고 했잖아요. 같은 말인데도 귀여운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하는 것과 개정색하고 말하는 것은 달라요. 일단 내가 정색하면 상대는 10km 정도 떨어져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고요. 먹히는 말을 하고 싶다면 상대방의 문을 열어둔 채 말하셔야 해요.



7. 말을 해서 들어 먹는 사람이 따로 있다

그럼에도 안 들어 먹는 사람이 있어요. 경청 자세의 문제가 아니에요. 타협점을 찾을 의지가 있냐 없냐의 문제죠. 상대방의 말을 2시간 내내 경청해 놓고 결국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리는 건 경청이 아니에요. 그냥 듣고 흘린 거지. 집중해서 들었으면 상대방의 의견과 내 의견을 잘 섞어서 합의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해요. 그게 말을 들어 먹는 거예요.


만약 내가 아무리 말해도 결국 모든 결론이 상대방 좋은 대로 흘러간다면 지금 당신은 놀아나는 거예요. 상대방의 친절한 표정과 말투에 속지 말아요. 친절한데 지멋대로 하는 사람보다 개짜증 내면서 ‘그럼 내가 뭘 양보해줬음 좋겠는데!’라고 투덜대는 사람이 진정한 경청장인이에요.



8. 가족끼리 대화가 될 거란 생각은 접도록 하자

가족끼린 대화가 잘 안돼요. 기대치와 원 때문이에요. 나의 원과 너무 많은 영역이 겹치면 상대가 나 같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요. 하지만 물리적인 영역이 겹친다고 해서 대화가 겹치진 않아요.


서로 단어와 대화를 이해하는 배경지식은 달라요. 엄마는 1960-1970년대 이미 단어의 뜻과 정의를 모두 익혔어요. 우린 1980-1990년대 단어의 뜻을 알아요. 살아가면서 그 간극은 점점 커져요. 서로 다른 언어를 배우고 이해한 채로 살아온 사람들이에요. 가족은 당신과 같지 않아요.



9. 가르치는 말투만큼 짜증 나는 건 없다


짜증을 내는 말투보다 더 짜증 나는 건 가르치는 말투에요. 혹시 주변 친구에게서 ‘넌 진짜 말할 때마다 선생님 같아’라는 말을 들었다면 칭찬이 아니에요.



10. 말을 안 하면 호구가 되고, 너무 많이 하면 관종이 된다 


적당히 말하는 건 중요해요. 말이 많아지면 실수가 늘어요. 말을 안 하면 오해가 늘죠. 적당한 말이란 건 딱 이 정도에요. 상대방 한 마디에 나 한 마디. 그 정도가 제일 적당한 것 같아요.



11. 맥락이 중요하다, 팩트는 집어치워

대화를 하던 도중 상대방이 이런 말을 했어요.

막 진짜 엄청 험난한 길을 걷는 사람들 있잖아. 그 K2봉 같이 가장 힘들다고 악명이 자자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나 이런 분들 보면 진짜 대단한 것 같아!

근데 여기에서 꼭 한 명쯤은 이런 사람이 있더라고요.

아냐! K2봉이 가장 힘든 산이 아냐. 실제론 에베레스트 남쪽 사면이 가장 사망자가 많다고!

아니 이게 뭐죠? ……대화엔 맥락이 더 중요해요. 자잘한 팩트가 맞고 안 맞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상대방의 말은 힘든 것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멋지다는 말이잖아요. 지금 K2가 험하냐, 에베레스트가 험하냐를 따지는 맥락이 아니에요. 저 정도 팩트체크는 그냥 맥락에 묻고 넘겨도 돼요. 일일이 하나하나 짚고 대화를 끊는 건 진짜 바보 같은 대화법이에요.



12. 질문은 최고의 대화법: 돌아올 대답을 생각하고 말하자 


내가 뭔 말을 했을 때 상대방이 어떤 대답을 할지, 어떤 감정선을 탈지 생각해봐야 해요. 대화는 생각을 쏟는 게 아니에요.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지고 서로의 세계를 탐사하고 이해하는 과정이지. 생각을 쏟을 거면 그냥 대나무숲에 익명으로 글을 쓰세요.


뭔가 궁금한 게 있거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찬찬히 물어보세요. 상대방을 조져놓을 생각이 아니라면 돌아올 대답의 여지를 남겨둔 채 말이죠.

사업을 할 마음이 있으세요?

이건 질문이 아니에요. ‘예’라고 대답하면 싸우자는 것 같고 ‘아니오’라고 말해도 이상해요. 뭐라고 대답해도 결국 싸우자는 소리밖에 안 되는 질문이잖아요. 이건 질문이 아니에요. 공격이에요.



13. 보통 사람들은 항상 욕을 하고 당신이 그 앞을 지나가는 것

사람들은 개개인으로 봤을 땐 모두 좋아요. 하지만 이상하게 사람들이 모이면 그 도덕성은 현저하게 떨어지죠. 그건 개인이 집단에 속해있을 때도 마찬가지에요.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유를 갈구하지만 자유가 과도해지면 불안해지거든요.


그래서 책임이 줄어드는 집단, 사회, 익명이란 프레임 안에선 굉장히 공격적인 존재가 되기도 해요. 특히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 불특정 누군가나, 나와 길거리에서 절대 마주치지 않을 것 같은 누군가를 평가할 때는 세상 장미칼을 빼 들죠.


혹시 콘텐츠를 만들거나 저처럼 누군가에게 공개적인 무언가를 올리시는 분들은 악플과 비판에 힘들었던 적이 있을 거예요. 꼭 이런 경우가 아니라도 뒷말과 헛소리에 시달려본 분들이 있을 거예요. 개의치 말아요. 사람들은 늘 공격할 거리를 찾아요. 도덕적인 가면 뒤에 숨겨진 넘치는 공격성을 어딘가에 풀고 싶어 안달이 나 있어요.


당신은 그저 그 앞을 살짝 지나간 것뿐이에요. 당신에게 한 말이 아니니 걱정 말아요. 지금 그 앞을 지난다면 귀를 막고 얼른 도망치든가 아니면 다 나오라고 해서 본때를 보여주도록 해요. 그리고 이기세요.



14. 보통 대화를 아무리 잘해도 핵심은 1-2가지에요


대화를 5시간 내내 해도 결론은 1-2가지에요. 때론 없을 때도 있어요. 5시간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아요. 5시간의 분위기가 더 중요해요. 생각해봐요. 소개팅할 때 그동안 무슨 말 했는지 다 기억나요? 안 나요. 회의 시간에 했던 말 다 기억나요? 안 나요.


우리가 기억하는 건 ‘그때 즐거웠다~’ 아니면 ‘지겨웠다~’라는 느낌적인 느낌 뿐이에요. 5시간의 대화는 그 분위기를 구성하기 위한 부품일 뿐이에요. 하나하나의 콘텐츠에 집중하지 말아요. 대화의 분위기에 더 집중하도록 해요.



15. 사람들은 보통 자기가 무슨 말 하는지 잘 몰라요

보통 이걸 삼천포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말에선 더 심해져요. 한국말은 서술어와 주어가 멀어요. 중간에 수식어와 목적어가 잔뜩 들어가요. 서술어가 멀어질수록 주어가 누구였는지 까먹어요. 인간의 단기 기억력은 고작해야 11단어래요. 실제로 대화를 하다가 접속사 하나만 들어가도 11단어를 훌쩍 넘어가요. 아까 한 말도 기억 안 날 때가 많아요. 


사람은 자기가 무슨 말 하는 지 잘 몰라요. 보통 대다수가 말하면서 생각하기 마련이거든요. 대부분 대화는 꼬리물기예요. 그냥 마지막에 했던 말을 물고 다른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 대화의 내용과 논리성을 따지기 이전에 대화의 마지막을 어떻게 끝낼지 문미에 집중하세요. 문미가 분명해지면 다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어요.


원문: 애프터모멘트 크리에이티브 랩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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