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리더십에 대해 한번 고민해보자

조회수 2019. 2. 19. 13: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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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란 무엇일까?

무엇에건 최고 결정자, 최종결정자, 최대지분이 있는 법이다. 특히 최대지분은 주식 보유량이 아니라 stakeholder(이해관계 소유자), 즉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해석해도 좋을 것 같다. 


기업의 팀장, 한 집안의 가장, 기업가 등 여러 종류의 리더를 대조해보며 생각해보면 모두 자신의 영역에서 최대 주주이자 아마도 최고 최종 결정자일 가능성이 높다.


단순히 후배들보다 지위가 높은 것과 리더의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 군대를 다녀오신 분이라면 분대장의 역할과 상급자의 역할이 상당히 달랐던 점을 기억하실 것이다, 특히 분대장 견장을 달아본 사람이라면.


그런데 리더십 책이 많다 해도 30대 초중반이 준비해야 하는 장기적인 리더십에 대한 글이 별로 없어 리더십에 대한 정의가 막연하다. 대개는 이미 리더십 때문에 골치가 아픈 40~50대 용 글이다.


그러다 보니 리더들의 눈에는 술술 읽혀도 젊은이의 눈에는 뭔 괴소린가 싶은 게 한두 개가 아닐 것이다. 그런 부분을 설명해보고 싶다. 나와 함께 일하고 있는 젊은 차기 리더들의 머릿속에 작은 정리를 일으킨다면 좋겠다.



리더란 무엇일까?


리더는 언니가 아니라 엄마다, 형이 아니라 아빠다. 동생이 다치면 꼭 내 책임은 아니지만 자식이 다치면 책임감을 느끼지 않겠는가. 


결국 리더는 책임의 문제다. 책임은 대개 권한으로 이어지고, 권한은 대개 결과로 이어진다. 좋은 결과도 나쁜 결과도 리더 개인의 삶에 크게 반영되는 영구적인 결과가 된다. 대단한 레버리지를 일으켜, 생애주기 전체의 수익구조와 삶의 질을 흔들어 놓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더는 팀에서 가장 중요한 stakeholder다.


그런데 자식은 stake 따위를 별로 느끼지 않는다. 없기 때문이다. 프로젝트가 성공하나 마나 자신의 생애주기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리라 생각하거나, 그 영향을 다 인지 못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stake가 별로 없는 사람들에게 stake를 나눠주고 참여시키는 것이 모든 리더들의 큰 숙제다. 그리고 혼자 막대한 stake를 짊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 더 많은 stake를 가져가기 위해 자신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게 리더다.

조직에는 왜 stake의 차이가 있을까? 없을 순 없을까?


권한과 책임의 차이가 없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모두의 stake가 충분히 무거워 서로 의지할 수 있는 파트너십 관계가 간혹 존재한다. 모두의 stake가 미친 듯이 무거울 때만, 서로 도울 수도 이끌 수도 없을 때만 이런 파트너십이 발생한다.


이런 파트너십은 아름다운 일이다. 특히 '사'자 돌림의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은 이러한 파트너십을 통해 법인을 유지하기도 한다. 각자 가져가는 부분이 분명하고, 팀워크보다는 개개인의 활동에 대한 결과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각자의 동기부여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관계가 이렇게 간단하게 규명되지 않는다. 실제로 대부분의 파트너십은 능력과 의지와 리더십의 차이로 인해 한쪽으로 기울기 쉽다. 누군가가 자신의 stake를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남의 stake도 더 진지하게 책임지려 하는 구간이 온다.


어째서인지 사람은 리더에게 의존해버리고 본인의 권한과 책임을 외면하게 되는 심리가 존재한다. 부부관계에서 한쪽이 리더의 역할을 맡으면 다른 쪽이 철이 없어지는 경향이 있다.


경제권을 누가 쥐고 있느냐에 따라 이런 현상이 강력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부인이 경제권을 쥐고 용돈을 주면, 남편은 용돈 좀 더 달라고 징징거리기 쉬워지고, 남편이 경제권을 쥐고 용돈을 주면, 반대의 경우도 왕왕 일어난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한 친구가 목소리가 크고 결정력을 휘두르면 다른 친구들이 은근히 추종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즉 이런 미세한 심리로 인해서라도, 리더들이 자연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자연 발생한 리더가 꼭 좋은 리더는 아니고, 자연 발생한 팔로워가 행복한 팔로워도 아니라는 것.



Stake를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느냐가 결국 리더라는 현상의 대부분이다.


조직에서는 이렇게 리더가 자연 발생하는 현상과 팔로워가 자연 발생하는 현상을 현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더 나은 조직을 만들기 위해 리더를 지정하고 육성시키고 권한을 몰아주고 실험하고 배치를 시키려는 인위적인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반면 직장인으로서는 이렇게 권한이 커지거나 변화하는 것을 고통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도전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의지와 욕망에 의해 권한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고, 기업은 그렇게 권한을 잘 활용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는 것 같지만, 여기서 권한은 놀고먹을 권한, 쉽게 살아갈 권한, 밥을 더 먹을 권한이 아니다. 책임, 이해관계, 그것을 조율하고 활용할 수 있는 권한이자 내공이다. 그것을 얼마나 진지하게 바라고 있느냐의 함수이다.


권한을 나눠주는 것도 리더의 역할인데, 리더의 역할 중에 가장 어려운 점이기도 하다. 특히 어려운 부분을 하나 꼽자면, 권한을 탐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권한을 줘야 하는 사람들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결정권자는 권한을 탐하는 사람에게 마음이 갈 수밖에 없다. 의욕이 없는 사람은 준 권한도 내팽개치기 쉽다. 본인도 모르는 채 권한을 썩힌다.



권한에 대한 과욕

이런 경우들도 아주 많다. 주어진 권한은 활용하지 못하면서, '권한을 더 달라, 왜 나를 믿어주지 않는가,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외치는 사람들. 그런데 권한을 배분하는 입장에서 가장 안전한 과정은 주어진 권한을 잘 소화하는 사람한테 점진적으로 권한을 늘려주는 것이다.


일종의 베팅이다. 성과를 확인하면서 가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10만큼 줬더니 11만큼 해낸 사람에겐, 20만큼 주면 22만큼 해낼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그렇게 권한을 더이상 활용 못 하는 수준까지 쾌속 승진 시키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그런데 10만큼 주면 5도 안 하면서 20을 내놓으면 더 잘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실상 태반이다. 권한과 책임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껍데기를 원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내포이다. 100을 줘야만 잘하는 사람인데 10밖에 없어서 미치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은 어떻게 검증할까?


그러나 현실적으로 100을 줘야 잘하는데 10 이상의 권한을 한 번도 받아본 적도 없고 초과달성해본 적도 없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초과달성의 흔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 당장 대단한 규모를 리드할 가능성은 일단 배제해야 한다.


치킨집 하나는 운영 못 하지만, 100개는 운영할 자신이 있다고들 하는데, 실제로 그리될 가능성은 극히 적다. 10은 부족하다는 이야기에 혹해서 20을 줘본 적이 있지만 성과는 한결같이 5였던 적이 많다.


내가 그 산증인이다. 권한이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달고 살았다. 주어진 10도 못 쓰면서, 100이 있으면, 1,000이 있으면 어떨까 늘 생각했다.


나는 큰 그릇이 있으면 더 잘할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다. 최대한 좋게 해석하면 대기만성형이라고 쳐줄 순 있다. 마음은 100에 가 있는데, 10을 채우고 50을 채워가며 성장하는데 시간이 좀 더딜 뿐이라고 귀엽게 봐줄 수 있다.


더디지만 꿈이 크니까 더 멀리 갈 수는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꿈의 크기와 상관없이 결국은 대부분 과정을 다 밟고 성장해야 한다. 그게 냉혹한 현실이다. 재벌 집 아들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성과 없이 권한의 점프를 얻지 못한다. 예외 케이스는 끝에 다시 말씀드리겠다.


요는 스텝 바이 스텝이라는 것이다. 통상, 임원이 되기 전에 부장을 해봐야 하고, 그 전에 차장, 과장, 대리의 업무를 차근차근 하며 일정 초과달성 혹은 충분한 달성력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기왕이면 초과달성이 좋다.


즉, 부장은 차장 업무를 완벽히 하고, 가물가물하지만 과장, 대리의 팔로워십도 충분한 숙달이 있어야 대체로 부장의 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업무 파악 능력과 판단 능력, 추진 능력, 실무 능력을 겸해야 팀원들을 제대로 이끌 수 있다.



반면 권한에 대한 무욕도 문제다.


반대의 경우들도 있다. 실력도 있어서 권한을 높여주고 싶은데 실질적인 의욕이 별로 없는 경우다. 눈앞에 있는 기회는 물론, 권한 상승으로 실력을 더욱 발휘하거나 더 넓은 영역으로 업무를 끌어올려야 하는 타이밍에 지나치게 겸손한 사람이 많다.


위와 같이 권한에 대해 탐욕 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에 대해 욕하는 사람이 많아서, 스스로 위축되는 것이 아닐까. 페이스북의 COO인 셰릴 샌드버그는 여성들에게 '회의가 있으면 뒤에 앉지 말고 테이블에 앉으라'고 얘기했다. 자기도 모르게 자신은 말단이며 권한이 없으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특히 여성들은 안타깝게도 아예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진가 보다, 남성 중심의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것이다. 고로 위축되기 마련이다. 그런 문화가 누구 탓이건, 본인 스스로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나 일 잘한다, 권한 더 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한다.


다만 실력으로 그 주장을 뒷받침하고, 주위와 정치적 다툼이 일지 않을 정도의 수준에서. 그러나 대부분 이런 적극성이 떨어지는 게 훨씬 문제다. 차라리 모든 직원이 권한 더 달라고 난리를 치는 게 건강한 조직이다.


권한을 원치 않는 사람의 심리는 결국 소극성이다. 권한을 탐하는 사람이 꼴 보기 싫어서, 남의 질타가 무서워서, 탐욕스러운 사람으로 보일까봐, 주제 넘다고 한 소리 들을까봐, 거절 당할까봐, '니 성과는 형편없는데 뭔 소리냐'며 면박 당할까봐, 혹은 정말 일하기 싫어서, 한 수 접는다.


한 수를 접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대체로 열수 백수 접는 게 문제다. 접다 보면 끝없이 접게 된다. '난 아마 안돼'라는 에너지에 휩싸인다. 할 수 있는 일도 접게 되고, 탐할 수 있는 일도 포기하며, 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인생을 수동적으로 보내기 쉽다.


그런 에너지가 누구에게나 있다. 뇌는 수동적으로 흘러가는 대로 살고자 하는 충동과, 그 질서를 부수고 혁신하려는 충동으로 연결되어 있다. 후자를 짓밟으면 전자가 지배한다. 있는 그대로, 지금을 지키며, 모든 도전을 거절하며, 움츠러들고 움츠러든다. 이런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은 곤욕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 매일 더 이렇게 소극적으로 변화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조직은 에너지를 탐하게 되고, 그 에너지를 들고 오는 '재수 없는 놈'들이 건승하기 쉽다.


결국, 답은 우수한 사람이 더 적극성을 띠는 것이다. '재수 없는 놈'들에게 양보하다가 뒷담화 하는 것이 미덕이 아니다. 이런 것을 '착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좀 더 뻔뻔해져야 한다. 당당해지고 솔직해져야 한다.


능력 인정받고 권한을 늘려가는 것이 인생의 최대 묘미 중 하나이고, 결국 나이 들면 언젠간 인정해야 할 진실일 뿐이다. 늙어서 태세 전환하면 추해지기 쉽다, 젊어서 당당하게 나아가자.



리더십의 극점


앞서 리더십은 대체로 순서를 밟는다고 했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타고나는 리더십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주 독특한 재주의 문제이다. 스스로 리더십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이 재주를 자신 안에서 경험한 적이 있으므로, 그것을 다시 경험하고 싶은 갈망이 생긴 것이다.


올해 우리 회사에서 진행한 '운용엔진'에 대한 프로젝트를 회고해본다. 각 개인에게 맞춤화된 엔진이 필요하고, 설계가 가능할 것이란 생각은 3년 전부터 해왔다. 대략의 그림들도 그려놨다. 하지만 금융의 역사상 아무도 간 적 없는 길이라 확신이 들지 않았다. 가지 못한 것인지, 가지 않은 것인지도 불확실했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지, 혹시 개선의 여지가 있을지, 효과가 있기는 있을지 물음표가 많았다. 그러다가 결심을 내리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팀원들에게 이를 전파하고 학습을 시키고 추가 연구 및 완성을 부탁했다. 팀원들이 다시 확신이 생기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는 다시 6개월이 넘게 걸렸다.


여기서 타고난 리더가 아닌 사람들도 갖춰야 할 것을 여럿 나열할 수도 있겠다. 엔진의 밑그림을 그리는 실무 능력, 큰 그림을 그린 전략적 능력, 소통 능력, 팀원들을 기다려주는 인내심과 신뢰, 애초에 팀원들을 구성하는 인재에 대한 관심 등. 이런 점들은 범인이라도 천천히 배워서 반드시 익혀야 할 능력들인 것 같다. 리더의 책임이다.


하지만 타고난 리더는 두 가지를 압도적으로 더 잘한다. 첫째는 '결의'를 빨리 내리는 것이다. 불확실성 속에서 결심을 하려면 용기와 지식이 모두 필요하지만, 어느 순간 엄청나게 강한 결심을 굳혀야만 한다.


불확실하지 않냐고? 불확실하지. 따지고 보면 결혼 대상이 좋은 대상인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는가. 애를 낳으면 더 행복하리라 어찌 확신하겠는가. 어느 시점에서의 결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결의가 강하면 주위를 설득할 수 있다. 억지로라도 끌고 나갈 수 있다.


우리는 결의를 내리는 과정을 거의 훈련 받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역 교육 시키지 않는가. 아무런 결심도 내리지 못하는 환경에서 살기 십상이다. 결의를 빠르고 확고하게 내릴 수 있는 능력이 가장 핵심적인 능력으로, 여러분도 장기적으로 연습해야 한다.


틀리면 어쩌냐, 결과는 어쩌냐는 차후의 문제다. 대부분은 결정장애를 겪고 있어 어영부영하다가 아무것도 못 한다. 판단력 자체는 결의의 일부일 뿐이다. 틀리더라도 결의를 강하게 내려야 한다.


성공 경험이 많다면 더욱 확신을 가지고 결의를 내릴 수 있겠지만 뭐 꼭 항상 그런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게 독이 되기도 한다. 뭐가 됐건 결론을 내리고 마음을 굳힐 줄 알아야만 리더다. 리더의 결의가 없어 대부분의 회사는 망한다. 리더의 결의가 잘못되어 망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훨씬 적다.


두 번째는 굳힌 결의를 팀원들에게 전이시키는 능력이다. 합리로 전달할 수도 있고 마음으로 전달할 수도 있고 최면으로 전달할 수도 있다. 어쨌건 전달해서 전이시켜야 한다. 전이되지 않으면 리더가 왕따라는 소리다. 그런데 리더가 자신의 비전에서 나온 기묘한 결의를 팀원에게 전이시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19살의 한니발은 한 달간의 행군 사이에 전병력에게 자신의 비전을 전이시켰다고 한다. 알프스를 넘어 로마를 초토화시킨다는 비전, 그것이 말이 되건 안 되건 전이에 성공했다. 전이된 병력은 한없이 강력해졌다. 전이되지 않은 병력은 오합지졸이다. 아마 불안감에 떨다가 장수의 목을 따서 적군에게 바쳤을 것이다.


사람이니 의문이 많을 것이고, 의문이 많은 군중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무엇이건 좋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요는 전이시키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이되지 않는다고 남 탓할 때가 아니다. 오로지 전이를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만나본 젊은 지도자들을 토대로 자평을 해보자면 나는 둘 다 C 학점이다. 어떤 이들은 나보다 강한 결의를 더 빠르고 강하게 내리고, 순식간에 팀을 전이시킨다. 아주 어린 친구들 중에도 이런 사람이 많다. 주커버그가 그러지 않았겠는가. 국내에서도 여러 젊은 창업자들이 떠오른다.


순식간에 비전에 공감한 조직을 만들고 미친 듯이 돌진하는 힘을 만들어낸다. 그 자체로도 투자를 받아 마땅하다. 딱 봐도 토스의 이승건 대표나 데일리금융그룹을 창업했던 더시드 그룹의 박상영 대표, P2P 선두 업체들의 서상훈, 김대윤, 양태영 대표들은 사람을 가슴 뛰게 하는 자연적인 힘이 있었다. 나에겐 그게 한참이 걸리는 일이었다. 다만 결의를 내리지도 않고 팀을 전이시키지도 않는 F 학점이 워낙 많아 그나마 낙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리더십이란 애매모한 인간학이다.

결국, 결의를 내리고 전이를 시키는 것이 리더십이다. 성과는 과정일 수도 있고 결과일 수도 있다, 본질이 아니다. 당장의 성과 없이도 저런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고, 성과가 있어도 안 되는 경우들도 있다.


인간이 사는 사회이니, 조직을 달리게 만드는 사람이 필요하고, 그게 리더십의 전부이다. 그런 사람이 필요 없다면 모두가 알아서 잘해서 알아서 잘 돌아가는 절대 민주주의 체제일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마저도 움직임에 동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리더는 민주주의의 중의를 이끌어가는 사람이라기보다, 한 세대의 갈망을 대변해준 하나의 상징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역사를 바꾸는 사람은 없다, 이뤄질 역사를 조금 앞당긴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 역사는 사람들이 군중들이 단체로 만드는 것이다. 절대 리더의 역량으로 볼 수 없다. 그들은 자신 안의 갈망을 채워줄 리더를 기다린다. 그렇게 군중과 리더가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는 게 아닌가 한다.


그 안에서 반드시 최종 리더가 되어야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리더란 '잘난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해주는 하나의 매체라고 생각했을 때, 우리 모두가 작고 큰 영역에서 그런 매체가 되기 위해 노력할 가치가 있다. 


작은 그룹의 리더여도 좋다. 그 권한을 받아들이고, 결의하고 전이하며, 앞으로 뛰어가는 것이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 중에 하나이다. 만년 말단일 수 없다. 인생에 말단인 순간은 길지 않다. 언제까지나 형이고 언니일 수만은 없다. 언젠가는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된다.


내가 키운 리더들이 다시 리더를 키우는 날들이 올 것이다. 그게 사회적 족보가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당장 리더십에 대한 조금 더 깊은 고민들을 해나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내가 리더가 된다면 지금의 리더와 무엇이 같거나 다를지를 상상하고, 리더가 되기 위해 필요한 실무적 단계들은 무엇일지를 조금씩 계획해보자.


어차피 여러분도 다 리더가 될 숙명이다. 다만 빨리 납득한 사람이 존재할 뿐이다.


원문: juliuschun 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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