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국을 떠나고 싶었던 이유

조회수 2019. 2. 13. 10:3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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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광전사 모드로 자동 변신하는 내가 힘들었다

여행을 하고 싶어서 떠난 게 아니다


한국이 싫어서 떠난 것에 더 가깝다. 사실 난 이걸 몰랐다. 오늘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어떻게? 짝꿍이랑 싸우고 나서 투덜거리다가, 브런치 이웃의 글을 읽다가, 한국에 있는 친구와 통화하다가, 마치 퍼즐 조각들이 모여서 정답을 알려주듯이 말이다. 한국을 떠나서 나돌아 다닌 지도 이제 3-4년, 김치가 먹고 싶고, 라면이 떠오르고, 한국의 우수한 교통 시스템을 칭송하는 오늘날이 되어서야 말이다.


해외에서의 나날은 다소 외롭고 심심하다. 특히 어디 정착하지 않은 노마드의 삶은 더더욱 외롭다. 우리는 농담 삼아 “우주선”이라고 부르는데, 마치 우주선에 동동 떠다니며 어느 정류장에 잠시 머물며 친구들과 교류하다가, 다시 짐을 싸고 우주선에 올라타서 다른 곳으로 떠나는 모습이 비슷하다고 느껴서 그렇다.


짧게 교류하는 친구들과는 아무래도 나눌 수 있는 대화의 깊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요즘은 짧은 만남에 환멸(!)을 느껴서 아예 새로운 사람들은 거의 만나지 않고 그냥 만나던 친구들만 교류하고, 짝꿍과의 대화를 많이 한다. 그래서인지 다소 심심하고, 외롭다.

심심한 나의 친구는 고양이님

문득 한국에서의 나날을 떠올리니, 참 반대였구나 싶었다. 한국에서는 항상 바빴고, 사람들과 항상 모여서 떠들고 있었고, 뭔가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 한국은 심심+외로움의 정반대에 위치한다. 뭔가를 하지 않으면 기분이 이상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너무나 불안했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내가 자꾸 나를 남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승부욕에 불타올랐다. 오늘 브런치 이웃님의 글을 읽었는데 그분이 묘사한 여러 유형별 디자이너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발견했으니….

출처: 애프터모멘트 크리에이티브 랩의 브런치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나만 그런 건 아니었어! 그래서 약간 안도감을 느꼈다. 그렇다. 한국에서 난 저런 미친 광전사였다. 사람들은 ‘와~ 린님은 참 신속하고, 빠르게, 일을 참 잘해~ 실행력 쩔어~ 행동대장이야~’ 막 이랬다. 그래서 난 더 미쳐서 날뛰면서 열심히 일을 했고. 그래서 장렬히 전사했다.


우주선에 살면 그다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일단 전투를 할 대상이 없다. 고로 한국을 떠나 노마딩을 하면서 사는 순간, 승부욕을 불태울 대상도 상대적으로 현저히 줄고, 그래서 나도 광전사 모드로 들어갈 이유 없이 약간 여유 있게 일을 하게 된다. 단 짝꿍이 약간 광전사 기운이 있어서 그게 약간 문제지만.



비교할 대상이 없다, 그러니 행복하다


누구랑 비교하겠는가? 요즘 친한 시리아 친구들? 월드컵에 환장한 콜롬비아 친구? 그들과의 대화 내용은 그냥 시리아 커피가 왜 터키 커피보다 맛있는지, 혹은 왜 아이슬란드가 이렇게 축구를 잘하는지에 대한 것인데 뭐 대화 내용에서부터 스트레스를 받을 요소가 1그램도 없다.


그들과의 대화를 영상으로 담아보았다. 참고로 이건 연출한 영상이 아니라, 인터뷰한 것도 아니라, 그냥 일상 대화 내용을 담은 거다.

오래간만에 한국에 있는 친구와 통화를 했는데, 그는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호소했다. 어디론가 여행을 가야겠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 자신이 겹쳐 보였다.

아. 그래서 내가 떠났구나. 난 여행을 가고 싶어서 떠난 게 아니라 한국이 싫어서 떠났구나. 그리고 그 이유는 한국에 있으면 불행하다고 느꼈기 때문이구나. 내가 마음공부가 덜된 거요. 내가 문젠 거요.

하면서 자책 모드로 가려는데, 또 다른 브런치 이웃님의 글을 읽었다.

출처: 한중섭의 브런치

나만 문제인 것이 아니었어! 다시 한번 안도감을 찾았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가면 바로 저 ‘상대적 박탈감’이 문제다. 이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오래 하면 할수록 심화한다.


한국이 어떤 사회인가? 지하철에서도 영상이 퐝퐝 터지는 하이퍼-커넥티드(hyper-connected) 사회 아닌가? 여기 터키처럼 한 달에 쓸 수 있는 인터넷 데이터양이 제한된 그런 곳 아니지 않나? 그러니 SNS 중독되기는 쉽고…. SNS를 하면 할수록 우울해진다. 이건 진리인 것 같다. 뭐든 적당히 해야 한다.

고양이가 결국 진리입니다

즉, 내가 한국을 떠난 이유는 나의 광전사 모드를 강제 종료시키고, 비교할 인간이 없는 곳으로 유배시키고 싶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해야만, 나 자신이 미친 칼부림을 멈추고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소기의 성과를 올린 것 같다. 이제는 드디어 ‘그러려니- 모드’가 장착되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여행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전 한국을 좋아합니다. 한국에선 광전사 모드로 자동 변신하는 저 자신이 힘들어서 그랬을 뿐.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한국처럼 매력적이고 안전한 나라도 없다고 생각한답니다.


원문: Lynn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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