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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은 원래 사양 산업이 아니었다

지옥의 아수라장을 헤쳐나온 한국 조선업 이야기
ㅍㅍㅅㅅ 작성일자2019.02.11. | 3,780  view

2017년까지만 하더라도 조선업은 한국 제조업의 쇠퇴를 이야기하는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특히 2014~2015년 박근혜 정부 시기 말뫼 케이스를 강조하며 조선업 구조조정(인지 그냥 빅배스 땜빵용이었는지)에 박차를 가하면서 이러한 인식은 더욱 심화되었다.


그러나 왠지 2018년 말부터 조선업의 대대적인 부활을 노래하는 보도가 특히 많아졌다. 수주량 1위 탈환은 물론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의 급증으로 다시금 조선업의 르네상스가 찾아온 것처럼 이야기하는 언론도 늘었다.


그런데, 사실 조선업은 애시당초 사양 산업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업종이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지옥의 아수라장을 헤쳐나온 한국 조선업의 부침에는 과연 어떠한 뒷이야기들이 있었을까? 지금부터 고양이 힝고와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

이 친구가 고양이 힝고입니다

너는 나의 에너지: 에너지 사이클과 조선업


2010년대 중후반 한국 조선업의 위기를 설명할 때 가장 명백한 원인은 역시나 해양플랜트에서의 적자이다. 금융위기 이전 유가가 120불을 넘나드는 고공행진을 보이면서 심해 유전의 채산성이 높아졌고, 드릴십과 FPSO 등 해양시추설비에 대한 수요가 덩달아 높아지면서 기초 설계기술이 모자랐던 한국 조선사들이 너도나도 해양플랜트에 진출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금융위기와 셰일 혁명이 잇달아 찾아오면서 발주를 넣었던 유럽과 미국의 에너지 기업들이 2013년경부터 설계변경 미적용 등의 이유로 선박 인도를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미 해양플랜트 설계의 원천기술을 보유한 영국, 노르웨이 등에 큰 로열티를 지불한 한국 조선사들은 (한국 조선사의 해양플랜트 설비 기술 국산화율은 20%에 불과하다) 당연히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셰일 공급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면서 터널은 영원히 이어질 것처럼 보였다. 이 터널의 출구를 뚫어 준 것은 우습게도 과도한 출혈 경쟁으로 우리나라 조선사들을 해양플랜트로 몰려가게 만든 장본인인 중국이다. 중국의 대기 질 개선 프로젝트가 시작되며 LNG 수요 급증이 예측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중국이 대기 질 개선을 위해 대체 무얼 하고 있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중국은 이미 2017년 3.81억 톤의 LNG를 수입해 우리나라를 제치고 세계 2위의 LNG 수입국으로 부상했다. 특히 중국의 미국산 LNG 수입량이 591억 입방피트로 멕시코와 우리나라에 이어 3위를 차지했으며, 이 수입량은 미중 무역분쟁과 겹쳐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태평양을 횡단하는 장거리 LNG 운송수단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측되며 한국 조선업체들이 드디어 터널을 벗어난 것이다.



병 주고 약 주는 중국: 물량으로 흥한 자 물량으로 망하다


그렇다면 2010년대 중반 엄청난 물량 공세로 우리나라 조선업을 위협하며 한때 글로벌 수주 1위를 차지하던 중국의 상황은 어떠할까? 대우조선해양이 존속능력이 불확실하던 과거의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클락슨의 조사 결과 중국은 이미 지난 2016년부터 667개 조선소 중 고작 171개만 가동되어 25.6%라는 환상적인 가동률을 보여 주고 있다. 당장 올해부터도 중국의 조선업 환경은 더 나빠질 전망인데, 2018년부터 주력 발주되는 LNG선을 거의 한국이 싹쓸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source : 이투데이

중국이 LNG선 발주에 있어 손도 쓰지 못하고 우리나라에게 물량을 빼앗기는 것은 우리나라가 해양플랜트에서 겪었던 일의 유사품에 불과하다. 중국의 조선소들은 국가의 금융지원에 의지해 낮은 인건비를 통한 벌크선 등 저부가 선박 시장은 쉽게 장악할 수 있었지만 기술 진입장벽이 높은 고부가 선박 시장 진입에서는 손가락만 빨아야 했다. LNG선 자체가 액화 기체를 장거리 운송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가스의 장기 보관 등에 있어 고도의 기술력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의 금융지원에만 의지했던 중국의 조선업 포트폴리오 전략 자체가 한계를 맞이한 것인데, 놀랍게도 시장의 많은 전문가는 중국의 조선업 전략에 대해 이미 예전부터 회의적이었다. 거시적으로 볼 때도 중국의 인건비는 앞으로 빠르게 상승할 것이고, 경직된 계획경제로 인해 초과공급과 이로 인한 대규모 설비 스크랩 및 구조조정이 일상이었던 철강, 기계, 건설 등 중국의 다른 산업을 보았을 때 건조 사이클이 긴 조선업의 특성상 이러한 한계가 조금 늦게 나타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기 때문이다. 언론은 몰랐겠지만.



다시는 한국을 무시하지 마라: 우리도 기술력 있다


우리나라 제조업을 이야기할 때 가장 아픈 손가락은 예나 지금이나 ‘원천기술’ 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조립능력은 탁월할지 모르겠으나 설계능력이 부족하여 정작 외국에 로열티는 죄다 퍼주고 저마진으로 근근히 연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업에 특정지어 이야기하자면 이 말은 맞기도 하지만 틀리기도 하다. 우리나라 조선업체들이 보유한 원천기술 역시 만만찮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과 비교하자면 고부가 선박에서의 기술 격차는 더 크다.

source : 대우조선해양

특히 조선업의 애물단지였던 대우조선해양과 유럽의 BASF가 공동 개발한 LNG 보관 기술인 ‘솔리더스’는 멤브레인 LNG 선박 시장에서 그간 기술을 독점하고 로열티를 잘 빨아 먹던 프랑스의 GTT에게 대차게 가운뎃손가락을 날려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액화 기체를 장거리 운반하는 LNG선의 특성상 최대한 가스의 기화율을 낮추는 보관 기술이 중요한데, 이 기술을 노르웨이의 크베너 모스 사(모스 타입)와 프랑스의 GTT(멤브레인 타입)가 독점하고 있었다.


특히 솔리더스가 등장하면서 싱가폴의 국부펀드 테마섹이 지난 2018년 2월 GTT의 보유 지분 10.38%를 전량 매각한 것 역시 더 큰 의미를 지닌다. GTT 가 솔리더스 때문에 당장 몰락하지는 않겠지만, 경제적 해자를 상실했으며 때문에 향후 점유율 손실 및 시장 경쟁 격화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부터 자체 표준에 몰두하느라 아직도 구식 모스 타입의 LNG선 건조 능력밖에 없는 일본 조선사들은 더욱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결론적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하나의 산업을 이야기할 때 이 산업이 사양 산업이냐 아니냐를 일컬으려면 그 산업의 기술 분포, 회사별 사업 포트폴리오, 국가의 지원 정책의 유무, 관련 전후방 산업의 움직임 모두를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 조선업은 고질적인 이중노동시장 문제 및 중소형 조선사의 몰락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으며, LNG 사이클 종료도 언제고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는 위험 역시 항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낙관하기에는 이르다.


그러나 솔직히 이제는 인정할 때가 된 것 아닌가. 매일같이 말뫼를 들먹이며 거제도의 노동자를 모두 구조조정하고 거기에 4차 산업혁명과 IT 기술투자를 한 스웨덴을 본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얼마나 허망한 소리였는지 말이다. 그리고 말뫼의 눈물을 닦아 준 것은 IT 투자가 아니라 말뫼와 코펜하겐을 이어주는, 길이 7.8km의 ‘외레순 다리’였다. 이 다리로 말뫼와 코펜하겐 경제권이 통합되며 말뫼의 인구가 다시 늘고, 그 늘어난 인구가 경제 재활성화의 밑바탕이 된 것이다.

외레순 다리

만약 외레순 다리를 만들지 않고 스웨덴 정부가 무작정 말뫼를 테라포밍하려 했다면 오히려 훨씬 더 심각한 부작용을 직면해야 했을 것이다. 말뫼의 부활은 단순히 사양 산업을 과감히 버리고 멋들어진 신산업에 투자하여 생긴 결과가 아니다. 통합된 유럽이라는 특징과 적절한 토목, 이로 인한 인구의 증가가 밑그림이 된 것이다.


이제 그러니까 말뫼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하자. 조선업 주가 작년에 그렇게 오를 때 말뫼 입에 올리던 언론들은 이제 무어라 할 셈인가?


원문: 김현성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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