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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징거림의 필요성

조회수 2019. 1. 31. 11: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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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나간 이들이 갔던 길로부터 배워나가면서

1990년대 말 PC통신 하이텔에서 봤던 사건이다. 한 여중생이 “군인은 월급도 안 받고 일해서 불쌍한 줄 알았는데 월급 받는다면서요? 쌩으로 고생하는 줄 알았더니…”라는 식의 글을 올렸다. 그 학생 아이디로 메일이 빗발쳤다. “그게 월급이냐? 얼마 받는 줄 알고 월급 받는다고 얘기하는 거냐?” 같은 내용들.


개념도 지식도 없는 중학생의 철없는 글이었지만 군필자들이 분노할 만한 글이었다. 그래도 당시 PC통신은 이후 DC 문화가 평정한 웹보다는 훨씬 점잖아서 주로 사실관계의 오인을 지적하며 훈계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 여중생은 한 달에 만 원도 못 받는 줄도 몰랐다면서 사과의 글을 올렸다.


신기했던 건 그 정도 선에서 이해했다는 것이다. 설사 적당한 수준의 월급을 받더라도 그런 병영환경에서의 복무는 문제가 많다고 해야겠지만 거기까지 논의가 나아가진 않았다. 그냥 당연히, 어쩔 수 없이 갈 수밖에 없다는 게 대체적인 남자들의 생각이었고, 적어도 그렇게 끌려가서 고생한다는 점을 무시하진 말아 달라는 정도가 속내였다. ‘그래서 월급이 얼마나 적은가’는 남자들끼리도 별로 얘기하지 않았고, 여중생이 모를 만도 했다.

출처: 한국경제
이런 수준이었다

초기 우주인은 모두 군인이었다. 우주 비행선은 인간이 지내기에 여러모로 불편했고 개선이 필요했지만 불만 사항은 지상의 공학자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았다고 한다. 군인이었던 우주인들은 그걸 그냥 참고 감내해야 할 것으로 여기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민간인도 참여하면서 ‘아니, 왜 이걸 이제까지 보고를 안 한 거야?’ 같은 개선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아마도 군필 기성세대는 저런 군인 출신 우주인 같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불편과 피해를 묵묵히 감수하고 그 대신 우주에 갔다 왔다는 것만 인정받으면 된다는 마음 말이다.


그리고 지금 청년층은 민간인 출신 우주인이다. 청년들의 군대에 대한 불만이 징징거림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징징거리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는 발전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당연히 터져 나와야 할 불평불만이 터져 나오지 않았던 시기가 길었다. 그 불평불만이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이 되어선 안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호소는 더욱 많이 나오고 다뤄져야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청년층 여성 중심으로 페미니즘이 발흥한 것도 그들이 더 이상 불평불만을 묵과하지 않는 이들이기 때문일 수 있다. 엄마와 언니들처럼 묵묵히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와 형들처럼 묵묵히 견딜 수만은 없다는 청년층 남성도 여성과 같은 세대다.

중장년층 남성이 더 페미니즘에 우호적이더라도, 청년층 남성이 동년배 여성에 대한 적대감이 더 크다 하더라도, 청년 남성의 같은 세대는 청년 여성이다. 이해관계가 아닌 동질성 수준에서는 그들이 더 한편이며, 그들은 어찌 보면 같은 얘기를 하는 것이다.


다만 여자들이 먼저 자신들의 불평불만을 잘 얘기할 방법을 찾은 것이고, 그것의 민주적 수용까지 모색하고 있다. 남자들은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욕망은 찾았으나 아직 그걸 어떻게 전달해야 하며, 민주적으로 수용되게 할지 찾지 못하고 있다.


징징거리되 어떻게 잘 징징거릴 것인가가 문제다. 그리고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자유와 평등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징징거려야 한다. 우주선이 불편하니 타지 말자고 하거나 불편을 감수할 군인만 타자고 하는 게 아닌, 우주선을 더 편리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나간 이들이 갔던 길로부터 배워나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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