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 통치기 일본의 문화재 정책은 과연 악인가

조회수 2019. 1. 30. 13: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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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외부만큼이나 내부에 있다.
옛 동대문운동장 전경

아침 출근길에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훑으면서 한 블로그 글 링크를 보았다. 그 블로그는 ‘옛 동대문운동장은 조선 시대 오간수문과 한양성곽 유적 위에 지어졌는데, 이는 일본의 민족문화말살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 주장은 틀렸다. 


우리는 흔히 식민통치기 일본이 조선의 민족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여러 문화유산을 고의로 훼손했다고 생각한다. 시멘트 돔으로 덮어버린 경주 불국사 석굴암, 역시 시멘트로 흉물스럽게 만든 익산 왕궁리 미륵사지 석탑, 그리고 블로그에서 언급한 한양도성 성곽과 오간수문 등. 하지만 저건 일본이 조선의 민족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실 당대의 문화재 인식과 기술이 고작 저 정도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식민통치기부터 비교적 최근인 1970~1980년대까지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일본도 문화유산의 가치와 복원의 중요성을 잘 알지 못했다. 대표적 예가 오사카성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전소된 오사카성을 복원하면서 일본 정부는 그것을 콘크리트 건물로 만들었고, 이는 현재까지 복원된 오사카성이 비판을 받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오사카성 외에도 많은 문화유산이 그렇다.

출처: Japan Travel
오사카성

한국도 마찬가지다. 독립 이후 현재까지 최대의 고고학적 발굴 프로젝트라고 일컬어지는 무령왕릉 발굴은 그 책임자인 삼불 김원용 선생 회고록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되지만, 그 옆에 캠프를 만들고 한 달이고 1년이고 차분하게 이루어져야 함에도 기자들과 지역 주민들의 무지로 인해 불과 하루 만에 사진 촬영도 없이 ‘쓸어 담듯’ 발굴이 이루어졌다. 이뿐 아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화재 훼손의 우려가 있음에도 무령왕릉 관람객은 실제로 들어가서 볼 수 있었다.


이건 오간수문과 한양성곽 유적을 매장하고 그 위에 DDP를 건설한 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건 당시 서울시장을 맡은 이명박과 오세훈이 친일파에 민족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추진한 일이 아니라, 단지 문화유산의 발굴 및 보존에 대해 그들이 그만큼 천박한 인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 사회 일반도 마찬가지고.


경주 불국사 석굴암을 시멘트 돔으로 감싼 것 역시 마찬가지다. 석굴암을 훼손하기 위해 고의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시 문화재 인식과 기술로는 그게 최선이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원형을 그대로 두었더라면, 그게 현재까지 남아 있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마 더 심각하게 훼손되었을 거다.

출처: SBS News
복원 당시의 석굴암

이러한 일을 모두 식민통치기 일본의 잘못으로 귀결시키는 일은 문제의 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짓이다. 문제는 외부만큼이나 내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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