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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세대의 담론 : 이 시대에는 더는 조언이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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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 청년 세대에 대한 담론은 크게 '아프니까 청춘이다' 류와 '88만원 세대' 류로 양분되어 있었다. 이는 기성세대가 청년세대를 바라보고 조언하는 관점이기도 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류의 조언은 대략 "청춘은 다 아픈 것이다, 그러니 참고 견디면 좋은 미래가 온다." 혹은 "꿈과 열정을 좇아라, 그러면 결국 삶이 그에 대해 보답을 할 것이다."처럼 결국 '꿈은 이루어진다'를 믿는 긍정적 인생관에 바탕을 둔 위로다.


이러한 기성세대의 조언들은 "아프면 환자다."로 대변되는 비판으로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이 세대는 더 이상 꿈을 믿고 달려갈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각 영역의 경쟁들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해졌고, 이미 권력과 자본의 고착화로 청년들이 얻을 수 있는 파이는 너무 적어졌다.


양극화는 세계 최고의 수준에 이르고 있고, 청년 실업률도 역사 이래 최고치에 이르고 있다. 그 앞에서 '꿈은 이루어진다.'라고 외치는 건 일종의 정신분열증, 현실도피, 정신승리에 불과하다는 현실 인식이 강해졌다. 그리고 이는 분명 진실을 포함하는 인식이다.

"아프면 환자다."

다른 한편으로는 '88만원 세대' 류의 조언들이 있었다. 이는 주로 586 세대 지식인들에 의해 주장되었다. 청년들에게는 더 이상 꿈도 희망도 없으니, 방법이란 청년들이 연대하여 기성세대와 싸우는 일종의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청년들이 새로운 사회의 흐름을 일으키고, 그들이 새로운 세상을 주도하며, 자본과 권력의 지도를 재편할 혁명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언 혹은 주장들도 실제로 청년들에게 크게 와 닿는 해결책이 되진 못했다.


그 이유는 모든 청년들이 각계각층에서, 각자 영역에서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너무 각박해졌기 때문이었다. 연대를 고민하기 이전에 학점을 따고 토익 공부를 해야 했다.


새롭고 희망적인 사회를 꿈꾸며 책을 읽고 토론하기 전에 당장 아르바이트를 하러 뛰어가거나, 재테크에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사회는 전방위적으로 청년들의 진입을 잔혹하게 만들고 있었다.


병목현상처럼 안정적인 삶으로의 진입하는 길은 좁아터지게 되었고, 시간을 허투루 써서는 죄다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일이 당연시되었다. 남은 건 현실에 치이거나 아예 현실을 포기하는 양자택일밖에는 없어 보였다.


이런 거대한 두 흐름은 거의 10여 년간 지속되었다. 그 결과 더는 "꿈을 좇으라"라는 명제도 허무맹랑하고 뜬구름 잡는 소리가 되었고, "사회를 바꾸고 혁명하라"는 것도 에베레스트를 오르라는 것처럼 불가능한 요구가 되었다.


그 출구 없는 거대한 절망 앞에서, 청년들이 택한 길은 '분노'와 '증오'가 되었다. 오직 나의 입장에서, 나의 파이를 빼앗아가는 모든 적을 증오할 것, 그리고 내 삶을 불가능하게 만든 이 사회에 분노할 것.


그러나 그것은 관념적인 감정의 차원일 뿐이고,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계속하여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에 더욱 몰두하는 것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이 시대에는 더는 조언이 없다. 조언은 불가능해졌고, 필요도 없어졌다. 남은 건 오직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는 강사들뿐이다. 토익 점수를 높여주는 강사, 공무원 시험 성적을 올려주는 강사, 자기소개서를 고쳐주는 강사, 재테크 비법을 알려주는 강사만이 남게 되었다.


삶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다. 꿈도, 행운도 믿을 수 없다. 「연금술사」나 「시크릿」에서처럼 나를 도와주는 온 우주는 없다.


이러한 시대에 남은 유일한 조언 비슷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소확행'에 몰두하라는 것이다. 소소한 행복만이 확실하다. 젊은이들은 삶의 거대한 전망을 버리고, 순간으로, 일상으로, 오늘로 머물기를 택한다.


어찌 보면 이 시대에 이보다 더 현명한 방법도 없다. 이 순간의 행복을 찾을 것, 그것은 모든 종교에서 가르치는 인생의 진리이기도 하지만, 저 괴물 같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방편이자 자기 위안이기도 하다.


믿을 수 있는 언어, 조언, 방향, 길이 없는 시대에 우리는 그저 미친 듯이 경쟁에 몰두하고, 경쟁에서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순간밖에 알지 못하게 되었다.


이 시대가, 이 사회가 어디로 흐를지 아는 혜안을 지닌 사람은 없다. 잘난 지식인들도, 인생을 앞서 살아간 어른들도, 삶의 진실을 안다고 하는 종교 지도자들도 이 세상의 답을 모른다.


확실한 건 우리 사회가, 이 시대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 뿐이다. 이 시절은 더 오래도록 이어질 것이다. 나는 그저 이 우리가 무언가를, 서로를 놓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너무 쉽게 버리거나 포기하지 말고, 끈질기게 삶의 가능성을 움켜쥐길 바랄 뿐이다. 더 나은 세상과 삶을 꿈꾸는 이들이 서로라는 가느다란 끈을 붙잡고 버텨야 한다고 믿을 뿐이다.


해답이라는 것이 그 희미한 윤곽이나마 드러낼 때까지, 이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서로의 옷자락을 붙들고 견디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원문: 정지우 문화평론가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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