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스타트업 페스티벌, SLUSH

조회수 2018. 12. 26. 19: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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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속 가능한 스타트업 페스티벌을 만들 준비가 되었는가?

Slush가 개최되는 시간과 공간은 이목을 끈다. 실리콘밸리도 아니고 유럽의 중심도 아닌 북유럽 핀란드에서, 그것도 Slush라는 이름만큼이나 추운 겨울에 개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유럽 최고의 축제형 스타트업 콘퍼런스인 Slush에는 올해도 수많은 스타트업과 20,000명이 넘는 참가자가 모였다. 참가 규모는 꾸준히 갱신되고 있다. 나는 ‘한국의 Slush를 꿈꾸며, 핀란드로!’라는 개인 프로젝트를 위해 홀로 SLUSH 2018에 다녀왔다.



SLUSH의 S는 Spectacle?


참가하기 전에 Slush 트레일러 영상을 봐서 행사장 분위기를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 놀라웠다.

말 그대로 ‘스타트업 페스티벌의 끝판왕’을 보는 기분이었다. 내부는 기본적으로 어두웠지만, 조명이 밝아 깜깜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색색의 조명이 공간별 특색을 강조하고 있었다.


눈에 띄는 조형물과 생경한 아이디어 부스를 위주로 가볍게 한 바퀴를 돌아봤다. 그런데도 첫날 오전 2시간을 거의 다 썼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부스에서 만난 핀란드인은 이런 말을 해주었다.

Slush 기간에는 헬싱키가 더 어두워진다는 소문이 있어요.
모든 빛과 레이저가 다 이 안에 있거든요.
Slush app 캡쳐

행사장은 매우 컸다. 2개의 입구는 어디로 들어오든 가장 먼저 Startup district를 마주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메인 무대를 포함한 3개의 무대(Founder stage, Pink stage, Evergreen stage)에서는 끊임없이 콘퍼런스가 열렸다.


그러나 마치 중요한 것은 콘퍼런스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하듯이, Meeting Area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참가자들은 사전에 Slush Match Making platform을 통해 자신의 프로필을 생성하고 다른 사람들의 프로필을 둘러보며 비즈니스 및 캐주얼 미팅을 잡을 수 있었다. 그래서 3개의 Meeting point에는 시간마다 미팅 상대를 기다리는 사람들 수십 명이 포인트를 둘러싸고 있었다.


오아시스로 불리는 휴식공간에는 가상의 오아시스와 무료 마사지사가 있었다. 오아시스는 유일하게 밝은 실내 공간이었다. SAUNA의 나라답게 SAUNA를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으며 한편 실제로 즐기는 사람들이 있어서 놀랐다.

Slush 현장 - 직접 촬영

SLUSH의 S는 Sustainability?


Sustainability(지속 가능성)는 Slush 운영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환경을 중시하는 노르딕 가치가 핀란드의 창업 생태계에 적용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 산물인 Slush는 기업가가 이익 추구와 더불어 반드시 환경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다양한 형식으로 참가자들에게 강조한다.


일상적으로는 분리수거를 철저하게 하고(모든 쓰레기통 앞에서 자원봉사자가 쓰레기 버리는 것을 도와준다), Slush에서 사용되는 모든 물건, 접시와 컵과 심지어 사탕 포장지까지 biodegradable으로 활용했다. 재활용품이나 식물로 이루어진 인테리어 소품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자원봉사자 그룹 중 Sustainability 부서가 별도로 존재하는데, 화장실부터 식당까지 #Slushtainability 캠페인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Slush 현장 - 직접 촬영

SLUSH의 S는 Side-Event?


Slush에는 헬싱키 전역에서 열리는 수많은 곁가지 이벤트가 있다. 곁가지 이벤트는 행사 2~3일 전부터 시작해서, 행사 후까지 이어진다. 이 이벤트에서는 옷을 맡기는 순간까지도 네트워킹하게 된다. 네트워킹을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프닝 파티에서 줄 서 있다가 만난 eAgronom의 COO와의 대화는 다음과 같다.


안녕, 너는 어디서 왔어?
나는 한국에서! 기업가 정신을 공부하는 학생이야, 너는?
나는 에스토니아에서 스타트업을 하고 있어. AgriTech 관련된 건데, 시간 괜찮으면 들어볼래? 내가 맥주 살게!
Slush 오프닝 파티 - 직접 촬영

그래서 참가자들은 곁가지 이벤트 목록을 훑어보고 자신의 관심사와 전문 분야에 맞는 이벤트를 선정해서 알찬 시간을 보낸다. 초대받은 사람들만 갈 수 있거나, 투자자나 스타트업 뱃지가 있어야만 갈 수 있거나, 유료인 사이드 이벤트도 있지만, 대부분은 모든 Slush 참가자에게 무료로 열려 있다.


나는 알토벤처프로그램에서 주관한 알토 대학교 투어와 Entrepreneurship Education Summit에 참가했다. 알토 대는 비즈니스, 기술, 디자인 세 개의 전문학교가 모여 2010년에 신설된 대학이다. 핀란드 스타트업의 50%가 배출되는 북유럽 최고의 이노베이션 현장이기도 하다.


참가한 대학교수, 기업가정신 교육자, 학생 등과 알토벤처프로그램의 기업가정신 교육 툴을 통해 워크숍을 했는데 느낀 바가 컸다.


한국에서 했던 창업 워크숍은 ‘아이디어, 아이템’에 초점이 맞추어 있었다. 하지만 알토벤처프로그램에서는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시간은 30초~1분 정도였다.


30초 만에 나온 아이템이라고 할지라도 어떤 아이템이든 Happy customer에 닿기까지 발생할 단계가 무엇인지, 각 단계에서 필요한 지식이나 태도가 무엇인지, 그중 CORE 역량이 무엇인지 팀원들과 고민하고 알아가게 했다.


서로 배경이 다른 사람 4명을 모아 두고 '24시간을 줄 테니 새로운 아이템을 뚝딱 만들어봐라!' 가 아니었다. 창업에 수반되는 전 과정을, 배우는 게 아니라 직접 고민하고 함께 공유한다. 그리고 언제든 아이디어를 실행할 수 있는 방법론과 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알토대학교 투어 - 직접 촬영
  1. 아이템 선정: 약 1분 소요 * 소프트웨어, 앱 X
  2. 해당 아이템이 Happy customer에 도달하는 단계를 포스트잇으로 적어보기: 29분 소요
  3. 현실에서의 문제 카드(Ex. '중국에서 너희 물건 산다고 하면 어떻게 할래?', '경쟁자가 50% 가격으로 물건을 내놓으면 어떻게 할래?' 등)를 주고 해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포스트잇을 추가하기: 20분 소요
  4. 단계별로 필요한 지식이나 태도가 무엇인지 작은 포스트잇으로 적어보기: 20분
  5. 두 팀이 함께 서로가 붙인 작은 포스트잇 중 겹치는 게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 중 CORE와 NICE TO HAVE 나누기: 10분 소요
  6. 전체 팀과 결과물 공유하기: 10분 소요 *아이템 언급 X, CORE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
Entrepreneurship Education Summit - 직접 촬영

WORLD’S LEADING STARTUP EVENT로서의 명성


Q. 스타트업 이벤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A. 고민하면 안 된다. 답은 당연히 스타트업이다.


그렇다면 스타트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스타트업 이벤트의 프로그램은 그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어 구성되어야 한다. 나는 딜 소싱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Slush도 나와 생각이 비슷한 것 같다.


Slush의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100개의 스타트업이 피칭을 하는 ‘slush pitching competition’이다. 피칭을 하는 100개의 스타트업 중 단 하나의 우승팀만이 수상 혜택을 받는다.


그렇지만 Slush에 마련된 딜 소싱 프로그램은 피칭 콘테스트뿐만이 아니다. 행사장 곳곳에서 Slush의 Match making 온라인 플랫폼과 오프라인 부스를 통해 참가자들이 직접 개별 네트워킹을 한다.


딜 소싱의 기회가 많음에 따라 스타트업 참여 수요가 높아진다. 좋은 스타트업들이 모이고, 그래서 또 좋은 VC들이 모인다. 행사의 명성이 날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Slush는 1등만 기억하는 곳이 아니다.


SLUSH의 딜 소싱 프로그램


  1. 100개의 스타트업 경진대회 slush pitching competition
  2. Slush 기간 전후로 개최되는 다수의 Side event (Investor Day, After party)
  3. Slush Match making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개별 네트워킹
  4. 국가관 또는 개별 부스에서의 제품 시연
Slush 현장 - 직접 촬영

SLUSH의 영웅: Motivated Volunteers


Slush는 학생 자원봉사자들이 만드는 행사이다. 처음 들었을 때도 놀랐지만, 알고 직접 현장에서 만나니 더 놀라웠다. 내가 놀란 이유는 그들이 ‘대단한 일’을 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대단치 않다고 여겨질 일’을 성실하게 하는 모습이 진심으로 놀라웠다.


쓰레기통 앞에서 분리수거를 돕거나, 참가자들에게 물을 따라주거나, 행사장 입구에서 짐을 받아 보관하거나, 장식용 식물에 물을 주는 등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자원봉사자들이 했다. 그들은 휴대전화를 보고 있지도 않았고, 대답은 늘 친절했다. 자원봉사자는 전체 Slush를 구성하는 소중한 팀원이었고, 그 점이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실제로 자원봉사자들이 만족할 만한 경험을 만드는 것이 Slush 조직위원회의 핵심 고민 중 하나라고 한다. 자원봉사자는 백만 원이 넘는 입장료를 면제받을 수 있다.


학생들은 단순히 봉사 시간을 채우거나 혹은 스펙을 쌓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스타트업을 다루는 유럽의 가장 큰 축제 속에서 네트워킹 한다. 일자리를 구하기도 하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들려주기도 한다. 창업의 첫걸음을 딛는 것이다.


그 한 사례가 Slush의 공식 웹사이트를 만드는 evermade인데, 이들은 외주 업체가 아니라 초기 Slush의 웹사이트 부서 자원봉사자들이 만든 스타트업이다.


2만 명 규모의 Slush는 정부 부처가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거나, 벤처캐피털 같은 투자사가 운영하는 행사가 아니다. 핀란드의 창업 생태계는 20~30대의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형성한 민간단체의 영향력이 크다.


국내의 여러 창업 행사가 공공 주도로 이루어지는 것과는 다르다. 핀란드에서는 민간, 특히 고등교육 기관인 대학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알토 대학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2010년에 공식 출범한 비영리 창업 지원 단체, 알토이에스(Aaltoes)이다. 알토이에스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Slush 조직위원회가 꾸려지고, 매년 세대를 교체하며 이어지고 있다.

Slush 현장 - 직접 촬영(좌) / Slush 공식 홈페이지(우)

누가 한국의 Slush를 만들 것인가?


‘글로벌 콘퍼런스를 통한 스타트업 생태계 혁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스타트업 이벤트 개최 횟수는 전 세계적으로 2013년 182건에서 2017년 3,730건으로 4년 사이 20배 이상 증가했다.


스타트업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스타트업이 대거 모이는 이벤트도 주목받고 있다. 이번 Slush에서 자신이 한국의 Slush를 만들겠다는 한국인 참가자를 4명 이상 만났다.


한국에서도 최근 2년간 축제형 스타트업 이벤트가 성행하고 있으니, 좋은 선행 사례인 Slush의 형식에 관심을 두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학생 단체이기도, 교수님이기도, 기관이기도, 예비 창업가기도 했다. 그리고 어쩌면 나도 한국의 Slush를 기대하며 참가했으니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에서도 글로벌 스타트업 및 VC와 교류할 수 있는 이벤트의 필요성을 다수가 공감한다고 읽히면서도, 조금은 걱정이 앞선다.


Slush는 겉으로 따라 할 수 있는 어두운 실내 행사장, 빛나는 레이저 조명, 유명한 연사 라인업 말고도 분명하게 추구하는 가치가 있다.


스타트업 이벤트가 아닌 것 같은 현장을 만들면서도, 스타트업이 가장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구성한다. 거기에 스타트업 딜 소싱을 위한 다양한 대안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전 세계에서 모이는 대학생 자원봉사자에게 충분히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여러 고민을 한다. 그리고 그 고민을 하는 당사자 또한 대학생이다.


테크 스타트업 이벤트임에도 당연한 듯이 친환경을 추구한다. 열정적인 참가자들은 하루에도 수십 개의 사이드 이벤트를 만들어내고, 그럴 수 있는 인프라가 마련되어 있다.


밤이 어두울수록 별은 반짝인다. Slush 행사장은 어두운 만큼 무대 위 연사의 작은 움직임에, 스타트업 부스의 화면에, 내가 지금 대화하고 있는 상대의 눈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


우리는 스타트업이 주인공인 페스티벌을 만들 수 있는가? 우리는 지속 가능한 스타트업 페스티벌을 만들 준비가 되었는가? 지속 가능한 스타트업 페스티벌이 되기 위해서는 Slush의 겉모습보다 더 깊은 요소들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Slush 현장 - 직접 촬영

원문: 새벽꽃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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