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왜 망가졌나

조회수 2018. 12. 18. 12:3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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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의 공약은 '젠더폭력방지기본법'이었다

지난 12월 7일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대한 남성들의 반발이 인터넷과 젊은 층 위주로 거세집니다. 사실 최근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 여론이 심상찮은지라 이런 반발이 이는 건 불문가지이긴 한데… 이 법이 좀 불필요한 논란을 굳이 자초한 것도 사실.


그럼 이 법이 왜 이렇게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는가? 모두를 위해 결론부터 말하면, 자유한국당 때문입니다. 자유한국당이 적폐덩어리라고 무조건 자유한국당 때문으로 몰고 가려는 것 아니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지만… 자유한국당이 적폐덩어리인 것도 맞는데,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이상해진 것도 정말 자유한국당 때문입니다.

출처: 장애여성공감
제대로 된 여성폭력방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공동성명

우선, 왜 굳이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인가? 물론 젠더폭력 피해자의 다수가 여성이고, 여성이 법의 초점이 되어야 함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법을 제정하면서 굳이 여성 외의 성별을 ‘배제’해야 할 합리적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반발을 초래하고 법의 사각지대를 만들 뿐이에요. 사실 ‘젠더’폭력방지기본법 쪽이 훨씬 법의 취지를 잘 살릴 거예요.


애당초 문 대통령의 공약도 ‘젠더폭력방지기본법’이었는데, 학술적 개념이란 이유로 실제 법안에선 이 이름이 사용되지 못했죠. 이게 뭐 그렇게 어려운 학술적 개념도 아니고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머리 굳은 국회의원들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듭니다. 표창원 의원은 이에 ‘성차별에 의한 폭력방지법’이란 이름을 제안했으나, 이것도 기각됐습니다.


사실 원안은 ‘남성이 당하는 젠더폭력’도 포함해 법안을 만들었다고 해요. 뭐, ‘여성’이란 단어의 뜻이 분명한 만큼 ‘여성폭력’이 ‘젠더에 기반해 남성이 당하는 폭력’도 포함한다는 해석이 뭔가 못 미덥긴 한데요… ‘여성’이란 사실 ‘남성’도 포함하는 단어라고 주장할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래도 어쨌든 원안에선 ‘남성’을 굳이 배제하려는 시도까진 없었습니다.


그런데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 이 원안이 더욱 후퇴해 여성폭력을 성별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구체화했죠. 남성을 명시적으로 빼 버린 건데, 사실 이게 잘 이해가 안 가는 게, 굳이 이렇게 해야 할 이유가 없거든요? 굳이 이렇게 해야만 여성에 대한 폭력을 더 잘 방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 무슨 이유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요?


법사위 회의록을 보면 김도읍 소위원장(당연히 자유한국당) 등이 주도적으로 이 법에서 ‘남성을 빼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 법의 취지는 ‘순수하게 여성 피해자를 보호하자는 취지’이며, 자꾸 젠더폭력 얘길 하는 게 ‘동성 간의 문제에 대해서도 접근하는 시도가 아닌가 이런 의심’이 간다고 말합니다. 결국 이 부분이 핵심입니다. 이 법이 동성 간의, 특히 남성 간의 젠더폭력을 보호하게 두고 보지 않겠다는 거죠.

출처: 아시아경제
‘여성폭력방지법에서 남성을 빼자’고 주장한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

법사위는 그뿐 아니라 ‘성평등’을 ‘양성평등’으로 변경하기도 했는데 대체 왜 이런 데 집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또한 비슷한 맥락입니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 측은 ‘성평등’이란 용어가 젠더 다양성을 긍정하고 동성애, 트랜스젠더 등을 포괄하기 때문에 ‘양성평등’을 대신 쓰자고 주장하는데요. ‘양성’, 즉 오직 전통적인(?) 의미의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겠다는 거죠.


법사위 백혜련 의원의 발언을 잠깐 봅시다. 그는 서구에서도 사실 처음에는 여성폭력 방지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개념이 확장되었다고 말합니다. 남성에 대한 폭력도 지금은 소수이지만 앞으로도 더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내용 또한 포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죠.


하지만 김도읍 의원은 ‘그렇게 말씀하시면 더 어려워진다’고 말합니다. 뭐가 더 힘들어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송기헌 의원(이 사람은 민주당)도 ‘그러면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며 ‘남성 부분을 빼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에 집중’ 할 것을 제안하죠.


여성가족부 차관이 백혜련 의원의 의견처럼 “피해자가 남성일 수도 있다는 점도 법 체계 안에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발언하자, 김도읍 위원은 “법사위에서 전혀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라며 “남성 피해자를 여가부에서 보호하려고 욕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게, 여성가족부 차관이야 전문가니까 당연하고 백혜련 의원 같은 경우에도 지금 여기의 젠더 폭력은 물론 앞으로의 젠더 폭력, 그리고 젠더 다양성 같은 문제에 주목한단 말이죠. ‘남성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게 그런 개념에서 출발할 테고요.

출처: 연합뉴스
‘피해자가 남성일 수도 있다는 점도 법 체계 안에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

반면 사태의 주도자(…)인 김도읍 소위원장은 물론 송기헌 의원 같은 경우에도 젠더폭력 문제를 남성과 여성이라는 고리타분한 구도에서만 바라봅니다. 젠더 다양성은 물론이고 소수자의 존재를 거의 인정조차 하지 않아요. 주광덕 의원(역시나 자유한국당)은 ‘남성에 대한 폭력은 기존의 형법으로 다 보호받는 내용’이라며, 그걸 왜 여가부에서 건드리냐고 주장하죠. 이 의원들은 모두 남성입니다.


여기에서 기성세대 남성 권력층의 페미니즘을 보는 관점이 다분히 ‘시혜적’인 데 머무르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들어요. 더불어 김도읍 의원 등 자유한국당 쪽은 다분히 호모포비아적이기도 하고요. ‘젠더폭력’을 방지하겠답시고 만든 법이 구세대적인 젠더 관점에 갇혀버리고, 심지어 성 소수자에 대해 차별적이기까지 한 건 결국 그 ‘시혜적’ 관점의 한계가 딱 거기까지기 때문이죠.


젊은 남성층의 ‘백래시’를 100% 막을 순 없을 거예요. 아무리 합리적으로 다가가더라도 그럴 거고요. 페미니즘은 남성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들 하지만, 사실 그건 감언이설이죠. 때로는 제로섬 게임도 벌어질 테니까요. 이처럼 기성세대 남성 권력층이 페미니즘을 여성에게 무언가를 ‘베푸는’ 것처럼 다룰 때, 그 백래시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또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런 ‘시혜적’인 관점으로는 젠더 다양성을 포용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 안에서의 소수자, 특히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 등을 ‘배제’하는 형태까지 나타나기 십상이죠. 결론은 ‘자유한국당이 또…’ 가 되겠네요. 자유한국당의 구태의연한 젠더 감수성은 대체 언제쯤이나 나아질까요? 여성, 여성 노래만 부른다고 될 일이 아닐 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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