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는 '소뿔'을 두고 논쟁합니다

조회수 2018. 12. 12. 1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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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국가적 논쟁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너는 소뿔을 믿느냐?

무슨 개뿔 같은 소리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스위스는 소뿔을 두고 한창 큰 논쟁을 벌였다. 심지어 국민투표까지 했다. 모의투표가 아니라 진짜 투표다. 웃지 마시라. 논쟁이 얼마나 정치하고 철학적인지 놀랄 것이다.



과연 소뿔이란 무엇인가

소뿔 옹호론자는 소뿔은 소의 존엄성이고 정체성인데, 효율성을 중시하는 현대 농업이 이를 말살하고 인간의 편의를 위해 소뿔을 제거했다고 한다. 국민투표를 주도한 60대 중반의 농업학교 교장은 『소 이해하기』라는 책을 통해 이를 세세하게 논파했다. 물론 소의 ‘권리’만 따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묘한 국가주의적 감성이 더해진다.


스위스는 무엇인가. 그건 곧 알프스이고, 알프스는 곧 산이고 들판이고, 그리고 그 위를 한가롭고 당당하게 거니는 소의 무리. 따라서 소는 스위스를 묶어내는 정치적 상징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상징’인 소는 온전하게 당당해야 하며 소뿔은 곧 이런 온전함의 상징이다(그리고 마터호른에도 뿔이 있지 않나!). 황당하게 들릴지 모르나 그렇다고 딱히 틀린 주장은 아니다.


엽서 속 스위스 같은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농부들은 소 무리를 이끌고 광활한 산을 누비고 다닌다. 마치 산 위에 잔디가 깔린 듯한 장면은 그 소들이 수풀을 깔끔하게 해치운 덕분이다. 소가 없다면 알프스 평원은 잡초 더미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존재만으로 이미 큰 구경거리다. 그 공을 크게 인정해 스위스 정부는 매년 여름에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소들에게 400프랑(약 50만 원) 정도를 지급한다.


스위스는 이 돈이 절대 농업보조금이 아니라고 한다. 환경과 관광에 소가 기여한 대가를 인정하고 그 몫을 소에게 돌려줄 뿐. 스위스의 축산농가는 평균 25마리의 소를 가졌다고 하니 여름 한 철 수입은 1,000만 원을 넘는다. 요컨대 동물의 권리, 정치, 경제, 모든 면에서 볼 때 소의 ‘존엄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반대측, 소뿔 제거론자의 논리도 만만치 않다. 일단 소뿔이 존엄의 상징이다 하더라도 공격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라 한다. 그리고 사실 소뿔은 소에게도 그다지 실용적 이득도 없고 그걸 제거하는 데 큰 고통이 없기에 소가 소뿔을 개뿔처럼 여길 것이다.


이런 논리들이 결합해 곧 결정타가 나온다. 소가 스스로 중요하지도 않은 소뿔을 그대로 두면 그 위험성 때문에 소를 가두거나 활동반경을 제약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소뿔 때문에 소는 더 불행해지고 소의 ‘존엄’도 훼손된다는 것. 소를 위하자고 하는 일이 소를 더 괴롭힌다는 논리다.


소뿔 옹호론자는 그게 무슨 개뿔 같은 소리냐는 입장이다. 더 이상 소뿔 제거론자의 궤변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과학적 연구까지 동원한다. 베른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뿔을 제거하면 소에게 당장 영향이 없어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부정적 효과를 겪는다고 한다.


정부도 난리다. 소뿔 옹호론자는 소뿔 보호를 위해 정부가 매년 약 20만 원 정도 보조해주어야 한다는데, 300억 이상이 소요되는 예산을 찾을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이다. 지금도 스위스 농가 수입의 40% 이상은 보조금이다. 스위스 의회는 벌써 안 된다고 의견을 냈다.



‘소뿔’ 논쟁의 결과

여하튼 11월 25일 스위스는 국민투표를 통해 대논쟁을 끝맺었다. 다른 중요한 안건들도 올랐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내법이 국제법보다 우선한다”는 원칙을 확인하는 국가 자결권에 관한 것이다. 유럽연합이나 기타 국제법의 영향을 막으려는 취지다.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다. 소뿔 옹호론자는 ‘소의 자결권’도 국가자결권만큼 중요하다면서 투표를 독려했다.


그럼 여론의 방향은? 놀라시지 마시라. 마지막 여론조사에서는 49%가 소뿔 옹호론을 지지하고 46%는 반대했다. 그러나 옹호론은 추세적으로 감소해 최종 결과는 54%가 반대해 부결되었다. 모두 다 제각각 ‘소의 마음’을 대변한다고 하는데, 정작 소의 생각을 알 길이 없다. 소의 크고 슬픈 눈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한번 물어나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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