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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체험이 무서운 점은, 자신의 가난을 끊임없이 털어놓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조회수 2018. 12. 13. 01: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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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깨진 알전구처럼 슬픈 일이다.

가난의 체험이 가장 무서운 점은, 자신이 얼마나 가난했는지 끊임없이 털어놓고 싶게 만드는 데 있다. 김주영 소설가의 말대로 가난은 사람을 비겁하게 만든다. 아주 교묘히 비굴하게 만든다. 자신이 껴안은 모든 악덕과 나태와 불운을 오직 그것, 가난 한 가지로 환원시키고 싶게 만든다. 또 그럴 만큼 강력한 게 사실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한때 가난했고 지금 가난한 이의 입술 끝에는 늘 내가 얼마나 가난했는지, 지금 얼마나 가난한지, 또 그 가난 때문에 어떻게 힘겹게 살아가는지 고백하고 싶은 욕망이 그렁그렁거린다. 그것은 깨진 알전구처럼 슬픈 일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 한 사람에게 가장 크리티컬한 내면의 그늘을 보려면 그가 무언가를 얼마나 밖으로 드러내며 은밀하게 과시하고 싶어하는지 엿보면 되는 것 같다. 은밀하게. 과시하지 않는 듯 과시하며.

더욱이 소득과 자산 백분위로 줄을 세운다면 분명 이 나라에서 100의 90-95에 들어갈 사람들조차 나 죽겠다 먹고 살기 힘들다 광광대는 풍토 속에서, 진짜로 가난에 치를 떠는 사람들은 언제나 숨죽이며 음울한 눈초리로 그런 정경을 지켜보고 있다.


소득 백분위가 100의 10에 속하든 100의 90에 속하든, 우리는 절대로 “아, 내가 이만큼 풍요와 행운을 누렸고, 지금도 꽤 풍족한 환경에서 살죠”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에겐 자기 자신을 ‘개천의 용’처럼 로맨틱하게 여기고 싶어하는 심리적 갈망이 있다. 정말로 크고 끈질긴 갈망이다.


아무튼 이 글은 마이크로닷 사태에 대한 메모다. 나도 〈도시어부〉를 다시보기로 10몇 회까지 재밌게 보고, 나중에 다 몰아서 봐야지 생각하며 아껴놨던 시청자였다. 근육질의 낚시맨 마닷을 보고 나 또한 ‘아, 어리긴 해도 정말 견실하고 멋진 청년이구만’이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어떤 양명하고 건강한 에너지, 한국의 쓸데없는 상하관계와 예의범절 따위에 아직 얽매이지 않아 구김살 없어 보이던 성품 같은 게 좋았다. 활달하고 직선적인 에너지와 그의 부모에 의해 피해를 입은 자녀들의 피눈물이 너무도 극명하게 대비되어 이번에 터져나온 사태는 사회파 소설의 좋은 소재거리가 될 만한 게 아닌가 싶다.


‘자기도 모르게 타인에게 죄를 저지르던 어느 청년’의 이야기. 부모의, 또는 부모의 부모의, 또는 부모의 부모의 부모의 어느 비열한 범죄가 나의 건실한 근육에 묻은 걸 흠칫, 발견했던 누군가의 이야기 말이다.

‘나중에 〈도시어부〉에 대해서 얘기해봐야지’ 하고 캡처했는데, 이런 글에 쓰일 줄은 몰랐다.

한때는 나도 “명랑함은 비극적 견딤의 크기에 달려 있다”는 클레망 로세(Clément Rosset)의 말을 인용하는 걸 좋아했다. 이제는 그 말을 덮어놓고 믿진 않는다. 현실에서 열에 아홉의 경우 비극적인 현실의 견딤은 절대로 명랑함을 낳지 못한다. 비극적인 현실의 견딤은 영혼을 구겨지게 만들고, 만성적인 비탄과 좌절을 낳고, 영원히 자신의 결핍에 쫓기는 불안한 곁눈질을 낳는다.


명랑함이란 게 존재한다면 그것은 마닷 같은 환경에서 만들어진다. 인생을 유유자적 즐기고, 사람을 좋아하고, 현실과 일과 자기 욕망에 집중할 수 있는 그 충만한 태도는 절대로 견디고 말고 하는 일에서 나올 수가 없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여유롭고 부유하며 윤택한 삶의 환경에서 나온다.


그리고 지금 나처럼 남의 명랑함을 샅샅이 분석하는 냉소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고 해서 종국엔 삶에서 뭘 더 얻는 것도 아니고 남보다 ‘근본적으로’ 더 행복하게 사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명랑함의 근원을 따진다고 해서 타인을 뭘 더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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