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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요식업은 패션 산업이다

조회수 2018. 11. 20. 11:1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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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음식 사진을 통해 커뮤니케이션한다.

작년에 나왔던 아이폰 X이 100만 원이라는 심리적인 한계를 깨뜨리는 데 공헌했다면 올해부터 나오는 아이폰은 전 모델이 다 100만 원을 쉽게 넘어간다. 불평은 작년보다 좀 덜한 것 같다. 그런데 아이폰만 그렇지 않다. 프랑스 요식 업계도 마찬가지.


이를테면 ‘16유로가 넘어가는 피자가 있다’는 기사처럼 말이다. 서울도 이미 그 가격대를 넘어선다고 말씀하기 직전에 생각을 해보자. 한국으로 비교하자면 보통 크기의 파전과 빈대떡이 개당 2만 원 넘어갈 때? 당연히 왜 그런지 궁금해지지 않을까.


경제학 전공자라면 알아듣기 쉬울 텐데, ‘가격 차별’ 개념이 있다. 소비자별로 지불 의사를 잘 알아서 개별 소비자에게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것이 1급, 수량을 나누는 것이 2급(한정판이 바로 이 형태), 소비자군을 나누는 것이 3급(프랜차이즈의 지점별 차이)이다. 저 긴 기사의 내용은 별다른 가격 차별을 하지 않던 식당 업계가 1급 가격 차별로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의미다.


즉 요식업에 상당한 세분화가 이뤄진다. 가령 유제품을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 비건(vegan)을 위한 치즈인 브로마쥬(vromage)가 있겠다. 그 배경에는 스타트업의 트렌드가 요식업계까지 미친다는 이유가 있다. 아무래도 비즈니스스쿨(무려 HEC!)을 나온 젊은이들이 대거 요식업의 상황을 바꾸고 있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잠깐 유명 사례 얘기를 길게 하겠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이탈리아 요리 체인점 빅 마마에서는 HEC를 졸업한 젊은 창업자들이 이탈리아의 수많은 업체와 직판을 뚫고(밀라노와 나폴리의 유통센터에서 주당 3번씩 공급받는다), 이탈리아에서 수제로 만든 재료들로 대단히 세분화시킨 메뉴를 판매한다. 그것도 한정판으로 말이다.


일당 600가지 요리 주문을 받는 이 식당의 직원 평균 나이는 23세. 요리학교와 계약을 맺고 모두 이탈리아인들만 채용했다. 요는 피자, 혹은 이탈리아가 주안점이 아니다. 레스토랑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에 스타트업 방식을 주입한 것이다. 단일 제품을 상당히 많이 세분화하고 글루텐이 없는 메뉴도 개발했다. 위에서 잠깐 거론한 브로마쥬도 여기서 나왔다.


창업자들은 우선 학교 구내에 임시 식당을 차려서 3개월간 테스트를 했다고 한다. 학교 내에서 식당 사업 테스팅도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물론 바깥에서의 테스트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제 연간 매출이 400만 유로가 됐다. 한화로 대충 계산해도 50억 원이 넘는다. 창업자들은 어쩌면, 스타트업 늘상 하는 식으로 엑싯을 할지도 모를 일.


이제 단골들을 통하거나 뛰어난 맛, 혹은 좋은 목 등으로 운영하는 전통적인 식당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식당들이 나오며 이는 스타트업 씬과 다를 바 없다는 얘기인데, 사람들의 트렌드 변화와 관계가 있다. 지금의 맛집은 트립 어드바이저를 보고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인스타그램을 보고 간다. 케밥이나 피자가 이제 맛이 아니라 하나의 총체적인 경험이 됐다. 사람들이 음식 사진을 통해 커뮤니케이션한다는 의미다.

어디든 맛있는 곳이 아니라 뭔가 있는 특정 식당을 가는 것으로 조류가 바뀌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제 요식업도 패션 산업처럼 됐다. 손님들은 더 이상 단골이 아니다. 전통적 의미의 식당이 죽었다는 건 아니다. 저런 스타트업식 최신 트렌드 식당으로 갈 요량이 아니라면 동네 단골 식당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끊임없는 변화에 지친 고객을 끌어모을 곳으로 남으라는 조언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한때 여기저기 카페 찾아다니다가 내가 그냥 스타벅스에 안주하는 이유와 마찬가지인데, 카페들에 하나같이 개성이 없다. ‘힙스터 감성’이 유행을 하니 저마다 모두 힙스터스럽게 바꿨다고 표현해도 되겠다. 바로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 어딜 가도 똑같은 스타벅스를 비판하던 개성 있으시다는 카페들도 모두 개성이 사라지고 똑같아졌다는 얘기다.


물론 앞의 기사에서는 “take away”가 앵글로-색슨의 개념이며 프랑스에서는 그냥 아무렇게나 “(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 주슈”의 문화이지, 여기에 뭘 섞고 뭘 넣지 말고 하는 문화가 아니었다는 내용으로 트렌디한 카페를 깠다. 지역마다 약간씩 다르기는 한데 불어 문화권이면 다 비슷했다. 내가 살았던 나라도 “커피 하나 주슈”하면 에스프레소와 물 한 컵을 의미했다. 다른 커피를 원한다면 주문할 때 별도로 그 단어를 말했지만, 거품은 빼주고 크림은 올리고 등의 개념은 전혀 없었다.


어쨌거나 카페의 경우 메뉴의 ‘상당한 세분화’가 식당과는 달리 과도한 힙스터스러움으로 바뀌었다는 의미일까? 카페의 경우는 1급 가격 차별이 해당하지 않는다는 뜻일까? 그러고 보면 카페에 안 가는 게 곧 힙스터의 정의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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