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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고시원 총무가 말하는 고시원 업계 비리 실태

조회수 2018. 11. 14. 14: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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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고시원 원장이 신뢰할 수 없는 존재였다

나는 4년 경력 고시원 총무다. 4년을 쭉 한 군데서 일한 건 아니고 여러 곳에서 일했다. 최근에 뉴스들을 봤겠지만, 지난 9일 새벽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에서 불이나 7명이 숨지고 11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있었다. 2009년 소방법 개정 이후 지은 고시원은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만 영업이 가능한데, 이곳은 법 개정 전에 지은 노후 고시원이라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아 인명피해가 컸단다. 


고시원은 전국에 1만 2,000여 곳으로 이 중 5,840여 곳이 서울에 있고, 서울만 따져 봐도 1,080여 곳이 스프링클러 설치되지 않은 고시원이다. 또한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고시원이라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닌데, 이 이야기는 뒤에서 하고 우선 스프링클러 이야기를 계속해보겠다. 국일 원장은 5년간 월세 동결 조건을 받아들여 서울시 스프링클러 지원사업을 신청했다고 한다.


필자의 경험상 ‘입실자들의 안전을 위해 스프링클러 지원사업을 신청해야겠다’라는 발상을 뇌 내에서 생성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원장들도 부지기수이므로, 이에 비추어볼 때 국일 원장은 ‘평균보다는 조금 나은 정도’는 됐던 사람으로 보인다. 하지만 긍정적인 평가는 딱 여기까지다.

출처: 국일고시원
국일고시원 내부. 소방법 개정 전에 지어져서 복도가 매우 좁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국일에 스프링클러는 설치되지 않았다. 이 지원사업에는 ‘건물주 사업동의서’가 필요한데, 건물주는 건물을 팔 생각이어서 향후 5년간 고시원의 영업을 보장하는 게 싫었다. 원장은 나름 노력했고, 건물주는 재산권 행사를 했을 뿐이고, 스프링클러는 설치 안 됐고, 결국 사람이 죽었다, 안타깝지만 이게 끝? 아니다.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원장이 마치 크게 불리한 조건까지 감수하면서 나름 노력은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사실 월세 동결 조건은 고시원에게 큰 부담이 아니다. 내 경험상 고시원은 소비자 우위 시장이기 때문에 원래 월세가 자주 오르지 않으며, 노후하고 공실이 있는 고시원은 오히려 내리기도 한다. 지원사업을 받고도 꼼수를 쓸 수도 있다(물론 바람직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예를 들어 그동안 월세를 35만 원을 받아왔다면 37만 원으로 올린 다음 단속이 나오면 담당 공무원에게 35만 원은 그동안 할인가를 적용해준 것이고 요즘은 ‘원래의 정가’대로 37만 원을 받는다고 둘러대면 그뿐이다. 그러니까 원장이 대단한 희생을 감수한 것인 양 큰 의미 부여를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업계 실태를 아는 현직 종사자로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이가 없다.


본질은 건물주든 사업주든 결국 돈과 사람의 생명을 맞바꿨다는 것이고, 국일고시원은 국가가 편입시키려고 했던 ‘바람직한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스프링클러는 3,000만 원 정도 드는데 백 번 양보해 스프링클러는 부담스럽다고 치자. 그런데 도저히 고시원 원장을 실드치기 어려운 비밀이 있다. 이것은 2009년 소방법 개정 전 고시원뿐 아니라 앞에서 잠깐 언급한 개정 후 고시원에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바로 화재경보 시스템이다.

출처: 빌런 꿈나무
화재경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이게 엄청 시끄럽게 울린다.

근래에 지은 고시원이든 노후한 고시원이든 대부분의 고시원에는 화재경보 시스템이 존재한다. 관련 뉴스를 종합해보면 국일에도 화재경보 시스템은 있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게 무슨 의미일 것 같은가. 사업주는 입실자들에게 화재경보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각 방 천장에 감지기를 달아놨으니까) 고시원을 운영해왔는데, 화재 시 이것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은 고시원 원장이 입실자들에게 믿게 한 바와 실제 관리 사이에 모순이 있었다는 의미다(!).


민사적으로는 묵시적인 계약 위반으로 손해배상 건이 될 수도 있고, 형사적으로는 중과실치사상죄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물어야 할 여지가 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잘못일 수 있다. 화재경보 시스템은 고시원 각 방에 화재감지기가 열(차동식·정온식 감지기), 연기(광전식 감지기) 등을 감지하면 관리실 수신기에 신호를 보내고 화재경보가 엄청 시끄럽게 울려대는 시스템이다. 이것만 제대로 작동했다면 사람들이 자다가 건물 밖으로 급히 뛰쳐나갔을 것이고 인명피해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고시원의 화재경보는 제대로 울리지 않았을 경우는 크게 세 가지다. 고시원이라는 환경 자체가 가진 문제점, 관리자의 태만함, 최악은 관리자의 고의적인 조작. 우선 고시원이라는 환경 자체가 가진 문제점부터 보자.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고시원은 열악하다. 좁다. 공기 순환이 잘 안 된다. 만약 방에 개인 샤워실이 있어서 온수 샤워 후 뜨거운 김이 훅 올라오거나 개인 샤워실이 없는 노후 고시원이라도 누가 방에서 담배라도 몰래 피면 감지기가 수시로 오작동을 일으킨다.


특히 연기에 반응하는 광전식 감지기가 이런 문제에 취약하다. 불이 안 났는데도 경보가 수시로 울려대니 거주자들의 생활에 지장이 생긴다. 이처럼 규정 지켜 소방시설 설치하고 영업허가가 난들 애초에 너무 열악하다 보니 시설조차 오작동을 일으킨다. 궁여지책으로 방수형 감지기로 바꾸면 좀 낫지만, 애초에 사람답게 살만한 곳이 못 되는 것이다.

출처: 빌런 꿈나무
사용기한 10년을 2년 이상 넘긴 화재감지기

다음은 관리자의 태만함이다. 앞에 문제가 어찌 해결된다 해도, 감지기를 수시로 관리해주지 않으면 또 오작동을 일으키거나 먹통인 경우가 흔하다. 감지기 업체에서는 배터리 수명이 10년이라고 홍보하는데, 배터리가 10년 간다고 본체도 문제없이 10년을 버티는 것이 아니다. 오작동을 일으키거나 의심스러운 감지기는 관리자가 찾아서 그때그때 교체해줘야 한다.


비용이 스프링클러처럼 3,000만 원씩 하는 것도 아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방수형 차동식 감지기 1개에 1만 원 내외면 산다. 문제는 관리자가 태만하게 교체를 하나둘 미뤄두다 보면 나중에는 교체되지 않은 감지기가 수십 개씩 쌓인다는 것이다. 만약 드물게 FM대로 일하는 총무가 새로 고용돼 이 사실을 발견하고 원장에게 교체를 건의하면, 눈앞에 이익밖에 모르는 대부분 원장의 성질상 열에 아홉은 또 미루려고 든다.


꾸준히 한 개씩 방 40개를 교체하든 한꺼번에 40개씩 교체하든 40만 원이 드는 건 같은데, 조삼모사의 훌륭한 표본인 고시원 원장들은 괜히 지금 당장 40만 원을 쓰라고 하니 이조차도 아까워서 유야무야 뒷걸음질 쳐버리는 것이다. 나는 지금 있는 고시원에서 일을 시작한 지 2개월이 조금 넘었을 때, 전임 총무와 원장이 화재감지기가 사용기한을 2년 이상 넘긴 2006년 제품들을 입실자들이 사는 방 천장에 그대로 달아놓고 방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문제 말고도 전임 총무와 원장이 싸놓은 똥이 워낙 많이 쌓여 다른 일을 처리하느라 나도 뒤늦게 발견했는데 발견 즉시 원장에게 감지기를 전부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원장이 답변은 가관이었다. 그는 “소방서에서 지침이 나오면 고쳐야죠”라고 했다(그러니까 소방공무원들은 빨리 우리 동네 고시원을 털어주십시오). 이 말은 이런 의미로 번역하면 된다. ‘누가 강제로 시키기 전에는 돈을 쓰지 않겠다’는 것. 원장의 본심이 이런데도 고시원 웹사이트에서는 ‘안전하고 철저한 소방관리’라는 홍보문구로 손님들을 꾄다. 이건 사기다.

출처: 빌런 꿈나무
주경종 및 지구경종정지 버튼이 고의로 눌려 있을 경우 모습 예시. 사진에서는 잘 안 보이지만 화재를 감지했다고 빨간불이 들어와 있는데도(위) 경종이 울리지 않게 정지 버튼이 누름 고정돼 있다(아래).

마지막은 갈 데까지 가버린 경우로, 관리자가 수신기의 주경종 및 지구경종정지 버튼을 고의로 눌러놔 화재경보가 아예 울리지 않도록 해놓는 경우다. 앞서 지적한 고시원의 구조적 문제나 감지기를 제때 교체하지 않은 문제를 안은 고시원들이 대부분 이런 경우도 함께 해당한다. 감지기가 수시로 오작동을 일으키니 아예 벨이 울리지 않게 차단을 시켜 놓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불이 나도 절대로 화재경보가 울리지 않는다. 방마다 수신기와 연결되지 않은 단독형 감지기를 따로 달아놓지 않는 이상 말이다.


주경종 및 지구경종정지 버튼은 경보가 울렸을 때 관리자가 순찰 후 건물 내에 화재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면 오작동한 감지기를 찾기 전에 잠시 경종을 멈추려고 누르는 것이지 화재경보 시스템 자체를 무력화하기 위해 계속 눌러놓으면 큰일 난다. 그러면 밤에 불이나 사람들이 자다가 영문도 모르고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 살인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국일고시원도 사고현장 합동감식 중 주경종 및 지구경종 정지 버튼이 눌러졌던 것으로 보인다는 소방관계자 설명이 나왔다. 이게 사실이면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문제다. 원장과 원장 아들에 관한 철저한 수사가 있어야 한다.


문제는 내 경험상 주경종 및 지구경종정지 버튼을 눌러놓은 곳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내가 현재 일하는 고시원의 수신기도 인수인계를 받고 이 버튼들이 눌렸다는 것을 깨달아 아연실색하고 누름 상태를 해제했다. 사정을 알아보니 원장이 감지기를 전부 교체할 의지가 없어서 감지기가 수시로 오작동했고, 그러니까 입실자들 생활에 지장이 생겨서 전임 총무가 이 버튼들을 눌러놓은 상태로 내게 총무직을 넘겨버린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곳 말고도 내가 이제까지 일해온 고시원들 대부분이 이랬다. 물론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원장들에게 이렇게 해놓으면 불이 나도 화재경보가 안 울린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모든(!) 원장들이 감지기가 또 오작동하면 입실자들 심란해져서 방 뺄 수 있으니 건드리지 말라고 막거나, 정지 버튼을 해제해도 좋은데 뒷일은 어쩌지(그러니까 빨리 감지기를 다 교체하게 40만 원이라도 좀 쓰시라고요…)라는 식으로 유야무야 넘어갔다.


내 말이 의심스러우면 확인해도 좋다. 사무직 소방공무원 여러분은 지금 당장 서울 시내 고시원 중 무작위로 10곳만 불시에 급습해 털어보라. 소화기 사용기한, 감지기 사용기한, 비상 랜턴 및 완강기 작동 여부, 수신기 주경종 및 지구경정정지 버튼 누름 여부 등 탈탈 털면 안 걸릴 곳이 있을지. 근데 사실 공무원분들도 알면서 모르는 척 넘어가 주는 경우가 제법 있다.


어떻게 아느냐고? 나도 고시원 업계에 4년 일하며 ‘고인 물’ 될 때까지 이런 원장들이 소방 감사를 받는 것을 여러 번 봤다. 공무원 입장에서는 자기 관할이 ‘문제없음’으로 위에 보고되는 게 편하고, 원장 입장에서는 40만 원도 쓰기 싫어서 버티고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출처: 조선일보
이런 보도는 여론을 이상한 방향으로 몰 수 있다.

본질이 이런 것인데도 일부 언론은 ‘알 필요 없는 정보’의 과잉으로 주위를 산만하게 해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기 일쑤다. 국일고시원 화재와 관련해 내가 현직 종사자로서 가장 읽다가 빡쳤던 건 조선일보의 「반찬 인심 후했던 ‘고시원’…’비 와서 공친 날’ 사망자 많았다」 기사다. 이 보도는 국일 원장이 입실자들에게 뷔페식으로 다양한 반찬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부각한다.


그러나 이런 부식류는 제공 범위가 어디까지이든 업주들이 입실자들에게 ‘인심’이나 ‘혜택’을 베풀어주는 게 아니라, 입실자들이 지불하는 입실료에 포함된 개념으로 생각하는 게 맞다. 국일고시원도 마찬가지였지만 대부분의 고시원은 자신들이 제공하는 부식이 어디까지인지 홈페이지에 홍보한다. 따라서 부식제공은 애초에 입실 계약 사항에 포함된 요소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물론 고시원은 대부분 밥, 김치 기본제공에 경우에 따라 라면, 계란까지 제공하는 게 보통이라 반찬을 제공하는 경우가 드문 것은 맞다. 그러나 소비자 우위 시장인 고시원 업계 특성상, 타 고시원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시설 등 다른 면에서는 부족한 고시원들이 종종 반찬으로 사람들을 꾀기도 하기 때문에 뷔페식 반찬 제공은 특별히 원장이 ‘착한’ 사람이라서라고 볼 이유가 없다.


그리고 당신들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드는가? 사람들이 죽고 다친 상황에서, 시설 책임자인 원장이 왜 “(내가) 고시원에서 사는 사람들 위해 국, 반찬 만들며 살아갔는데 이렇게 돌아가시다니 불쌍해서 어떡하냐” 같은 말을 언론에 나와서 흘리는지 말이다. 왜 이 상황에서 자기가 잘해줬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지?


사고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은 원장이 소방안전 관리를 책임 있게 했느냐 아니냐지 해당 고시원에 반찬이 몇 개인지 따위가 아니다. 이따위 정보는 독자가 하등 알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이어서 국일고시원 화재 생존자들이 원장에게 소송을 걸었다는 뉴스가 보도되자 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역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며 성급하게 악플부터 단다.

본질은 반찬이 아니라 관리에 문제가 있어서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다

기자들이 민심을 이상한 방향으로 몰고 갈 동안 4년 동안 중년의 원장들과 부대끼면서 그들의 심연을 봤다. 국일 원장이 꼭 그런 사람일 것이라는 게 아니라 대부분 고시원 원장이 신뢰할 수 없는 존재였다는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다른 일을 하다가 은퇴한 아저씨, 아주머니들로 노후 재테크 개념으로 사업에 뛰어든 거라, 편히 불로소득이나 벌 생각이 우선이지 입실자 안전에 필요한 것들을 신경 쓸 열의나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다.


누차 강조하듯, 이들은 총무가 FM대로 가려고 하면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제동을 걸기가 부지기수다. 속에는 열이면 열 능구렁이가 몇 마리씩 똬리를 틀어서 입실자를 상대로 연막작전에 도가 텄다. 원장들이 뒤에서는 안전에 필수적인 시설에 필요한 큰돈 쓰는 일은 기피하는데도 입실자들은 돈 별로 안 드는 부식 쪼가리 좀 앞에서 제공받았다고 원장을 좋게 평가한다. 냉난방이 인색한 배후에는 원장이 있는데도 총무를 욕하기도 한다.


입실자들도 누가 진짜 자기편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가끔 보면 좀 스톡홀롬 증후군 같아서 섬뜩할 때도 있다. 고시원 거주자들은 도시근로자, 일용직 노동자가 많은데 딱한 처지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이들이 무조건 선하고 협조적인 것은 아니다. 어차피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완전체가 아니라, 시시하고 뭔가 뒤틀려있는 구석 하나쯤은 가진 자존감이 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시원에서 일하는 총무도 이런 것까지 감싸 안기에는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가장 힘든 것은 갑질과 노동 착취다.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서열’을 좋아하면서 아닌 척을 할 때가 있다. 특히 입실자중 아저씨들이 그런 경향이 있는데, 이들은 ‘가족 같은 관계’로 포장한 서열을 총무들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예를 들어 감지기를 교체하기 위해 각 방에 출입해야 하거나, 방에서 담배 피우는 것을 적발해 주의를 줘야 할 때도 행여나 기분 상하실까 사근사근하게 말 한마디 뉘앙스를 살얼음판 걷든 조심해서 꺼내야 한다. 우습게도 인간은 이 작은 고시원에서도 셋 이상만 모이면 정치질을 한다.


내가 전에 일하던 곳을 그만둔 이유는, 방에서 상습적으로 담배를 피우던 장기거주자 아저씨에게 참다못해 경고를 줬더니 ‘어린놈이 아버지뻘에게 싸가지가 없다’며 다른 입실자들에게 내 험담을 하고 원장에게 내쫓으라고 압력을 넣어서다. FM대로 일하고 싶어도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스스로 밀어내기도 한다. 아랫사람이어서는 안 되는 관리자를 아랫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출처: 국일고시원
국일고시원 사무실

현재까지 나온 뉴스들을 보면, 총무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국일고시원 자체는 총무를 따로 쓰진 않은 듯하다. 그런데 대다수 원장은 자기들 가정이 있어서 고시원에 상주하지 않고 총무를 고용해 관리자 역할을 맡긴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원장은 하루 대부분 혹은 밤에 고시원에 없다는 뜻이다. 더 콕 집어 말하면 고시원에서 자다가 불이 나면 입실자들 생명 지켜주는 사람은 대부분 총무지 원장이 아니라는 뜻이다.


현재 고시원에 거주하는 가구 수는 통계상으로 잡히는 것만 15만이다. 내 경험상 실거주자는 최소 34만 명이다. 고시원이 나중에라도 없어지든 어쩌든 간에, 지금 당장 34만 명의 생명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이런데도 관리자로서 총무가 받는 대우는 매우 형편없다. 나의 경우 자는 시간 빼고 14시간을 근로, 근로 대기(업무의 돌발성 때문에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의 구분이 불분명해 발생하는 대기시간) 제공을 한 결과 월 90만 원을 받는다. 당연히 최저임금법 위반이다. 최저임금법대로 다 받으면 최소 월 300만 원은 받아야 한다.


웃긴 건 고시원 원장들은 이 14시간 중 총무가 공부하거나 노는 시간이 많아서 평범한 근로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판례상 고시원 총무도 감시 단속적 근로자(감시 단속 업무가 주 업무여서 근로가 간헐적으로 이루어져 휴게 시간이 많으나, 업무가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탓에 근로와 휴게 시간의 구분이 불분명한 근로자)인 경비원과 유사한 유형으로 근로자성이 인정된다. 근로 대기 시간에 공부를 겸할 수 있다 한들 몸은 고시원에 계속 묶여서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고, 수시로 원장의 지시 간섭을 받기 때문이다.


자기 자식은 넓은 집에서 따뜻한 밥 먹이고, 남의 자식은 24시간 안전하지도 않은 골방에 묶어놓고 90만 원 던져주는 게 사람다운 짓이라고 할 수는 없다. 상당수 고시원 원장들이 이렇다. 말로만 우리 총무님 고생한다고 한다. 정당한 대우를 안 하니 총무직에 소방안전을 책임질만한 세심하고 부지런한 인재가 지원할 리 없다. 어쩌다 했더라도 오래 붙어 있지 못 한다. 일하는 동안에는 대우가 형편없으니 성의 없게 일한다. 결국 입실자들은 계속 위험한 환경에 산다. 반면 극히 드문 경우가 아닌 이상 대부분 고시원 원장은 소득이 상위 10% 수준이다.


그래서 감지기 전량 교체 비용 40만 원이 원장들에게 부담스럽다는 게 나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냥 돈 쓰기 싫거나 무능력하거나 성의가 없는 것이다. 감지기도 제때 손 못 보면 왜 장사를 하나? 이들이 고시원 사업을 시작하려면 기존 고시원을 인수하거나 신축을 해야 한다. 권리금을 주고 인수를 하거나 아예 신축하려면 비용이 1~2억이 든다. 자금 출처가 여윳돈이든 대출이든 비용의 상당 부분은 추후에 다른 사람에게 고시원을 넘길 때 보전 받을 수 있다.


한 달 매출은 방 개수, 환경, 월세, 공실률 등에 따라 1,200~2,000 정도다. 건물 임대료가 보통 한 층에 300~500 정도고, 필자가 일했던 강남 한복판 삼성역 3분 거리 깨끗한 건물에 세든 고시원도 한 층에 450만 원 두 개 층 합쳐 900이었다. 이곳의 월 매출은 1,800이었다. 국일과 비슷한 노후한 건물에서 일했을 때는 임대료가 한 층에 300~400 정도에 규모는 방 60개 정도, 월세가 30 정도라 공실률 20%로 잡아도 월 매출 1,500 정도였다. 물론 고시원마다 구체적인 사정은 다르니까 추정금액과 현실 금액에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출처: 행정안전부
국일고시원 화재 현장 상황점검 나온 김부겸 행안부 장관

결국 매출에서 임대료와 건물관리비를 제외하면, 700~900이 남고 공과금(전기세, 가스비 등)과 비품비(주로 쌀, 김치, 라면값) 합쳐 100~200 정도 든다. 만약 총무에게 관리를 맡기면 인건비로 100이 들고, 사업주는 월 400~700을 순수익으로 가져간다. 삼성역 고시원 원장은 분기별로 세금을 50 정도 내긴 했는데, 이조차도 탈세를 해서 적게 내는 사업주들도 많다.


아, 참. 공무원 여러분은 소방단속만 할 게 아니라 세무감사도 대대적으로 해주시길. 매출을 축소하거나, 손님이 현금영수증 발급해달라고 하면 월세를 더 올려 부르는 원장들도 제법 있다. 세금 문제까지 정리되면, 사업주는 한해 4,500~8,000 정도 순수익을 챙긴다. 이 정도만 봐도 고시원 원장들은 이미 가구소득으로 상위 10%다. 가구구성원 중에 돈 버는 사람이 더 있는 경우도 많고, 고시원을 한군데가 아니라 여러 개를 돌리는 기업형 업자도 많다.


오해하지는 마시라. 단순히 돈을 많이 번다고 이 사람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남한테 빌려주고 잠자리 마련해준 대가로 돈 좀 받는 거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아무리 그래도 자본주의가 ‘약탈적 자본주의’ 수준까지 떨어지는 건 막아야 하지 않냐는 것이다. 재화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안전보장에 필요한 기본적인 장치도 안 갖추고 노동 착취까지 하는 주제에, 한 달 전체 매출에서 400~700을 분배받을 자격이 있을까. 이제 그만 인정하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잔혹한 곳이다. 뷔페식 반찬 쪼가리 같은 우연적인 말단을 볼 게 아니라 제발 좀 그 배후에 움직이는 필연적인 구조를 좀 보자. 스프링클러가 어쨌고 소방법이 저쨌고 간에, 불나면 화재경보 시스템 울리도록 관리 못 했으면 빼박캔트 잘못인 거다. 나는 장기적으로 이 고시원업은 사라져야 하는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인데, 나는 내가 이 총무직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다만 고시원이 대안 없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 누구라도 빈민으로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빈민들을 위한 사회주택을 많이 지어야 할 것이다. 또한 현재 고시원에는 대학생, 의료종사자, 임시 근로자 등이 모텔보다 싼값에 단기로 머물렀다가 떠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현재 고시원들의 일부를 국가가 인수, 개보수해 이동인구를 위한 국공립 게스트하우스로 다수 운영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런 곳에서 새롭게 일할 사람도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고시원 총무라는 나쁜 일자리가 양질의 일자리로 대체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공무원분들. 책상에만 계시고 방어적 일하지만 말고 제발 움직이고 뇌에 충격도 좀 주고 그러시라. 당신들은 현장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우리나라 지금 여유 부릴 때가 아니다. 소방단속, 세무감사, 체불임금 단속. 사회주택 건립. 자꾸 까먹으면 제발 어디다 적어놓기라도 해달라.


마지막으로 동료 국민 여러분, 저는 고시원 원장한테 체불임금 청구 소송 걸어놓으러 가야 해서 이만 글을 줄입니다. 동료 국민 여러분이 모두 헌법 제35조 제3항 “국가는 주택개발정책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가 지켜지는 나라에서 살았으면 좋겠네요.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다음이 있다면, 다음 생에는 고시원 같은 데서 살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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