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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어른'을 만난 것에 대한 단상

조회수 2018. 11. 8. 13: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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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요즘 어른이란 단어가 자꾸 눈에 띈다. 내가 어른 될 나이가 된 건지, 아니면 어른다운 어른을 만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오늘은 내가 아는 한 어른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그때, 우리가 모두 존경했던 그 선배


어제 우리 사무실 바로 전의 대장님께서 중국 측이 주최하는 포럼 참석차 베이징에 오셨다. 지금 1진 선배도 훌륭하지만, 진짜 이런 분이 선배인 게 자랑스러울 정도로 마음도 선하시고 바르신 분이다. 내가 나중에 어떤 어른이 될까 고민해 본다면 가장 롤모델에 가까운 분 아닐까 싶다.


이 선배는 말투부터 행동, 태도, 삶의 자세까지 어느 하나 모나지 않다. 아래 사람도 깔보지 않으신다. 입은 무거우신데 무게를 잡지도 않고, 말이 아예 없지도 않다. 그리고 입보다는 지갑을 시원하게 여시는 스타일이다.


베이징 특파원들은 임기를 마치고 귀임할 때 회사에 상관 없이 동료 중 한 명이 송별사를 써 준다. 그때 다른 회사 선배가 썼던 송별사 글귀가 아직도 생각이 난다.

항상 공손히 두 손을 앞으로 모으시는 선배, 선배를 생각하면 어린아이처럼 맑은 눈망울과 겸손하고 매너 있는 태도, 그리고 조금도 망설임 없이 여는 지갑이 생각납니다.

자꾸 지갑, 지갑 하니 돈이 많아 흥청망청 쓰시는 분 같아 보이겠지만, 그런 의미는 아니다.

출처: 게티이미지

나는 이 선배와 함께 1년여 남짓을 함께 지냈다. 우리는 중국의 차량 5부제 때문에 회사 차를 운행하지 못하는 날마다 같이 택시를 타고 출근했다. 나와 1진 선배는 이 선배가 계시는 동안 단 한 번도 택시비를 내 본 적이 없다. 한 번은 우리가 택시비를 내려고 했다가 그 온화한 얼굴로 혼이 난 적도 있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부임하신 선배는 귀임하실 때 후임이 정해지지 않은 채 우리 둘을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정말 안타깝고 미안해 하셨다. 한국에 가신 후에도 우리 둘이 ‘김정은 3연방 방중’같이 큰 일거리를 만나 전전긍긍할 때면 죄인이라도 된 마냥 메시지를 보내 사무실 상황은 어떤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꼼꼼히 살피시곤 했다.


그런 분을 우리 모두 존경했다. 우리 뿐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회식 때면 영상통화를 걸어 안부를 물을 정도로, 우리 사무실 전체가 따르던 그런 어른이었다.


어쨌든 어제는 거의 8개월 만에 나와 1진 선배와 재회한 것이었다. 우리는 반가운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외부 손님이 낀 1차 자리가 끝났을 때 우리는 한 잔만 더 하자고 선배를 붙잡았다. 손을 내저으시는 선배에게 커피라도 마시자고 사정했지만, 선배는 우리가 내일도 일을 해야 하고 본인도 피곤하니 숙소로 돌아가겠다고 끝끝내 뿌리치셨다. 고작 9시였는데 말이다.


사실 그분의 평소 소신이 그렇다. 처음 내가 베이징에 왔을 때 우리 회사 임원진 전체가 약속이나 한 듯 순서대로 돌아가며 베이징을 방문했고, 그 중 몇몇은 우리를 1, 2, 3, 4차 술자리까지 끌고 다니며 말 그대로 ‘술고문’을 했다.


당시만 해도 사드 정국이 한창이었던 데다 1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둬서 몹시 바쁠 때였는데도 출장의 흥에 취한 그들은 그리했던 것이다. 그때 함께 술자리를 돈 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선배는 조용히 말했다.

뭐 바쁜 애들 붙잡고 저럴까 몰라. 왔으면 그냥 조용히 있다 가지. 정 아쉬우면 호텔 로비로 불러 커피나 한 잔 사주고, 금일봉이나 주고 가면 될 것을, 참.
출처: OtvN
"어쩌다 어른"이 넘치는 시대

사람이 말은 쉽게 뱉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지키기는 정말 쉽지 않다. 나 역시도 ‘이 선배가 과연 그때 하신 말을 지킬까’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내 일말의 의구심이 부끄러울 정도로 역시는 역시였다.


어제 오후 4시 30분 하이난발 베이징행 항공편으로 일행과 함께 베이징에 도착한 선배를 우리는 회사 차로 직접 모시고 싶었다. 어차피 어제는 내가 공항에서 일했기 때문에, 잠시만 대기하면 큰 수고 할 것도 없는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선배는 절대 기다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일행과 함께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겠노라 고집을 피우시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맑고 온화한 선배의 얼굴은 거저 얻어진 게 아니었다. 나이가 들수록 그 사람의 삶은 얼굴에 새겨진다고 나는 믿는다.



선배, 같이 저녁 먹어요, 오늘은 꼭


우리는 오늘 선배의 마지막 일정인 인민대회당 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려 이모님의 밥상을 준비해 두고 선배를 모셔 오기로 했다. 평소 좋아하셨던 보이차도 1진 선배가 몰래 준비해두셨다. 나는 베이징 특파원계 운전사답게 일정이 끝나기를 기다려 부리나케 모셔올 생각이다. 분명 인민대회당 앞에서 안 가려는 선배와 모시려는 내가 옥신각신 기분 좋은 실랑이를 해야 할 것이다.


나도 나중에 이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후배들이 모시고 싶어 안달이 날 정도로 그리운 어른 말이다.


선배, 선배 계실 때 매일 함께 LG쌍둥이빌딩 지하에서 아침 먹던 일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선배 가시고는 그 식당에서 아침을 한 번도 안 먹었어요. 식당 카드도 보증금 환급 안 받고 책상 서랍에 기념으로 잘 간직하고 있어요. 아침 먹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제 고민도 들어주셔서 감사했어요. 20년 가까이 차이나는 후배인데 말이에요.


내가 타는 똥차 위험하다며 한국 돌아가신 후의 본인 자리 부탁은 안 하시고 사무실 차 바꿔달라고 하신 것도 너무 감사해요.


언행일치 안 하셔도 좋으니까 오늘은 꼭 같이 점심, 저녁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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