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의 새로운 바람, '오프너'의 개념을 정리해보았다

조회수 2018. 11. 7. 12: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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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선발투수가 쩔면 안 써도 되는 전략이다.

세상은 항상 변화한다. 야구도 그렇다.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불었던 가장 큰 변화의 바람을 꼽자면 많은 사람이 ‘오프너’를 꼽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 오프너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 간단히 오프너의 개념을 정리해본다.

탬파베이 레이스의 투수, 세르지오 로모.

올해 탬파베이 레이스의 경기를 유심히 봤다면 경기 막판에나 나와야 할 로모가 1회에 공을 던지는 신기한 모습을 몇 번 보았을 거다. 그렇게 구원투수가 선발로 나와 1~2이닝을 던지고 내려간다. “어 이거 크보에서 김성근 감독님이 많이 보여주셨던 그거 아닌가요?”라고 생각한다면 오프너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벌떼 투수운영(MLB에서도 요즘 늘어나는 불펜 데이)과 오프너 전략은 차이가 있다. 벌떼 투수운영은 선발투수가 없이 구원진들이 계속 조금씩 이어던지기를 하는 것이지만 오프너는 오프너가 내려간 후에 ‘진짜 선발투수’가 등장한다.


즉 기존의 선발-구원-구원 순서가 아니라, 오프너(구원)-선발-구원 순으로 투수를 기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오프너 전략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탬파베이 레이스는 30개 팀 중 경기당 평균 실점 5위(지명타자 제도가 있는 아메리칸리그 팀 중에선 2위)의 대단한 기록을 남겼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기록일까. 타자에게 가장 유리한 환경인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나온 성적일 뿐 아니라, 탬파베이엔 100이닝 이상 던진 투수가 단 한 명(블레이크 스넬)밖에 없으며, 20경기 이상 선발 등판한 선수가 앞서 말한 블레이크 스넬과 라인 스타넥 둘밖에 없다.


그리고 스타넥은 올 시즌 59경기(선발 29)에 나와 66.1이닝을 던지는 데 그쳤다. 선발 등판은 했지만 말 그대로 오프너였지 긴 이닝을 던진 적이 없었다는 소리다. 팀에 고전적인 역할을 해주는 선발투수가 거의 없는(그나마 있던 선발들도 트레이드 데드라인때 다 팔아치우고) 상황에서 저런 기록을 남겼다는 것이다.

탬파베이 레이스의 투수, 라인 스타넥.

여기에서 뭐하러 구원투수가 선발투수보다 먼저 나오는 걸까? 그래서 그거랑 팀 실점을 억제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이 생길 법하다. 간단하다. 그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게 왜 효율적인지는 숫자 두 개를 보면 된다.

  1. 메이저리그에서 점수가 가장 많이 나는 이닝은 1회다. 2,657점이 났다. 1회를 제외하곤 2,600점 이상 난 이닝은 없다. 아마도 1회에 가장 강한 타자들이 나오기 때문이며, 투수들의 몸이 아직 덜 풀렸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올 것이다. 9회를 제외하고(홈팀이 이기고 있으면 9회를 안 하니까) 가장 점수가 덜 나는 이닝은 2회, 그다음은 3회다. 가장 강한 타자들의 고비를 넘고 나면 당연한 말이지만 득점 확률은 떨어진다.
  2. 선발투수의 공은 타순이 돌수록 타자의 눈에 익는다. 타자가 한 투수를 상대로 세 번째 타석에 들어설 경우 첫 번째 타석보다 OPS가 1할에 살짝 못 미치게 올라간다.

그래서 탬파베이는 이렇게 생각했다. 1~2회에 구위가 좋은 투수를 투입해 전력투구로 상위타선을 상대한다. 그리고 하위타선을 상대로 ‘진짜 선발 투수’를 등판시킨다. 이 선수는 강한 상위타선을 한 번 상대하지 않기 때문에 몸이 덜 풀린 상황에서도 약한 타자들을 상대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피칭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타순이 돌아도 하위타선을 세 번 상대하지 웬만큼 던져선 상위타선을 세 번이나 상대할 일도 거의 없다. 기존처럼 투수를 운용할 경우 선발투수가 강한 상위타선을 세 번 상대하고, 하위타선이 돌아오면 이제 투구 수가 차서 마운드를 내려가고 쌩쌩한 구원투수가 나와 약한 하위타선을 상대하는 경우가 많다.


순서를 뒤집으니 쌩쌩한 구원투수가 하위타선을 상대하는 낭비도 줄어들게 되었다. 물론 선발투수가 쩔어서 상위타선이든 하위타선이든 다 잘 잡아낸다면 굳이 오프너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탬파베이도 사이영상 후보 블레이크 스넬이 나오는 날엔 오프너를 사용하지 않는다.

탬파베이 레이스의 투수, 블레이크 스넬.

KBO 리그에서도 오프너 전략을 사용할 수 있을까?


내 답은 “글쎄 잘 모르겠는데”다. 메이저리그에서 1회에 유의미하게 많은 점수가 나는 이유는 1회에 가장 잘 치는 타자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잘 치는 타자들이 한 타석이라도 더 많이 나오는 것이 팀에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AL MVP를 예약해둔 리그 wOBA 1위인 무키 베츠는 1번 타자다. wOBA 2위이자 몇 년 동안 리그 최고의 타자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마이크 트라웃은 2번 타자다. NL MVP가 유력한 크리스챤 옐릭도 2번 타자다.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2번 타자들의 평균 OPS는 0.769로 5번 타자들(0.759)보다 높다.


반면 크보에서 가장 뛰어난 타자들은 주로 4번에 포진한다. 리그 wOBA 1위 박병호, 2위 김재환, 3위 러프가 모두 4번 타자며 4위 양의지는 더 뒤에 나온다. 아직 잘 치는 타자가 한 타석이라도 더 많이 나오는 것이 이득이라는 사실이 널리 퍼져있지 않다. 당장 가장 잘 치는 타자가 클린업이 아니라 2번타자로 나온다면 그걸 받아들일 팬들이 얼마나 될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덕분에 KBO 리그에서 가장 많이 득점이 나오는 이닝은 1회가 아니다.


또한 오프너 전략을 쓰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투수진의 뎁스가 중요하다. 탬파베이의 경우는 남들이 다 12인으로 투수를 운영할 때 13인으로 투수진을 돌렸다. 사실 탬파베이는 굳이 오프너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넉넉한 뎁스를 바탕으로 적어도 리그 평균보다 낮은 실점을 기록했을 팀이기도 하다.


타고투저가 극에 달한 현 크보에 상대 팀에서 가장 강한 타자들을 확실하게 잡아낼 구원투수를 여러 명 데리고 있는 팀은 사실상 없다. 바람으로는 응원팀 두산에서 김강률을 오프너로 쓰고 이영하나 유희관을 진짜 선발로 쓰는 오프너 작전을 쓰면 괜찮겠다 싶기는 하지만 어차피 그거 안 해도 우승하는 팀에서 굳이 안 하던 거 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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