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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이가 낯선 사람에게 하소연해 취업한 이야기

조회수 2018. 11. 7. 10: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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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취준생인데요. 지금 아저씨가 말 안 해주면 저 떨어져요."

눈물 어린 내 취업기


대학 졸업을 대여섯 달 앞두고, 어떤 기업에 취직할까 알아봤더니 갈 수 있는 곳이 아무 데도 없었다. 가능성이 작다는 문제가 아니라 지원 자체가 불가능했다.


내 졸업 학점은 2.75, 정치외교학과 단일 전공, 토익 점수 없음, 자격증은 딸랑 운전면허증, 인턴 혹은 대외활동 경험도 전혀 없었다. 당시 기업들은 학점 3.0 이상만 입사 지원이 가능했으며, 상경대 전공을 수료했어야 했다. 학점을 안 보는 특수 직무는 전공과 자격증을 따졌다. 내가 지원할 수 있는 기업이란 세상에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이때의 내 마음.jpg

이런 사실을 왜 이제야 알았지? 평생 집에서 백수로 ‘존재’만 하다가 세상을 뜰 생각을 하니 우울해졌다. 슬픈 마음에 술잔을 기울이며 친구에게 하소연했더니 친구 왈,

스펙만 보면 세상과 싸우자는 느낌인걸. 반자본주의자 같아.

… 그래. 차라리 반자본주의자 콘셉트로 하고 다니면 정신승리라도 되려나? 그때 친구가 제안한다.

혹시 신문사 입사는 어때? 신문사는 학점 안 따진대. 거기나 써봐.

응? 신문사? 친구는 서류-필기시험(상식+글쓰기)-실무전형-면접으로 이어지는 당시 언론사 시험 전형을 알려주며, 필기시험에서 대거 걸러지는 탓에 서류는 까다롭지 않았다고 말했다. 평소 TMI 기질이 있는 나라면 상식 시험도 할 만하지 않겠느냐. 글 좀 그럴듯하게 쓰면 신문사에 취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두 예비 졸업생의 무식하기 그지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땐 그럴듯하게 들렸고, 세상에서 가장 허섭한 이유로 언론사 지망생 생활이 시작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연.하.게.도 말처럼 쉽지 않았다. 나보다 똑똑하고 글 잘 쓰는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언론사 스터디에 가입했는데 언론사 스터디는 같은 주제에 대해 글을 쓴 후 돌려보며 의견을 나누는, 문예창작과의 합평 비슷한 시간을 갖는다. 다른 스터디원들이 쓴 글들은 시대의 트렌드를 잡아내 적절한 비유로 설명한 후 날카로운 통찰을 제시했다. 반면 내 글은 우유부단한 내 성격을 닮아 우물쭈물하고 모호했다.

개복치 님 글은 흐릿해요. 적어도 신문사에서 원하는 글은 아닌 것 같아요. 굳이 신문사가 아니더라도 문제가 있는 글이지만요.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뼈를 맞는 기분이었다. 하긴 언론사 지망생 대부분은 기자라는 꿈을 갖고 오래도록 준비해왔다. “학점이 모자라니 기자를 해야겠다” 따위의 지원자가 비벼볼 시험이 애초에 아니었던 것이다. 지원자는 또 얼마나 많은지 신문사마다 5~7명의 취재기자를 뽑는데 지원자가 수백 명이었다. 학교 교실을 빌려 필기시험을 볼 정도였다.

한 바퀴 쭉 떨어지고, 또 반 바퀴 쭉 탈락하고…

당시 언론사 시험은 흔히 ‘지하철 2호선’에 비유됐다. 시즌이 되면 격주 간격으로 언론사들 시험이 차례로 이어진다. A사 시험이 끝나면 B사 시험, B사 시험이 끝나면 다시 C사 시험. 한 해 몽땅 떨어지면 다시 그다음 해 차례대로 시험 봐야 한다. 매년 같은 코스를 순환한다는 의미에서 지하철 2호선인 셈이다.


1년 반 동안 한 바퀴 반을 돌며 11~12번 정도의 필기시험을 치렀고 다 떨어졌다. 결과 확인 웹페이지엔 늘 “지원자께선 다음 전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란 문구가 떴다. 탈락이 오히려 익숙해진 어느 날 아침, 비몽사몽 졸려 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필기 전형에 합격하였으니 다음 전형을 준비하라는 내용이었다.

음냐음냐. 필기 붙으면 문자도 오는구나… 다음 전형?

그렇다. 얼마 전 치른 모 신문사 필기시험에 합격했다는 문자다. 충격을 씻어내고 마음을 다잡았다. 드디어 이놈의 취준도 끝나는 건가? 아냐, 부담 갖지 말자. 어떤 과정이든 순서가 있는 법이다. 조급할 필요 없다. 한 스텝 한 스텝 익혀 놓으면 언젠가 내게도 기회는 온다! 그런 마음으로 시험 당일 도착한 언론사 사무실에서.

덜덜덜덜덜
제발 붙여주세요. 저 백수 그만하고 제대로 살고 싶어요. 제에발.

간절해지고 말았다. 1년 반째 보고 있는 취준생들의 찌든 얼굴도 짜증 났고, 감독관으로 들어온 선배가 인사한 순간 억지 미소를 짓는 나 자신도 비참했다. 평생 운이라곤 없어왔으나 이날 하루만큼은 운이란 운이 터졌으면 하는 바람이 가득했다.


‘실무전형’은 진짜 기자처럼 취재해 기사를 쓰는 시험이다. 신문사 인사담당자는 서울 내 지역 6개를 제시한 후 아무 장소나 골라 사람 이야기 묻어나는 기사를 취재해 쓰라고 지시했다. 서울역, 남대문시장… 나머지 장소는 잊어버렸다. 내가 찾은 장소가 저 두 곳이어서 이곳만 기억한다. 기사를 취재해 마감하는 시간은 3시간 정도. 급했다. 서울역이 왠지 사람 냄새가 묻어있는 ‘느낌’이 들어 거기로 향했다.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한 후 ‘다큐 3일’처럼 담담하게 풀어볼까? 주제를 미리 정하려 하지 말고 생생한 목소리들 속에서 주제를 찾아보는 거야!

여기서 막간을 이용한 언론사 실무전형 팁! 실무시험은 이렇게 하면 절대로 안 된다. 미리 주제를 생각하고 취재 대상을 정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멍 때리고 앉아 있게 된다. 세상은 넓은 곳이지만 그곳에서 무언가를 보려면 내가 무엇을 보려고 하는지 먼저 알아야 하는 법. 취재의 각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날 내가 겪었던 가장 큰 고통은 취재의 각이 없는 게 아니었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위기였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낯선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 그런 건 내 사전에 없다. 차라리 죽고 말지. 그러나 백수를 탈출하려면 해야겠다.

지금이야 웃기게 쓰지 당시엔 정말이지

서울역, 또각또각 기차로 향하던 여성분께 다가가다가 시선이 살짝 마주쳤는데 ‘설마 나한테 오는 거야’의 눈빛이기에 식겁하고 떨어졌다. 대합실 의자에 앉아 있던 20대 남자분에게 접근해 “안녕하세요. 저는” 하자마자 그분이 이어폰을 끼우기에 발걸음을 돌렸다. 나이 든 분들에겐 말벗해드릴 것처럼 다가가면 통하지 않을까? 안 통하더라. “○○신문사의 개복치입니다”라고 한 순간 표정이 차갑게 변한다.


담배를 한 대 피우며 후속책을 고민했다. 여러 사람에게 말을 붙인다는 행위는 불가능하다. 이미 충격받아 쓰러질 지경이다. 딱 한 명으로 취재가 해결돼야 한다. 그리고 내가 잘 아는 소재를 택해야 한다. 당시 나는 취미로 만년필 수집을 하고 있었고, 남대문 시장에 오래된 만년필 가게가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만년필은 왠지 아날로그하고 인간미가 있지 않을까? 만년필 가게 주인아저씨를 만나 ‘만년필과 삶’류의 기사를 쓰자, 라는 촌스런 생각에 남대문 시장으로 장소를 바꿨다.

장사도 안 되는데 어디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 시간 없으니까 빨리 가.

남대문 시장 만년필 가게를 돌며 찰지게 까였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시절은 아니라 낮 시간이 꽤 한가했는데도, 다들 매몰찼다. 내가 사람과의 만남을 힘들어하는 이유가 관계에서의 감정이 잘 상해서다. “혹시 금요일 저녁 시간 있어?” 이랬는데 상대가 약속 있다고 하면 “앗하하 괜찮아. 하긴 나도 시간이 애매했어”라고 한 후 속으로 엄청 슬퍼하는 스타일이다.


태어나서 가장 많은 거절을 당한 것이 이날이다. 줄줄이 모여 있는 만년필 가게를 옆집 옆집 돌아가면서 거절당했다. “저는 ○○신문사의” “꺼져” “안녕하세요!” “안녕 안 해 꺼져” “오늘 날씨 참 덥죠?” “응. 덥네. 꺼져” 상인분들은 갑자기 다가오는 낯선 이를 경계했다. 그리고 당시엔 몰랐지만 아마도 기자란 직업인 자체를 싫어하지 않았나 싶다.

여하튼 까이고 또 까이며 이제 꿈도 희망도 없다. 터벅터벅 걷는데 딱 봐도 사연 많을 것 같은 낡은 만년필 가게가 눈앞에 나타났다. 성미 고약해 보이는 60대 주인장이 앉아 있다. 그냥 안전한 내 침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또 그 세월을 보낼 순 없어! 주인장에게 다가가 입을 뗐다.

저 취준생인데요. 지금 신문사 시험 보고 있거든요. 가게 아저씨 취재하는 시험이에요. 아저씨가 말 안 해주면 저 떨어져요.

내 말을 들은 주인장 눈동자가 흔들린다. 목소리도 함께 떨린다. “아… 아니 그게 왜 내 탓이야. 참, 나 원” 5초 정도 침묵하더니 “그래서 내가 뭘 해주면 되는데?” 막막했던 심정이 뻥 뚫렸다. 세상이 그렇게 차가운 곳만은 아니라는 마음이 들었다.


“난 그냥 장사만 해봐서 해줄 이야기가 별로 없어”라던 아저씨는, “사실 우리 가게에 유명한 소설가가 단골이었지”라는 문인의 인간미 넘치는 에피소드, 몽블O 만년필을 세트로 맞춰 갔다가 잉크 안 나온다며 항의하던 조직폭력배들 스토리(조폭이 웬 만년필? 예전엔 부의 상징이기에 보스급이 사가기도 했다고), 희귀 만년필을 둘러싼 수집가들의 각축전 등 1970~1980년대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온갖 이야기를 풀어냈다.


오랜 구력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훈훈하고 신선했다. 귀를 떼지 못하며 듣다가 시계를 보고 정신 차렸다. 기사 작성을 시작했다. 별다르게 꾸밀 필요도 없었다. 충분히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실무전형엔 합격했다.

이 사진은 개복치 치어입니다. 99%의 확률로 목숨을 잃죠 ㅠ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일은, 태어난 후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 그 일은 ‘낯선 사람과 소통하는 일’이다. 낯선 사람에게 계속 말을 붙여야 하는 직업이 있다면, 연봉을 1억을 줘도 택할 수 없다.그렇지만 종일 타인과 부대꼈던 그날 하루는 내게 일종의 비급처럼 남아 있다. 극적인 체험으로 얻은 소중한 비급이다. 내가 언젠가 사람에 치이고 치여 “세상 사람 다 사라져!”의 심정이 됐을 때 비급을 펼쳐보면 거기에 이렇게 써 있는 것이다.

조금만 더 다가가 봐라. 아주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믿게 될 것 같다. 이상 눈물 어린 취업기 끝.



P.S.


하지만 아직 면접이 남아 있었는데… 미리 고백하자면 면접 날 난 우황청심환을 먹었음에도 면접하던 건물 화장실에 토했다.


원문: 주간 개복치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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