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미치광이의 콘텐츠 제작일지

조회수 2018. 12. 4. 11: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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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일을 하고 싶다

요일(yoil)이라는 패션 관련 서비스 회사와 일하며 겪은 점, 제가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봅니다. 깁니다.

1. 재미있어 보여서 일을 시작하다


나는 돈과 상관없이 미션이 즐거워야 일을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창 패션과 명품에 관심이 생겼던 터에 패션 관련 서비스를 하는 회사에 문의가 들어오니 그 일을 해야 할 명분이 충분히 주어졌다. 그래서 조건을 말씀드렸다. 우리가 다른 외주는 받지 않을 테니 이 일만 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었으면 좋겠다고. 요일에서는 흔쾌히 승낙해주었고 그렇게 패션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다.



2. 시작은 했지만 걱정은 태산


사실 카드뉴스를 만드는 일은 내가 몇 년간 해왔던 일이라 그리 어렵지 않게 생각했지만, 패션 카테고리가 페이스북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초반에 걱정이 많아 전문가들을 찾아다니고, 조언을 구했다. 긍정적으로 얘기해 주시는 분들도 많았지만, 어려울 거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어서 걱정이 되었고 ‘혹시 환불해드려야 하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쉽게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즐기는 편이기에 불안 반, 긴장 반의 마음으로 일에 뛰어들게 되었다.



3. 미션이 어렵거나 말거나 즐거웠던 시간


초반에 어떤 콘텐츠를 만들지 고민하는 시간은 너무 즐거웠다. 패션과 관련된 페이지 수십 개를 찾아내 모두 구독을 눌렀고, 며칠 밤새 콘텐츠를 수집했다. 어떤 콘텐츠가 사람들에게 반응이 좋고, 요즘은 어떤 브랜드가 뜨고, 사람들은 어떤 단어로 말하고, 어디서 노는지 찾아내 모든 커뮤니티를 가입하고, 주변에 패션 좀 안다 싶은 사람들을 찾아 직접 인터뷰를 하고, 페북에 유명한 패션 관련 분들을 찾아서 팔로우하면서 그들의 삶으로 들어갔다.



4. 만들고 싶은 콘텐츠 리스트만 50개


일은 항상 시작하기 전이 가장 즐겁다. 잘될 것 같았고, 올리기만 하면 대박이 날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착각에 빠졌다. 그리고 초반에 내가 테스트하고 싶은 콘텐츠 리스트를 50개 정도 추렸다. 이제 시작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참 즐거울 것만 같았다.



5. 첫 개봉작… 참담한 성과


처음으로 내가 만든 콘텐츠가 올라갔을 때 좋아요를 열몇 개밖에 받지 못했지만 크게 좌절하지는 않았다. 페이지 구독자는 3만 명밖에 안 됐고, 처음이니까 다음 게 있잖아? 나에게는 콘텐츠 리스트가 50개나 있는걸. 하지만 그다음 결과도 너무 참담했다. 내가 생각한 콘텐츠들이 무참히 깨져 갈 때 밥맛을 잃어갔다. 왜 내가 생각한 것들이 다 안 되는 거지?


첫 성적, 그다음 성적 F를 따발총으로 맞고 나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원래는 콘텐츠를 올린 후 반응을 분 단위로 고쳐보던 내가 반응을 볼 수조차 없게 되었다. 저녁을 할 기력조차 내지 못해 집의 4살짜리 아기는 2주일 내내 같은 미역국만 먹었다. 아이에게 밥을 먹이면서도 잠을 자면서도 씻으면서도 머릿속은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너무 참담했다. 살이 쭉쭉 빠져 2주일 만에 3kg이 빠져버렸다. 밥을 먹을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_상태.jpg

6. 갑자기 들어온 요일에서의 미팅


요일에서 이사님이 잠깐 보자고 하셨다. 우리는 계약 이후로 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만나자고 하니 잠이 또 안 왔다. 나는 앙상해져 가고 잠도 못 자고 콘텐츠는 반응이 좋지 않은데, 만나야 한다니 부담감이 커졌다. 그래서 지금 상황에 대한 팩트를 정리한 파일을 준비하고 다음 날 간단하게 브리핑했다.


이사님과 담당자인 경상 님은 만나서 아무것도 묻지 않고 신사에서 가장 비싼 쌀국수집에서 식사를 사주시고, 신사에서 가장 유명한 디저트 가게로 우리를 데려갔다. 맛있게 먹을 수가 없었다. 브리핑하는 내내 마음이 조마조마했지만, 이사님은 너무 걱정하지 말고 초반에 세웠던 계획 그대로 실행해 보라고, 그리고 가끔 이렇게 만나자고만 하셨다.



7. 셀프 채찍질


요일과 미팅 후 내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조언을 해주셨고, 너무 급하게 하지 않아도 좋다는 이사님 말씀에 마음의 평화가 조금 찾아왔다. 그래도 무조건 첫 달 안에 성과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그냥 스스로를 용서하기 힘들었다. 내가 왜 성적을 내지 못하는가.


그래서 그동안 아껴두었던 카드를 꺼냈다. 이제까지 내가 해왔던, 가장 자신 있는 스타일의 스토리텔링형 콘텐츠를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다시 커뮤니티에 들어가 가장 핫한 브랜드 휠라를 끄집어내서 휠라가 요즘 왜 뜨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보았다.



8. 남 따라 하지 말고 내가 잘하는 걸 해야


패션이라는 분야에 처음 뛰어들면서 패션 관련 콘텐츠를 최대한 많이 접했다. 그러면서 기존의 콘텐츠 구성을 따라 했는데 그런 류의 콘텐츠는 반응이 좋지 않았다. 휠라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 때는 기존에 내가 만들던 스토리형 구조에 휠라라는 브랜드만 얹었다.


‘이것조차 안 되면 나는 퇴물이다’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일주일 내내 휠라와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찾아보고, 휠라를 사람들이 얼마나 열광하는지 피부로 느끼고, 같은 콘텐츠를 100번씩 다시 써가며 밤새 수정하고 고치고 고쳤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을 뒤로하고 콘텐츠를 업로드 했다.


근데 이게 웬걸? 라이크가 2,000개나 나온 것이다. 처음으로 천 단위 라이크를 받았다. 갑자기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지금까지 고생한 것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와, 진짜 나 아직 감 안 죽었나 본데?

9. 휠라는 되고 타미는 왜 안 돼?


그다음 주제로 타미힐피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타미 이야기는 라이크가 백 단위로 훅 떨어졌다. 또다시 우울해졌다. 밥을 먹는 내 자신을 책망했다. ‘나 같은 건 먹을 자격조차 없어’라며 스스로를 비난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다. 죽고 싶다는 말을 하루에 100번씩 외쳤다. 하지만 그다음 주 콘텐츠를 만들어야 해서 죽고 싶다 남발하면서도 콘텐츠를 쥐어짰다.



10. 자극적인 콘텐츠는 역시 백발백중! 하지만…


그다음 편은 슈프림 이야기였다. 반응이 정말 좋았다. 도달이 50만을 넘었는데, 댓글이 600개나 달리고 그중 일부가 악플이었다. 내가 성과를 위해서 너무 자극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도달 수가 쭉쭉 올라가는 것을 보며 기뻤지만 장마다 달린 엄청난 악플을 보면서 또다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았다. 성과를 위해 내가 선을 넘은 기분이었다. 2주 동안 댓글을 볼 수 없었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또다시 잠을 못 잤고 스트레스가 심해 구토를 조금 했다.



11. 운동을 시작하다


밥을 먹지 못하거나 잠을 자지 못하면서 체력이 고갈되어가고 뇌가 힘을 내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매번 시험대 위에 올려졌고, 참을 수 없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즈음 콘텐츠를 만들다가 글자가 잘 안 보였고, 가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걸 느꼈다. 이러다가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운동했는데, 나중에 정신적 버티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

12. 콘텐츠 성공 방정식은 따로 있어


슈프림 이후로 큰 상처를 받고 조금 더 진지하게 콘텐츠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주제이면서도 확실한 셀링포인트가 있는 소재를 찾는 데 집중했다. 물론 그런 소재는 많지 않았지만 꼭 해보고 싶은 이야기를 발견했고 그걸 이야기로 만들었다. 그리고 약 2주 동안 콘텐츠를 만들었다.


슈프림 타격이 너무 커서 한 주 쉬고 그다음 주에 콘텐츠가 올라갔는데 요일 측에서는 충분히 배려해주었다. 그렇게 탄생한 이야기, oioi 브랜드 성공 스토리. 콘텐츠가 올라가자 1시간 만에 좋아요가 600개가 찍혔다. 와. 이번에는 왠지 느낌이 좋았다. 좋아요 5,000개 넘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13. 좋아요 1만 개 드디어 달성하다


자고 일어났는데 게시물에 좋아요가 8,000개 달렸다. 계속 좋아요가 올라갔다. 조금씩, 느리게, 천천히, 하지만 계속해서 쉼 없이 좋아요가 달렸다. 그날 오후 좋아요 1만을 넘고서 남편에게 전화했다. 오늘 달리자! 일이 끝난 남편이랑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술을 미친듯이 먹었다. 진짜 토할 정도로 먹고, 외쳤다. 나 아직 안 죽었다!



14. 매번 시험대 위에


그다음에 올린 콘텐츠는 또 반응이 좋지 않았다. 내가 너무 착한 콘텐츠로 승부했기 때문일까? 또다시 불안감에 휩싸였다. 하지만 밥을 먹기는 했다. 앞으로 남은 계약 기간 동안 콘텐츠를 만들어야 했다. 운동하고 있었기에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강해졌다.


이번에는 최근에 내가 가장 관심이 생긴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구찌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내가 너무 사랑과 애정을 담아서 만들었는지 반응이 좋았다. 라이크는 5,000개 정도 받았고, 이제는 이 롤러코스터를 즐겼다. 떨어졌다가 올라갔다가. 정말 땅끝을 치고 천장을 뚫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이제는 감을 좀 잡았기 때문.

15. 국뽕마케팅 체험기


그쯤에서 요일에서 만들고 싶은 주제가 있는데 그걸로 만들어보자고 연락이 왔다. 반신반의하면서 만들었다. 아무리 한국인 정서에 국뽕 마케팅이 먹힌다고 하지만, 잘될까 싶었지만 그래도 담담히 만들었다. 이쯤에서 스토리를 짤 때 녹음기를 활용해서 쉼 없이 스토리를 읽고 듣고 수정했다. 집중이 안 돼도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이제는 안될 것 같아도 쥐어짜서 콘텐츠를 만드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마침내 요일에서 처음으로 정해준 콘텐츠가 올라갔다. 기대 이상으로 정말 많은 사람이 좋아요를 눌렀다. 좋아요가 8,000을 넘겼다. 너무 기뻤다. 생각지도 못했던 콘텐츠가 반응이 좋았던 것. 반응이 좋은 것과 별개로 본사에서 콘텐츠를 내려달라는 요청이 왔다. 라이크 8,000개에 댓글 4,000개짜리 콘텐츠는 아쉽게도 숨김으로 바꿔야 했다.



16. 박수 칠 때 떠나고 싶었지만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서 브랜드의 비밀을 밝혀낸 콘텐츠를 만들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요일 팀과 만나서 콘텐츠를 만들었고, 기대 만발이었고, 해당 콘텐츠를 퍼트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올린 지 30분 만에 브랜드에서 내려달라고 다이렉트로 연락이 왔다. 해당 콘텐츠를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나 보다. 박수 칠 때 떠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콘텐츠는 끝을 보지 못하고, 9개의 콘텐츠를 끝으로 요일 일정을 마무리했다.

대신 박수 보냅니다

정말 쉼 없이 콘텐츠를 만들었다


자고 일어나서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야 할지 고민했다. 꿈속에서도 스토리를 만드는 나를 발견했다. 이렇게 규칙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보는 것도 처음이어서 단기간에 정말 많은 성장을 이뤘다. 그러면서 돈 주고 살 수 없는 좋은 경험을 했는데, 그중 최고를 꼽자면 다음의 두 가지다.


자율성과 책임, 크리에이터에게는 너무 중요해


이제까지 좋은 클라이언트를 만나와서 큰 어려움 없이 다양한 일을 해왔는데, 요일에서 일하며 처음으로 크리에이티브의 자율성과 책임에 대한 것을 배웠다. 요일에서는 처음 미팅할 때부터 최대한 만나지 않으면서 일하고, 우리가 그 어떤 피드백도 드리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그렇게 할 거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매번 외주 일을 해와서 컨펌 받는 삶에 익숙했던 나는 적응이 안 됐다. 그래서 초반에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었지만, 덕분에 자유롭게 이것저것 시도할 수 있었고, 내가 스스로 더 알아서 고객 일을 내 일처럼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나에게 모든 자유를 안겨줬다. 그러니 성과를 만들어내야 했다. 압박에 쫓겼지만 너무 자유로웠다.


그리고 결국 내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했을 때 자율과 책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지금은 확신한다. 좋은 콘텐츠는 만드는 이에게 자율성과 책임감이 동시에 부여되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일할 때 자신도 더욱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런 마인드의 회사인 요일과 함께 일할 수 있어 너무 감사했다.


챌린지해야 내 삶이 다채로워진다


사업을 꽤 오래 했다. 손가락 빨 때도 있었고 많은 돈을 벌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항상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아프리카TV BJ를 할 때도, 갑자기 1,000명 모으는 행사를 준비할 때도, 드라마작가 공부를 하다 때려치우고 앱 기획에 뛰어들 때도, 요일과 일하기로 결심했을 때도, 매번 하지 않은 일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호기심과 재미로 일을 시작하는데 항상 성과에 집착하기 때문에 과정 자체는 온전히 즐길 수가 없었다. 나에게 너무 고통스러웠고, 막대한 비용으로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매번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내가 누릴 수 있는 삶의 카테고리가 넓어진다.


예를 들면 패션에 1도 관심 없던 내가 사람들이 요즘 무엇을 입었는지 보게 되고, 어떤 브랜드가 뜨고 지는지, 디자이너들은 어떤 마인드로 작품을 만드는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지고 다채로워진다. 흰색에서 시작했던 내 삶이 점점 다양한 색으로 채워지는 기분이다.

칼 라거펠트는 80세의 나이에도 다양한 활동을 한다. 갑자기 사진작가나 앵커로 활동하기도 하고, 표지모델도 되었다가, 성우로 변신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수십 년째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를 영위한다. 칼 할배는 자신은 이미 지나버린 일은 절대 돌아보지 않고, 이미 달성한 목표만큼 지루한 일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매번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항상 말한다.

내 생애 봄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나도 그처럼 살고 싶다. 내가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일이라도 좋고, 전혀 모르는 분야를 뛰어들어도 좋고, 일하다가 스트레스받아서 밥을 먹지 못해도 좋고 토할 것 같아도 상관없다. 루틴한 일, 안정적인 일보다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일을 찾아 결국은 내가 끝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성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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