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조사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조회수 2018. 10. 29.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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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조사 불참으로 끊어질 인간관계라면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오색등과 백등,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마음이 걸린 길상사

밤 12시, 무렵 카톡 알람이 하나 울렸다. 발신자는 친구 A. 거의 매일 시시콜콜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제일 친한 친구들이 모인 단톡방에 그녀가 털어놓은 고민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친한 선배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어. 근데 문제가 있어. 하나는 장례식 장소가 전라도 땅끝이라는 점, 또 하나는 거길 갈 경우 어린이집에 다니는 어린 아들을 하원 시간에 맞춰 픽업해 챙겨줄 사람이 전혀 없다는 점… 이런 상황에 나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전업은 아니지만 남편의 퇴근이 늦은 편이라 하원 후에는 아이를 챙기는 오로지 A의 몫이었다. 친정도 멀고, 시댁은 더 먼 친구였다. 친구 모두 자기의 일인 양 함께 고민해주었다.


의견의 대다수는 “덜 후회하는 쪽으로 선택하라”는 거였다. 한 친구는 괜찮다면 자신이 아이를 픽업하고 A가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봐주겠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답을 내리지 못한 A는 생각을 좀 정리한 후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겠다고 했다. 누구라도 고민될 상황이었다. 친분의 깊이와 사람의 도리, 생활의 무게 등등 여러 복잡한 상황이 얽혀 있으니 가라고도, 가지 말라고도 얘기할 수 없는 일이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더니 A의 카톡이 하나 더 와 있었다. 도저히 시간이 안 돼서 안 가는 거로 했다는 내용의 메시지였다. ‘배차정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는 고속버스 예매창 에러 팝업이 뜬 핸드폰 캡처 사진이 함께 첨부되어 있었다. 분명 밤새 고민을 하고 가능한 방법을 찾았을 그녀였다. 우리는 정중한 위로와 함께 상황을 설명하는 연락을 보내면 언니도 이해해 주실 거라며 잔뜩 풀 죽은 그녀를 위로했다.

주말마다 3~4건씩 결혼식과 돌잔치로 점철된 날들을 보내고 나니 이제 장례식의 시즌이 도래했다. 나 역시 간간히 오는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아… 남은 분들의 상심이 크겠다. 이젠 나에게도 멀지 않은 일일 거야’라는 생각은 잠깐, 그 이후에는 현실적인 생각들이 밀려온다. 오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오늘 스케줄에 장례식을 갈 수 있을까?
장례식장 가는 데 얼마나 걸리지?
봉투에는 얼마를 넣어야 하나?
오늘 이 차림으로는 장례식 가기 좀 그러니까 집에 들러서 옷 갈아입고 가야겠지?
이 시즌에 입을 만한 검정 옷이 뭐가 있지?
장례식장 가서 순서 헤매고 어리바리하면 안 되는데…
상주를 보면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까?

사람들은 좋은 일보다, 장례식처럼 힘든 일 있을 때 함께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 역시 최대한 그런 자리에는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사는 게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니 부득이한 이유로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문제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그 부득이한 이유가 점점 많아진다는 거다. 전 인생에 있어 어쩌면 가장 큰 슬픔의 상황에 직면한 사람 보다, 내 개인적인 일이 우선이 되어야만 할 때는 나 스스로가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진다. 어디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일까?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처한 당사자에게는 불참의 변을 듣는 일도 꽤 버거운 일일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경조사 같은 큰일 한 번 치르고 날 때마다 인간관계가 정리된다’고. 그런 면에서 아마 나도 몇몇 사람들의 인간관계 리스트에서 삭제되었을 것이다. 그걸 알게 되더라도 서운하거나 섭섭하진 않다. 인간관계는 누구 한 사람의 노력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다. 나건 상대방이건 누군가는 관계의 삭제라는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경조사의 불참으로 끊어질 인간관계라면 어차피 무슨 이유로든 끊어질 관계인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생각을 바꾸었다. ‘나의 경조사에 누가 올까?’라는 질문을 ‘누가 오지 않으면 섭섭할까?’로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내가 아는 한 오지 않는다고 해서 섭섭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거리가 어찌 되었건, 상황이 어찌 되건 올 사람은 올 것이다. 반대로 못 오는 사람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경조사 참석 여부를 가지고 인간관계를 판단하지 않게 된 셈이다.


결국은 자기 위로고 변명이겠지만 이런 마음이 결국 인간관계에 대한 부담을 덜게 해준다. 관계의 무거움은 곧 둘 사이를 깨는 독이 된다. 그 상황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되 이루지 못한 결과를 아쉬워하지 않는 것! 인간관계에도 그 마음이 필요하다.


원문: 호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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