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3년' 유감: 이것은 더 이상 가격 안정책이 아니다

조회수 2018. 10. 16.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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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청약은 문제가 되었는가?

모두가 기분이 나쁘다」는 글에서 “최근 이처럼 매수심리에 불이 붙은 것은 아마도 청약가점제 확대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적었다. 과거 같으면 적당한 집에 전세 살면서 돈 모아 언젠가 청약으로 새집에 한 번에 들어가리라 생각했던 ‘대기수요’가 이제는 가만히 돌아보니 나 정도 가점으로는 청약은 어림도 없고 이건 2~3년 더 기다려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자각을 하게 되면서 기축 아파트 매수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라는 해설이었다.


청약가점제는 이렇다. 30세 이후부터 쌓은 무주택기간으로 15년을 채우고, 부양가족 수로 점수를 더 얻는 구조다. 일단 무주택 15년이면 32점이 된다. 여기에 청약저축 가입 기간이 15년이면 17점이 붙는다. 둘은 붙어 다니는 것이니 이렇게 49점을 확보한 후에, 부양가족이 2명이면 15점, 3명이면 20점을 얹는 식이다(최대 6명 35점).


무주택+청약저축 기간이 1년 줄 때마다 3점씩 감점이 된다. 고로 15년에 부양가족 2명으로 64점을 확보하는 것이 사실상 시작점인데, 서울 시내 분양 현장에서는 65점도 당첨이 아슬아슬한 게 요즘 현실이다. 달리 말하면 45세 이하는 부모님 모시고 살며 자녀를 둘 키우지 않는 이상 당첨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반면 지금 서울에서 분양하는 아파트 단지는, 32평까지는 100% 가점제다. 대형평수는 추첨제 물량이 일부 나오는데, 물량도 아주 적거니와 당연히 분양 가격이 세다. 어정쩡하게 걸린 사람은 이도 저도 해볼 수 없는 구조다.

출처: 연합뉴스

Believe it or not, 이러한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신 오피니언 리더가 있어서 제법 깊은 곳까지 이야기가 전달이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청약 가능성에 대한 기대만 유지하더라도 이처럼 다급하게 매수에 나서지는 않을 것 같으니 챙겨봐 주시는 것이 어떻겠냐는, 어떻게든 정책이 잘 되기를 바라는 메세지였다. 가능한 한 무주택자에 대해서는 청약 추첨제를 40%라도 다시 열고, 1주택자까지도 고려해볼 필요는 있고, 다주택자야 아예 배제하는 것이 맞는 것이겠고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9·13 대책이 나왔을 때 청약과 관련된 문구가 한 줄 들어갔다. 그러나 톤이 조금 이상했다. ‘청약 추첨제 물량에 대해 무주택자 비중을 확대’하겠다는 거였다. 시장에서 문제라고 인식하는 부분은 32평까지 가점제를 100% 적용하는 그 자체인데, 쥐꼬리만 한 대형 평수 ‘추첨제’ 물량을 무주택자에게 몰아주는 것이 어떤 문제의 해결책이 되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반발이 있었다. 1주택자도 다 같은 1주택자가 아닌데, 무조건 청약 불가! 하는 게 맞느냐는 것이었다. 의식했는지 조금 더 당황스러운 방안이 나왔다. 그러면 대형평수 청약에 1주택자 ok. 단 기존주택 처분 부로. 6개월 내 안 팔면 벌금부터 징역까지 하여간 강력하게 후드려 팰 것이다. 무려 ‘징역 3년’이라는 엄청난 단어가 튀어나왔다.

출처: 연합뉴스

툭 까놓고 말해서 나야 어차피 청약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결혼하면서부터 낡은, 20년도 넘은, 서울도 아닌 행신동의 19평짜리 아파트를 샀던 ‘전력’ 때문에 가점은 기대할 것이 없고, 어차피 1주택자도 벗어난 지 좀 됐으니 말이다.


살면서 청약 넣어본 적조차 없고 그 흔한 분양권 전매 한 번 안 해봤다. 당시 내 조건에서 별로 내가 기웃거릴 옵션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신 주변의 내 집 마련을 고민하는 사람 여러 명에게 적당해 보이는 단지의 분양권을 추천했고, 지금은 입주해서 다들 잘 산다.


그러나 지금의 정책은 또 한 번 유감스러울 수밖에 없다. 8·2대책의 기저에 깔린 ‘수요 억제’는, 처음에는 ‘가계부채’를 탓하며 내 집 마련을 어렵게 하는 쪽으로 갔는데, 이제는 한정된 ‘청약’이라는 기회를 무기로 사람들을 아예 무주택에 머무르도록 강제하는 쪽으로 작동한다.


이것은 더 이상 가격의 안정책이 아니다. 유주택자가 되는 것을 가급적 금기시하고, 누가 누가 오랫동안 정부 말에 따라 무주택자로 있었는가를 가지고서 순서대로 선물 하나씩 쥐여주겠다는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 ‘가점’은 지난 15년간 쌓아왔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고, 이제 와서 2~3년 쌓는다 해서 당첨권에 들어갈 일은 아예 없다.


거듭 지적하지만, 지금 시장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다주택자인가? 가점이 높은 사람들의 기축 아파트 구매 수요인가? 왜 청약은 문제가 되었는가?

출처: 머니투데이

우리 주변에 흔한, 이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 된, 그래도 제법 괜찮은 벌이를 가진 맞벌이 부부들, 소위 말하는 중산층 지망생들을 청약시장에서 링 아웃시킨 대가로 기축 아파트의 매수세가 이렇게 달아올랐다. 그런데 처방은 여전히 ‘누군가를 시장에서 배제하는’ 수요 억제에 방점이 찍혀 있다.


공급대책이 나온다고, 여기저기 괜찮은 택지지구가 생기고 분양이 예정되어 있다고 해서 기대를 잔뜩 했는데 막상 들여다보니 그게 내 몫이 아니고, 저 멀리부터 15년 줄 선 사람의 것이라는 현실을 확인하고 나면 이 사람들이 가야 할 길은 또 한 번 정해져 있을 뿐이다.


나야 정말로 상관없다. 어차피 청약 통장도 마이너스 통장 메우려 깨버린 지 오래고, 아예 기대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징역 3년’의 레토릭을 바라보는 마음은,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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