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코리아'가 덮쳐온다
세계 최대 재활용 쓰레기 수입국인 중국이 지난 1월 1일부터 폐기물 24종의 수입 금지를 본격화하자 한국은 재활용품 수거 대란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의 쓰레기 금수 조처로 쓰레기 수출 길이 막힌 국내 재활용 업체들이 폐기물 수거를 중단하면서 여기저기서 쓰레기 난리가 벌어졌다.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 세계 1위인 우리나라가 ‘플라스틱 코리아’가 될 수도 있다는 암시를 주는 영화 〈플라스틱 차이나〉. 이 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우리에게 무슨 메시지를 던져줄까.
“중국은 이미 세계의 쓰레기장”
〈플라스틱 차이나〉를 만든 중국인 왕주량(王久良) 감독은 지난 20일 영화 상영 후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산둥성 지역의 쓰레기 재활용 현장을 가보고 충격을 받아 영화제작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왕 감독은 특히 쓰레기 재활용 공장의 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열악한 생활환경에 주목했다.
〈플라스틱 차이나〉는 쓰레기 재활용 산업이 밀집한 산둥성을 배경으로 재활용 공장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쓰레기 산업의 폐해를 고발한다. 재활용 공장에서 일하는 두 가족은 폐기물 더미에 한데 섞여 폐플라스틱을 분류하고, 세척하고, 녹여 다시 고형연료를 만드는 일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쓰레기 재활용 업체 사장인 쿤은 자녀교육과 신분 상승에 대한 꿈을 꾸고 살아가지만 일당이 5달러에 불과한 말단 노동자 펭은 꿈은커녕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팍팍하다. 영화는 쓰레기 산업의 현장에서도 일어나는 양극화와 빈곤의 문제를 조명하고, 쓰레기 산업이 어떻게 중국 시골 마을의 환경을 파괴하고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훼손하는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카메라는 82분 내내 재활용 공장의 노동자인 펭의 열한 살 난 딸 이지에를 따라다닌다. 이지에는 온종일 학교도 가지 못하고 부모를 도와 플라스틱을 선별하거나 부모를 대신해 어린 동생들을 돌본다.
쓰레기에 가려진 진실 조명해야
왕 감독은 “쓰레기 산업이 소녀의 삶을 조금도 바꿀 수 없었고, 그것이 바로 중국의 쓰레기 산업이 가져온 문제”라고 강조했다. 쓰레기 산업에는 재활용이란 경제적 효용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경제적 불평등, 빈부격차, 환경, 교육, 여성의 권리 등 많은 문제가 내재돼 있다는 것이 왕 감독의 설명이다.
왕 감독은 영화제작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산둥성에 5천여 개의 쓰레기 재활용 공장이 있었지만 그 공장 어느 곳도 자유롭게 촬영할 수가 없었다”며 “100일 동안 단 한 군데도 촬영 허락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영화 한 편으로 뚜껑 닫은 ‘세계의 쓰레기통’
이 영화가 중국의 폐기물 수입 금지를 이끌어냈다고 평가받지만 사실 중국에서는 상영이 금지됐다. 그래서 왕 감독은 온라인용으로 영화를 짧게 편집해 유튜브에 올렸다. 상영이 금지된 영화가 환경운동으로 확산돼 마침내 중국 정부가 재활용 쓰레기 금수 조처를 시행하게 된 배경에는 인터넷의 힘이 있었던 것이다.
왕 감독은 “중국발 쓰레기 대란 이후 산둥성 지역에 있던 재활용 공장들은 가동을 모두 멈추고 폐쇄된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쓰레기를 처리하고 운영하던 공장주들에게 다른 직업을 선택하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대출을 받고자 한다면 이자 혜택을 주는 등 직업을 바꿀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대부분 노동자와 주민은 산둥성을 떠나 새 지역으로 이주해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했던 쿤 사장은 현재 쓰레기 재활용 공장의 문을 닫고 좋아하던 차를 몰며 운전기사로 일한다. 펭의 가족은 2014년 고향인 쓰촨으로 돌아갔다. 왕 감독과 촬영 스텝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표를 마련해 주었다.
왕 감독은 “작은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자고 시작했는데, 목표를 훨씬 뛰어넘어 중국의 고위층이 관심을 두고 쓰레기 수입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게 됐다”며 “영화를 통해 ‘우리 모두 마음속의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해야 되지?’라는 물음이 생긴다면 내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문: 단비뉴스 / 필자: 김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