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집값을 오르게 한 범인은 누구일까

조회수 2020. 12. 24. 17: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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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온 공급카드까지 망가지면 정말 끝이다

최근 서울 집값이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들썩이면서, 도대체 범인이 뭐냐에 대한 논의와 해석이 분분하다. 어느 하나가 범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저금리에 기초한 유동성, 서울의 구조적인 공급 부족, 가계소득 증가, 양도세 중과 및 임대사업자 정책으로 인한 매물 잠김 현상 등…


그러나 딱 범인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전혀 다른 쪽을 지목하겠다. 바로 청약가점제 확대중도금대출 규제다. 사실 앞서의 범인들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너무 많이 이야기해왔다. 그러나 지금 집값이 이렇게 갑자기 뛰는 게 과연 전보다 유동성이 폭증하거나 공급 부족이 갑자기 발생해서 일어나는 일인가?


다주택자들의 매물 잠김 현상을 이야기하지만 전체 주택 중에서 70%를 1주택자, 19%를 2주택자가 가진 현실에 비추어 보면 그것으로도 다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반면 서울에 있는 직장 다니면서 평범하게 맞벌이하고 살아가는 30대 후반의 기혼가정을 생각해 보자. 8·2 대책 이후로 1년간의 과정을 거치면서 가장 크게 체감한 불안감은 무엇이었을까?

출처: SBS

과거에는 심리적 마진이 있었다


비록 지금은 전세를 살지만 몇 년 더 모으면서 청약 추첨 어떻게 잘 되면 번듯한 신축 아파트에 들어갈 거고, 그래서 굳이 허름하고 애매한 지역에 위치한 집을 굳이 매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심리적인 마진이 있었다. (그 기회가 언제 올지는 좀 따져봐야 되겠지만) 진짜 매수하는 집은 100점짜리 집을 사고 싶은 생각에 일단 가점도 좀 모으고 돈도 좀 모으면서 이래저래 기다리고 준비해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이제 신혼특공마저 끝나버린 30대는 서울에서 청약으로 분양을 받는다는 것은 아예 생각할 수가 없어졌다. 여간해서는 가점이 50점이라도 당첨을 기대하기가 어려운데 1~2년 더 쌓는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어떻게 어렵게 당첨이 된다고 하더라도 자금조달이 문제가 된다. 이제는 9억 이하 주택의 경우에만 40% 중도금 대출이 된다. 달리 말하면 청약 당첨되더라도 내 집에 깔린 전세금이건 뭐건 다 빼고 현금으로 60%를 낼 수 있어야 덤벼볼 수가 있게 되었는데, 하다못해 5억짜리 집이라고 해도 현금이 따로 3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막연하게나마 가졌던 희망이 깨져 버리고 청약이라는 경우의 수를 제거해 버리고 나니 보이는 것은 매일같이 오르기만 하는 내 전세금과 앞으로 점점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이는 내 집 마련의 기회였다.

LTV가 40%가 됐다


금리도 자꾸 오른다. 집값은 더 빨리 달아난다. 예전에는 전세금에 조금만 더 보태주면 살 수 있었던 너무도 평범하고 익숙한 그런 집들이, 이제는 전세금보다 2억씩 달아나 버렸다.


정부에서는 자꾸만 청년희망주택이네 공공임대네 해준다는데 내 돈 주고 사겠다는 청약도 안 되는 주제에 그게 당첨될 거라는 기대조차 생기지 않거니와 되더라도 가서 살 자신이 없다. 아이도 키워야 하고 직장 다녀야 하는 형편에서 투룸 오피스텔 가서 살 수도, 서울 밖으로 멀리 나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공급 부족? 유동성? 다 남의 일이다. 국가 경제 대신 걱정해주기엔 내 코가 석 자다. 넋 놓은 사이 집값은 다 미친 듯이 올랐는데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니, 누구 믿다가는 그나마 남은 코마저 다 베이고 아예 월세 살게 생겼다.


그런데 막상 계산기 두들겨 보니까 맞벌이하면 4억 대출 내도 어떻게 버텨볼 만하다. LTV 걸리면 3억은 담보대출 받고 1억은 신용대출 내면서 오히려 원금상환 부담은 줄일 수 있다. 안 되면 전세대출 좀 넉넉하게 받고 일단 전세 살면서 다른 집 하나 전세 끼고 사두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판사판, 어차피 각자도생의 시대라면 내 살길은 내가 찾아야겠다.

현실은 이렇게 냉정하고 또 참혹하다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서너 번씩 매도자 변심으로 계약금도 못 던지고 물을 먹고, 물을 먹으면서 약이 바짝 오른 사람들은 그냥 삼천 더 주고 사겠다고 지른다. 어차피 이거 아니면, 다른 대안도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동안 투기꾼 탓만 했다. 정말 실수요자들이 느끼는 절박함과 박탈감을 다 투기꾼의 죄악 때문으로 미뤘다. 과연 그런가? 이런 수요 대란을 자초한 출발점은, 처음에 이야기했듯 가점제 확대와 중도금대출 규제로 청약의 기회 가능성을 차단해버린 것에 있었다.


이제야 정부는 ‘공급 확대’ 카드를 꺼내왔다. 그나마 서울시와 이견이 있는지, 어째 좀 그린벨트를 푸네 마네 매끄럽지 않고 시끄럽다. 그래도 이제라도 공급논의에 나선 것은 환영스럽고 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라면 이런 것이다. 그렇게 뭔가 새로운 기회의 가능성을 보게 됐는데 그마저도 내게 돌아오기에 충분한 찬스가 아니라고 인식하는 순간 시장의 실망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단언컨대 없다.


또 그나마 나오는 물량 무직 금수저가 가져가고, 청약 가점에서 밀리고, 대출 잘려서 당첨되더라도 못 받는 상황이면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정말 너 죽고 나 죽자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어차피 정부는 슈퍼맨이 아니다


전 국민의 주택문제를 정부가 나서서 다 해결해줄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욕망의 크기에 걸맞은 비용이 수반되고 그걸 감당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기회가 가는 것이 마땅한 정의다. 엉뚱한 소수에게 특혜가 부여되고, 줄 잘 선 사람만이 과실을 독점하는 형태는 있어서 안 된다.


제발 현실을 직시하고 진짜 지금 서울 시내에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 사람들이 원하는 집이 어떤 집인지, 어떤 딜레마 때문에 절망에 빠졌고 올라버린 가격에도 다들 추격매수에 나서는지 정확하게 판단해 주었으면 한다. 아껴온 공급카드까지 망가지면 이제 정말 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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