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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폭력적인 법칙에 관하여: ‘단문을 쓰라’는 편견

단문은 무수한 글의 매력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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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주변을 떠도는 유령이 있다. 그 유령은 “부사어 쓰지 마라.” “단문 써라.” “접속어 쓰지 마라.” 같은 팻말을 들고 다닌다. 이런 유령들은 주로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같은 글쓰기 책에서 나와 떠받들어지며 전염병처럼 번져나갔는데, 특히 문예창작학과나 언론 주변을 떠돌며 온갖 색채를 가질 수 있는 글들을 복제된 돌하르방처럼 만들어버리고 있다. 온 세상이 헤밍웨이나 스티븐 킹으로 뒤덮이길 바라는 것만 같은 그들은 다양한 문체의 아름다움이라는 걸 전혀 느낄 줄 모르는 사이보그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엇이든 특정 매뉴얼을 만들어 그것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그에 복종함으로써 불안한 자신의 존재 기반을 얻고자 한다. 경직된 틀에 맞지 않은 자연스러움, 다양성, 야생성, 부드러움 등을 모두 추하고 잘못된 것이라 부르짖으며 자기가 복종하는 틀의 권력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장 세계에서 가장 멋진 글들을 100편 정도 모아본다고 하면, 모은 자가 변태가 아닌 이상 똑같은 문체의 글만 모일 리 없다. 오히려 그 저마다의 글들은 너무나 다채로워 글쓰기의 교본 따위를 만드는 일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위와 같은 문장이나 글쓰기 가이드라인에 강박적인 사람들은 폭력적인 영역에서 폭력적인 경험으로 글쓰기를 익힌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문을 안 쓰면 논문 통과를 안 시켜주는 지도교수라든지, 만연체와 부사어에 기겁하는 언론사 데스크라든지, 접속어를 쓰면 등단의 길을 막아버리는 문단 원로라든지 하는 존재들에게 직간접적으로 폭행을 당하며 문장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감각을 잃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자기 글을 객관화할 수 있는 훈련을 하는 것과 특정 스타일을 강요당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나도 기막히게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히 다채로운 문체를 사랑하고 느낄 줄은 안다. 이런 사람들에게 요즘처럼 기계적이고 천편일률적인 문장만 쏟아지는 시대란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종종 보이는, 자기만의 문체를 유려하게 풀어내는 원석 같은 이들이 얼마나 달콤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우리 모두가 스티븐 킹이 될 수는 없다

물론 반대로 ‘단문치기’를 잘 구사하는 글이 나쁜 글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매력적인 데가 있지만, 무수한 글들의 매력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쌍꺼풀 있는 얼굴이 온통 미의 기준을 장악한 시대가 이어지다 보면 무쌍의 매력이 재발견되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요즘에는 만연체의 장문, 전통적인 산문정신, 적절히 부사어를 잘 구사하는 글이 가뭄의 단비처럼 아름다워 보인다. 무엇이든 강박적인 틀만을 너무 강요하지 않을 필요가 있다.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빛나는 법이다. 멋지고 다채로운 만연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단문 권력자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주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원문: 정지우 문화평론가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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