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프리랜서입니다] ① 프리랜서? 좋지, 근데 기술은 있고?

조회수 2018. 9. 13. 13:5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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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의 세상으로 넘어가는 길목, 그 두렵고 막막한 과정에서

빈말로라도 성공했다고 하긴 어렵지만 그럭저럭 밥벌이는 하게 된 프리랜서 3년 차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에는 정말이지 각양각색의 전공과 경력을 가진 다양한 프리랜서들이 존재한다. 나는 경영학과를 나온 프로그래머도, 화학공학과를 나온 번역가도, 광고홍보학과를 나온 인문학 강사도 안다.


자신의 길을 비교적 빨리 깨달은 이가 있는가 하면 먼 길을 돌아온 이도 있다. 회사원이라는 일반적인 길에서 벗어나게 된 계기 또한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적성에 맞는 일을 찾기 위해, 누군가는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 때문에, 누군가는 정년퇴직에 이른 나이 때문에 독립을 택했다. 직장 경력 5년에 나이 서른이 채 못 되어 프리랜서 시장에 진입한 나는 어딜 가나 젊은 편이었고 빠른 결단을 내린 축에 속했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었을 당시의 나는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가진 거라곤 이직이나 재취업에조차 별 도움이 안 될 4년제 대학교 영문학과 졸업장과 몇 년의 사무직 경력뿐이었고, 이 정도 조건으로는 대체 어떤 업계에서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을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나 기술이 있어서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아니고 무작정 퇴사를 한 뒤 일단 프리랜서로 살고 싶다니, 지금껏 정해진 길만 주야장천 걸어온 나로서는 다시 생각해도 헛웃음이 나올 만큼 무모한 희망 사항이었다.


이렇다 할 기술도 없는 데다 성격마저 소심한 내가 문득 찾아온 대범한 희망을 도리질하며 물리치는 대신 ‘그래도 한 번 알아나 볼까?’라고 선뜻 받아들인 데는 얼마 후 서른이 되는 나이의 영향도 컸다. 당시 나는 평범한 또래 청년과 마찬가지로 미래를 고민하느라 숨이 가빴고, 이 답답한 회사생활을 언제까지나 끌고 갈 수 없다는 조급함에 휩싸여 있었다.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곧 바뀔 예정인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그 시점이 오기 전에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내 인생이 어느결에 이 자리에 고정되어 버릴까 두려웠던 것이다.


멈추지 않고 일직선으로 달려온 탓에 불행해진 거라고 자책하면서도, 바로 그 덕분에 누릴 수 있던 메리트도 있었다. 휴학 없이 대학을 졸업한 덕에 평균보다 이른 나이에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월세 지출 때문에 남들보다 불리하다고 투덜대면서도 어쨌든 한동안 먹고 살 만한 돈은 저축해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손에는 불안을, 한 손에는 기대를 움켜쥔 채, 나는 이직 자리 대신 프리랜서가 되는 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취업 준비를 하던 시절의 나는 자신의 진짜 취미와 특기를 돌아보는 데 큰 관심이 없었다. 비겁한 변명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취업을 갈망하는 대부분 청년과 마찬가지로 취향이니 적성이니 하는 배부른 소리를 할 여력이 없었다.


우리는 ‘어떤 일을 잘하는가?’ ‘어떤 일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보다 ‘지금 내 스펙으로 어느 회사, 어느 분야에 지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더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배웠다. 문과 출신, 특히 비상경계열 출신으로 취업 준비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인문학이나 사회학 같은 순수 학문(다시 말해서 실용적이지 않은 학문)을 전공한 사람은 애초에 지원할 수 있는 분야부터 지극히 제한되는 것이 현실이니까.


입사 지원은 합격 가능성을 담보로 한 일종의 베팅이었고, 우리는 도박사가 경마신문을 탐독하듯 각종 취업 사이트와 카페에 올라온 정보를 게걸스럽게 흡수했다. 그곳에 쫙 깔린 기업정보와 취업 공략법을 참고하여 일명 ‘자소설’과 인·적성, 면접을 준비하는 것이 흔히 말하는 ‘취업 준비’의 정석이었다.


하지만 프리랜서의 세상으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마땅한 이정표가 존재하지 않았다. 막연히 취업을 원하고 막연히 이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는 차고 넘치는 세상인데, 이상하게도 막연히 프리랜서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길을 제시해주는 서비스는 하나도 없었다. 각 직업별 평균 수입이나 전망, 진입 방법 등을 망라해 놓은 ‘X크루트,’ ‘사람X’ 류의 사이트는 당연히 존재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이것이 분야를 막론하고 프리랜서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적어도 도전할 분야를 선택하기까지는 확실한 정보도 믿음직한 조언도 없이 불안하고 막연한 상태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 이 두렵고 막막한 과정에서 그나마 등대 역할을 해주는 것은 (치킨 프랜차이즈의 가맹점 홍보자료를 제외하면) 자기 자신의 취미와 특기밖에 없었다.

취업 준비를 하던 2009-2010년에는 대다수 기업이 입사 지원서에 취미와 특기를 기재하라고 요구했다(요즘에도 이런 구시대적 기업이 있을까? 아마도 있겠지. 회사란 그런 곳이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그 두 칸을 채운 각종 활동은 합격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일종의 전략적 선택이었지 실제 나의 취향이나 적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제조업 영업직에 지원할 때는 일요일 아침마다 등산을 간다던 내가 패션업계 MD에 지원할 때는 일요일 아침마다 동대문에 쇼핑을 가는 인간으로 둔갑하는 식이었다(그리고 현실의 나는 일요일 아침마다 늦잠을 잤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태어나서 나 자신의 취미와 특기가 이토록 진지하게 궁금한 적은 없었다. 어떤 직업을 택하든 경력도 인맥도 없이 회사 밖에서 자리를 잡는 길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했고, 그 과정에서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는 방법은 내가 조금이라도 잘하거나 좋아하는 일에 매달리는 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나는 틈틈이 자신의 취미와 특기라고 생각되는 일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기쁜가? 어떤 일을 할 때 잘한다는 칭찬을 듣는가? 일상을 돌아보며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하나씩 짚어내는 경험은 참으로 묘한 감정을 자아냈다. 분명히 막연하고 두려운데, 어디선가 근거도 없는 희망이 나타나 조심스레 숨어 있던 설렘을 부채질했다. 잘만 된다면, 나는 회사를 벗어나 지금 적은 것 중 하나를 직업으로 삼은 채 살아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현재의 나는 회사를 벗어나 그때 적었던 것 중 여러 개를 직업으로 삼으며 살아간다.

  • 작가 인스타그램: @seo_merry


원문: 서메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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