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장 경질에 부쳐: 소통의 미비, 폐쇄성의 조직

조회수 2018. 8. 31. 12: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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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문제는 '정말 통계 전문가가 그 자리에 앉는가?' 여기부터 시작한다.

통계청장 경질 관련해서, 이거 좀 총체적 난국 같다. 짧게 쓰기에 너무 길어질 듯하니 스압 주의.



1.


문제의 발단은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서 올 1분기 소득 하위 20%의 가구가 전년 1분기 대비 8%나 소득이 줄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렇게까지 팍 줄어드는 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다. 이를 두고 보수지들은 최저임금 급상승을 많이 비판했다.


허나 이 역시 납득하기 힘든 주장이다. 물론 2018년 최저임금이 약 16%나 올랐으니 영향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저 정도로 줄어드는 건 1년 만에 일어나기 힘든 변화로 보인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다소 길지만 홍춘욱 박사님의 유튜브를 보면 이해가 쉬움. 다 보기 귀찮으면 소리 없이 슬라이드만 넘겨봐도 된다…만,

귀찮은 분들을 위해 요약. ‘가계동향조사’는 매년 표본을 손봐 왔다. 2017년까지는 2010년 인구총조사를 기반으로 조사했다면, 2018년은 2015년 인구총조사를 기반으로 조사했다. 또한 2017년보다 표본 수도 약 50% 늘어났으며, 이 과정에서 1인 가구, 저소득층이 대거 편입되었다. 


이 정도로 표본이 완전히 달라지다 보니 당연히 결과값의 차이도 클 수밖에 없다. 막말로 2017년과는 전혀 다른 대상으로 조사했다고 봐도 무방할 수준인 것이다. 여기에 노인 인구가 많이 늘어난 게 결정타였으며, ‘이 정도 샘플의 변화가 크다면 애초에 전년 대비 통계는 내놓지 않는 게 좋다’는 남충현 박사님의 보충의견도 있다. 나 역시 여기에는 동의하는 편.


여기에 청와대는 통계청장을 경질하고, 통계청 발표가 부정확하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통계청에서는 전체 가구 평균 소득이 전년 대비 2% 성장에 그쳤지만, 작년 조사 샘플을 활용할 경우 무려 7.8%나 성장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위 10%는 0.5% 감소 수준에 그쳤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즉, 전반적 추세는 유사하므로 다음 조사 발표 때는 이런 유의점을 충분히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정성태 당수님은 7.8% 소득증가율이 좀 높아 보인다고, 기존 표본을 그대로 따르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경질 사유는 둘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통계청의 새로운 조사방식이 잘못되었거나, 통계청이 샘플이 변경된 유의점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소통의 문제.


조귀동 기자님의 을 보면 전자는 아주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각 소득 분위별 추가 가구 비율을 보면 1분위가 71%로 압도적으로 많다. 즉, 1분위를 제외할 경우 큰 변화는 없다는 것. 하지만 1분위를 제외할 경우에도 2~5분위가 마이너스다. 6~8분위까지도 5% 이하 소득 성장이다. 상위 20%의 소득이 급증하고, 중산층의 성장이 정체, 하위층은 더 가난해졌다는 것.

2.


한편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전년도 샘플을 사용할 경우 저소득층 소득이 오히려 증가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또한 이를 두고 소득 격차의 해소를 위해 최저임금을 늘리는 동시에, 천장을 낮출 필요도 있다고 했다. 나 역시 고소득층 증세는 찬성하지만, 이는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 중인 의제. 또한 기존 샘플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은, 위에서 밝혔듯 잘못된 근거라 생각한다.


그러면 통계청장 경질은 두 번째 이유, 통계청이 샘플이 변경된 것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자료를 내놓은 소통의 부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Jason Min 님의 이 잘 설명해 주셨다. 전 황수경 통계청장의 정무감각 부족이 한몫했던 건 사실로 보인다. 허나, 이게 정말 경질감인가? 개인적으로는 반대한다.


오히려 전임 유경준 통계청장이 좀 제대로 잡지 못한 통계를 현실화한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중요한 통계를 그냥 던진 통계청이나, 그걸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언론도 문제가 있다(솔직히 의례적으로 계속 나오는 거라 기자들은 좀 억울할 것 같긴 함).

전 통계청장의 정무감각은 비판받아 마땅하긴 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청와대의 정무감각이다. 국민들을 이해시켜야 할 해프닝을 경질로 처리한 건, 앞으로 불통 정부 이미지 강화에 힘을 더하지 않을까 싶다. 가뜩이나 그래프 장난쳤다고 욕먹는 와중이라… 그런 그래프 장난은 민주당에서 가장 싫어하는 조선일보에서 좋아하는 일이다. 이미 한겨레랑 한판 붙지 않았나.


청와대의 문제는 정무감각 이전에 좀 통계 감각이 약하다는 느낌이다. 장하성 정책실장은 통계청의 설명자료를 삭제 요구했다고 한다. 하필 이 글이 ‘한 달 후 대한민국’이라는 향후 30년 조리돌림당할 글을 쓴 분의 칼럼이지만(…) 아무튼.



3.


그래서 통계청 만만세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번 경질에 통계청 직원들이 반발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청와대에서 공식 발표 자료 외의 로데이터(원자료) 요구와 회의참석 요구가 빈번했다는 불만은 황당한 수준이다. 정부라면 당연히 로데이터를 좀 까봐야 하지 않겠나. 독립을 보장한다는 것과, 데이터 독점권을 갖는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 그러면 그 독립된 통계청은 대체 어디의 견제를 받아야 하는가?

더 중요한 건 민간에서도 그 로데이터를 까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주변에 데이터 일하는 사람들은 한국은 공개된 데이터가 없어서 뭘 할 수 있는 게 없다고들 말한다. 통신사를 그만둔 지인은 퇴사 이유를 ‘정말 엄청난 데이터가 많은데 규제 때문에 사용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는 공공은 데이터를 최대한 공개하고, 민간에서는 데이터를 비식별화해서 판매한다. 그런데 한국은 그냥 데이터가 공개가 안 되니 활용도 발전도 없다는 것.


아마 이 부분 가장 빛나는 김창환 교수님의 글이 아닐까 한다. 한국 통계청은 매우 폐쇄적인 조직이다. 데이터 개방과 검증보다 데이터를 감추고 조직을 방어하는 행태를 보여왔다는 것. 그나마 전전 유경준 통계청장 때 이 정도로 올라온 수준이다. 그러니 지금 중요한 건 국가 통계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에 백번 동의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데이터의 공개. 민간에서도 이를 충분히 다룰 수 있을 정도로. 통계청, 또는 정부만이 제일 잘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덤으로 최광웅 대표님 도 무척 읽어볼 만하다. 미국 통계청은 독립이 보장된다는 뉴스가 퍼지는데, 이들도 잘만 잘린다는 것. 그리고 애초에 한국의 문제는 정말 통계, 데이터 전문가가 그 자리에 앉는가, 이 질문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는 언제나 중립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더 주의해서 데이터를 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4.


주변에 민주당에 표를 던지면서, 심지어 권리당원이면서도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화딱지를 내는 사람이 많다. 이 사람들은 아마 다음 총선, 대선에서도 민주당에 표를 던질 것이고, 나 역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민주당에 한 표를 던질 것이다.


정부와 민주당이 경제정책과 정무감각에서 좀 더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차피 지지율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떨어지겠지만, 경제정책의 효과는 지속적으로 우리 삶을 건드리는 영역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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