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 한국 대기업 지배구조 문제, 그리고 행동주의 펀드

조회수 2018. 8. 24. 16:2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그들은 구조의 허점을 노릴 뿐이다.

‘투기자본이 한국 기업 활동에 문제가 된다’는 기사 하나를 포스팅했다. 마침 내가 귀국한 후 주로 하는 공부가 화폐 이론과 함께 한국 주식시장에 있어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기업 지배구조 문제이기에 간략하게 이를 다루어보고자 한다.

한국 기업지배구조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고도성장기 한국 기업들, 소위 재벌은 자본이 부족한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신사업에 투자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건 한국 경제성장이 1960년대 경공업 위주 수출주도 경제성장에서 70년대 중화학공업육성정책을 거쳐 1990년대 이후 산업자유화까지 10년 단위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에 기업들은 신사업에 투자할 때 부족한 자본을 충당하기 위해 가공의 자본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상호출자, 순환출자, 상호지급보증 등의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런 방법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계열사 하나의 부실이 전 그룹사로 확산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후 상호지급보증과 상호출자는 전면 금지되었다. 순환출자 역시 신규 순환출자는 허용하지 않으며 기존 순환출자는 지속적으로 해소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정책당국의 주요 목표가 되었다.


사실 이런 대기업의 지배구조에는 정부 정책금융의 창구로 사용된 금융회사, 특히 은행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업여신에 있어 은행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단순한 대출업무의 수행 아니라 해당 기업의 신용 평가와 사업의 수익성 분석인데, 정부 정책에 의해 대출이 결정되면서 은행의 이런 기능이 극도로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1980년대 이후 5대 시중은행이 민영화되는가 하면 60개가 넘는 신규 금융회사들이 설립되었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은 여전히 건재했고, 이런 정부의 영향력을 이용한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가 1990년대 이후에도 통용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한국의 왜곡된 금융시장과 기업지배구조는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발생시켰다는 주장이 있다. 많은 경우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한국 기업의 왜곡된 지배구조를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즉 순환출자, 상호출자, 상호지급보증 등 왜곡된 형태로 형성된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다.


사실 기업지배구조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에는 다소간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모딜리아니-밀러 정리(Modigliani-Miller Theorem)에 의하면 기업의 가치는 그 기업이 창출하는 수익에 의해 결정되고, 이런 수익은 기업의 지배구조와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모딜리아니-밀러 정리는 프랑코 모딜리아니(Franco Modigliani)와 머턴 밀러(Merton Miller)가 1958년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American Economic Review)》에 발표한 논문에 나오며, 기업의 가치는 그 기업의 자본구조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정리다.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비유된다.

피자의 가격은 그 피자의 토핑 및 크기와 관련이 있을 뿐, 그 피자를 몇 조각으로 나누는지와는 관련이 없다.
“피자의 가격은 그 피자의 토핑 및 크기와 관련이 있을 뿐, 그 피자를 몇 조각으로 나누는지와는 관련이 없다.”

피자의 가격은 기업 가치고, 피자를 몇 조각으로 나누는지가 자본구조다. 즉 기업의 가치는 자본구조가 아니라 그 기업의 경영성과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물론 모딜리아니와 밀러는 1961년에 《저널 오브 비즈니스(Journal of Business)》에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는 최적 자본구조가 존재한다는 수정된 정리를 게재한다).


다시 말해 기업의 가치는 그 기업의 수익에 의해 결정되고, 기업의 수익은 지배구조가 아니라 운영하는 사업에 의해 결정되는데도 이 둘을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의문에도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대한 금융경제학적 연구는 미비한 상황이다. 한국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대한 연구로는 황선웅과 김현석(2004) 및 서정원과 심수연(2007)이 있다.


황선웅과 김현석은 1994년부터 2001년까지 기업의 수익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한국 기업의 수익률 지표는 자산수익률(ROA), 자기자본수익률(ROE), 자기자본비용(Ke), 가중평균자본비용(WACC ) 등 모든 기술적 지표에서 일관되게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 기업의 투자수익률이 자본비용에 미치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한국 기업의 경영이 비효율적임을 의미한다. 이런 기술적 지표와 주식 가격의 회귀분석 결과 역시 기술적 지표가 주식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초과이익(Excess Earnings, 기업가치를 분석하는 기술적 방법 중 하나로 기업이 생산하는 부가가치는 자본비용을 차감한 순이익임을 이용한다) 모형을 사용해 1997년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 이론가격과 실제가격을 비교했다. 그 결과 외환위기 이전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없었던데 반해 외환위기 이후에는 이론가격과 실제가격의 차이가 유의하게 나타났다. 따라서 외환위기 이후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실존함을 검증했다.


반면에 서정원과 심수연은 기존 코리아 디스카운트 연구는 단순히 시장의 평균 P/E 수준을 비교하거나 기술적 분석에 그친 상황이며, 기업지배구조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는 분석 역시 지배구조와 기업가치 간 유의한 음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가설(La Porta, Lopez-de-Silanes, Shleifer, and Vishny. 2005)에 바탕을 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주가수익비율(Price-Earning Ratio)는 기업의 순이익이 회계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P/CF로 이는 순이익이 아니라 주당 현금흐름으로 주가를 평가한다. 저자들은 P/CF를 사용해 2000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을 포함한 14개국의 주식시장에서 한국 기업과 비슷한 기업을 추출해 주식가격을 비교한 결과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 매우 심각하게 나타났으며, 가설 검증 결과 기업지배구조가 아니라 한국 투자자들의 매우 높은 단기 투자 성향이 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런 연구 결과에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따른다. 투자자 차이, 즉 개인 투자자인지 기관 투자자인지 구분하지 않고 모든 한국 투자자들이 매우 높은 단기 투자 성향을 보이는지에 대한 명확한 규명 없이 투자자들의 매우 높은 단기 투자 성향을 언급하는 것은 문제다.

이상의 논의를 보면 적어도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기업지배구조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사이 명확한 관련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기업지배구조는 한국 주식시장이 선진국 혹은 개발도상국 주식시장 대비 저평가되는데 중요한 요인이 아니다. 반면에 이런 기업지배구조는 엘리엇을 비롯한 행동주의 펀드, 혹은 소버린을 비롯한 헤지펀드가 한국 기업을 공격대상으로 삼는 좋은 이유다.


즉 한국 재벌의 왜곡된 기업지배구조는 소수 지분을 가진 총수 일가가 순환출자를 바탕으로 모든 계열사를 통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며, 이를 바탕으로 다수 주주의 이익에 반하더라도 총수 일가가 자신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결정을 하는 데 이용된다. 2015년 이루어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나 이번에 무산된 현대 글로비스-현대 모비스 사업 분할 및 합병이 그 대표적 예다.


왜곡된 지배구조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총수 일가의 이익이 일반 주주의 이익에 우선시되는 이런 결정이 내려지는 한 기업지배구조는 한국 재벌의 취약한 부분이고, 이런 기업지배구조의 허점을 엘리엇이나 소버린이 노리는 것이다.


사실 이런 행동주의 펀드 혹은 헤지펀드의 행동이 잘못된 것은 아닌 게 저들의 목적 역시 투자자의 이익 극대화이기 때문이다. 왜곡된 지배구조로 인해 합리적인 결정을 하지 못해 잘못된 투자 결정을 해서 기업가치를 저하시키는 기업이 있다면, 쉽게 말해 피자 크기를 키울 수 있는 충분한 도우와 토핑이 있음에도 그걸 낭비할 경우 그것을 개선한 이후 자신들의 지분을 매각하는 것이 수익을 남기는 방법이기에 실천하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다음과 같다. 이미 개방된 주식시장을 다시 닫을 수 없는 이상, 이런 해외 펀드들의 한국 재벌에 대한 공격은 지속적으로 있을 것이다. 이를 해소할 좋은 방법은 포이즌 필 혹은 황금주 같은 방법이 아니라, 재벌을 지배하는 총수 일가가 적법하게 세금을 내고 지분 정리를 하는 것이다.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은 가능하면 세금을 적게 내면서 지분을 정리하고자 하는 총수 일가의 욕구다.


물론 절세 자체를 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주주자본주의 체제에서 압도적인 대주주도 아닌, 소수 지분을 보유하며 순환출자 등 왜곡된 지배구조로 재벌 전체를 지배하는 총수 일가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선의를 지닌 투자자들이 굳이 희생할 이유는 없다. 선의를 지닌 투자자들은 기업의 경영활동에 수반되는 리스크를 감내하는 대신 수익을 올리기 위해 투자한 것이지, 총수 일가의 이익을 뒷받침하기 위해 주식에 투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재벌의 기업지배구조가 왜곡된 이상 이런 문제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외국계 투기자본의 한국 기업에 대한 공격이라고 무턱대고 저들의 행태를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제공한 왜곡된 기업지배구조를 다수 주주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해소할 방법을 찾는 것이 마땅한 순리다. 포이즌 필이나 황금주에 대한 논의는 그 이후에 진행되어도 충분하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