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ㅍㅍㅅㅅ

육개장의 내력을 곱씹다

'육계장'이 아니라 '육개장'이 맞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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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칸투칸 8F 칼럼으로 최초 기고된 글입니다.


뜨끈한 국물을 즐길 수 있는 막바지


정진정명 여름이다. 청바지가 갑갑하고 덥다. 밤공기에서 짙은 열대야의 낌새는 사라졌지만, 아직도 뜨겁고 화끈한 불닭볶음면보다 차갑고 매콤 새콤한 비빔면이 더 땡긴다.

크… 저 진하고 얼큰한 국물 보게나.

여름이라서 즐길 수 있는 메뉴들이 반가우면서도, 너무 갑작스러운 더위 앞에서 괜히 지난겨울의 뜨끈한 국물들이 아쉽기도 하다. 땀 뻘뻘 흘리며 뜨끈한 국물을 즐기고 싶었다.


돼지국밥도 좋고, 설렁탕, 갈비탕도 좋다. 어묵탕에 소주 한잔도 좋고, 하다못해 잘 끓인 라면 한 그릇이라도. 뜨끈한 국물을 즐길 수 있는 막바지에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결정한 것은 바로 ‘육개장’이었다.



육계장, 육개장, 닭계장,닭개장


가끔 육개장을 ‘육계장’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건 육개장의 유래와 어원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실수인데, 육개장은 원래 그냥 ‘개장(狗醬)’이었다. 우리가 흔히 ‘보신탕’이라고 부르는 그 음식처럼, 소고기가 아닌 개고기로 끓인 음식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민가에서 잔칫날이나 아픈 사람이 있으면 개를 잡아 국을 끓이는 풍습이 있었다. 지금은 ‘반려견’이라는 단어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인간과 특별한 유대관계를 갖는 동물이지만,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소가 농사의 핵심 일꾼이다 보니 소의 도축을 엄격히 금하는 ‘우금정책’이 시행될 정도였고, 어쩔 수 없이 소 대신 개가 희생될 수밖에 없었다.

죄송했습니다 개님 소님…

특히 복날에 심신 보양식으로 이 개장을 먹었는데, 개고기 특유의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얼큰하고 진한 양념을 썼고 대파, 고사리, 숙주 같은 채소를 듬뿍 넣었다고 한다.


그런데 간혹 개고기가 부족하거나 개고기를 먹기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는 농사일을 하기 힘든 병들고 늙은 소를 잡아 소고기로 대체했는데, 바로 그것이 ‘육개장’이다. 비록 소고기이기 하지만, 고기를 결 따라 찢어 넣은 모양새는 개장과 흡사했다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닭개장 또한 ‘닭계장’이 아니라 ‘닭개장’이 맞다.


물론, 내가 먹었던 건 개고기가 아니라 소고기가 들어간 육개장이었다. 이쯤 되면 뭔가 비하하려는 의도로 쓰는 말인 ‘개나 소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개나 소는 그렇게 비하되기엔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내어줬으니까.



뭔가 흘리며 먹는 음식


개그맨 김준현처럼 뜨거운 걸 먹으면 땀샘에서 홍수가 날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사람이다 보니 육개장을 먹을 땐 이마며 콧등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한 모금 마시고, 단전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감탄사 내뱉고, 슥슥 땀 닦고, 다시 한 모금… 참 부지런히도 먹게 되는 음식이 아닐 수 없다.


마주 앉아 함께 육개장을 먹을 수 있는 사이라면, 그래도 꽤 허물없는 사이일 확률이 높다. 육개장은 차분하고 고상하게 먹기 힘든 음식이니까. 솔직하고 화끈하게 먹어야 하는 음식이니까. 적어도 서로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아무렇지 않게 여길 정도의 사이는 돼야, 육개장 한 그릇 비울 수 있다.

나이 들수록, 장례식 갈 일도 잦아진다.

사실 육개장은 땀 말고도 뭔가 흘리며 먹게 되는 음식인 것 같다. 내 돈 주고 사 먹는 맛있는 육개장이 아닌,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장례식장에서의 육개장이 그렇다. 고인과의 관계에 따라서, 눈물을 흘리며 먹게 될 수도 있고 씁쓸한 마음을 소주 한잔에 털어 넘길 수도 있다.


더 이상 먹는 일이 생의 과업이 아니게 된 고인을 생각하면서, 충실한 식사를 해내는 일. 그 생의 역설에 한 그릇의 육개장이 있다.



육개장의 내력


영화 ‘식객(食客)’에서는 이런 육개장의 슬픈 내력을 살펴볼 수 있다. 나라 잃은 슬픔에 순종이 식음을 전폐하고 있을 때, 대령숙수가 올린 육개장을 먹으며 하는 대사다.

이 탕에는 조선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평생 묵묵히 밭을 가는 소는 조선의 민초요, 고추기름에는 맵고 강한 조선인의 기세가, 어떤 병충해도 이겨내는 토란대에는 외세의 시련에도 굴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고사리에는 들풀처럼 번지는 생명력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 ‘식객(食客)’ 중에서

예부터 가장 가깝게 정을 나누던 가축인 개나 소를 잡아 끓여냈던 육개장. 그 육개장으로 몸보신을 하고, 그 육개장으로 잃었던 나라의 정신을 되새겼다. 그랬던 육개장은 추운 계절 시린 속을 데워주었던 다정함을 지나, 떠나보내는 사람의 뒷맛, 죽음의 비린 뒷맛을 얼큰하게 덮으며 그 내력을 이어가고 있다.


여름의 끝물에서 삼계탕 대신, 육개장을 한 번 더 먹어봐야겠다. 혹시 가게가 허름하고, 에어컨도 잘 되지 않는 곳이어도 불평하지 않고 국물을 마셔야겠다. 한 모금, 한 모금 육개장의 지난했던 내력을 곱씹으면서.


원문: 김경빈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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