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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디지털 노마드라는 이름의 비눗방울

조회수 2018. 8. 16. 10: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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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노마드로 살 수 있을까?
발리는 발리발리하지

〈발리에서 생긴 일〉의 발리, 신들의 섬 발리, 디지털 노마드의 도시 발리.


자연 끝내준다. 서퍼들의 천국인 파도가 있고, 라이스 필드가 펼쳐져서 초록 초록하고, 산도 있어서 하이킹도 가능. 주변에 자그마한 섬들도 많아서 갈 곳 많고. 날씨 쩐다. 파란 하늘에 햇살이 눈부시게~ 샤라라라 ○카리○웨트 광고 찍어도 됨. 저렴하다. 럭셔리 리조트에서 사치를 부려도 그렇게 비싸지 않으며, 부담 없이 레스토랑에서 밥 먹어도 된다.


사람들 친절하다. 발리 사람들은 원래 이렇게 순한가! 생글생글 웃음이 어디서든 돌아온다. 냉랭 무뚝뚝한 북유럽에서 온 사람들은 여기에 깜빡 죽음. 의사소통이 편하다. 어느 정도 영어는 다들 할 줄 안다. 손과 발을 동원해야 하는 베트남과 다르다. 인도네시아어는 쉬운 편이라서 금방 배울 수도 있고, 꼬불꼬불 외계어로 쓰여 상형문자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일단 알파벳으로 적어서 누구나 읽을 수 있다.


인터넷이 느려 터져서 분통이 터진다는 것만 빼면… 뭐 그래도 인도보다는 빠르다. 누구나 홀딱 반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나도 그 조건들을 듣고 귀를 팔랑이면서 방문했으니까. 아 이런 곳이라면 뭔가 다른 삶이 가능하겠어!


아마도… 애인이랑 놀러 갔다면 발리는 최적의 장소이겠다. 혼자서라도 뭔가 그저 요가하고 명상하고 쉬러 갔다면 제법 괜찮겠다. 돈지랄해서 럭셔리한 곳의 최상급 서비스를 즐기러 가겠다면 최적이다. 하지만 난 혼자 터벅터벅 찾아갔으며, 요가와 명상과 쉼을 필요로 한 것도 아니고(그걸 한 달 동안 할 수도 없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라서… 이거 말고 발리에 뭐 없나?

코코넛 있음. 코코넛은 이렇게 먹어야 제맛.

아, 그래. 디지털 노마드. 코워킹 스페이스가 우붓에 총 3군데 있다. Hubud, Onion, 새로 생긴 곳인데 이름 까먹음, 그리고 창구에 Dojo 뭐라고 불리는 코워킹 스페이스. 일단 원조 격인 Hubud을 중심으로 디지털 노마드 피플이 대략 3-50명 정도 거주한다. 우붓을 매일 들락날락하고, 각종 커뮤니티 모임에 참여하고, 이렇게 한 달을 보내면서 제법 흥미롭고 재미있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약 4년여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프로그래머 친구처럼 ‘진정한’ 디지털 노마드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최근 1-2년간 퍼진 이 단어 ‘디지털 노마드’에 혹해 나도 한번 해볼까 해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혹은 때려치우기 직전에) 발리에서 맥북을 들고 뭔가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보려고 하는 친구들이 약 80%을 차지한다. 그래서 이들은 어떠한 사람인가 들여다보니 대부분 이러했다.

  • 미국, 캐나다, 유럽, 호주 등 대부분 좀 추운 나라 출신
  • 나이는 30대 초중반
  • 약 3-5년간 사회생활을 하다가
  • 아이샹- 이게 뭐임. (내가 보기엔 나쁘지 않은 조건의 삶임에도) 나도 날씨 따스한 데서 편하게 살고 싶음.
  • 디지털 노마드? 나도 해보자.
  • 발리로 가자.

그렇게 발리에 도착해, 삶은 대부분 또 이렇게 나뉜다.

  • 1주~한 달 동안: 경험해보겠음!
  • ~1년 미만: 돈이 떨어져 감, 비즈니스를 만들어보자,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작가? 디지털 마케팅? 요가 티쳐? 보따리 장사? 돈 되는 건 다 해보아요! 창업가 정신! 맨!
  • ~1년 미만: 사랑에 빠짐. (새로운 삶- 끝) (본인도 이 케이스였으면 했는데…)
  • ~3년 미만: 에어비앤비 돌리고 있음, 게스트하우스 차렸음, 발리에 오는 관광객 대상으로 이미 장사를 해 자리 잡음

그렇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단어를 해부해보면 결국 자기 자신의 나라를 떠나 워라밸을 즐기면서 여행도 가끔 하면서 살고 싶어요!라는 열망이 숨어있다.

  • 내 고향을 떠나서(너무 비싸서, 너무 추워서, 삶이 팍팍해서 – 진짜?)
  • 워라밸을 즐기면서(=따스한 나라에서 하루에 4-6시간 일하면서)
  • 여행도 가끔 하면서(가보고 싶은 나라가 너~무 많아!)

근데 돌아다니면서 장소에서 완전히 독립적인 직업은 사실 한정적이다.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작가, 보따리 장사(…) 정도가 아닐까? 근데 그 직업이 본인의 적성과 얼마나 맞을까?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는 내 인생

스크린 너머의 사람들과 일하는 것보다, 사람들과 현장에서 부대끼면서 침 튀기면서 일을 하는 게 더 적성에 맞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노마드로 살 수 있을까? 2년 가까이 돌아다닌 본인의 생각으로는, 노마드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결국 사람은 어느 정도 베이스가 필요하다. 난 그다지 디지털 하지도 않고(아날로그함, 사람들과 부대끼는 게 좋음), 노마드한 것을 즐기지도 않구나(처음엔 재밌었지, 지금은 정착할 곳을 못 찾아서 떠돌아다닐 뿐). 아 망했어요. 그렇다고 돌아가기는 싫고, 뭔가 대안을 마련하고 싶었다.


뭐 이러한 복잡다단한 고민과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푸르디푸른 논밭을 바라보며 토론을 하다 한숨을 쉬는 것이다. 하… 내가 원하는 건 뭐지. 뭐 어찌 되었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집단 상담과 수다를 하기엔 적합한 장소이긴 했다.


그러나 냉철하고 현실적인 고민이나 대안보다는 그런 고민을 하다가, 요가와 명상으로 끝나버려서 허망했을 뿐.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농사를 짓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더 현실적으로, 더 진정성 있게 보였다는 것뿐.

대나무로 지어진 학교. 그린스쿨

원문: Lynn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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